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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예비군 제도, 작별을 이야기할 때"

[프레시안]"예비군 제도, 작별을 이야기할 때"

 

  국방부는 지난 11일 현행 예비군 제도 개혁의 밑그림을 드러냈다. 현재 3800여 개인 예비군 중대의 수를 2020년까지 2200여 개로 줄이는 대신, 훈련의 질을 높이고 관리인력을 정예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20'에 따른 예비전력 정예화 방안의 일환이다.

 

  이런 밑그림을 발표하면서 국방부 관계자는 "예비군 규모를 줄이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예비군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방안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 감소, 예비군 조직의 비대화에 따른 사회적 낭비 등이 이런 계획의 배경이다. 결국 군사적, 경제적 효율을 높이는 게 이번 개혁 조치의 목적인 셈이다. 그리고 최근 정부가 내놓은 '비전2030-인적자원 활용전략'에 담긴 병역 제도 역시 비슷한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조치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국방개혁'은 다른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가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을 그대로 둔 채, 단지 군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진정한 국방개혁'은 군대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인 남성의 상당수에게 군 복무 경험을 안겨 주는 징병제로 인해 사회 곳곳에 스며든 군사문화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병영사회의 특징을 상당히 강하게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제적인 군 복무 경험, 그리고 전역 이후에도 군대에서의 경험을 계속 상기하게 만드는 문화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 경험을 계속 되새김질하게하는 장치 중 하나가 '예비군 제도'다. 실제로 많은 성인 남성들이 "예비군복을 입는 순간, 군 복무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또 훈련 조교들이 예비군들에게 '선배님'이라며 존대하는 예비군 훈련장의 문화 역시 병영에서 경험한 서열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예비군 제도의 진정한 개혁은 '예비군 폐지'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회적 자원 투입에 비해 전력(戰力) 향상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는 이유로 '예비군 폐지'를 요구해 온 기존 주장과 다른 맥락에 있는 것이다.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는 나동혁 씨도 병영사회의 문제점에 공감하면서 예비군 폐지를 주장해 온 이들 중 한 사람이다. 11일 국방부가 내놓은 예비군 제도 개편안을 접한 나 씨가 예비군 제도와 병영사회에 대한 평소 생각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다음은 나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군복무기간 단축에서 예비군 제도 개혁까지

 

  참여정부가 국방관련 개혁안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지난해 나온 '국방개혁 2020'에 이어 지난 5일, '비전2030-인적자원 활용전략'을 발표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2014년까지 현역병 복무기간 6개월 단축 △첨단전력 분야 등 숙련병 확보가 필요한 분야에 '유급지원병제' 도입 △전의경과 경비교도, 산업기능요원, 공익행정요원제도 폐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복무하는 '사회복무제' 도입 등이 주요 골자다.

 

  저출산·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2010년부터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될 것이므로 다가올 인력부족 현상에 대처하려면 보유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참여정부가 전부터 강조해 오던 국방개혁의 큰 방향과 맥을 같이하는 내용이다.

 

  이런 취지에서 참여정부는 지난 11일 예비군 제도 개혁안을 추가로 제시했다. "'국방개혁 2020'에 의한 예비전력 정예화 계획에 따라 현재 300만 명인 예비군을 2020년까지 150여만 명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읍·면·동 단위로 편성되어 있는 예비군 중대를 인근 시·군·구 단위로 통폐합하고, 대신 상근복무 예비역 간부 2600명 정도를 선발해 질적 향상을 꾀한다는 내용이다.

 

  국방개혁안에 담긴 참여정부의 정신은 무엇인가

 

  한 동안 '노무현 리플달기'가 온라인 공간에서 유행했었다.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따위의 리플을 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를 향한 냉소적 시선은 끝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태도를 취하는 탓도 있다.

 

  얼핏 보면 참여정부가 내놓은 국방 개혁안들은 부족하나마 과거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느낌을 준다. 이를 테면 '군복무 기간 단축'은 군사주의가 다소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이다.

 

  또 사회복무제도는 신체등급이 낮은 대상자뿐만 아니라 본인이 희망할 경우 여성이나 혼혈인, 귀화자, 고아도 복무할 수 있도록 규정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동시에 인력 활용의 다양성을 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예비군 제도 개혁안은 참여정부가 구질서 타파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모든 구태의연한 것과 이별을." 항상 그렇듯 참여정부의 개혁안은 이런 명분을 달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참여정부가 국방개혁안을 마련한 취지를 살펴보자. 결국 '효율', 그리고 '국력'이다. 정책을 둘러싼 세련된 포장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구태의연한 국가주의, 권위주의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경제성장 동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 국민의 예외 없는 병역의무 이행'이라는 군사 정권의 구호만 반복될 뿐이다.

