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강 전에 이삿짐 정리를 마무리 짓느라 분주하던 터에, 뒤늦게 이소선 여사의 영면소식을 접했다. '그래, 이렇게 가시는 구나..'라는 담담한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 켠이 허하다. 무언가라도 적어야 겠다는 생각에 블로그에 들어와 아직 박스도 채 풀지 않은 방 안에서 근 1년만에 포스팅을 한다. (내가 한글로 긴 글을 쓸 만한 공간은 이제 이 곳 밖에 남아있지 않다.)

2.
그러고보면 지난 시절 이소선씨와는 두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집회 현장에서 멀리서 뵌 거야 어디 한두 번이겠냐마는.) 한 번은 대학 신입생 때 참석한 집회에서 우연히 친척 어른 중 한분을 만났고, 그 친척분의 동행이 이소선씨여서 잠깐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두 번째는 졸업할 때 즈음 고 김진균 선생님 수업 시간에 어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잠시 찾아뵜었다. 처음 만났을 때나 두 번째 뵜을 때나 너무 자연스레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는데 대화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도 그 손의 감촉은 왠지 모르게 계속 기억에 남는다.  

3.
이소선씨의 삶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문구는, 이미 여러 신문들이 부음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민중의 어머니로"일 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운동의 길에 접어든 이소선의 삶에 이 문구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따라붙는 것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문구에서 읽어낼 수 있는 상징정치의 두께는 그리 만만치 않다. 사실 주변부 국가들의 사회운동에서 아들이나 남편을 잃은 어머니나 미망인 같은 "여성 유가족들"이 투쟁의 중심으로 재현-상징화되는 것은 그리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오래 전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는 아르헨티나의 "5월 광장 어머니회"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위 "정치적 과부들political widows" 같은 경우 그 대표적인 예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여성유가족을 둘러싼 담론과 상징화에는 어떤 함정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여성의 행위성agency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그들을 누군가의 "어머니"나 "미망인"으로 호출하고 그 속에 가두는 이 구도 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민족적 고통의 메타포이자, 모성신화나 정절신화를 은밀히 상기시키는 상징으로 기능하곤 한다. 특히 매판 자본가 "아버지"밑에서 고통받는 "어머니"로서 민족과 민중, 그리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투쟁하는 애국 열혈 "청년들"이라는 상징적 대립구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 속에서 이소선을 둘러싼 담론과 재현들은 그 자체로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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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지만 개인적으로 언제부턴가 이러한 설명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게 된다. 그건 이 설명이 틀렸다고 믿어서가 아니라(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이러한 설명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어서이다. 이소선의 삶이 주는 어떤 울림이 이러한 상징정치의 효과로 온전히 환원될 수 있을까?

어느 인터뷰에선가 바디우는 정치적 주체는, 비동일성에의 동일시라는 역설적 동일시를 통해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역설적 동일시는 개인의 특이한singular 경험을 직접적으로 보편적인 것과 연결시킬 때, 즉 개인의 특이한 위치를 곧바로 사회의 보편적 적대의 징후적 비틂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해진다. 이데올로기가 보편적 적대를 국지화-특정화하는 제유metonymy의 매커니즘에 기반해 있다면, 정치적 주체는 이와는 정반대로 징후에서 출발하여 보편으로 나아가는 정신분석의 경로를 따를 때 도래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민중의 어머니로" 요약되는 이소선의 삶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어머니"라는 기표 앞에 붙은 수식어의 변화, 즉 한 개인으로서의 "전태일"에서 전체 "노동자민중"으로의 가파른 도약일 것이다. 이소선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놀라움은, 그녀가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전체 노동자들의 징후적 비틀림의 지점으로 이해하고, 여기에 개입하여 이 도약을 현실화시켰다는 데 있다. "전체 노동자민중의 어머니"라는 무시무시한 호명을 말그대로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내는" 불가능해보이기만 하는 작업.. 이 특이성에서 보편성으로의 기적같은 도약 속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끈질긴 충실성 속에서, 우리는 누구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윤리적-정치적 주체로서의 "투사" 이소선을 만난다. 아마도 그녀의 삶은 이미, (그녀의 죽음을 맞아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는) "어머니"라는 기표를 둘러싼 상징정치의 틀 속에 가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리라. 그녀의 삶이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준다면, 그것은 그녀가 "어머니"여서, "모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여서, 민족적 고통의 메타포여서가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가 오늘날 불가능해보이기만 하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삶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5.
나중에 아들한테 가 할 말이 없을까 살아생전 노심초사했다는 이소선씨가, 2011년 한국사회의 엄혹한 정세 속에서 편히 눈을 감으셨을지 걱정이다. 부디 지금쯤 그토록 보고싶어 하던 아들을 만나 오래 못나눈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길 바랄 뿐이다. 아마도 모란 공원에 묻히실텐데, 다음 귀국길에는 잠시 들러 늦은 인사라도 드리고 와야겠다. 삼가 이렇게나마 멀리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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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5 12:46 2011/09/05 1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