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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에세이-한국전쟁 당시 실화극

  자서전 서막 - 한국전쟁과 당시 나의 고향에 있었다던 이야기

 

( 아래의 이야기는 당시의 풍문과 목격담을 각색해 구상한 실화입니다.

귀촌후 틈틈히 나의 인생이야기를 기록중이며, 그중 공유의 글을 올리는바입니다. )

 

 

때는 한국전쟁 당시 1950년 10월경 유엔군과 군경이 전남지역을 수복하면서,
좌익들은(인민군 일부와 빨치산)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빨치산 인민유격대 조직은 전남도당 유격사령부 예하에 6개 지구 체제로 재개편한 무장조직이었다.
약 6만여명이었던 이들은 남조선노동당 박헌영대장 휘하로,
전남도당 위원장은 박영팔, 부위원장 겸 빨치산 총사령관은 김선우이다.

이중 제5지구당 (불갑산)불갑지구는 함평, 영광, 무안, 목포가 활동무대로 약 2,500명이었다.
(위원장; 김용우, 빨치산사령관; 박정현, 모두 구빨치산 출신)


한편 1951년 2월 20일경 새벽 대대적인 불갑산 토벌작전인 남한 군경합동 '대보름작전'이 전개된다.
이 불갑산 토벌작전에 11사단 20연대와 영광과 함평경찰, 청년방위대와 지역우익단체가 동원됐다.  
이 불갑산 토벌작전을 당한 빨치산중 일부는 나주 금성산으로 후퇴하여, 나중에는 영산강을 건너 장흥으로 향했다.
그중 금성산으로 퇴각하다 흩어진 몇몇 빨치산은 나주야산에 머물다,
봄에 피난주민 행색으로 위장한체 노안면 양천리 계량재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계량재 아래에 인가를 발견하고 내려가 왠 불탄 성당이 있어 내려가다 멈짓하고 산으로 다시 올라 숨는다.

 

  ∇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망산,뿔바위 인근 전경


∇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계량마을 노안성당 (현제모습)

 

 

 

왜냐면 그 성당은 붉은색 성당으로 멀쩡했기에, 반공대가 유인책으로 그리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순간 선듯하다.
이들은 계량재를 지나 망산 인근에서 하산하여 인근마을(국룡)을 우회해 들판을 지나 산에서 발견한 방죽으로 향한다.
방죽(장등제) 들판으로 진입해 은신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바라보다,
원거리에 있는 기이한 풍경인 고인돌 유적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 빨치산은 순간 저 고인돌 유적지 주인은 아마 이지역의 지주일거라 판단하고,
야산길을 따라 고인돌이 있는 인근 마을로 향했다.

가면서 야산밭에서 일하던 지역 농민에게 고인돌 야산주인집을 수소문하여 그 마을로 향한다.

 

  ∇ 양천리 장등방죽으로 사진위 중간 남색둥근표시가 고인돌 유적지이다.

 

빨치산 : "수고하십니다. 전쟁 난리통을 격다 길을 잃어 배회중이외다.. 참, 저 신기한 고인돌 야산주인이 누구요?"
지역주민 : "아이고, 어쩌다 여기까지 피난 행렬이요?.. 그 야산주인은 저기 금동마을의 신철수아들네이지라~"

 


즉, 위 고인돌과 관련된 마을은 지금의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금동마을이며, 나의 할아버지의 본가였던 집성촌 마을이다.
또한 나의 평산신씨인 할아버지 본가는 소유 야산중에 조상이 오랬동안 관리했던 위 고인돌 야산이 있으며,
집성촌 당시때부터 지주에 속하는 부유한 가문이었다고한다.
이 빨치산은 그날 늦은오후 짐에 숨겨둔 노획한 국군총을 꺼내들고 나의 금동 할아버지집을 급습하였다.
댁이 대가족이었으나 당시 집안엔 방금 밭에서 온 할머니와(중년여성) 한 작은아들만 있었고,
나머지는 다들 밖에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댁에 총을 들이밀고 먼저 요구한것이 요기거리로 중년여성이 먹거리를 내오자, 좀 희안한 광경이 펼쳐졌다.
빨치산 간부가 자신은 망을 보는데 주념하며,
부하에게 먼저 식사하라하고 먹거리를 거의 양보한체 자신은 대충 먹는것이다.

그리고 있다 조용히갈터이니, 자금과 식량을 내주라면서 다는 줄필요없고 알아서 주라는것이다.
그러자 이 큰집터의 아들이 앞뒤다짜르고 아니꼬아하며  한마디 거든다.

 

 

 

작은아들 ; "앰병~ 그럴거면 머하러 총을 겨누고 지랄이요? 차라리 좀 달라고 구걸하지.."
빨치산 간부 ; "이런 삭아지하고는.. 이보시오 동무, 총알받이로 있다 저 버르장머리없는 녀석이나 대리고 나오시오."
하고는 나의 큰할머니인 중년여성이 챙겨주는것을 받고, 먼저 엄호하며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그럴즈음 집안의 가장 할아버지가(중년남성) 바깥일을 마치고 귀가중,
누가 뭐라하는 소리를 듣고 살피자 집안서 총을 든 괴한과 맞닥뜨린다.

집안의 중년남성은 만류하며 내아들 말고 나를 잡아가라 자처했고, 부하는 이내 중년남성을 인질로 하여 길을 나섰다.
왜냐면 총알받이로 소년은 불필요했으며, 간부도 이에 이유를 묻지 않았다.

 

   ∇ 나의 할아버지 본가집터 옛모습

 


이 빨치산은 초저녁 인적이 드문 계림리를 거처 서광산(평동 남서쪽)을 지나
지금의 공항 남서쪽 천변을 끼고 서창동으로 향했다.

아마 무등산과 화순야산의 거점지 근황이 궁금해서인듯하다.
이 두명의 빨치산에게 인질이 처음엔 나의 할아버지 혼자였지만,
평동끝을 지나다 길에서 마주친 주민 두명을 생포해 인질이 셋이 된다.

인질 손을 묶은체 끌고가면서, 가다 주민이 물으면 빨치산 내통자를 끌고 가는거라 둘러댔으며,
주민은 낮선 반공대원이긴 하지만 국군총을 소지하고 있어 긴갑다했고,
그래도 의심하는듯 보이는 행인을 잡아가는것이다.

이들은 늦은밤 인적이 드문 지금의 광주시 서구 서창동(회재로) 인근 (백마산)큰야산에서 잠시 여장을 풀었다.
그러는 사이 송정리 인근 지역주민이 밤에 왠 수상한 사람들이 지나는것을 보고,
급히 지역 파출소 같은 반공치안대에 알렸다.

당시 반공치안대엔 이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이 규합해 반공조직을 관리감독하거나, 독거다이 왕초가 종종 있었다.
치안대에 당직을 서다 지역주민의 급보를 받은 서북청년단출신 대원은 전공을 독차지하고자
지역출신 대장에 따로 보고하지 않고,
총 몇개와 전쟁중에 노획해 숨겨둔 수류탄 한개를 챙기고,
급히 (반공청년단)반공대원을 소집하여 빨치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독거다이 왕초인 서북청년단출신 반공대원은 지리에 밝은 지역반공대원들을 앞세워 단독으로 빨치산을 추격해,
서창동 인근야산 아래 능선들판에서 애워싸며 매복한체(5명이상), 빨치산을 기다리며 급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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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때이른 새벽 빨치산이 야산에서 내려와 신작로 같은 탁트인 농로를 걸을즈음,
대각선방향에서 폭탄이 날아와 이들 앞에 떨어진다.