 

  참여정부가 지향점으로 내건 '인권', '평화', '탈권위'의 정신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우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사회복무제 적용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모든 사람이 군복무를 동등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기묘한 명제로 귀착됐다.

 

  이런 점에서도 참여정부는 시민의 참여로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국가의 권위와 국가주의적 일체감에 기대는 방식으로 회귀했다. 결국 화려한 수사를 제외하고 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던 셈이다.

 

  예비군 제도는 어떻게 탄생했나

 

  참여정부는 종종 우리 사회가 '냉전시대 사고방식'과 단절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참여정부가 정말 '냉전시대 사고방식'을 극복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예비군 제도 개혁안에서도 이런 면모는 잘 드러난다. 이런 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하려면 예비군 제도의 역사를 잠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1.21 청와대 습격미수사건'이다. 곧 이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발생했다.

 

  정국은 경색됐고, 박정희 정권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본격적인 병영국가 건설 작업에 나선 것이다. 같은해 2월 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전선 개통식에서 250만 재향군인의 무장을 선언했다. 이어 같은해 3월 예비군 편성을 마무리했고, 4월 1일 향토예비군 창설식을 개최했다. 그리고 같은해 5월 29일, 향토예비군설치법을 개정·공포했다. (참고자료 : "의외로 '빡센' 예비군 훈련" <인권오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향토예비군은 현재 3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수에 이르게 됐다.

 

  극단적인 반공 분위기 속에서 창설된 예비군은 군사정권의 의도에 충실했다.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이들을계속 훈육하는 반공교육의 장으로 기능한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조직의 목적에 충실하게 따르는 집단성, 일상적인 폭력에 둔감한 태도를 교육하는 효과도 낳았다. 이런 사고방식을 군복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체화시켜 온 사람들에게는 수시로 지난날을 상기시키는 복습 효과도 만만치 않다.

 

  많은 이들은 이런 훈육 효과를 애써 무시하거나 아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일년에 그저 2~3일쯤 고생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회사에 안 가니 좋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어쩐지 훈련장에 가면 불편해진다"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군대식으로 돌아가고 사람들을 볼 때도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며 답답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에서는 해마다 적들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정신교육이 진행된다. 법적으로도 예비군은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 군인 신분이다. 언제든 국가가 원하면 군인이 되어야만 하고 총을 들어야만 한다는 현실을 계속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이 바로 병영국가의 작동원리다. 총은 들고 있지 않지만 군인 정신이 학교, 직장, 가정 등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인간관계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 다양성에 대한 인정보다는 획일적 가치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중요시하고, 민주적 절차와 과정보다는 일의 효율과 결과의 총량만 중요시하는 분위기는 이런 사회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까칠한 사람'이나 '반조직적 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 알아서 기는 문화가 대부분의 조직 분위기를 압도한다.

 

  요즘 드라마 '하얀거탑'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비슷하다. 너무나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권력과 재화의 수단으로 여기는 병원의 현실. 그 드라마에 얼차려 같이 낯익은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외과 의사들이 옥상에 불려가 단체기합을 받고 몽둥이로 두드려 맞는 장면을 외국인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한국에서는 의사도 맞고, 개그맨도 맞고, 학생도 맞고, 아내와 아이들도 많이 맞는다. 군대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지만 병영국가 한국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누구보다 강력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집단적 상처의 재생산

 

  <전쟁과 인간,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라는 책이 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비교문화정신의학을 전공한 저자는 전후 일본인의 집단적인 망각 상태를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집요하고 파고 들어간다.

 

  인터뷰 대상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징집돼 만주 지역에서 군 생활을 했던 일본인들이다. 난징대학살과 태평양전쟁은 물론 731부대(흔히 '마루타 부대'라고 불린다)의 존재까지,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들이 개인들의 증언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난징대학살의 끔찍했던 밤, 일반인을 대상으로 삼는 생체실험, 초년병의 총검술 연습 대상이 되어 살해당한 무고한 농민….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살육에 무뎌져가는 과정, 그리고 전쟁 이후 가해의 역사를 망각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그 집단적인 망각과정이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의 부재로 나타나고, 결국 또 다시 일본사회가 오른쪽으로 기울어가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죄의식이야말로 우리들(일본사회)의 귀중한 문화이며, 진정으로 상처를 입는 데 익숙해진 사람만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에는 한국 사회 이야기를 해보자. <대한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자리가 있었다. 권 선생님이 심리학 관련 강의를 맡았는데, 마지막 시간에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심리적 내상)가 무엇인지 써내는 것으로 한 학기 강의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렇게나마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된 것도 한 학기 수업의 결과라고 했다. 학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어색해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을까? 남학생들은 80% 이상이 군대 관련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군대와 같은 압도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소 분산되는 경향은 있었지만 30% 정도가 성폭력 내지는 유사 성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표현하지 못하고 잠재적으로 안고 있는 고통까지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외국의 경우, 이런 상처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서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비롯된 분노는 대개 상처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으로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접 관계가 없는 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로 발전하는 게 보통이다. 굳이 외국의 사례, 이론적인 근거 등을 들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병영국가가 탄생했다. 그래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서도 비슷한 상처와 욕구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예비군 제도는 이런 상처를 반복해서 상기시키며 왜곡된 심리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장치일 따름이다.

