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일주일 가까이 지난 오늘에야 들었다.
사실..
그다지 좌파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았던, 게다가 그 이름의 발음마저 느끼한 중심부 지식인의 죽음을 일주일이나 지나서 호들갑스럽게 애도할 만한 예의바름이 내겐 없지만,(게다가 자살도 사고도 아닌 천수를 다 누리고 죽은 호상이니 더더욱..)
몇년 전 무더운 여름을 복잡한 보드리야르의 문장을 붙잡고 낑낑대며 보냈던 사람으로서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가기에는 허전한 소식임에는 틀림없다.
이번 기회에서 보드리야르의 책들에서 흥미로운 구절들만 발췌하면서 그의 사상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글이라도 쓰고 싶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책들 대부분이 인천 집에 있는지라 지금으로선 불가능하고, 내 노트 한구석에 오랫동안 적혀있던 문구만 일단 옮겨놓는다.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문구가 내가 전공을 문화연구로 정하는 데 일조했던 것 같다.
"교환가치의 세 가지 단계. 첫째의 단계는 잉여(생산물)만이 교환되는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생산물이 교환되는 단계, 세 번째 단계는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든 것이 가치 평가를 받기 위해 시장에 나오는 단계가 그것이다. 맑스는 1단계와 2단계 사이에 ‘자본’의 출현을 봄으로써 이 두 단계의 질적 차이를 구별하였고, 2단계와 3단계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후자의 이행도 ‘상품 형태’에서 ‘기호 형태’로의 이행이라는 질적 이행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기호의 정치경제학’이 등장한다." - Jean Baudrillard, 정연복 역,『섹스의 황도』,솔, 1993 pp.38-39
그러고 보면 보드리야르는 시대의 근본적 변화를 읽어내는 데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가 좀 더 진지한 학자였다면 하는 아쉬움은 더욱 진하게 남는군.
암튼 명복을 빕니다. 보드리야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