폭탄이 날아오기 몇초전 한 일질이(나의 할아버지) 대각선방향에서 누가 숨어 공격직전임을 감지하고,
위험하다 외치며, 손이 묶인체로 농로옆 도랑으로 몸을 내던지어 피신한다.
그 말에 순간 빨치산들은 총으로 엄호하며 두리번 거리는 순간, 이내 폭탄이 인근에 날아와 터진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런 폭탄과 함께, 미처 피하지못한 총알받이 인질 둘은 사지가 찢기어 그자리에서 죽고,
빨치산간부는 중상, 좀 뒤에서 걸어온 부하는 반사적으로 엎드리며 짐으로 몸을 엄호해 가벼운 부상을 당한다.
그간부는 위기의 순간에서 자신은 틀렸으니 후일을 도모하라며 부하에게 도망치라며 손타레친다.
빨치산부하는 급히 몸을 은폐하고 자신의 총이 멀쩡한지 확인후,
급히 무기를 챙기고 간부에게 경례를 신속히 한후 현장을 피한다.

그러는 사이 도랑으로 몸을 날려 몸을 피한 인질(나의 할아버니)은 폭탄은 피했으나, 그렇다고 몸이 건사한게 아니었다.
도랑에 처박힌듯 되어 허리,옆구리 부상등 크고 작은 전신 찰과상이 생겨 거의 중상자 처지가 되버린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군도 재수없는자들이라 판단하고, 아무도 없는 쪽으로 무조건 도망을 쳤다.

 

한편 매복해 30M인근에서 수류탄을 막무가내로 까낸 사람은 서북청년단출신으로,
이런 막무가내 공격으로 나중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폭탄소리와 함께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확인하고 이후 덮치러 달려갔는데,
위기의 순간에도 빨치산 부하는 총을 쏘며 저항을 하였다.

그 바람에 지역반공대원 한명이 총상을 당하자, 순간 잠시 대원이 몸을 숨기는 사이, 그 빨치산은 서둘러 줄행랑을 쳤다.
부상당한 빨치산이 도망치는것을 보고, 대원 몇명은 그를 추격하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폭탄이 터진 현장으로 향했다.
빨치산을 추격한 지역반공대원중 한명이 총을 들고 있었으나 총을 잘 쏘지못하여 총알이 헛나갔고,
빨치산은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폭탄현장에 있다 답답한 서북청년단출신은 뒤늦게 희미해보이는 적을 향해 격발했으나, 이내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한 반공대원은 도망치는 인질을 향해 아군이니 안심하라, 쉬었다가라 소리치지만 일없다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추격을 포기하고 폭탄현장에 와보니, 반공대에 심각한 난관이 봉착하게 된다.
사망자가 적군 1명이지만 양민 2명으로, 아군이 양민까지 죽인처사가 된것이다.

갑자기 당황해진 치안인솔자는 무과실전공으로 위장하고자 지역반공대원에게 삽하고 응급약을 챙겨오라 지시한다.
이후 인가에서 약과 삽들을 챙겨오자, 한명은 부상대원을 치료하고 나머지들은 음침한곳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한편 그곳 인가에서는 앞면있는 먼 지역주민(반공대원)이 왠 약과 삽을 달라해서 줬기는 줬으나 무슨일인가 궁금하여,
폭탄,총소리에 놀란 주민과 함께(몇명이) 그 대원을 미행했다.

가다 어떤 인질로 보이는 사람이 대각선쪽으로 힘겹게 지나길래,
지역주민중 한명은 일단 도와주러 그쪽으로 조심히 서둘러 이동했다.

그리고 다가와 묶인 손을 풀어주었고, 나의 할아버지는 잠시 휴식만 취한체 이곳을 벋어났다.


폭탄현장으로 간 주민은 멀찍이 숨어서 그 현장과 그들의 현장조치를 보고 이내 놀랄수밖에 없었다.
암매장하려던 사람이 빨치산이 아니라 어디서 본적이 있는듯한 주민으로 둘다 양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무등산,화순야산 인근에 임시주둔지로 두고 지역정찰을 하고 있던 몇명의 빨치산이,
5KM인근 고지대에서 폭탄 소리를 듣게된다.

이 인민유격대는 남조선노동당 박헌영대장의 이현상 남부군 총사령관(지리산지구 제2병단) 조직부대중 하나였다.
본능적 직감이었는지 빨치산 동지와 직결된 상황이라 판단하고 그 빨치산은 서창동방향으로 향한다.
가다 매월동(회재로)에 다다르자 서창동에서 폭탄부상을 당한 대원 한명을 만나게 되고,
그대원 동지가 알려준대로 사건현장으로 찾아갔다.

서창동 언덕들판 인근에 도착하니 멀찍이서 반공치안대들이 시신을 암매장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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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합세해온 빨치산이 현장으로 숨어와 사격하자, 서북청년단대원은 현장에서 즉사,
지역반공대원 한명은 총상을(총상 총 두명)맞고 쓰러진다.

그러자 나머지 반공대원들은 가져온 총만 챙긴체 뒤도 돌아보지않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
사건현장에 도착한 빨치산은 총상으로 미처 현장을 빠져나오지못한 반공대원 두명에게,
지금 무슨일을 벌이려고한거냐고 추궁한다.

그래서 시인하길 "서북청년단출신 사람이 전공에 눈이 멀어 신중한 작전을 뒤로하고 막무가내로 폭탄을 던졌어라.
그바람에 주민인 인질이 죽었지라, 그래서 이걸 숨기려 암매장하고, 폭탄으로 빨치산만 죽인걸로 위장하려고 했지라~..."

 

이렇듯 이북출신 반공대원이 단독으로 치안대를 인솔하며 막무가내 작전을 펼치는 바람에, 
치안대 폭탄을 맞아 인질인 무고한 양민이 죽어있었다.

하여 무과실 전공으로 위장하고자 인질인 지역양민을 암매장하다, 결국 이렇게 발각된것이다

합세해온 빨치산은 조금전 운명한 불갑산 인민간부를 인근에 임시 매장하고 잠시 애도하였다.
그리고 총상자 반공대원에게 "인민에 총부리나 겨누지 말고 농사에나 전념하시오." 충고를 하고 이내 자리를 떴다.


 

빨치산이 폭탄현장에서 짐을 챙기고 자리를 완전히 뜨자,
멀찍이 숨어 남아서 지켜보던 주민 몇이 그 현장으로 나온다.

폭탄현장에 와 아직도 아수라장 흔적이 생생함을 보고,
허탈하여 한주민이 총상당한 반공대원에게 말을 건넨다.

 

마을주민; "아이고, 꼴이 말이 아니구만이랴~..
그건그렇고, 삽가지고 뭔 난리요~ 빨갱이하면 우리도 싫어하니까, 삽달라해서 줬는데, 이건 아니지않소?"


반공대원 "죽것소. 묻지 마시요~"


마을주민 ; "애고 모르것다. 우리 주민도 오늘 못본걸로할테니, 젊은양반 어디 나서지말고 농사나 전념하게요 들~."
 
반공대원 ; "아이고, 알았당께~ 아주마이~ 나좀 부추켜주시요~"

 

그러했다. 당시 전쟁이라는 엄혹한 시기였기에 아군이든 적군이든 주민이든 서로 묻지말아야할 일이 많았다.
 "묻지를마세요." 트로트는 현대에 김성환 아티스트가 애정을 담은 가요이다.
만일 격동기때 이곡이 시판됐다면 애환곡으로 널리 불리었을지 싶다.

아무튼 졸지에 패잔병이 된 반공대원은 지역주민의 부축하에 이 현장에서 터벅터벅 빠져나왔다.
한편 해는 천연덕스럽게 슈퍼선이 되어 동쪽 무등산 위로 높게 드리우고 있었다..