 

  군대의 존재는 대다수 성인 남성들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지만, 역설적으로 세대를 넘어 국가주의적 욕망으로 질주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이 왜곡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의 앙상블

 

  전쟁이 없어도 늘 전쟁 같은 일상을 사는 것. 이것이 군사주의다. 예비군 제도는 한국사회 일상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다. "여기는 아직 전쟁터"라는 생각, "지금은 그저 휴전"일 뿐이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일상은 언제나 전쟁을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군사주의는 국가주의와 맞닿아 있다. 한국사회는 과거의 역사에서 '힘을 얻어야 평화도 가능하다'는 교훈만을 되새김질 해냈다.

 

  침략과 수탈로 굴곡된 일제강점기, 전쟁과 가난으로 점철된 현대사.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 했던 피나는 노력이 뒤따랐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에 비해 국력은 여전히 약하기만 하다. 그래서 강한 힘을 끝없이 갈망한다. 거기에 비례해서 열등감은 쌓여간다. 이런 과정이 국가적인 의제 앞에 무섭도록 단결하는 힘을 낳았다. 그 힘이 전쟁과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힘의 의미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이 군사적, 경제적 약자에서 강자로 올라서면 지난 역사 속의 상처가 주는 교훈이 완성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근대국가의 역사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구 근대국가의 역사는 다양한 형태의 상비군 제도가 정착된 역사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을 거쳐 나폴레옹 때에 이르러 징병제가 도입됐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근대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서는 '시민의 동등한 병역의무'가 시민권을 확보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팽창한 군사주의는 국가주의와 결부되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다.

 

  뒤늦게 이들 국가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은 서구 국가들의 지난 오류까지 고스란히 반복하며 따라간다. 그리고 서구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은 이제서야 조금씩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국가주의적 욕망은 대개 인간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총동원 전시체제는 비인간적 국가모델의 극단이다. 오늘날 예비군 제도는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완성된 총동원 전시체제에서 영감을 얻은 바가 크다. 그 이야기는 한국사회가 일상적인 전쟁 준비에 짓눌리고 있는 사회란 뜻이다. 물질적인 측면은 물론 정신적인 측면까지 말이다.

 

  예비군 제도를 다시 생각하자

 

  참여정부가 내세운 국방개혁의 취지가 '효율'과 '국력'에 중심을 두고 있는 한 시민들은 '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예외 없는 병역의무 이행'과 '예비군 제도 개혁'은 군사정권이 낳은 문제의 핵심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없다.

 

  예비군 제도 개혁은 궁극적으로는 예비군 제도를 없애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물론 국방정책의 속성상 주변 정세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축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쪽의 국방력 강화가 상대방에게 군사력 증강의 명분을 준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힘으로 주변정세를 돌파하는 게 아니라 다자적 안보체제에 기반한 평화적 관계를 구축해나갈 생각이라면 자신부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이어진 근대 국민 국가의 비극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물론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득권 세력, 그리고 예비군 제도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별 생각없이 예비군 훈련을 받는 동안, 잊고 지낸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어려운 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군사주의, 국가주의가 팽배한 사회구조를 뜯어고치는 작업과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전쟁과 집단적 광기가 판치는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예비군 제도의 목적은 군사주의, 국가주의적 가치를 훈육하는 데 있다.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있다. 개인의 참다운 삶을 위해 국가 안보가 필요한 것이지, 안보를 위해 참된 삶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군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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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와 트라우마

 

1. 

잊을 만하면 다시 쓰는 수감일기다.

