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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나의 보아

보아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이제 3주 남았다.

 

보아는 나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95년식 '터 반테'의 이름이다.

지난 2년간 어려운 시기에 적지 않은 나이로  나에게 시집와서 우여곡절 많이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녀석이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삐거덕거리는 관절에 기침을 해대는 엔진이 그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 6천km만 더 타면 꼭 30만km를 채우게 되니 그동안 달려온 거리도 만만치 않다.

 

터보엔진의 육중한 굉음으로 간혹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있으면 이웃집의 눈치를 보기도 했고 잘 열리지 않는 차문 땜에 속을 썩히기도 했지만, 없는 살림에 기름도 많이 안먹고 필요한 곳을 잘도 달려 주었다.

 

이제 '보아' 대신에 나는 프라이드를 주문해 놓은 상태이고 녀석이 출고되면 '보아'는 폐차장으로 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나이도 있으니 2,000cc 중형차를 사야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지금 경제적 형편이나 유지비를 생각하면 나에게 딱 맞는 차는 1,400cc 프라이드인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엉뚱한 놈이 얘기하는 '실용' 말고 진정한 실용주의 아니겠는가?

 

새로 나의 발이 되어줄 녀석에게는 '검프'라는 이름을 지어주어야 겠다. 색깔이 검정색이니 '라이드'의 준말이다. ㅋㅋ

 

그나저나 보아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이것 저것 물품을 정리하고 있으니 녀석과의 추억이 많이 떠오른다.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져 녀석과 함께 죽을 뻔 했던일이며,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녀석의 증세를 혼자서 해결하고 뿌듯해 했던일, 깜깜한 밤에 라이트가 몽땅 나가서 부산에서 경주까지 엉금엉금 기어 왔던일 등...

 

자동차로서는 거의 100살이 넘은 95년생 '보아' 그동안 고마웠다.

폐차장에서도 너의 가치를 높이 사서 무려 45만원이나 쳐 주겠다니 끝까지 나를 위해 도움을 주고 가는 구나.

 

안녕, 보아.. 잘가라.. 언제나 네가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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