 

한편 서창동 폭탄현장을 수습하고 나온 빨치산(남부군)은
다시 무등산 방향으로 발길을 잡고, 광주에 당분간만 은신하게 된다.

군경토벌대의 무등산 포위작전이 개시된 상태여서, 이들은 이후 화순방향으로 선회하였다.
화순 야산에 은신하여, 한동안 화순 토벌대의 후방을 교란하다, 이후 또다시 방랑자가 된다..

당시 군경은 무등산 빨치산 토벌작전을 개시하고, 작전 수행을 위해 경찰이 주민들을 동원하여 신작로를 개설했다.
1950년 12월부터 다음해까지 계림동에서 원효 계곡에 이르는 12㎞ 구간에 도로를 개설한것이다.
그 후 이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한 것이 현재의 관광도로이며,
지금의 산수동~원효사 간 구간은 6.25 전쟁이 낳은 산물이라 하겟다.

또한 1951년 초가을때 무등산 중봉자락 규봉암(영평리)일대에 전투기로 화학무기를 살포하며, 포위작전을 펼쳤다.
빨치산에 점점 은신에 취약해지자, 이들은 산발적으로 탈출해 화순으로 도피하거나 지리산 본거지로 향했다.

 

PS (추신; 덪붙임)


이사건의 진위는 당시도 그렇고 지금이라도 지역주민에 수소문하려한들 잘 알길이 없다.
왜냐면 당시 반공파 목격 주민 스스로도 누구에게 말하기 민망할만큼,
위처럼 그 광경이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황망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광주지역 반공치안대 스스로도 쪽팔려서 이사건을 입다물고 있었기에 더욱이 알수가 없다.
다만 알수있는것은 이처럼 빨치산에 비해 반공치안대에 의한 양민의 이러저러한 피해가 더 많았고(예; 누명),
그 행태 또한 치졸했다는것이다.

(1951년 봄 국군 11사단은 불갑산 토벌작전을 개시하며,
일대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리고 마을에 불을 질러 주민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국군의 소개 작전, 지시로 인근 월야, 해보, 나산면 마을로 피난을 했지만, 되려 인명피해가 더컸다고한다.
해보면 성대마을로 피난 간 주민 대다수는 국군 5중대('5중대 사건)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는 일이 발생했다고한다.)


그리고 격전지가 이 백마산 인근인지는 확실치는 않다.
다만 지금은 고인이된 동네 문중큰어른이 당시 수소문한 바에 의하면,

당시 광산군 어떤주민이 목격하길, 양천리사람 한명이 어떤자에게 끌려가는듯했다한다.(나의 할아버지로 추정)
그리고 풍문에 그다음날 무등산 못가 광주 남서쪽 변두리의 크고작은 야산이 많은곳에서,
왠 폭탄소리와 총싸움이 좀 있었다는것이다.

그때 즈음 반공대원이 빨치산에 깨진적이 있고, 그럼에도 무슨 모의를 하려 했다는것 등등이다.
 이를 증명하듯 인근에 양민 몇이 암매장되있다 사라졌다고한다.
한편 나의 할아버지는 당시 잠시 실종되었다 며칠후 나타났는데, 거의 반병신 상태였다는것이다.
그리고 문중어른이 이르길 그것은 전쟁 후유증이라며, 그후 오래 못살다 결국 운명하였다고 한다.
또한 전쟁 당시 양천리내 행방불명자였던 사람은 나의 할아버지만으로, 이러저러한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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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 생활수기 전격공개- 박봉 자수성가기

 

하늘자산;5천만원이상, 땅자산;1억원이상 달성

짠돌이카페 베스트선정 원문 : http://cafe.daum.net/mmnix/7mn8/7890

 

 


1# 하늘자산
: 약5천만원이상 달성.

안녕하세요. 
생활수기에 붙여 저의 소개를 잠시 할까해요.
고향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이며, 1971년생에 가난한 농가의 전쟁고아 집안입니다.
2013년에 개봉된 '마이리틀히어로'에서 저와 닮은 주인공 김영광의 스토리처럼
환경은 다르지만
집안이 여의치않고 화목치 않아 순탄치 않은 유년시기를 보내었어요.
원래 본 고향은 격동기때까지만해도 뒷마을 나주시 노안면 금동마을로
성산에 조상때부터 관리했던 고인돌이 있으며, 집성촌 당시부터 동네 토우에 속하는

좀 부유한가문이었다고합니다. http://cafe.daum.net/sdsms/2R8A/12

 

집안형편이 어려워 중학생때부터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으나, 유년기시절에 불미스러운일로
갑자기 머리를 다쳐 후에도
후유증(편두통,기억상실증)이 있어 사회생활이 원만치않았어요.
회사에서 일이 서툴다고 종종 짤리기도 해서, 기술과 자산을 모으는게 더디었지요.

그래서 절망과 고독의 삶이 연속이었지만, 분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마이리틀히어로, 김영광을 보면 나의 삶이 오버랩..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현대판 생계형 이산가족상봉기-꿈에본 내고향 방문..http://cafe.daum.net/mmnix/FDjK/125416)


 

1993년 군복무이후부터 ~ 2006년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모은 푼돈으로
기독교(교회) 신앙활동을 하며 헌금도 꾸준히 하였어요.

1993 ~1995(광주에서 서울로 정착시기) 매월5만원선 = 헌금 약200만원,

서울정착시기 ~ 2001년까지 일반교회 다니면서 매월10만원선 ; (약6년) = 헌금 약1000만원

2001년~2006년까지 동포.이주노동자선교교회 및 단체 (약5년) 후원금; 약1천5백만원
활동내역
2001년 여름부터 2002년 11월까지 서울조선족교회에서 주일날 자원봉사를 시작,
2004년 ~ 2005년 '조선족의친구들'(동북아신문 내조 및 동포후원단체)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을 함,
또한 서울조선족교회 후원언론 '동북아신문'에서 객원기자로 활동을 겸함.
2003년 ~ 2004년까지 가리봉중국동포타운에서 사이버팀장으로 자원활동 참여함.

2006년 ~ 2009년 이주인권단체 및 지역신문시민기자 활동; 후원금; 약1천200만원
예)2009년 한해; 후원금 약400만원 (비공식통계까지합산함)
(2009년 MY사회기부 통계- http://blog.daum.net/chmanho/16883623)
주요 활동내역
2006년 ~ 2007년 서울경인이주노조에 연대활동차 이주노조미디어활동가로 참여함(이후 후원회원)

이후 네띠(NTM)뉴스, 커널뉴스(팩트티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등으로 자원취재 활동.

(http://www.ntmnews.co.kr/, http://facttv.kr/facttvnews/, http://www.ohmynews.com/)

 

 

△ 위사진 좌측에 함께하신분은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해외협력단에 참여하셨던 재미한인이십니다.


 2010년 ~ 2015년 ; 후원금 약1천200만원



 ∇ 최근 후원내역 관련 이미지동영상


 

 2# 땅(바닥)자산 : 약 1억원이상 달성
(부동산보증금+생활저축;약9천만원 + 자동차 및 생필품,생활가전품등;1천만원이상)

가사난으로 중퇴후 직장생활을 하며 틈틈히 검정고시 공부를 하여, 대입검정까지(고졸) 마치었습니다.

저의 경제활동 주수입은 금속가공업에 1998년까지 한동안 종사하였고(당시 월급70~90만원선), 
2015년 11월까지 매일경제.구로보급소에서 신문보급업 일을 했어요.
수입: 2004년까지 100만원선, 2013년까지 125~135만원선,
불황으로(구독자 900부에서 600부이하로 급격히 감소) 2013년 7월부터 110만원으로 삭감.