요즘 사람들이 하도 ‘재밌다, 재밌다.’ 해서 드라마 <하얀거탑>을 다운 받아 보고 있다. 봤더니 재밌다. 2회까지 봤는데 하루 두 편씩 다운 받아 볼 작정이다. 재밌는 걸 보면 나는 가만있지 않고 ‘왜 재밌나?’ 분석한다. 병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캐릭터마다 정치하는 방식이 그대로 들어난다. 젊고 패기 넘치는 김명민은 무엇이든 거침이 없다. 그러나 점점 권력관계의 속성을 이해하면서 행동도 노련해진다. 외과 과장으로 퇴직을 앞둔 이정길은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뒤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권력자들에게 줄을 대서 김명민을 몰아내려 한다. 역시 가장 노회한 인물은 김창완이다. 부원장이라는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절대 드러내놓고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입장을 다 들어주는 척, 자신은 인간적이고 털털한 척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의 결점을 잡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놓은 다음 결정타를 날린다. 여기에 비중이 다른 캐릭터들이 여럿 가세해서 세상사 돌아가는 복잡 미묘한 이치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재밌다’는 건 결국 공감대가 크다는 이야기니까 ‘왜 공감대가 클까’ 하는 문제로 고민이 이어진다. 왜 크긴. 아주 단순하다. 세상이 온통 크고 작은 정치판이다. 인간 세상에서 순진하다는 말은 멍청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착하다는 말도 다분히 모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영리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2.

‘사람이 그저 도구에 불과한 취급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지만 어느 조직이건 그 자체적으로는 자기완결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느낌까지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있다.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 항상 도구적으로 존재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도구적 관계가 일상을 압도할 때 생긴다. 정치는 그래서 야박하다. 일상이 온통 정치적인 관계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보자.

정치적이라는 건 기본 권력관계를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내 이야기가 힘을 얻을까? 입지를 강화하려면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까? 윗선에 찍히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관계를 견뎌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저항해야 할까, 저항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구치소 생활 초반에는 항상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래서 참 피곤했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괴로웠다. 더러 착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환경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동화시킨다. 외로움도 즐길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외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마음을 주지 않다 뿐이지 일상적으로 너무나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병역거부자들이 보내는 편지를 읽어보면 대개가 그런 이야기다. 사람들 이야기. 그 가운데 적응하고 견뎌내는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쌓여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냉소.


3. 

가장 무서운 것은 냉소다.

얼마 전 책읽기를 함께했던 권인숙 씨가 해준 이야기다. 심리학 관련 강의를 맡고 있는데 마지막 시간에 트라우마(내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써내는 것으로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그나마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된 것도 한 학기 수업의 결과라고 했다. 결론이 어떻게 되었을까? 남학생들은 80% 이상이 군대 관련 경험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군대와 같은 압도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소 분산되는 경향은 있었지만 30% 정도가 성폭력 내지는 유사 성폭력1)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두 가지로 놀랍다. 하나, 여성들에게 성폭력의 위협이란 일상적인 공포구나. 둘, 남성들에게 군대는 엄청난 상처로 남아 있는데 대다수 남성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반대로 표현하고 있구나. 가령 영광으로.

안타깝게 나 역시 감옥 관련 경험을 빼놓고는 상처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군대 다녀온 사람들과 쉽게 말은 못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상처를 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남는 건 냉소. 그걸 극복할 방법이 별로 없는 현실이다.


4. 

근래 들어 우울증, 정서불안, 욕구불만, 심리적 내상 등 여러 가지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사람 이야기가 아닌 거 같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분명히 심각한 정서적 결핍이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인간관계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남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점점 피곤하게만 느껴지고 인간관계에 대해 냉소적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고 반대로 나 역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방어심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서서히 누적된 결과물이다. 이걸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고통스런 자기 성찰 과정이 필요하다. 우월감, 열등감, 피해의식, 분노, 공포, 자기모멸감 등등. 이런 감정들에 솔직해지고 아파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회복이 힘들다.


요즘 들어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힘든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서로 상처받거나 예민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고 자기감정이 앞서다보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방법은 지난한 대화와 소통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나 상담 과정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80% 이상이 가지고 있는 내상을 사람들이 마음속에 꼭꼭 감춰두고 있으니 이것도 참 대단한 일이다. 국가라는 괴물이 답을 주지 않는다면 자신들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책읽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개인적인 치유가 아니라 운동으로서 공론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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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평화수감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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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평화수감자의 날 함께해요


 

참여를 원하시면 www.corights.net/brokenrifle 로~

 


평화수감자의 날 소개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의 '평화수감자의 날(Prisoners for Peace Day)' 행사는 1956년 12월 1일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날에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에서 집계한 전 세계 평화수감자들의 명단이 발표되고 특별히 한 국가나 지역 혹은 평화이슈를 선정해 그 곳의 평화수감자들의 현황과 평화이슈 현안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의 평화수감자는 전쟁 혹은 전쟁준비에 반대하여 비폭력 행동을 하다 수감된 사람이면 누구라도 명단에 포함될 수 있으며 특히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공공연히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명단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평화수감자들은 병역거부자들이며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체포된 다수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과 함께 2003년에 처음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가 시작되었고, 올해도 역시 12월 1일에 평화를 원하는 다양한 활동가들이 준비하는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2003년 12월 1일 행사


