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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빛의제국]

1.

빛의 제국은 뭐야? 그렇지. 이젠 더 이상 나에게 이념 따위는,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고정간첩이 국정원 프락치가 되어 동해 앞바다에서 잠수정을 타고 들어오는 동료들을, 아니지 그들은 더 이상 동료는 아니지, 팔아먹었어. 새벽 바다에 쏟아지던 써치라이트 빛은 미친듯이 강렬해. 빛의 제국. 아주 환하더군. 그리고 동료들을, 아니지 그들은 더 이상 동료는 아니지, 그들을 향해 미친듯이 쏟아지는 총알들. 그건 내가 쏜 건 아니지. 난 이제 국정원 프락치가 되어 동료들을 팔아먹었지. 그리고 난 아버지고 남편이고, 끝내는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난 여기 살아. 이제 더 이상 이념 따위는,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아무튼 난 여기 눌러 살기 위해, 프락치가 되었지.


빛의 제국은 뭐야? 사방을 밝히는 네온사인. 기쁨도, 외로움도, 상실감도, 비겁함도 이 빛 아래에선 아무 것도 아냐. 이 빛은 그저 감각이고, 돈이고, 권태지. 그럼 내가 찾던 빛은 이건가? 마음 속에 빛나던 이념의 빛은 이미 오래 전에 꺼졌어. 지금 북에는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데, 거긴 내가 갈 곳이 아닌데, 여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남겨지 있고, 그렇지 나는 소유하고 집착하게 되었어. 그것이 내가 가진 전부야. 내가 찾던 빛은 뭐야? 그런 게 있긴 한건가?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난 그냥 여기 살아. 애가 있고, 부인이 있고, 아파트도 있고, 돈도 있어. 난 솔직히 지금이 좋아. 도대체, 빛의 제국은 뭐야?

 

2.

영화 [살인의 추억]을, 몇 년 전에 봤을 때, 송강호가 첫번째 희생자를 발견했던 그 장소에서, 하염없이 슬픈 눈으로 빈 공간을 응시하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순간, 난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했다. 줄줄흐르지도 않고, 엉엉 소리가 나지도 않는, 그 눈물은, 꼭 그럴 때 그렁그렁하게 맺힌다. 그리고 [빛의 제국]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렇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송강호의 눈빛이 떠올랐다. 맹목적이었든, 합리적이었든, 지나간 열정은, 이유없는 회한과 서글픔을, 아주 오랫 동안 남긴다.

 

3.

후일담 소설이 많았다. 90년대 중반에는 부정하든, 긍정하든, 타협하든, 외면하든, 부채의식이 시달리든, 계속 지난 날들을 의식했다. 오랫동안 거부감 때문에 외면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되었고, 그러니까 그 엇비슷한 소설들을 줄줄이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김소진같은 소설가들을 아겼고, 한 편으로는 '그 상실감의 실체는 아무 것도 없다'고 화를 내면서도 묘하게 씨니컬해지게 멜랑꼬리해지는 순간 순간에 빠져드는 불편한 감정 속에 있었다.

그게 10년도 더 지나 송강호의 눈빛으로 되살아 났을 때, 막연한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빛의 제국]도 그런 상실감에 관한 소설이고, 참 많이도 팔리던 후일담 소설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많다.

 

4.

그런게 참 지겨울 때가 지났다. 어느새 후일담의 후일담도 지겨운 시절이 되고, 김영하처럼 너무나 재밌고, 재치발랄하고, 빠르며, 감각적인, 그러니까 여기서 감각적이란 마치 영화 컷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영하 단편소설은 다 그렇게 재밌었다. 가끔 소설책을 읽는 속도가 영화 한 편을 보는 속도와 비슷한 날이 있는데, 그런 때는 적어도 작가의 말발 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장정일이 말했듯이, 나에게 맞는 소설이란 거침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소설이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까먹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소설은 피하는 게 좋다. 그러니까 중학교 때 말도 안되게 어려운 해외 고전소설을 필독서란 이유만으로, 꾸역꾸역 읽어내려갈 때 '무슨무슨스키'로 끝나는 등장인물 이름 맞추느라 시도 때도 없이 뒤로 돌아보게 만든, 그 소설은 뭐냐? 중학교 때 그런 책 읽히면 독서에 정나미 떨어진다. 어휘력도, 철학도, 역사도, 받쳐주지 않는 소설을 어떻게 읽냐고?

 

그러다 김영하가 장편을 쓰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검은꽃]. 애니깽으로 불리운 멕시코 에네켄 농장. 한국 최초 계약 노동자로 팔려간 이들의 삶은, 여전히 빠르고 감각적으로, 그러니까 마치 영화 컷을 보는 것처럼 지나갔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역사적 상상력은, 이전 단편소설과는 다른, 그러니까 서사적 구조가 가능한 이야기의 맛에 푹 빠져들게 했다.

빛의 제국은 그런 소설이다. 김영하가 단편을 거쳐 장편으로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장점들이 골고루 배어나오면서, 역사적 무게 때문에 또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다. 이미 이 소재도 영화로 팔린 적 있으니 [간첩 리철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런 소설 참 지겨웠는데, 그래도 이 소설이 재밌는 이유는 순전히 김영하의 능력 때문인가? 자의식 때문인가? 이젠 잘 모르겠다. 한 편으로 권태에 지치고, 한 편으로 경제적 욕구 때문에 눌러앉아버린 이들에게, 꾸준히 반복되는 이런 소설들은 재앙인가? 위로인가? 자학인가? 성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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