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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달산 - 일곱용꼬리잡기

  • 등록일
    2010/07/20 16:02
  • 수정일
    2010/07/20 16:02

- 역사와산 2010. 7월 영월 선달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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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산행을 가다.
 
남부지방이 장마비로 난리가 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린다. 비가 그칠거라는 얘기도 있고, 계속 될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장마전선은 출발지인 서울로 북상을 하여 장대비를 쏟고 있었다.
7월 17일 저녁, 전국적인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더구나, ‘역사와산’ 2010년 7월 산행, 이름도 처음 듣는 영월 선달산 산행은 우중산행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비가 내리면, 아니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산행(준비)의 방향을 간단하고도 복잡하다. 그래서 간단히 준비하키로 했다. 이번산행은 철저히 우중산행이다. 그리하여 짐은 최대한 간소하게, 출발도, 도착도, 산행도, 간단히 준비하고 깔끔하기로 결정했다.
그래 어차피 비가 오든, 해가 뜨던 2시간여의 가벼운 산행 후, 5시간정도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길, 여름을 만나 신나는 물놀이를 하면 되는 산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산행용 샌들을 포함하여 샌들만 2개, 판초의, 산행용 우의를 준비하여 참가하였다.
참가인원은 장맛비 소식과 생경한 산의 이름 때문인지 숫자가 줄어 단출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방학 때문인지, 오히려 아이들의 참가는 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비를 뚫고 서울을 출발하여 영월이 아닌, 경북 봉화로 출발하였다.
아마도 다들 내리는 비로 인해 걱정이 많았겠지만, 피곤은 우릴 잠들게 하였다.
몇 사람 북적거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버스 안은 고요함 속에서 달려갔고, 창밖에는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잘 달리던 버스가 덜컹거리고, 좌우로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신호였지만,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덜컹거리다가 목적지인 선달산 입구에 도착했다.
 
안개속인가, 구름속인가
 
7월 18일 새벽 4시, 아직 뿌옇기 만한 출발지에는 아무런 표시도 보이지 않았다.
선참에서 깨어 기지개를 펴고, 배낭을 메어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하품을 하는 사람들과 담배연기가 진하게 코끝을 약 올렸다. (담배를 끊기로 맘을 먹는지 5일째 되는 날, 아무래도 오늘이 젤 고비가 될 듯싶다.)
몸 풀기를 위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난후, 시멘트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여기저기 펜션과 별장 등이 눈에 들어왔고 그 길이 끝날 때쯤, 이날 처음이며, 그리고 끝없이 계속될 (작은)개울을 넘어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동네 뒷산처럼 포근하며 가볍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2시간여 선달산 정산에 오르기까지는 안개속인지, 구름속인지 알수 없었지만, 산행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선달산 정상까지, 우리가 만난 팀은 ‘늦은목이’에서 텐트를 치고 잠들었던, 학생들과 정상에서 만난 부부(!)가 끝이었고, 부부는 어떻게 아이들이 여기까지 올라왔냐며 신기해했다.
그것이 우리가 몰랐던, 알아야 했던 선달산의 진실 이였는지 모르겠다.
달밤에 구름체조하면서 걷겠다던 선달산 산행은 어래산까지였다. 우리는 목적지도 분명치 않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어래산에 도착한 후에야 하산을 준비했다.
 
벌을 만나 벌벌 떨었다.
 