 

 

 

2003년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문화제 부러진 총 이야기

일시: 2003년 12월 1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장소: 서울 고려대학교 제2학생회관 강당
주최: 12.1 평화수감자의 날 문화제 준비하는 사람들


함께하는 사람들:
동성애자인권연대 / 문화연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 사회당 / 성공회대학교 인권평화센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여성해방연대 / 월곡교회 / 인권운동사랑방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 전쟁없는세상 / 좋은벗들 / 참여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 평화인권연대

 

 

 

 

 

 

2004년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평화의 페달을 밟자'

 

 

 

 

 

 

 

 

2005년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Prisners for Pea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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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와 재판

 

또 다시 넉 달 만에 수감기록이다. 이 수감기록은 순 사기다. 수감생활도 다 끝난 사람이 그것도 서너 달에 한 번 씩 쓴다. 어느덧 출소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가니 이전 기억도 상당히 왜곡되었을 것이 뻔한데 게다가 갖가지 사후 정보나 지식으로 윤색되기 마련이니 이 글은 순전히 날조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되게 뻔뻔한 얘기지만 원래 그렇게 수감기록을 쓸 작정이었다. 안에서 쓰던 일기도, 수감기록도 출소하기 전에 다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쓰다가 지겨워서 관뒀다. 아무것도 새로울 것 없는 매일 매일을 보내니, 지금은 참 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 때는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귀찮았고, 힘들었고(할 말이 없는데 억지로 말을 만들어내야 할 때 참 힘들다), 구질구질해 보였다. 그래서 버렸다. 이거 싸들고 나가서 뭐에 쓰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막판에는 하도 쓸 말이 없어서 편지도 거의 쓰지 않았다. 너무 할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펜만 들면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났다. 아마 몇 달 쯤. 거기서 보이지 않던 것들, 못 보던 것들, 내가 문제의 정 가운데 놓여 있을 때 깨닫지 못하는 것들, 흥분된 감정 때문에 좀체 냉정하게 바라볼 수 없던 것들. 더 냉정하게, 더 솔직하게, 더 처절하게 보이는 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의 총량은 줄어들어도 해석의 총량은 자꾸만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은?? 그랬다.

시간이 지나니까 차츰 그 때 내가 왜 그랬었는지, 어떤 심정이었었는지, 무엇을 원했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감정은 너무 얽히고 뭉쳐 있어서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이 지나면 가끔은 안 보이던 게 보인다. 이건 누구나 경험하는 인생의 진리다. 이런 일반적인 조건 말고도 새록새록 그 때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은 많다. 수용시설과 관련된 뉴스를 볼 때면 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다 알고 있던 것들이야. 뭘 새삼스럽게 이제와서 떠들어 대는거야? 너희들은 그런 거 원래 몰랐었어?’ 이렇게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애초부터 이건 문제가 있었어. 그래서 내가 이런 이런 대안을 생각하고 있었지.’ 이렇게 생산적인 반응도 나온다. 심지어 얼마 전 서울구치소 내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와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었을게다. 출소하고 영화 ‘오로라 공주’를 볼 때는 종반부에서 엄정화가 어떤 방식으로 복수에 성공하는 지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다 맞춰내고야 말았다. 므훗해하는 내 모습. 대략 좋지 않다.


계기는 많다. 무엇보다 지금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이 보내주는 편지 속에서, 그들이 어떤 상황을 대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모습 속에서, 나는 매일 그들의 기쁨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해한다. 재발견한다. 마음으로 최대한 기쁨과 고통을 함께하려고 노력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안하게도 해석하고 관조한다. 동시에 과거의 나를 해석하고 관조한다. 그 시간에 자신이 얼마나 무미건조했었는지. 얼마나 자주 자학과 가학을 일삼았었는지. 또 얼마나 많이 심사숙고했었는지. 또 얼마나 선택지가 좁았는지. 그래도 나름대로 얼마나 자신이 대견했었는지. 오늘도 날조된 기억 하나를 붙잡고 떠들 작정이다.


얼마 전 병역거부자 김태훈 씨가 1심에서 1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는 통상 1년 6개월을 선고하던 기존 관습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우리는 판사가 똘아이라고 욕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고 2심(항소심)에서는 당연히 1년 6개월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항소심이 기각되고 1년 8개월 원심이 확정되었다. 이 소식을 유럽 여행 중에 들었다. 쿵~. 아주 된통 세게 두들겨맞은 느낌. 기분이 나빴다. 아니 아팠다. 숫자상으로는 2개월 차이다. 그런데 수감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게 아니다.


