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의 슈퍼스타들

from 맑글터 2007/04/18 23:29

영국에서 공부하는 한 친구가 "YouTube 만세"란 제목의 쪽지와 함께 웹페이지 링크 주소를 하나 보내왔다.

 

유튜브 검색결과 - European Graduate School

 

Eurpoean Graduate School은 스위스에 위치한 자그마한(?) 대학원인데, 막강한 정교수진+초청교수진과 캠퍼스의 훌륭한 절경으로 인해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학교이다.

 

링크에서 볼 수 있듯이, 교수진의 면면은 정말 화려하다. 비록 정교수들이라기보다는 (알프스의 풍경도 즐길 겸?) 잠시 들렀다 가는 초빙 강사들이라고 보는게 맞겠지만, 이제는 고인이 된 자끄 데리다와 장 보드리야르에서부터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지오르지오 아감벤, 주디스 버틀러, 다나 해러웨이, 마이클 하트, 폴 비릴리오, 장-뤽 낭시, 마뉴엘 들란다까지.. 특별히 외국의 이론 동향에 관심이 없어도 어디선가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쟁쟁한 학자들이 넘쳐난다. (대체 이 사람들 불러다 강의시킬 돈이 어디서 나는 건지..-.-;)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이 정도 라인업은 학계의 올스타를 넘어서 명예의 전당 후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라도 오늘날 업계의 슈퍼스타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한번쯤 위 링크의 동영상들을 재생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개인적으로는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모습은 처음봤는데,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달라서 놀랐다. 대부분의 유럽 철학자들이 그렇듯 좀 더 펑퍼짐한 아저씨같은 인상을 생각했었는데...) 

 

보통 학계를 성숙한 어른들이 스스로 생각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칸트적 의미에서) "계몽된" 장이라고 생각하는 판타지가 만연해 있지만, 사실 학계만큼 슈퍼스타들에 대한 선망과 추종이 넘치는 곳도 드물다.

가끔은 학계와 대중문화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본다. 대중문화의 슈퍼스타들 주변에 그의 추종자들이 생기고 그들을 모방하는 이들이 생겨 하나의 장르가 형성되고, 이 장르를 즐기는 두터운 팬층이 형성되고, 미디어들을 통해 각각의 슈퍼스타들에 대한 담론들이 생산되고, 팬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등등등. 이러한 현상은 학계의 슈퍼스타들에게 적용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슈퍼스타의 부침에는 단순한 팬덤 현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정한 '맥락'과 '배경'과 '문제의식'이 존재한다는 반론이 있을수 있겠다. 그리고 이 말은 일정정도 사실이다. 예컨대 90년대 이후 세계 이론 학계의 슈퍼스타 계보가 푸코-들뢰즈에서 지젝이나 바디우 혹은 아감벤으로 넘어가고 있는 데에는, 미시 정치에 대한 강조가 지배 구조의 유지와 공모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정치의 차원을 열고 싶어하는 '배경'과 '맥락',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일종의 '시대정신'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조금 더 억지를 부리자면, 대중문화에서의 슈퍼스타들 역시 일종의 흐름과 맥락이 존재한다. 예컨대,  70년대 영국 언더그라운드 록 씬의 슈퍼스타가 글램록의 데이빗 보위에서 펑크의 섹스 피스톨즈로 대체된 데에는 분명 나름의 '맥락'과 '시대정신'이 존재한다. 하지만 쓸데없는 유비는 이만 그치자.)

 

문제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한 동감으로부터 이루어진 특정 이론가들과의 주체적인 대화가, 자신이 딛고 선 현실과의 긴장 관계가 끊어진 채 특정한 이론가가 자신의 의견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는 추종으로 변질될 때 발생한다. 10대들이 자신이 추종하는 슈퍼스타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느끼듯이, 이제 (중심부 국가) 학계의 이론가들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동료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슈퍼스타로 자리잡는다.(여기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학문의 종속성 등의 문제는 일단 다음 기회로 제껴두자. 다만 개인적으론 이러한 종속성의 문제를 둘러싼 담론적 틀이 전반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대의'와 '재현'의 틀을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권위'에 대한 호소와 아버지를 불러내려는 욕망을 읽어내는 것은 오버일까?

 

게다가 이러한 팬덤의 태도가 사고의 타성화, 즉 자신이 생각하지 않고 '그'가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는 지적 게으름으로 연결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간이다. 특정한 문제를 접했을 때, 그에 대해 나름의 문제틀을 갖춰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어떤 유명한 이론가가 쓴 글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드는 건 이러한 지적 게으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게다. (물론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자기' 생각이라는 환상은 역시나 또 하나의 경계해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지만.)

 

몇 년 전 하버마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한국인 교수가 그에게 '올바른 한국의 통일 방안은 어떤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질문을 받은 하버마스의 대답은, (아직도 기억나는 미묘한 웃음과 함께) '그건 당신들이 생각할 일'이었다. 혹시 그 교수는 하버마스를 무엇이든 답해주는 일종의 모범답안으로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태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친구가 보내준 업계의 슈퍼스타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한편으론 감탄하고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나 역시 팬덤의 습성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버린 것은, 내가 발딛고 선 곳이 스위스의 풍경 좋은 캠퍼스가 아니라, 회색빛깔로 구질구질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땅 한 구석탱이이기 때문일까 혹은 단순히 저런 슈퍼스타들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복받은 학생들에 대한 뿔통난 부러움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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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8 23:29 2007/04/18 2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