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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

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최호근 지음, 책세상)

 

 

1.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20세기는 학살의 세기였다.

20세기는 폭력의 세기였다.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말들이다. 그 만큼 인류는 또 다른 인류를 상대로 많이 싸웠고, 많이 죽였다. 그래서 결국 국제사회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들을 마련했다. 그 제어장치는 한없이 미흡하고 그 미흡한 제어장치마저도 수없이 부정되고 있으나 제어장치를 강화시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반인도 범죄와 전쟁범죄 규정이 있음에도 제노사이드 범죄를 따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확히 제노사이드 범죄는 반인도 범죄 및 전쟁 범죄와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 책은 이런 학술적인 물음에 답할 목적으로 쓰여진, 논문같은 책이다. 그럼에도 곳곳에 배어있는 분노의 목소리가 충분히 마음을 아프게 하고, 뒤돌아보게 만든다.

 

반인도 범죄나 전쟁범죄로는 규정할 수 없는 특정 집단에 대한 말살계획이 제노사이드다. 제노사이드는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정치적으로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집단학살이다. 국가 내지는 준국가 집단이 시스템을 동원해서 조직적이며 계획적으로 특정 집단을 제거하려는 계획이 제노사이드 범죄다. 21세기형 범죄인 동시에, 기계화된 인강성의 바닥을 보여주는 범죄다.

 

저자의 분류법에 따르면 가장 대표적인 제노사이드 범죄는 다음과 같다.

 

1. 프런티어 제노사이드 - 예)북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학살, 영국의 테즈메이니아인 학살(호주)

2. 나치 독일의 제노사이드 - 유대인,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등 우생학에 근거한 무차별적 학살

3. 민족과 종교가 결합된 제노사이드 - 예)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보스니아와 코소보의 인종청소

4. 혁명의 이름으로 일어난 제노사이드 - 예) 스탈린 치하의 정치집단 학살/소수민족 학살, 캄보디아 킬링필드

5. 식민화 과정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 - 예) 프랑스의 알제리인 학살

6. 종족 분쟁과 제노사이드 - 예) 르완다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학살,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인 학살

 

대부분 얼핏 한 두번쯤은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 구체적인 정황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위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제대로 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2.

구체적인 상처를 대면하게 되었을 때 함께 아파하고 극복할만한 용기가 있을까? 상처를 외면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래서는 상처를 인정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 언제나 이건 과거일 뿐이라고, 여기서 그만 멈추고 싶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제주 4.3이나 보도연맹과 같은 한국적 경험이 제노사이드 범죄로 규정될 수 있는 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 역시 충분한 집단학살의 경험을 갖고 있는 만큼, 이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0년은 망각의 역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을 보고 듣고 끝내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변화는 시작된다.

지금도 집단적인 광기 속에서 자라나는 폭력의 씨앗을 본다. 황우석에 대한 집단적 열병과 맹목적인 지지 속에서, 4년마다 반복되는 월드컵에 대한 열광 속에서, 경제적/군사적 강대국을 꿈꾸는 집단적 열기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편한 심기 속에서, 문화적 교류현상이 아니라 국익의 수출로 인식되는 한류 열풍 속에서 그런 광기를 본다.

 

병역거부는 이러한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작은 행동이다. 나는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는 논리는 이미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부정되었다. 이건 실제 전쟁이 아니라, 단순한 훈련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당신이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그 훈련은 무엇을 전제로 한 훈련인가? 그저 나는 재수 좋게 빗겨가기만을 바랄 것인가? 아주 작은 일부터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걸 부정하고 냉소하다보면 내가 서 있을 자리는 아주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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