수감생활 초반에 진행되는 검찰수사와 재판은 사람들을 극도로 긴장시킨다. 심하게 위축되기도 한다. 재판 전날이면 어떤 사람들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이상한 꿈을 꾸기도 한다. 대개 당신에게 의미심장한 어떤 날 전야에는 그런 경우가 많을 테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재판 당일 행동지침에 얽힌 갖가지 미신이 있다. 같은 방 쓰는 사람이 재판을 앞두고 있는 날에는 한 방을 쓰는 사람 모두가 물이나 국에 밥 말아먹으면 ‘재판 말아먹는다’고 금지, 밥에 김 싸먹는 것도 금지, 컵라면도 금지, 비벼먹는 것도 금지, 뭔 놈의 금지가 그리 많은 지. 그런데 이걸 안 지키면 당사자는 아주 불쾌해한다. 미신이라해도 남이 관습을 안 지켜주면 괜히 불쾌하고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판사의 말 한마디에,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그 몇 분 사이에,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의 운명이 좌우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꼭 고무신만 신고 간다. 전 날부터 고무신을 광이 나도록 깨끗이 닦아두는 사람도 있다. 수능 백일 전날 온갖 선물 주고 받는 거랑 비슷하지 않나? 잘 찍으라고 포크를 선물하는 따위의. 사람들은 아주 긴장되고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제의(祭儀)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어찌 보면 실효성이 없는 일종의 주술행위지만 고난을 이겨내고자 하는 그 나름의 의식적 행동이기도 하다.


나는 글재주가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재판부에 제출하는 항소이유서나 반성문을 여러 차례 대필해 준 경험이 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감된 사람들에게는 아주 흔한 일이다. 예의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해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로 끝나는 그 반성문은 사실 아무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반성문이 큰 효력을 발휘한다고 믿고, 또 실제로 어떤 판사는 반성문을 안 쓰는 자에게 괘씸죄를 적용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판사의 종교적 성향을 조사해 같은 종교를 믿으며 새로 태어났다고 은근슬쩍 종교적 권위에 기대는 사람도 있다. 늘 어느 재판부에 판사 아무개는 어떤 경향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 마련이고, 아무개 판사랑 친한 변호사를 찾는다고 돈을 들이 붓는 경우도 있다. 당연한 일이다. 판사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달려 있으니. 판사들은 매순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진지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찌질이 판사들도 많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병역거부자 재판 과정에서 우리는 찌질이 판사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다.


병역거부 운동에서 다가오는 재판에 대비하는 것이, 판사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형량을 낮추고 보석을 받아내는 것이, 변호사들과 함께 변론을 작성하고 법원에 제출할 병역거부 이유서를 설득력 있게 써내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전례가 없었으므로 모든 과정이 항상 새로운 상황이었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1년 6개월 형이 관습처럼 굳어지면서 수사나 재판과정이 다소 안정되기 시작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1년 6개월을 받았다. 당연히 그렇게 예상하고 이런 저런 계획도 짜고, 재판에 대비한다. 그런데 예상이 깨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속담이 실재하는 상황. 엄습한다. 구치소에서는 일도 없다. 일이 없는 심리적 불안상태. 굉장히 힘들다. 김태훈 씨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고뇌하는 시간을 이겨냈으리라. 그래도 나는 믿는다. 병역거부자들이 강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마음고생 후에 더 강해질 것이라고. 또 바란다.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이겨내고 새로운 활력소를 찾기를.


이제 남는 것은 똘아이 판사를 심판하는 일이다. 자신은 판결을 내려보기만 했지 판결을 받아보지는 못했으니 피고인으로 재판정에 서야만 하는 사람들, 소위 피고인의 심정을 잘 모를 것이다.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사람들이 남을 판단하는 위치에 서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행사한다는 사실 자체를 어찌할 수는 없다. 누구를 그 자리에 세워도 완전무결한 판결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판사라면, 국가권력의 정점에 서서 남의 인생을 쥐락펴락 하는 사람이라면, 좀 영리해야 한다. 공정하고 냉정해야 한다. 착한 심성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판사는 왜 똘아이인가? 우선, 공부를 안했다. 이론 공부도 안했고 세상물정 돌아가는 공부도 안했다. 그래서 똘아이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결이 주관적인 감성에 치우치는 순간, 권위는 추락한다. 똘아이가 제 고집을 신념이라 우기기 시작하면 피곤해진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고 했다. 적어도 민주사회에서 판사질 하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한다. 국가권위를 빌어 누군가를 판단할 때는, 판사의 개인적 감정이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판사는 판사의 재량을 이야기한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재량껏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강조하는 것이다. 당신 재량에 한 사람의 삶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라. 당신이 판사 앞에 서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라. 영리한 판결이 세상을 움직이기도 한다. 역사적인 판결이 큰 변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어떤 판결은 역사적인 ‘쪽팔림’으로 남기도 한다.