그리고 신문일을 하며 (2013년 이후)부업으로 잠시 빌딩건물 관리 등을 겸했어요.(수입 25~35만원선)



   ∇ 월급통장


 

  ∇ 각종저축통장들 (청약저축은 이자표기가 없으나 150만원이상 이자적립됨)




 각종저축통장들중에서 주저축통장 저축내역일부



혹자는 제가 수입이 잘해야 140만원선인데 매월 후원금 10만원 이상 하고,
생계용 차(다마스) 유지비까지 있는데도 어찌 100만원까지 저축이 가능할지 의아해할것입니다.
물론 일반인에게는 택도없는 소리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알뜰히 살려한다면 80만원까지 저축을 문안하게 할수있습니다.
일단 자동차 유지비에 대해 예기해보겠습니다.
자동차 유지비를 최대한 아끼는 방법이 첫째는 연비이며,

또한가지는 사고않나게, 차 고장않나게 잘타는것입니다.
 안전운전을 하다보면 종합보험까지는 필요가 없으며 책임보험만으로도 충분하게됩니다.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상대편이 냈으면 냈지 내편이 아니고,

부득히 과실로 냈더라도 경미한 사고가 일반인바
책임보험으로도 충분히 다 물어주고, 할증 또한 낮습니다.
연비에 있어서 출발은 차분히 하고 과속을 않내게 하여 타는거지만,

실업무에 있어서 바쁘다보니 그게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이리하시면 됩니다. 바쁠대 출발은 약간만 빠르게 하고

과속은 무리하지않게 적당한선(속도제한 상한선)으로 하고,
가다 신호가 바뀌면 유독 신호가 더디 바뀌는 큰 교차로가 있을시

시동을 끄고 기다리다 다시켜서 차분히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것이 차를 놓고 최대한 걸을수 있다면

한쪽에 놔두고 가까운거리는 걸어서 움직이는것입니다.
(예로 저의경우 다마스로 밤12시에 출근하여 오전 6시경에 배달일이 끝나고,
바로 빌딩건물관리 장소로 이동해 잠시 일한후 퇴근하며(9시경),

주말에는 청계천까지 다마스로 장을 보고도 LPG값이 한달에 8만원 안팍밖에 않나옵니다.

그 이유는 배달일할때 걸을수있는 단거리는;총30% 최대한 걷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처럼 뚜벅이 정신이 없다면 이또한 연비 절감은 택도없는 소리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생활비를 알뜰히 사용하며 절감하고 살기에 가능합니다.

지금의 난방비 절약법은 '초절전 난방법 전격 공개, 자린고비 체험수기'를 참조하세요.
http://blog.daum.net/chmanho/14400528

 

아래 사진을 보시면 청계천벼룩시장에 군바리용품을 파는곳에서 전투식량 3봉을 천원에 샀습니다.

(요세는 전투식량은 잘 내놓지 않고 깡통류나 식품류 등이 보이니, 갈때 참고하세요.)
그리고 전자랜지용(210g) 즉석공기밥을 시중보다 싸게 2팩에 1천원에 있기도합니다.

그리고 청계천벼룩시장에는 각종식품 및 물품등이 저렴히 판매합니다.

 

 위 사진은 주로 라면해먹을때 사는 라면사리이며 대형마트나 식품할인점에 보면,

5봉에 1500원에 지금도 판매하는곳이 있습니다.

라면스프는 청계천에서 조미료(다시마)를 싸게 사시거나, 혹은 진라면 5봉에 2천원하는데요,

라면1봉지당 나오는 스프를 다 사용하지마시고 많아야 70%정도 사용하고 나머지는,

따로 조미료통을 준비하여 그곳에 담아놓거나 아니면 남은 스프봉지를 묶어놓습니다.

그리고 또 라면을 개봉할때도 스프를 좀 남겨놓으면 다음에 라면사리만 넣고 끌여도 충분한 스프량이 확보됩니다. 어차피 라면을 드실때 라면만 달랑 드시는게아니라 김치나 반찬을 곁들여먹기에

그리하게되면 나트륨(소금)량이 초과되니, 스프는 적당히 넣고 라면에 김치나 양념류를 끌인 1분후

넣으면 맛도 일품이고, 이만한 저염분 웰빙라면이 없는것이지요.


 그리고 위 사진은 초당두부가 아니라 제가 즐겨먹는 400~500원하는 판두부입니다.

솔직히 두부 사드실때 1천원부터하는 초당두부를 사먹는등, 먹고싶은거 괜찬은거 다사다먹노라면,

생활비 절감은 고사하고, 무슨 후원은 염두도 안나옵니다.

또한 식비절약 예로 가끔 편의점중에서 본사밀어내기로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나 도시락을 반품시키지 못하고 떠않고 폐기하는곳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한 편의점을 유심히 봐뒀다가 점주나 종업원에게 조심히 가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반값에 챙겨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반값이하로 쳐줍니다. 이리하여 2~3일에 한번꼴로 염가로 사서 전자랜지에 돌려 해먹으면 됩니다.
유통기한은 도시락의 경우 여름이면 며칠안에도 괜찮으며,
겨울이면 3~5일이 되도 되는것이 있습니다.
(참 자주오면 종업원 입장에서도 귀차니즘이고 하니 며칠 간격을 두고 찾아가거나 ,
점주가 상주를 잘않하는곳이면 종업원에게 부탁하여 비용을 종업원 용돈하라고 몰래 주는게 나음)

이렇듯 좀 짠한삶을 감수하고 인내하고 하면 못해도 생활비 절감은 됩니다.

저의 경우 박봉이지만 저렴한 식품 및 외식이나 문화생활등 이리 절감하고 저리 절감하여

월90만원안팎 저축과 함께 10만원 이상 불우이웃후원도 가능하였습니다.

저의 생활 신조는 '진리와 의로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자'입니다.

아래 고양이뮤직등을 끝으로 이만 줄이오며, 긴 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생활통장

 

   후원영수증(최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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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논단]물리적 흡수통일이 아닌 단계적통일로 빗장을 겆어야

단기간 물리적으로 남북합치는 흡수통일은 망상이다, 장차 연방제만 가능할 것.
 

한반도(코리아) 통일하면 독일처럼 체제가 합치어 비자 없이 자유로이 왕래하고 교역.교류하는 것을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이것은 수십년쯤에나 가능한 것으로, 당장 몇년에는 전혀 실현 불가능한 망상입니다.
한편 몇년이후로도 가능한 통일안이 있는데, 오래전 진보정치인 권영길이 제시한 고려연방제입니다.
고려연방제란 상호 체제를 인정한 상태로 조건부비자를 통해(부작용이 없으면 비자조건 완화) 남북을 왕래하며 교역.교류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 여기서 왜 남북이 체제를 허무는 완전한 통일이 단기간 몇년이후로는 불가능할까요?
이는 남북 모두 싯지못할 실수와 앙금이 있어서이죠.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는등 경제적으로 어렵게 된 이유가 한.미 공조로 추진된 경제제재인데, 이것은 북한 기득권뿐이나라 인민대중까지 원망이 높다 못해(수만은 아사자 대부분이 인민임) 미국에 원한이 된 지경입니다.
남한의 기득.수구권이 친미를 통해 북한을 경제제재를 하고 무역 봉쇄정책을 펴 압박하는 외교를 꾀했는데, 이것은 한반도 장래를 생각할때 잘못된 행위입니다.
 

