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가기 전에 역사에 관련된 책-강좌 소개 포스팅 하나.(비밀글들을 여러개 올려놔서 몰랐는데 공개글로는 내 마지막 포스팅이 무려 한 달 전이란 사실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이 놈의 게으름이란..; 사실 이 글도 비공개로 써놓았던 것을 조금만 수정하여 올린다.)

 

 

최근들어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은,  <한국 영화라는 낯선 경계>(김선아 저,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6)란 책이다. 개인적으로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 영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그것은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이 시기(특히 97년에서 2002년에 걸치는 DJ 정권 시기)가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시기이며 따라서 이 시기 한국 영화들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대중 의식을 압축적으로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 때문이다.(존 버거의 말처럼, 유화가 근대 부르주아들의 의식을 가장 잘 시각화한 매체라면, 오늘날 대중의 의식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장 잘 시각화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리라.)   

 

김선아씨의 책은 96년 이후의 한국 영화들을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루고 있기에, 나의 관심과 정확히 일치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왜 하필 96년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영화는 홍상수 등을 중심으로 한 작가영화들이 등장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한 96년을 기점으로, 세계 시장에서 예술영화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한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와 유사-헐리우드 영화 문법을 추구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분기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은 이 시기 한국 영화들에 대해서 꽤나 도발적인(?) 분석을 가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시기 한국 영화들을  "새로운 민족-국가 만들기" 혹은 "새로운 전통 만들기"의 맥락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 영화들을 탈민족화-세계화의 맥락에서 살펴보는 기존의 연구들에 맞서, 이 책은 이 시기의 영화들을 전형적인 '민족영화'로 규정한다. 여기서 '민족영화'란 영화를 만드는 국가나 국적 문제가 아니라 민족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를 말한다.(4) 저자에 따르면, 96년 이후 한국 영화는 자신의 외상적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재현하고, 이 재현을 바탕으로 다양한 한풀이 장들을 마련함으로써 역설적 의미에서 지난 역사와 단절한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를 창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제작된 다양한 무게있는 영화들, 즉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꽃잎>, <하얀 전쟁> 등을 필두로 하여 <아름다운 시절>, <박하사탕> 등등으로 이어지는 소위 '현대사' 영화들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역사 내러티브의 확립과 그것에 기반한 민족 국가 구성에 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상적 역사의 재현이 새로운 국가 만들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김선아 씨는 <박하사탕>(이창동, 2000)의 엔딩을 예로 든다. 공식화된 <박하사탕>의 엔딩에 대한 해석들(한국 현대사에 상처받은 영호의 자살은 역사 앞에 선 남성주체들의 무기력을 상징화한 것이다.. 같은 해석들)과는 달리, 저자는 <박하사탕> 마지막 영호의 죽음을 과거의 외상적 역사와 단절하고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적 행위로 읽는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주인공 김영호는 가리봉동에서의 노동자, 광주 항쟁의 진압군, 고문 수사관, 증권 투자자, 가구점 사장 등으로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바꾼다. 이러한 공적인 직업을 통해서 개인은 역사의 알레고리가 된다. 자살은 시류에 맞춰서 살아갔던 김영호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가장 윤리적인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알레고리인 그가 죽어야만 20년 동안의 과거 역사가 마침표를 찍고 이전에 민족민중을 억압했던 국가가 아닌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영호 개인의 자살은 국가의 과거 역사를 묻는 상징적인 행위이다."(50)

 