또 있다. 이 판사가 똘아이인 이유. 판사는 무오류의 권력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무오류의 권력이란 민주사회에선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군대, 사법부, 경찰, 검찰, 정당, 국회 등 각종 권력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을 무오류의 화신이라 착각하고 있다. 반성도 없고, 회개도 없고, 회한도 없다. 자신의 결정이 항상 옳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 착각을 깨줘야지. 판사님 앞으로 편지나 한 통 쓸까? 신경도 안 쓸텐데...심난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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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레바논 대사관에 보낸 토마토 2상자

 

 

 

레바논 대사관
서울시 용산구 동빙고동 310-49
tel: 02) 794-6482/4
주한 레바논 대사앞

토마토 2box

힘드시지요..

평화를 입 밖으로 내 뱉으면
이미 저 멀리 멀어집니다.
떠오르는 해를 따라 삶이 날아가고,
지는 해에 삶이 잠드는
짦은 시간을 통해 평화가 무엇인가를 알게 합니다.

이렇게 나마 마음을 나눌 수 밖에 없는 제 삶이 초라하지만
아주 작은 마음이나마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계절이 뜨겁습니다.
전쟁의 포화속에서 울부짓는 그 소리처럼
뜨거운 햇살아래 오늘을 견디어 내는 것이 힘들기만 합니다.

그래도 힘냅시다.
이렇게 밖에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부족한 마음으로
토마토 농사를 짓는 무지랭이 농사꾼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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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난장에 함께해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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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업무가 돌아가는 방식

정말 오랜만에 수감기록을 쓴다. 수감생활이 끝난 지 한참 됐는데 꾸역꾸역 기억을 되새김질 하는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글의 의미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너무 흐르다 보니 신세타령으로 흐를 거 같아서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생각한건데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의 편지를 꾸준히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거니 싶다. 아무래도 그들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더 잘 해줄 거 같다. 아무튼 최근 들어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소홀했다. 소식지도 잘 안 나오고 나 혼자 지친 것도 있고, 나는 맨날 듣는 소리라 별로 절실한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고. 정작 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일단 시작은 지문날인으로 해보자. 이승규씨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지문날인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으니. 그리고 구치소에서는 지문날인을 둘러싼 헤프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아차, 이승규씨 소개를 먼저 해야겠다. 이승규씨는 다산인권센터와 민주노동당 수원시지부에서 활동하다가 수감된 병역거부자다(궁금하신 분은 www.withoutwar.org에 들어가서 [병역거부자 만나기]를 클릭해보세요). 애초부터 지문날인을 거부해왔던 이승규씨는 수감시설 안에서도 계속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있어 고생이 이만 저만 심한 게 아니다. 영치금도 못쓰고 영치품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난 지금도 지문날인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주민등록증은 만들었고 어지간해서 지문날인할 일이 없고 무엇보다 그 부분에 있어 절박감이 크지 않다. 될 수 있으면 더 이상 지문찍을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주민등록증도 아주 늦게 만들었는데 그것도 의식적인 도전이라기 보다는 기나긴 수배생활로 인한 자연스러운 지연에 불과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도 인권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건 아니다. 구치소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살짝 보여주려는 게 이 글을 목적이다.

 