한편 북한은 남파간첩사건 및 연평해전 등 국지적 도발을 일삼았기에 대한민국 서민에게도 북한이 좀 불편한 존재이긴 사실이죠.
(다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인혁당사건, 천안함사건, 국정원의 왕모 사업가.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최근 비무장지대(dmz)지뢰폭발사건 등은 한.미가 원인을 제공했거나 조작극)
연평해전의 경우 대한민국 월드컵축제 당시 진보계의 노무현 참여정부시절때 일어난 사태라 더욱 충격이 큰 것으로, 진보정부 상태에서도 북한이 도발을 했으니, 북한을 흡수해 통일한다는것 자체가 얼마나 망상인지 알수있습니다.
지금처럼 수구정권이라면 더더욱 택도없거나 추진된다해도 이념점쟁이 심화돼 국론분열이 더욱 격화되고, 사회양극화로 폭동.소요사태도 발생돼 거의 도루묵 통일이 예상됩니다.
즉 남한의 가진자들이 무엇을 나누는 사회환원정신이 모잘라 북한인민을 저임금에 일을 부려먹겠고, 상대적으로 극빈층인 북한인민들이 반발심으로 부자들 사업체를 약탈.방화, 이에 기득권과 수구보수가 합작해 관재대모를 하게되고, 이에질세라 쇠파이프 등을 동원해 보수를 아작 내는등, 여지껏 보지 못한 환상의 시추레이션이 펼쳐지겠죠.
이렇듯 설령 가능하더라도 후폭풍이 큰것으로 현제 남남갈등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소요사태가 발생되 도루묵 통일인 것입니다.
다만 다음 정권이 민주인사인 정부로 바뀌면 가능성이 있겠습니다만, 민주참여정부시절에도 격한 연평도발이 발생했으니, 평화의 남북화합일지라도 단기간의 흡수통일은 이 또한 망상입니다.
 

최근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사건이후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변하는등 아이러니가 생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방부에선 북한군이 DMZ에 침입하여 지뢰를 매설해 벌여진 사건이라 단정하고,
휴전선에 대형 확성기를 설치해 북한당국을 비방하고 대내외적인 공세를 펴며 압박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비열한 모략극과 공세를 중단하라며 이런 식으로 물리력을 동원해 북진까지하려든다면 무자비한 응징만이 있을것이라며, 마치 쐬기라도박듯이 준전시 비상사태를 발동하고 휴전선 인근.후방에 단.장거리포를 대거포진하고 핵잠까지 포함한 50여척 잠수함도 포진, 비상대기를 하는등, 이로 인해 한반도 전시위험 사태를 방불케 했습니다.

 

한편 중국은 북한군의 비상.군사행동을 앞두고, 중국군을 북한 접경지역에 탱크-장갑차를 집결하고,
외교당국자 5명을 극비로 한국靑 방문해 물밑 접촉하는등, 한반도 정세에 관여했습니다.
이미 중국군은 작년 10월 동북 3성에서 한반도 유사시 투입하는 기동주력 부대를 동원해 북한의 급변에 대비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연합행동-2014E'라는 작전명을 붙인 훈련은 선양(瀋陽) 군구 주관으로 제39집단군과 공군을 주력으로 각종 군종과 병종 부대 2만명이 참가했으며,
앞서 39집단군은 2013년 12월 백두산 인근에서 동계훈련을 했고, 작년 4월에는 실전 능력과 신속배치 기동력을 강화하려는 훈련도 했습니다.
(참고글 ; http://cafe.daum.net/sisa-1/mvOx/746 ,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823172208694)

 

이렇듯 전쟁으로 북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한다면 천하바보입니다. 급변사태로 한반도에 전쟁이 나고, 북이 전쟁에 승산이 없고 불리하다 싶으면 공산당은 조선을(북한땅) 중국에 받치겠다는 각오까지 하고 중국개입을 긴급히 요청할 것이며, 중국은 이미 준비한대로 남한 역공과 전후 수습에 전격 나설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북한은 중국의 막대한 무상원조 외 많은 차관이 있습니다.(중국의 대북무상원조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대북원조는 애들 껌값에 불과하다 합니다.)
경제특구만하더라도 중국사업체에 많은 부동산.땅(자원이 매설돼있는 막대한 토지도) 자체를 내주어 돈과 맞바꾼지 오래인 실정입니다.
하여 유사시 중국은 북한에 투자한 경제 및 차관회수 명분으로 재산권 행사 차 반드시 진군을 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한편으론 외교당국자 5명을 극비로 한국靑 방문해 물밑 접촉을 하고, 2015년 8월 30일 미 백악관 라이스보좌관과 북한문제를 논의하며, 미국이 확전을 피하기 위해 북한을 중국과 분할 통치하는 방안에 응대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며, 중국의 복잡 다난한 속내를 엿볼수있습니다.
(참고글 ; 푸틴.. "미국이 시베리아를 빼앗으려 해"  http://cafe.daum.net/revelation1/ImMq/4114
미국의 한반도 플렌 http://cafe.daum.net/revelation1/ImMq/4115 )
작년에 한중 정상회담서 “북한 동북4성 편입 생각있나” 朴대통령 질문에 中시진핑 부인 “南주도 통일 지지” 했습니다만, 이러한 환담을 이제 중국이 지킬 필요가 없음은, 朴대통령 스스로 이질적인 대내외 행보로 파톤이 났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국의 오래간만의 열병식에 대한민국 박대통령이 중국의 초대에 응하고 박통이 중수석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예기했습니다.
그러다 이후 한미외교 행보에서는 유사시 전쟁도 구사할수있는 흡수통일을 예기하고 다닙니다.
즉 보수층을 위시하며 전쟁도 불사하는 흡수통일 구상하다 중국에 평화를 예기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빈말임은 그 이후 다시 보수적 흡수통일 구상인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하며 주변 열강은 한반도에 어떤 부담감을 갖을 필요 없이 그들의 이로운대로 판도를 판단할 수도 있게 됐으니,
장차 제3차대전 아마겟돈의 서막이 IS에 의하여뿐아니라 미국의 야욕 혹은 한반도 급변사태로 일어날수도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전쟁시 설령 대한민국이 유엔연합군의 도움으로 어찌어찌해서 전쟁승리를 한다해도 돌아오는 것은 6.25때보다 더 처절한 공멸같은 폐허 속의 헛된 승리이며,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미.중.일.러 등 주변 강국으로서 이들에게 전쟁패해복구에 막대한 차관과 지원품을 받아야할것이며 남는 것은 빚더미입니다.
북한정권에 핵포기만 시킬수있다면 북한체제를 붕괴시킬수있다는 생각이 한국 지성인에게도 있습니다만, 이 또한 모를 가변성이 있습니다.
북한이 핵포기를 하되 태국과 버마처럼 경제는 개방하되 군사독재 장기집권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하게되면 한국 또한 신유신독재가 도사리는 마당에 한.미는 북한에 더이상 외교간섭을 할수없게되며,
중국도 미국에게 한반도 정세에 더이상 신경을 끄라고 종용할것입니다.

 

현제 미국은 암암리에 동북아경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를 러시아로 분리독립 시키려고 계획 중이며, 중국의 개입을 무마하기 위해 북한땅을 중국에 내주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만 속내는 따로 있습니다.
그리한 후 중국에 편입된 북한지역을 중심으로 북한자치구(조선인이라 불리는 북한인민) + 간도(조선족과 중국에 이미 넘어온 조선인) 독립운동을 자극하고 그와 연대하여 소수민족 독립운동을 지원해 중국을 흔들겠다는 속셈입니다.
중국이 북한에 긴밀한 외교 외에 다변화적 외교를 하고 있음은 조선인은 신장.위구르족보다 더 골치 아픈 소수민족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0년전 유엔이 북한에 안보리 경제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비공식으로 북한과 교역을 대폭 확대하며 무상원조까지 해주었고, 북한에 나진선봉 등 경제특구를 세워 주었지만, 중국기업인이 노무(급료)를 밀리면 장비를 압류하기도 한다 합니다.
그리고 중국 첩보원이 발각되면 가차없이 처단하며, 최근 친중 고위간부 장성택 숙청으로 북중관계가 약간 서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인 성격만 봐도 다소 호전적이니 대한민국 민족주의자의 간도회복 염원은 현제 구상만 있을뿐 실천.실현성은 부족하여 공염불에 불과하겠지만,
조선인이(북한) 한다면 기회를 엿봐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중국사람의 뇌리에 존재하기도한다합니다.