어래산에서 하산을 시작하고도 한참을 능선을 따라 내려서야 했다.
가끔씩 질퍽거리는 바닥을 지나 한참을 내려갔다. 계곡이라기보다는 산에 물이 흐르는 느낌이다.
그렇게 흐르는 물을 따라 약 1시간 넘게 내려섰을 무렵, 왠집이 나타났다. 조그만 움막 같은 느낌을 주는 집은 굵은 나무을 섞어서 묶은 집이였고, 향과 향초, 제물들이 보였지만, 사람은 살지 않아보였다.
다시금 출발을 외치면 간만에 부지런을 떨면서 20여 미터 내려가서 결국 왼쪽 발 복숭아뼈 윗부분이 원인을 알수 없이 화끈거렸다. 그냥 뒷걸음질 치는데, 누군가가 ‘벌이다’라고 외쳤다. 흠 난 벌에 쏘인 거였다. 새끼손가락만한 노란바탕에 까만 줄무늬를 한 벌이 다리에 붙어 있었다.(짧은 시간에 잘도 봤음 ㅋㅋ)
‘흠 이렇게 아플 수가’, 생전 처음 벌에 쏘인 후, 몸 어딘가에 붙어 있을지 모른 벌을 찾다가 다시 하산을 시작했고, 약 5분후, 다른 누군가가 벌에 쏘였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반바지로 인해 상처부위가 계속 나무와 풀에 쓸렸다.
벌에 쏘인 부위가 부어올랐고, 통증은 징처럼 다리를 울렸다.
생각보다 가혹한 산행의 끝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건 나뿐 아니라, 아무도 알수 없는 길이였다. 거리야 지도로 재면 나올 테지만, 어래산아래 칠용계곡 길은 그야말로 원시적 형태를 간직한 모습 같았다.
제대로 말해서 길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하산 후 알게 되었지만, 우린 휴식년제 중인 계곡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거미줄이 쉼 없이 얼굴, 손과 팔, 다리를 감싸 안았다.
그나마 샌들을 신은 덕택에 계곡 속에 발을 담갔고, 그러는 시간만큼 다리의 통증은 얼음찜질하듯이 마비되어 감각이 없어서 좋았다.
 
습한 장마철에 흘린 땀방울을 씻어 줄 계곡길
 
어래산 아래 칠용 계곡은 급경사로 만들어진 폭포가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길)이였다. 그리고 길도 제대로 없었다. 다른 말로해서 칠용 계곡은 위험천만하다는 얘기다. 낭떠러지와 이끼, 그리고 어제까지 내린 비로 길을 위험한곳마다 질퍽거렸다.
역시나 이럴 때 샌들이 위력이 발휘된다. 그냥 미끄러진다.
장마철 습기와 한여름 무더위 속에 쏟아지는 땀방울을 씻겨주어야 했던 계곡 길은 긴장과 긴장으로 더위를 충분히 이길 수 있게 만들었다.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며, 완벽한 스릴을 안겨주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여름 산행 이였다. 체력이 바닥나지 않도록 중간 중간 쉴 수밖에 없는 길은 계속되었고, 끝을 알수 없게 위험을 도사린 길은 계속될 것 만 같았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 없이 산행은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다들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다들 이번 산행의 무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역사와산-집행부는 어느 순간 대오의 뒤에 있다가 앞에서 나타나고, 다시 뒤로 다시 앞으로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집행부의 의견과 판단에 따라 함께 움직였다.
잠깐 발만 담가도 등골까지 시린 계곡물에 몸을 담근 채 세찬 물살을 막아가며 동료의 하산을 돕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만약 오늘 비까지 왔다면’, 한숨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도 더 이상 계곡 물놀이를 기대하는 눈치가 아니다.
길에선 말벌을 만났고, 암벽보다 더 위험하다는 물먹은 이끼와 나뭇잎 덮인 진흙이 계속되었으며, 바위틈에 숨죽인 뱀도 구경 했다.
1,2미터 폭포는 계속되었고, 수 미터가 넘는 폭포도 중간 중간 나타났다.
참 별천지다.
외줄타기로 건너야 하는 다리를 만나서 라면을 끓여먹고, 세 줄로 된 다리를 만나 내리 천에 드니, 드디어 기쁨을 느꼈다.
기다리던 형태의 계곡이 나타났지만, 다들 지쳤는지 걷기만 했다.
 