 구치소 안에서는 지문날인에 얽힌 사건들이 참 많았다. 수감시설마다 대응방법이 달라서, 가령 이승규씨가 수감되어 있는 김천교도소는 원칙적으로 지문날인을 고집하고 있지만 서울구치소는 사정이 달라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온갖 헤프닝이 벌어진다. 지문날인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이승규씨 같은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다. 대부분은 정확한 의미로 지문날인을 '기피한다'. 매일 인주밥을 먹은 엄지손가락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을 때가 많았고, 재수없게 보라색 스템프라도 찍으면 그 자국이 며칠씩 간다. 매번 지문을 찍을 때마다 기분이 아주 찝찝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손에 자국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남에게 대신 찍으라 시키고(여기서도 위계질서는 꾸준히 작동한다), 새끼 손가락으로 찍고, 휴지대고 문지르고, 경우에 따라 눈치껏 싸인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열 사람의 정체성을 대신하기도 하고 발가락이 손가락을 대신하기도 한다. 심지어 교무과 감사 나온다고 하면 몇 달치 '자변도서 구입원장(수감자들이 자신의 영치금으로 직접 책을 주문할 수 있다. 영치금을 사용하는 모든 경우에는 지문날인을 요구한다)'을 죄다 꺼내서  비어있는 지문날인란에 일일이 지문을 찍어댄다. 교무과 출력수 몇 사람이 수십, 수백명의 지문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밥먹듯이 이루어지는 '문서조작'이고 '불필요한 문서 남발'이지만 이런 관행은 매번 반복된다. 어차피 그 수많은 지문을 판독할 시간도 없겠지만 그나마 판독이 가능할만큼 온전히 찍혀있는 지문이 거의 없다. 그만큼 지문날인은 이미 '규정만 남은' 불필요한 절차에 불과하다. 그러나 교도관들은 업무상 마찰이나 수용자들의 문제제기가 발생하면 유일하게 사실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지문날인 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예산 부족으로 시스템이 낙후한 것도 문제지만, 교도관들의 무사안일도 큰 문제다. 나에게 문제만 터지지 않는다면 무조건 변화를 거부하는 공무원 사회의 정서 때문에 구치소 운영시스템은 여전히 80년대 수준이다.  정치사범, 대형 경제사범같은 소위 '범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지문을 찍을 일이 없다. 사동청소부(사동 수감자들에게 식사나눠주고 청소하고 교도관 잡일 거드는 출력수들)가 대신 다 찍어주고, 사동청소부도 안 보이면 교도관들이 대신 싸인해주고 도장찍어주고 다 한다. 이미 다 보여주고 있는 거 아닌가? 교도관들이 신원확인을 하는 게 제일 확실한 본인확인 수단이다. 갇혀 있는 사람들은 항상 똑같고, 가슴에 수번까지 달고 있는데 그보다 더 확실한 본인확인 수단이 어딨나? 지문 대신 사인이나 도장써도 똑같은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싸인하라 그러면 돼지꼬리 그려넣는 사람에서 다른 사람 이름 써넣는 사람까지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다. 교도관들이 좀만 부지런하면 문제는 다 해결된다. 그런데 안한다. 바쁘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잠자거나 범털들 불러서 노가리까고 신문 뒤적거리다 집에 가는 교도관들 많다. 하기사 교도관들의 노고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야근도 많고 사람들 인식도 좋지 않은데다, 공무원 중에서도 봉급이 가장 낮다는 예의 뼈에 사무치는 피해의식. 게다가 온갖 억지와 히스테리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비위 상하는 일도 많이 한다. 그래도 달라져야하는 건 달려져야지.

 

교무과에서 일하면서 정말 웃지못할 일이 있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출소한 국회의원 나리께서 과거에 자기 앞으로 들어왔던 책목록을 알고 싶다고 교무과에 정보공개신청을 했다.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해졌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여전히 모든 문서가 전산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삼년 전 자료를 다 찾아내는 일이었다. 크허~~ 한 해에만 창고에 쌓이는 문서 박스가 창고로 하나 가득이다. 별 쓸데없는 온갖 종류의 서류들이 '법적 정보보존 기간'을 지키기 위해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다. 결국 교무과 직원들은 안절부절하며 각종 방안을 모색했으나, 전 국회의원 나리의 요구인 이상에야. 토요일 하루 종일 창고에 쳐박힌 수십 박스의 서류를 다 꺼내서 뒤졌다. 그 나리께서 삼년전 읽었던 책 제목을 알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크허~~ 삼년전 서류를 뒤지다가 내가 전에 수감되어 있을 때 자료를 찾아냈을 때는 정말 기분이 묘했다. '그래 그 때는 이 책을 읽었었군.' 하고 혼자 묘한 감상에 젖었다.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구색맞추기로 책 목록이 완성되었다.

 

하루는 천정배 장관이 방문한다는 이유로 토요일 대청소를 했는데 복도 전체를 물청소 하려니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청소를 하는 건 좋지만, 꼭 하필 장관이 오기 전날이냔 말이다. 괜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약간 항의를 했더니 교도관 왈, "야 원래 이런 날에 청소하니까 이 만큼이라도 청결이 유지되는 거잖아." 그렇다. 이거야말로 교도소가 운영되는 시스템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준 거 아닌가. 자연스레 대청소 날이 정해지는거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시스템인거다. 연대장 방문하면 길을 닦는다는 군대랑, 법무부 장관이 방문한다고 대청소하고 페인트칠 새로하는 감옥은 뭐가 다른가?

 

어느 사회나 관행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관행은 변화보다 더 손쉽고 달콤하다. 사람들은 복잡한 토론이나 민주주의 따위 보다는 손쉬운 명령과 복종관계로 유지되는 관행을 사랑한다.  관행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자못 진지한데 일이 전개되는 양상은 서글프다. 차마 웃지못할 서글픈 코메디. 자신이 그 코메디에 참여하고 있을 때는 어떡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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