 

마무리하며, 서두의 남북통일 논단에서, 통일은 단계적으로 하여,
우선 상호 체제를 인정한 상태로 조건부 왕래하며 교역.교류하는 '연방제' 통일을 구상해야할것이며,
이것이라도 실현 가능하다면 한민족의 큰 과업 달성이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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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을 보니, 김근태선생님이 그립습니다.

민주당이 살려면 고노무현을 넘어 김근태정신을 이어받아야..
 

간만에 게시글을 쓰면서, 영화 변호인에 대한 잔잔한 소회를 적어봅니다.
고노무현선생이 한때 속물 변호사였다가, 개념 변호사로 변모했다는데, 거기까지는 정말 치하할만하며 자랑거리입니다.
그리고 그 후 대통령이 되기전 NGO활동 및 정치초선 때의 행보도 대략 무난히 잘했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일엔 절차와 순서가 있듯이 정치판에서 절차탁마해 나가야 하는데
정치판에서 자신의 정치.대선순서를 좀 미리 앞서 확보함으로써, 기어이는 다음 17대 대선에서 수구에게 정권을 뺏기는 참극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국민 중에 정치변화라는 열망이 있음은, 야권인 김대중정부가 먼가 크게 변혁할 줄 알았는데 좀 그런듯.아닌듯했음이었는데,
그것을 노무현 선본은 오판하여 젊은 지도자가 필요한 것으로 착각해, 어찌어찌하여 정치판도를 바꾸었으며, 그러면 정말 젊은 정치모습을 보여줘야 했는데, 김대중정부와 마찬가지로 변혁한듯 안한듯 하였습니다.
 

16대 대선정국 당시 김근태선생이 자신을 산화하듯 대권을 노무현선생에게 양보함으로써, 노무현바람이 일어 노무현이 대권을 이어 받았는데,
만일 정치선배인 김근태선생의 호의를 고사하고 대권주자를 김근태선생으로 통일해 밀어주었다면, 더욱 아름다운 야권의 정치 모습이었을 것이며, 야권이 춘추정국 속의 승자이니 이런 식의 보수층의 빙정거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15대 김대중선생 다음으로, 16대 대선에는 김근태선생이 대통령의 대를 이어나감으로, 다음 17대 대선에는 노무현선생이 압도적인 당선, 그 다음 현18대 대선에는 문재인의원 무난히 당선 등으로, 모르긴 몰라도 지난 과거처럼 17대 대선에 수구정권인 이명박이 당선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근태선생은 계속 제야에서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본 상태에서 편히 눈을 감았을 것이며, 김대중선생도 그리하였을 것이고,
더욱이 노무현선생은 지금처럼 고인이 아닌 정계에 은퇴했다 해도 NGO 등에 남아 후학을 양성, 오래 살며 편한 노년을 맞았을 것입니다.
 

이제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과거는 그렇다 치고, 18대 대선에는 정치야권이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 주연은 영화를 통해, 노무현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상과 부림사건이라는 공안정국 속에서 한변호사의 사투와 민초의 고초를 보여주며, 언젠가는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했듯이, 노짱.노짱하려 영화를 만든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지난 17대 지방총선에서 친노인사들이 정치계에 대거 입문은 고사하고 고전을 면치 못했듯이, 민심은 냉정하였으며, 허면 18대 대선에는 대권주자가 리틀노무현이라는 문재인보다 정치9단에 민주당의 정치노장격인 이해찬, 박지원 등을 전면에 내세워 대선을 치렀더라면 좀 승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사회경륜은 있으나 정치경륜은 초선을 막 지난듯한 문재인을 내세움으로써, 야권 정치판에서 춘추정국시대를 또다시 야기하는 미숙함을 비추었습니다.
정치에서도 정치전문가가 나서야한다는것이, 사회의 순리요 진리일진대,
이러한 순리를 역행하니 민초들의 표심도 사분오열 분산되었으며, 결국 정치모레배에 기득권층으로 단결된? 수구보수층이 어부지리로 정권을 획득하기에 이릅니다.
 

여기서 잠깐, 왜 친노프레임이 정치판의 만능통치약이 아닌지 살펴보지요.
고노무현선생이 어느덧 대통령이 되고난 이후 지난 구태 수구정권에 비해 고김대중선생을 이어 정치.경제.민생 민주화 및 선진화를 이끌었으나
한편으론 딱히 그렇지 않은 안타까운 행보도 보였습니다.
경제민주화냐 경제발달가속화냐에 대해 지난 이명박정권에서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하듯 그리 정치했습니다.
때론 공감은 안가면서도 이해는 되나, 공안정치의 한 축에 여전히 함께했다는것은 용서할수없는 민주정부의 안타까운 단면입니다.
한미에프티에이의 민중의 반대투쟁에 경찰이 강경진압으로 대처해, 몇 명의 농민이 맞아 죽었고(전용철 열사, 홍덕표 열사)
2006년경 하중근 포항건설노조원이 포항 형산강 로터리 집회에서 경찰폭력으로 뇌 손상 당해 운명하셨고, 2007년경 이근재 노점노동자가 고양시의 노점상 폭력단속에 항거하다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등,
이외에 투쟁하다 투신, 음독, 분신으로 자결한 사람이 수십 명이 넘습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서해안 새만금갯벌을 죽이어 해민의 생업에 타격을 입히었고, 해민의 생업대안을 찾지못한체 민초를 방치한점.
세종시개발과 한미에프티에이, 이라크파병 문제에 대해 국민과 대화를 통해 해결했어야하는데, 그들만의 잣대를 미리 그어놓고, 소통부제로 고압통치적인 리그를 행세하다, 종국에는 한나라당과의 정치연정까지 하는 막장에 이릅니다.
 

한편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의원은 한미에프티에이 반대를 하여, 여의도 국회 점거 농성을 하고 단식도 하며 투쟁을 이끌면서, 당지도부가 옳은 정책은 적극 지지했고, 틀린 정책은 비판해 거부하며, 아닌 것은 아님을 보여주면서 정의를 선도하셨습니다.
(2007년 범제야 FTA 전선; 불가피론-강기정.김부겸.문재인.박영선.이해찬.유시민.전병헌.정세균.정동영.한명숙.  신중론-정운찬.문국현
  FTA반대-김근태.김두관.박원순.이인영.이종걸.임종인.정봉주.정청래.천정배.최재천.최문순.홍미영../ 이후 반성하고 FTA 반대에 합류; 김정길.문재인.박영선.박지원.유시민.정세균.정동영 등 총 60여명)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769901

 

그럼 지금의 친노 리틀노무현인 문재인과 친문재인파는
과거 노무현의 과오를 뛰어넘는 자세를 갖추었는지가 관건인데, 안타깝게도 딱히 그리 못하고 있습니다.
친문이 김한길파의 문재인 비난공세로 민주당 대표에서 문재인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등 하던데, 이러한 패배주의는 참 한심하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민주당 이인영의원이 아프리카 정치수다방 망치부인과의 인터뷰 때(2013년 11월 4일)
문재인이 한길이에게 밀려 딱히 그리된건아니고 민주당내 변화의 한 시도로 그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한길파의 구태연함을 질타하는 것은 좋은데, 그 이상을 할수있는 대안을 보여주면서 해야 하는데, 18대 대선부정선거에 있어 처음에는 총체적 부정선거라기보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집중 언급하며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했다가, 요즘에는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본다고 하면서도, 18대 대선이 선관위 중앙서버 조작을 하는 등의 개표조작.개표부정이 있었음은 애써 부정하면서, 국정원, 군.경 대선개입만을 파해 치며 언급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18대 대선부정선거 규탄 시국대회의 조직력이 그리 크지도 않는 등, 김한길파와 마찬가지로 행동은 별무신통입니다.
 

