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 주

from 바람의 열두 방향 2012/09/04 10:36

- Maurizio Lazzarato의 "The Concept of Life and the Living in the Societies of Control"를 읽는다. 이 글은 그의 책 Les Revolutions du Capitalisme (2004)의 한 꼭지로 Deleuze and the Social (2006)에 번역되어 수록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수년 전 석사논문을 쓰던 시절, 라자라토는 내 글쓰기의 모델이었다. 다소 도식적으로 보일 정도로 명쾌하게, 하지만 저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용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아마도 이러한 다소 지나친 선명함은 이탈리아인이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그의 위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각설하고, 오랜만에 읽은 라짜라토의 논의는 여전히 특유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이 글에서 타르드를 참고하여 발전시키는 들뢰즈의 "통제사회(societies of control)" 개념도 -아마도 나는 다시 사용하진 않겠지만- 여전히 어떤 현상들을 한편으론 단절하고 한편으로는 종합하는 개념적 힘을 가지고 있다. 올해 한국에서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었을 때 내가 받았던 첫인상은 들뢰즈의 통제사회의 개념을 그가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퇴행적인 방식으로- 빌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궁금했던 것은 그가 왜 자신의 논의를 그토록 "새로운 것"으로 제시하고자 노력하는가 하는 부분이었는데, 내게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억지였고 이를 위해 그는 다른 사상가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상당부분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라짜라토의 새로운 책, "The making of indebted man: An essay on the neoliberal condition"은 9월에 영문판이 출판될 것으로 보인다. 불어판을 먼저 접한 사람들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인데, 지금 읽고 있는 David Graeber의 The debt와 비교해서 읽어보면 흥미로운 논점을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중.

 

- Nikolas Rose가 Peter O'Malley, Mariana Valverdre와 공저한 논문 "Governmentality"는 통치성 연구 전반을 갈무리하기에 가장 좋은 출발점이기는 하지만, 몇가지 약점도 가지고 있다. 1. 아감벤 등을 비롯한 생정치 연구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 2. 호주의 통치성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governmentality 연구와 "정치적인 것"의 문제설정을 통합하려는 모색들(특히 Mitchell Dean이 전개하고 있는)을 전혀 소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 영국-캐나다-미국을 통치성 연구의 정통에 놓으면서 그 외 지역 연구자들이 배제된 형태라 할 수 있는데, 또 은근히 라투르의 ANT를 자신들의 계보에 끼워넣은 것을 보면, 조금 뒷맛이 나쁘다.

 

논문의 결언, "The aim of such studies is critical, but not critique- to identify and describe differences and hence to help make criticism possible"은 사실 통치성 연구의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ANT 연구가 사실 이 장점을 극대화한 방향으로 나아간 흐름이라면, 이를 약점으로 파악하고 통치성과 예외상태 혹은 통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결합을 통해 이를 극복해보려는 모색은, (간헐적이긴 하지만) 주로 호주나 북유럽 쪽 통치성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로즈가 통치성 연구를 종합하면서 이러한 흐름을 언급조차 안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해 보인다.

 

- Marcie Patton의 "Synergy between Neoliberalism and Communitarianism"를 읽는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흔히 대립된다고 이야기되는 신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최근 들어 어떻게 상호강화의 흐름을 타며 "공동체주의적 신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를 이루게 되었는지 터키의 사례를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학 쪽에서는 아마티아 센이나 에치오니의 논의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고, 한국에서의 마이클 센델 열풍 역시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흐름 속에 위치지을 때 그 심층적 의미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센델의 정의론이나 공동체주의에 대한 관심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을거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순진한 접근이 오히려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 사유와 비판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 

 

- 이번 학기에 듣는 정규수업은 발리바르의 "Humanism, Anti-Humanism, and the Question of Philosophical Anthropology" 하나. 그 외에 맘다니의 Africa에 관한 수업의 디스커션 리딩을 해야 하고, 지도교수와 격주마다 가지기로 한 일대일 토론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11월까지 마쳐야 할 grant application이 두 개, 연말까지 고쳐서 보내야 할 글이 한글로 하나, 영어로 하나. 파이널 페이퍼야 크리스마스 시즌에 쓴다 치고.. 지난 2년과 비교할 때 더 바쁠지 덜 바쁠지 젼혀 감이 안 잡히는 스케쥴. 어쨌든 또 다시 달릴 준비를 하긴 해야 할텐데, 나한테 얼마나 동력이 남아있을라나... 여차하면 새롭게 발견한 신비의 조합 오메가 3+레드불에 기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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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10:36 2012/09/04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