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0일을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살다 돌아와보니, 세상은 그 짧은 시간에도 휙휙~ 자신의 리듬대로 돌아가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변하는 것은 별로 없구나란 생각도 들지만..)
그 짧은 100일 동안.. 북한은 드디어(!)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낸 거 같고, (뭔진 잘 모르겠지만) 간첩사건에 민노당이 타격을 받은 일도 있었던 것 같으며, 한-미 FTA는 예상대로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교착상태이고, 럼스펠드의 경질을 반가워할 사이에 후세인은 은근슬쩍 사형당하고, UN사무총장이 바뀌고(그것도 한국 사람으로) 등등의 일들이 벌어진 것 같다.(이틀 동안 여기저기 게시판들을 돌아다니면서 지나간 글들을 읽고 얻은 정보들이다.)
하지만 실제 몸으로 느껴지는 체감 변화도는, 이런 거대한 사건들보다는 일상 속의 소소한 변화들 속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법. 100일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구나라고 뼈저리게 느낀 건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들을 하나도 이해 못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였다. -.-;
하지만..
내가 없는 동안 세상의 변화를 무엇보다도 크게 실감하게 했던 건, 조금은 우습게도 단골 서점 <그날이 오면> 간판의 변화였다..
예전의 요런 회색+노란색 간판에서..
이렇게 강렬한 주황색 간판으로 바뀐 것..(사진의 김동운 <그날이 오면> 주인 아저씨는 보너스..)
사실 진보네 사람들은 왠만해선 <그날이 오면>의 이름 정도는 지나가다 한 두 번쯤 들어봤을 거란 생각이 드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혹시 궁금하시다면 클릭 )
<그날이 오면>의 간판의 변화가 뜻 깊게 느껴졌던 이유는, 내게 있어 <그날>이(그리고 그 회색 간판이) 그만큼 의미가 큰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20대 초중반에 나를 키운 것들의 8할은, 세미나와 집회 그리고 술이었다.(나머지 2할 정도는 연애와 아르바이트? --;) 그런데 이 8할이 다 <그날이 오면> 과 관련이 있었으니, <그날>이 내게 뜻 깊은 곳일 수 밖에..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이 오면>으로 출근해 서점 한 켠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이며 세미나 커리를 짜다가, <그날이 오면> 앞에 모여서 집회를 나가고(혹은 <그날이 오면> 2층에 있는 <미네르바>에서 세미나를 하고), 집회(혹은 세미나)가 끝난 후에는 <그날이 오면> 앞에 있던 게시판에 모임명과 술집 이름, 연락처를 떡하니 써붙이고 뒤풀이를 갔던..(그리고 술값이 모자라면 <그날>에 학생증을 맡기고 돈을 꾸곤 했던) 나한테는 지극히 반복적인 '일상'이었던 생활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러고보면 대학원생이란 지금의 명함이 부끄럽게도 대학 때 수업을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날>이 내게 강의실이자 도서관 그리고 만남의 광장이었던 셈이다.)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간판이 바뀐 연유를 물어보니, 그 동안 <그날이 오면>에도 여러 변화들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몇몇 뜻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날> 후원회가 결성되고 앞으로 이런저런 구체적 사업들을 계획하면서 분위기 쇄신 차원으로 간판을 바꾼 거라는 것..
사회과학서점 위기설이야 10여년 전부터 나온 얘기고, 실제로 많은 사회과학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그날이 오면>도 그 동안 운영이 어렵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았고, 왠지 모를 의무감에 인터넷 서점에서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책도 일부러 발품 팔아 <그날>에 가서 사곤했던 내게, 후원회 결성은 100일 동안 들려온 몇 안되는 반가운 소식 중 하나였다.
곧 멀리 이사갈 몸이기에 적극적으로 후원회에 참여할 수는 없어도, 조금의 정성은 보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몇 년 전만해도 <그날에서 책읽기>같은 좋은 간행물이 나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쥐.. 앞으로 <그날이 오면>이 침체기에서 벗어나 계속 유지-발전해 나가면서 다양한 활동들을 벌여나갔으면 한다.
아래 주소는 <그날이 오면> 후원회 홈페이지. 관심있는 분은 클릭하시길.
p.s. 공기좋고 물좋은 곳에서 한 100일 간 심신 단련하고 돌아왔습니다. 몸이 좋아지긴 한 것 같은데, 술-담배를 끊지 않는 한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