개인적인 사례지만 작년 가을에 친문재인이 주류를 이루는 팩트티브 생방시 제가 개표부정 등 총체적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친문들도 정신차려야한다고 주장을 하니, 아예 방송시청 못하게 블랙을 걸어버리더군요.
그리고 개표부정을 주장하는 민주시민들을 수개표쟁이라 매도하며 강퇴를 자행하면서
자기 방송은 민주적인 범민주진보방송이라 하고 참 어처구니가 아닐수없습니다. (http://cafe.daum.net/facttv/GUlg/1665)

 

민주당원내에서 현 민주당 지도부 사퇴 및 비대위 구성하자는 목소리도 있던데,
혹여 김한길 사퇴하여 비대위 지도부가 문재인의원이 아니길 바랍니다.
문의원이 김한길만큼은 아니겠지만 지난 한명숙.정세균 체제를 통해, 그들 또한 한계가 있는 지도층임이 확인됐습니다.
현 친문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패배주의에서 벋어나야 할것이며, 이제 민주당은
일신우일신해 김근태선생 같은 진정성 있는 행보와 강단을 좀 갖추어야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517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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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천사의집 방문행사-냥이와 어린이, 놀이모습들

 

 

 
 

 1# ∇ (본 사진은 보급형컴팩트디카 코닥 이지쉐어 Z1085 IS 로 찍은것이며,.
   어린이날을 맞아 요셉천사의집(불우결손아동 입양가정집) 행사에 냥이와 함께 처음 방문하여 짬짬이 촬영한 일부 사진입니다. (방문계기는 나의 고향 학교동문과 자매결연의 친목모임을 통해서랍니다.)
맛있는 점심 Time에 우리 어린이들이 냥이와 함께도 재미있게 노는 모습입니다^^)




 

 


 


 

 

 

 2# Happy Time에 풍선 아트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네요^^

 


 

 3# Happy Time에 푸드아트 테라피를...

 

 

 

  4# Family Time에 요셉천사님들 장기자랑 오카리나 연주 모습

 

 

 http://blog.daum.net/chmanho/1688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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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만호 반려냥이, 촛불때 청화대인근까지 종행무진했던 야옹이 성장기

 

 

 

 1#  제가 사는 서울 신길동 동네에 버려진 냥이를 분양했습니다.

 

지난 2009년 7월 세째주에 동네에서 버려진것으로 보이는 어린 고양이가 길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옆집 주인이 며칠째 왠 새끼고양이가 이곳을 배회하며 울고 있다면서, 주인이 없는 고양이인듯하니 누가 데리고 키우면 좋겠다고합니다.

 하여 일단 제가 분양하기로 하고, 데려다 현제까지 쭉~ 키우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키우는 고양이라서 인터넷을 검색해 고양이 키우는법을 익히고, 영등포에 있는 서울축산동물병원이 애완동물 치료에 저렴히 잘해준다고 하여 그곳에 데려가 진료.예방을 하였습니다. (3개월 이상으로 보이는 어린 수컷 고양이, 이름은 '야옹이', 별명은 '휙')





 개인적으로 동물을 좋아해서, 냥이도 아는듯 분양한지 며칠도 않되어 장난을 아주 잘칩니다.


사진들을 보시면 혼자서도 잘노는 귀엽고 개구장이인 고양이입니다.^^

 


 
2# 
∇ 지난  2009년 7월말, 서울 도심의 휴식공간으로 강북의 세종로거리에 광화문광장이 오픈했습니다. 이로써 수도권에는 여의도광장, 시청광장, 청계천광장, 광화문광장 및 주요 역세권광장 등 다양한 문화.휴식공간이 이루어져 있는 셈입니다.

하여 겸사 8월초에 우리집 냥이와 함께 광화문광장 나들이를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 2009년 가을 청계천거리 나들이할때의 사진입니다.

 

 

 

3∇ 2009년 9월 중순에 고양이라서다행이야(http://cafe.naver.com/ilovecat)의
서울.경기권 회원들과 함께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오붓한 고양이 동반 나들이를 가졌습니다.


∇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는 우리 검은 냥이에게 관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 고다 회원중 마음도 얼굴도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가 제 고양이를 포옹하는 모습입니다.

 

 

4# ∇ 2009년 늦가을때, 안산 호수공원에 냥이와 함께 나들이한 사진입니다.





5#  ∇ 경기도 북부 산정호수 나들이 및 의정부방향 북한산입구 밤산책

(경기북부 애린원동물보호소 후원차 방문후 귀가하면서 냥이와 잠시 산책한 사진입니다.)

 

 


 6∇ 2010년~2011년 우리 고양이(야옹이) 모습입니다^^ 


 
 ∇ 5월 1일 노동절 민주노총 전야제 및 노동자대회 행사때의 사진입니다.


 

 

7#  ∇ 2013년 우리 고양이(야옹이) 현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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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만호 삶의 십자가 -내게 십자가사랑 주신 은사님을 생각하면 늘 감사할뿐입니다.

 

 

지난 나의 회상 글 '한국판 마이리틀히어로, 김영광을 보면 나의 삶이 오버랩되네요.'에서,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저의 삶에도 한줄기 희망이 있었으니 ..,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에 관한
사연 있는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어렸을적 송학장로교회에 다니던 윗집의 이숙경 할머니와 어머니, 이숙경,이홍섭 후배, 송학에 살던 김준택 친구를 통해, 노안성당을 다니던 송계에 살던 이기현친구를 통해, 주님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래전 타계하신 이숙경 할머니의 애뜻한 연민과 사랑은 지금도 마음의 빚이 되어 남아있으며, 주님의 십자가란 이런 것이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이 여의치 않고 가정불화가 있어, 86년 직장생활 시작 이후 몇 년에 한번씩 명절때 고향에 들리다, 91년부터(1년6개월) 단기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자, 서울직장을 정리하고 광주로 이사 내려왔습니다.(직장생활 하면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여 고졸학업 취득을 하였기에 민방위가 아닌 단기병으로 영장 온듯했습니다.)
고향집으로 내려올까도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는듯해, 광주시내로 거처를 잡았고,
얻은 방은 별체마냥 가끔 들리어 방세와 공과금만 지출하고, 군생활은 영내 생활하면서 버티려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서운해하면서 그냥 고향집으로 내려와 출퇴근하라며 부탁을 하시길래, 한번 고향집에 와 있기로 했습니다.
 일단 짐을 정리해서 집에 왔습니다만, 아버지는 예전과 변함없이 자주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게 여전하셨습니다. 하여 아무래도 좀 그래서, 부대에 부탁을 하여 현역과 같이 야간에 보초나 불침번 같은걸 서는 조건으로 영내생활을 하며 군대를 보내었습니다.
군 생활 중 주말에 가끔 집에 들리기도 하였는데, 줄 곳 아버지는 밤에 술에 취해와 마을어귀에서부터 주정을 부렸드랬습니다.
하여 어느날 참다참다 못 참아서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조로 격하게 한쪽으로 밀쳐내며 한동안 머라고 했습니다.(당시 어렸을적에 불미의 사고로 머리를 다쳐 평소에 신경이 예미했었는데, 영내생활까지 하는 팍팍한 군생활에 예민하다 못해 날카로운 지경이었습니다.)
근데 그 소리를 어떻게 알고 들었는지, 평소에는 누가 자식을 학대하든 말든 별 관심도 없던 이웃주민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난줄알고 달려들어 저에게 그러면 않된다며 말리셨고, 그런 이웃주민들의 이중적인 행동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붙받쳐오는 울분과 함께 됐다며 말리는 두분들을 뿌리쳤고, 그 바람에 함께 말리려 왔던 이웃 숙경이할머니께서 힘없이 하수도 쪽으로 넘어져 손목을 다치셨습니다.
혹 떼려다 혹붙인격같은 참으로 불미스럽고 황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실을 알고 그날 쫒아온 숙경이아버지는 이런 못된놈을 봤냐며 분노를 하면서 무차별 보복성 폭력을 가하였고, 이렇게 실력행사하는것은 자신의 어머니가 손목을 다쳐서가 아니라 못된 아비도 아버지가 아니냐며 훈계하기 위함이라했습니다.
그런데 수년후 제 둘째(경호)동생이 직업도 변변치못해서 가사를 도우며 고향집에 자주 머문적이 있었는데, 제가 아버지께 가한것은 약과일 정도로 몇차례 아버지를 좀심하게 두둘겨 팼다고합니다.(폭력은 폭력을 낳는다고, 행패부리는 좋지않은 모습을 보고 자라니 남동생은 더욱 모나게 성장해 그후 폭력행위 전과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훈계한다던 숙경이아버지는 남동생을 나무라지않고 남일인양 모른척했다고하며, 결국 자신의 할머니가 다쳤기 때문에 화가나서 저에게 그랬었구나를 알수있었습니다.