결국 영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부채에서 해방되는 일종의 구원을 얻는다. 물론 여기서의 구원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그리스도교적 구원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구원이 예수를 살해한 모든 이의 죄책감을 부활을 통하여 정화시켜주는 방식이라면, 반대로 <박하사탕>식 구원에선 누구도 영호의 부활을 바라지 않는다. 그 자체로 현대사의 외상적 기억의 화신인 그는 새로운 민족-국가의 건설을 위해 죽어야만 하고, 그의 영원한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구원받는다. <박하사탕>이 역사의 아픔을 계속 가슴에 안고 꾸역꾸역 현재를 살아가는 영호의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면,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인가! 다시말해 영화 속 영호의 죽음은 일종의 역사의 단절 혹은 중단을 의미하며, 일종의 탈-역사(post-history)적인 공간을 주조해 낸다. 그리고 이제 비워진 영호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역사적 단절을 통해 재구성된 새로운 형태의 멘탈리티와 주체성을 담지한 인간들이다. 그들에게 과거는 이제 외상적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민족-국가 구성에 이르게 된 승리의 역사 혹은 진보의 역사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바로 이런 점에서 <박하사탕>이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한 2000년이 DJ정권의 민주화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와 중첩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예전에 민주화라는 이데올로기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지만, 유사한 맥락에서 나는 IMF 이후 김대중 정권이 내건 "제 2의 건국"이라는 슬로건이 단지 경제적 재건 노력 차원에서만 협소하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 이루어졌던 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사실상의 "제 2의 민족-국가 만들기"였다. 70년 전태일 혹은 80년 광주에서 시작하여 국민의 정부의 수립으로 귀결되는 매끄러운 새로운 역사적 내러티브를 확립하고, 민주화 기념 사업 등을 통해 새로운 공통의 역사적 상징들을 개발하고, 의문사 진상규명이나 민주화운동 유족들 보상 활동을 통해 외상적 기억을 표면화할 수 있는 한풀이의 장을 마련하고 등등등..

 

그렇다면, 2000년 정도를 기점으로 90년대 초중반의 후일담 문학들이 급속히 사라지고 386세대의 힘과 미래에 대한 담론들이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일까? 어쩌면 "제 2의 87년"으로 묘사된 2002년의 일련의 사태들(월드컵, 대선 승리, 반미집회의 확산 등)은 이러한 새로운 민족-국가 만들기의 1라운드가 종전되었음을 알리는,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역사-이후의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선언이 아니었을까?

 

  

김선아 씨의 책은 이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흥미로운 분석들을 담고 있지만(관심있는 분은 직접 읽어보시길..), 위와 같은 물음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최근에 읽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텍스트, <삶의 동물/속물화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귀여움:87년 에토스의 붕괴와 그 이후>(김홍중, 사회 비평 36호, 2007)와 연결시키고 싶은 충동을 지체할 수 없게 만든다.

 

새로 복간된 <사회비평>의 그닥 새롭지 않은 글들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이 글은,  진정성을 상실한 탈-역사 주체들의 멘탈리티 혹은 에토스를 코제브Kojeve의 "동물/속물"의 개념을 이용하여 탐구하고 있다. 동물/속물적 주체성이란, 진정성의 에토스를 상실하고 타인의 관심과 형식미의 추구 속에서만 일상을 영위하는 존재를 말한다. 김홍중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진정성의 시대가 80년대였다면, 동물/속물 주체성의 시대는 87년의 에토스가 소진되어 버린 바로 지금이다.

 

"87년 민주화 대항쟁에 정점에 이르렀던 진정성의 에토스는 90년대를 거쳐 1997년의 IMF 체제의 성립 이후에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삶의 태도, 즉 한편으로는 동물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속물적인 에토스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붕괴한 듯이 보인다. 이제 진정성의 에토스를 전경으로 하는 삶은 낡고 효율적이지 않으며, 안쓰럽고, 심지어는 역겨운 것으로 비추어진다. 남아있는 유일한 진정성은 386세대적인 냉소와 멜랑콜리의 가면 뒤로 숨었다. 그리고 도래한 세계는 속물과 동물들의 세계, 몰렴 혹은 무치의 에토스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이다."(89)

 

이러한 진정성의 상실과 동물/속물적 주체성으로의 이행 사이에 존재하는 계기가 다름아닌 "역사의 종결"이다. 코제브에 따르면, 역사의 종결이란 유혈적 전쟁과 혁명의 종언을 의미하여, 이와 더불어 세계와 자기의 이해로서의 철학의 사라짐을 가리킨다.(82) 즉, 동물/속물적 주체성은 역사의 종결 이후에 탄생한, 그래서 역사에 무관심하고 역사의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주체들이다.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일로 기억하는 이러한 새로운 주체들은, 역사의 부정보다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의 타자들의 시선에 더 민감하거나 혹은 탈역사적인 어떤 형식적 미학에 더 민감하다.

