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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리

  • 등록일
    2010/07/12 13:57
  • 수정일
    2010/07/12 13:57

지난 달,

동생이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입장이 갈렸다.

 

남의 집 귀한딸 인생 망치는 것 같다며 결혼을 반대한다는 입장이 더 많았다.

속으로야 결혼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왠지 다들 부담스러운 일인것 같다.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하니, 다들 바쁘다.

집 알아보러 다니고, 이것 저것 맞춰야 할 것, 만나봐야 할 사람, 챙겨줘야 할 것들

그 바쁜 것에 나도 껴 있다.

동생이 나가게 될 빈 자리에 해가 바뀌어도 정리한번하지 않는 내 방을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

가구를 옮기고, 처박힌 책들과 옷, 산행용품, 뭐에 쓰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온갖 잡동사니에 핸드폰만 3개나 튀어나오고 밧데리는 어디에 쓰는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읽지도 않는 책들이지만, 책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다.

읽지도, 정리하지는 못해도 어딘가에 꽂아두어야 할 것 같다.

그래 버릴 것은 버리자.

방하나 옮기고, 몇가지 정리한다고 했는데, 정리하는데 며칠은 걸릴 것 같다.

 

생각지도 않는 것들이 튀어 나왔다.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나는 일기도 나오고, 잡다하게 낙서된 메모지와 무엇을 기념하는 티인지 모를 옷들도 나온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책장과 구석 구석의 먼지를 닦다가 그냥 장판을 갈기로 했다.

너무나 아꼈지만, 어느 순간 내 시야에서 사라진 소중한 것들이 어느 구석에선가 나오고, 기억을 새롭게 요구하는 물품들이 보다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생각지도 못하다가 갑자기 방정리를 대충 마무리하고, 누웠다.

흐르는 땀을 씻어내고 저녁을 해결하고 나서 누운 방에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오래된 사진들 속에 그간 잊고 살았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지 기억도 못하는 사진들도 있고, 아직도 가슴이 아리게 하는 사진들도 있다.

그리고 먼저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디카가 생긴후로는 사진을 뽑지 않아,,, 별루 없네

어릴적 촌스럽게 웃는 사진부터, 지금보아도 너무 귀여웠던 사진(??), 또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까지 세월이 하나씩 그려진다.

 

다시본 그때,

나도 참 상큼해보인다.

믿어지지 않는다.

마치 천산에 오른 듯 병풍치듯 산맥이 휘감고, 다시 구름이 휘감는 곳에 홀로 서서 멋드러지게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세월이 참 무섭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기억해도 소용없는 것들,

그리고 기억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지금의 난 다시 어떻게 기억될가, 

 

일단 절대 감량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비록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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