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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포지션을 묻다

 

 

강사1.

 

 

이 사람은 고민이 많다. 씨니컬하고 심각하다. 자기가 강의하는 수업이 '소설의 이해'인데 첫수업에 대뜸 하는 말이 '자기는 왜 소설을 읽는 지 헷갈리기 시작했다'고. 그러면서 무슨 강의를 해야할 지 고민 중이라 아직 강의계획서를 짜지 못했다고.

그렇다 이 사람은 82학번이다. 자기가 대학에 들어왔을 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소설이었기 때문에 그 때는 누구나 소설을 읽었다. 진실에 목마른 자라면 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가장 강력한 의식화, 조직화의 도구였고 소설은 '현실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 많이 바뀌기 시작했단다. 이제 소설은 매스미디어의 힘에 밀려 그 영향력을 읽은 지 오래고 그나마 사람들이 찾는 소설도 정통문학과는 거리거 멀다. 사람들은 재미를 찾는다. 무거운 이야기는 기피대상이 된 지 오래. 80년대에 대한 반발이 너무 커서인지 필요한 순간에 조차 현실을 빗겨가고 있으니. 이 사람은 그래서 혼란스럽다. 과연 소설을 계속 붙들고 애정을 쏟아야 하는 것인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대개가 05,06학번. 대개의 학생들은 여전히 강사의 문제의식에 뚱~하다. 나는 굉장히 열심히 듣는 편이고 대화도 잘 되는 편이다.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었으니까. 소설에 대한 고민은, 어차피, 현실에 대한 고민이다.

 

그러다 학원 일정 때문에 메일을 보냈다. 미안한데 수능 끝나고 논술학원이 가장 바쁜때라 수업을 빠질 수 밖에 없는데 재직증명서를 낼테니 출석을 인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강사는 엉뚱한 곳에서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비정규직이지만 그래도 선생인데 자기를 강사라 부른 사람은 니가 처음이다, '미안하다'는 표현은 손아랫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성적은 자기 고유의 재량인데 '봐주면 좋고 아님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말이 너무 건방지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교수에게도 '님'자를 안쓴다. 호칭은 그저 습관일 뿐 한 번도 감정을 담아본 적 없다. 죄송하다. 선생님 수업 좋아하고 문제의식도 비슷해서 항상 관심이 높았다. 그 좋은 감정을 망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다시 답장. 학생 첫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매우 독특한 학생같아 보였다. 그래서 호감이 갔다(절대 나쁜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회생활 하기 힘들텐데 잘 이겨내기 바란다. (성격을 바꾸란 뜻이 아니다.)

 

그는 나더러 세상에 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기도 꽤나 독특한(?!) 사람 취급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방문자2

 

 

병역거부자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참 기분이...묘하다. 저 강팍한 시간강사의 표정. 그리고 바른생활 미소청년.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있을까?

안습. 이런 영화를 울지 않고 보기는 너무도 힘겨운 일. 우행시 볼 때만큼 대성통곡하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 계속 남는 감정의 찌꺼기는 더 강력하다. 속으로 흐느낀다. 옆에 동생이 앉아 있으니 더 그렇다. 일상적으로 나는 냉소하는 시간강사와 닮아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나는 바른생활 미소청년이 되어 있다. 수많은 이들을 생각했다. 병역거부자들, 재판정에 앉아 있는 어머니, 면회 함께간 시간강사의 아들, '이제 내가 너를 꺼내줄께'란 말을 책임지기 위해 전쟁을 땅 속에 묻어버리는 시간강사.

 

영화를 보고 다시 한 줌만큼의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갇고 강지환의 밝은 미소를 닮아보려 노력한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한다. '평화에게 기회를'.

적어도 마음 속의 감옥은 없애야지. 이제 내가 평화를 꺼내줄께.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행되는 일상적인 폭력. 하나씩 땅에 묻자.

 

 

 

 


 

 

3.

내 삶의 포지션을 물어봐.

 

어제는 함께 활동하는 친구 하나가 부모님에게 끌려갔다. 서른이 되면 이런 꼴을 안봐도 될 줄 알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저 지금은 침묵하는 것이 친구를 편하게 해주는 일. 이 역시 또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저 친구가 잘 이겨내기만을 바랄 뿐.

20대 초반은 항상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20대 후반 내내 겨울잠자는 개구리처럼 움츠러들다가... 이제는 뭔가 이거다 싶은 마음에 활기찬 하루가 지나면 다시 골치 아픈 하루가 시작되고.

이제 졸업과 취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나면 뭔가 달라지겠지. 달라지겠지. 몇 가지 또다른 도전을 시작해 봐야겠다.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하잖아. 내 삶의 포지션을 뭘까? 지금 내게 확실한 것 딱 하나. '평화에게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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