 

"....따라서 이들은 기억의 무게, 역사의 무게, 공동체의 무게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이러한 가벼움은, 그것이 의도적인 것이건 아니면 생래적인 것이건 간에, 이 최후의 인간들을 낙관적이고 해맑고 충족된 존재로 구성한다. 그들은 단순하며 직설적이고 투명하다. 그들은 신파, 정한, 애수, 허무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원한의 감정, 즉 누군가를 부정하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무언가가 없다. 그런면에서 그들은 노예가 아니다. 그러나 주인 또한 아니다. 그들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관계의 외부에 자리잡고 있다... 부정성은 변증법의 잉여공간에 잔재로 유폐되어 더 이상 역사에 복무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제 오직 섹스, 웃음, 스포츠, 게임, 오락, 범죄라는 비역사적 행동들에 봉사할 뿐이다."(91)

 

그렇다면.. 김선아 씨가 주장하는 90년대 말의 새로운 민족-국가의 구성 과정과 김홍중 씨가 지적하는 탈-역사적 주체로서의 동물/속물적 주체의 등장이 서로 무관한 것이겠는가?

혹시 새로운 역사적 내러티브를 통해 민주화의 신화를 달성함으로써 탄생한 한국의 탈-역사적 공간은, 이제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오직 현재만을 영위할 수 있는 동물/속물적 멘탈리티의 범람을 가져오고 있는 것 아닌가? 영화적 측면에서, 2000년 <박하사탕> 이후로 역사의 외상에 주목하기보다는 낭만적인 과거의 일상을 회상하는 <품행제로>같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범람한 것은 우연일까? 혹은 이것은 역사화의 과정이 종결됐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징후는 아닌가? 더 나아가  2000년 동시에 이루어진 영호의 죽음과 민주화 기념 사업은 인간의 동물/속물로의 변화를 완료짓기 위해 최종적으로 역사의 부채를 덜어내고자 하는 움직임은 아니었던가? 87년의 광장이 어쨌든 역사성과 진정성의 광장이었다면, 희극적 형태로 반복된 02년의 광장은 탈-역사성을 특징으로 하는 동물/속물의 광장은 아니었던가?

 

어느 순간부터 공식화된 "역사의 달"인 6월에, 우연히 동시에 읽게 된 두가지 텍스트들의 마주침으로 야기된 질문들은 이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마주침의 촉매로서 추가된 뉴스 하나.

 

 

...얼마 전 정부가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하여 광주에 518m짜리 기념탑(에펠탑의 약 1.5배를 넘는 높이이다)을 건설하는 계획을 검토중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약간은 고양된 목소리로 기자는 이 탑이 광주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기념물이 될 수 있으며, 한편으로 문화의 도시로 도약중인 광주의 관광상품으로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마도 그 탑은 그 자리에 세워지게 될 것이고, 우리는 내면에 놓인 역사성을 외화시킨 채 일종의 탈-역사적인 공간으로 재편된 21세기 한국에서의 일상적 삶을 보다 더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거치적거리는 역사의 무게는 하늘 위로 높게 솟구친 바로 그 탑이 "대신" 짊어져주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탑이 우리가 영위하는 현재의 정당함을 보장해 줄테니까. 누가. 감히. 이것을 욕할 수 있겠는가! 

 

 

 

p.s.

 

김홍중 씨는 동물/속물적 주체성이라는 주제로 이번 여름 동안 강좌를 진행할 계획인가 보다.

 

문지문화원 사이 여름 강좌 <진정성과 속물의 문화사회학>

 

김홍중 선배와는 몇 번 세미나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내공과 강의의 질은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보장할 수 있다. 흥미있는 분은 한 번 들어보심이..  나도 이 놈의 일만 아니라면 꼭 듣고 싶은 강좌 중 하나지만, 지금으로선 홍중 선배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07/06/30 13:53 2007/06/30 1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