칠용 계곡을 지나 내리 천을 만나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칠용 계곡(사실 끝나고서야 알았다)과 내리계곡이 만나 내리 천을 이루는 합수부에 도착하여 다들 진짜 웃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고 하산을 해서 다행이다라는 기분은 돌아보면 정말 멋진 산행 이였다는 판단케 한다.
이제라도 물속에 풍덩하고 싶은 맘에 굴뚝같은데, 다들 걸음이 바쁘다.
그 긴 시간을 하산을 했는데, 다시 1시간반가량 더 걸어야 한다고 한다. 무엇인가 계산이 틀리다. 시간은 이미 3시를 넘어 4시 가까이 되어 산행시간이 12시간을 맞고 있는데, 산행은 아직 계속되었다. 본격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했던 계곡길이였지만, 지친사람들에겐 고역과 같은 길이 계속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등산화를 포기하고 물속에 텅벙텅벙 뛰어들었다. 이것이 표현하는 것 중 하나는 체력 고갈임을 뜻한다. 더 이상 걷는 것, 뛰는 것, 갈아 신는 것, 모든 게 귀찮아 지기 시작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리 천 중간에 ‘라디오를 내놓지 않으며 낫으로 포를 뜨겠다'는 무서운 경고를 지나고도 하산이 계속되었다. 정말 길었던 하산 길은 또 한 번의 벌들의 공격에 안 그래도 힘들어하는 아이의 눈물을 쏙 뺐다.
 
새벽 4시반경 출발하여 약 13시간의 산행의 끝
 
13시간여의 산행의 결과는 체력방전과 배고픔, 그리고 약간의 통증으로 나타났다.
온몸에 땀 냄새가 심하게 배었지만, 늦게 도착한 까닭에 씻지도 못하고 저녁을 먹게 되었다. 아침이라고 6시 반에 먹고 나서 거의 10시간 만에 저녁을 먹게 되었지만, 중간 중간 계속 챙겨먹어 배고픈 줄 몰랐는데 밥상 앞에서 식욕이 땅긴다.
주린 배를 채우니, 땀이 배긴 몸의 꿉꿉함이 신경 쓰였고, 씻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왔고, 버스 안에서 1시간가량 수면을 취하고 나니, 다리 통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산행은 끝났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끝난 것처럼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멋들어진 산, 생전 처음 들어본 이름, 휴식년제로 길도 나지 않은 길을 밝은 웃음과 힘찬 전진, 그리고 나눔을 통하여 하루였지만, 길었던 산행이 끝났다.
 
산행이 끝나고, 연신 미안해하고 어려워하는 ‘역사와산’집행부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보냅니다. (혹시 먹고픈 것 있으면, 내가 살 테니 연락바람)
 
알고는 안 갔을, 몰라서 갔던 선달산-칠용 계곡-내리천 길
 
사람이 살면서 언제 해보고 싶은 것들만 있겠는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이 희뿌옇게 퍼져있는 선달산 입구와 달리 선달산에 오르자, 그것이 구름인줄 알았다.
지치고 배고픔과는 달리, 배낭 안에 든 음료와 먹을거리를 귀찮아서 꺼내지 못하는 것도, 체력이 고갈되어 탈진되어도 귀찮아 먹지도 씻지도 않는 것도 다 산행이다.
힘들어 할 때, 지치지 않고 다른 이의 산행을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가끔은 얄밉고 부러워도 그게 또 산행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올라가면 내려올 길이 있는 게 산행이다.
우린 그런 선달산을 함께 다녀왔다.
힘들지만 싫지 않았고, 지쳤지만 짜증나지 않았던, 아팠지만 고통스럽지 않았던 산행 이였다.
23명의 어른과 아이가 벌들과 싸우며 뱀을 피해, 물에 젖은 이끼에 미끄러지며, 생고생했던 선달산 산행이 기억하며...
 
 
* 월요일 핑계 김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엉덩이에 주사한방과 이틀 치 약을 먹으라 합니다. 그리고 안 나으면 다시 오라고 합디다. 벌겋게 부어올랐던 다리에 갑자기 실핏줄이 터져 흉하게 변하더니 하루 종일 간지러워하니 옆에서 하는 말 “나을 때쯤 엄청 간지럽다”랍니다. 봉침을 효과 삼아 확실하게 금연 실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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