 

어찌됐든 누구를 다치게한건 잘못한 것이니, 당시 미약하나마 약간의 치료비와 함께 숙경이할머니와 가족에게 거듭 사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연로하셔서 그랬는지 다친 손목이 잘 났지 않고 좀 고생을 하시었고,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습니다.
가끔 찾아가 "숙경이할머니 너무 죄송해요ㅠ" 하고 사죄의 문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미안하고 감사한 일이 펼쳐졌습니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그리고, 갈 때마다 저를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야, 만호야~ 네 잘못만은 아냐, 우리가 그간 좀 무심했나 보다. 평소에 네 집에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었을테인데..
이것은 나의 십자가라 생각하고 감내할 터이니.., 만호 너도 십자가라 생각하고 너의 고난을 이기어 나갔으면 해~
그러니까 만호야~ 네 아버지가 너무 밉더라도 좀 이해하도록 해~..."
또한 숙경이 어머니와 이숙경후배와 이홍섭후배도 내심 말은 아니했지만 저를 책하지 않았고, 같은 조의 관용과 연민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오히려 용서와 위로를 받으니, 처음으로 주님의 사랑과 십자가가 이런것임을 느끼게 되었고, 신의 은총과 은혜에 정말 감격의 눈물이 났습니다.
어쩌면 숙경이할머니가 어렸을적 일찍 고인이 되신 후덕하신 큰집(신남예 누님댁)할머니처럼 느껴지기도 해,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이렇듯 살면서 처음으로 신의 은총과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불화로 10년이상 고향 땅에 못 왔지만, 숙경이할머니를 생각하면 명절에 꼭 고향집을 찾아가보고 싶었지만, 이 또한 쉽지가 않았습니다.
용서로 따지면 숙경이네 가족이 다용서하는건 아니고, 숙경이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친척들은
앞뒤정황 다짜르고 설령 안다 해도 저를 죽일 놈으로 보고 정죄하는 눈초리셨습니다.(심지어 저희 친지들중에도)
어찌됐든 잘못은 나에게 있으니 그분들 눈에 거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
너무 미안하기도하고, 않나타주는게 그분들 위하는것인듯해 여지껏 못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튼 고향생각 하게 되면 고향윗집의 숙경이네에게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지난 10여년간 비록 고향집에 못 왔지만, 몇 차례 고향에 내려가 마을 앞 (신동교)다리나 큰부산(마을묘지) 뒷밭에 잠시 머물다가, 상경하기전 숙경이네 뒷밭에도 잠시 들리어 고인이 되신 숙경이할머니께 죄송함을 표하고, 눈물만 흘린체 상경하곤 했습니다.

 

염치없을지는 모르나 언젠가(이르면 올해쯤) 숙경이 어머님이 다니는 교회에 한번 찾아가 예배라도 드리고 가고 싶어집니다...

 

(아래는 제 여동생의 오랬만의 서신이며, 최근 저의 답장 편지내용입니다. 참고로 첨부해봅니다.)

이만 글을 줄이오며, 사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NC00167-0.jpg 첨부이미지 미리보기


이임에게 서신.jpg 첨부이미지 미리보기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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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이리틀히어로, 김영광을 보면 나의 삶이 오버랩되네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68934



마이리틀히어로, 인생의 출세나 가치기준에 대해 생각케하며, 삶의 교훈이 되는군요.
 

최근 2013년 봄에 개봉된 한국영화 '마이리틀히어로'는, 필리핀 혼혈소년이 주인공이며,
뛰어난 가창으로 케스팅 되어 뮤지컬 진출 과정을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혼혈에 대한 차별을 넘어 다문화가정을 이해하고, 사회의 한구성원으로서 서로 자연히 어울려 살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물질만능주의나 학력우선주의와 기회를 위해 비열함이 존재하는 사회, 언제부터 진심은 없고 허상만 존재하는 모습 이런 부분도 이야기되며, 우리 인생의 출세나 가치의 기준은 무엇이어야되는가를 생각케하는 작품입니다.

스토리를 보면, 허세의 뮤지컬 음악감독 유일한이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차, 국내 대규모 아역 뮤지컬 오디션 행사를 맞이하게됩니다.
그래서 한번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가창력있는 순수한 이주소년 김영광과 함께 파트너가(멘토) 되어 시작하는 이 영화는, 130여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김영광과 유일한이 함께하고 가까워져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입니다.
오디션 장면을 보면, 보이스코리아와 슈퍼스타K의 요소가 어느정도 섞였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노래실력 빼고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비주얼, 춤실력, 빽, 어느 하나 잘난 것 없는 영광이.
한편 최종예선에서 ‘조선의 왕, 정조’의 주연 배우를 뽑는 오디션에 얼굴색까지 다른 영광이 못내 탐탁지 않은 유일한은 일등을 하겠다는 집념으로 강훈련식 하드트레이닝을 시키고, 영광은 묵묵히 교습을 견뎌 목표를 이루어냅니다.

주로 이지수편곡에 천상의 목소리 성태현군의 노래가 자주 등장하며, 지대한군의(스리랑카 다문화가정으로 현12세이며, 다니던 안산이주민센터에http://www.migrant.or.kr 찾아온 영화기획사를 통해 케스팅됨) 실제 노래목소리로 착각할정도로 가창묘사가 완벽합니다.

 

김영광 뮤직 하이라이트 : http://youtu.be/6gaYiQDWHho 


 
참, 주인공 김영광의 스토리를 보면, 환경은 다르지만 나의 삶이 오버랩되는듯합니다.
배두나처럼 저도 약간 이국적인 외모여서, 참한 김영광군의 외모를 보면 저하고도 약간 닮았어요.
특히 목소리와 성격(행동)이 어렸을적 저와 거의 비슷하여, 아마 김영광군이(지대한)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면 저와 같지않았을까 생각도 되네요.
영화스토리에 김영광군은 혼혈인에 아빠는 무슨사유가 있어 자식을 외면하고 회피한체 따로 살고 있는등해 상처를 안고 자란 불우한 환경이었듯이,
저또한 배경은 다르지만 집안이 여의치않고 화목치 않아 순탄치 않은 유년시기를 보내었습니다.

고향하면 심신을 달래주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야하겠지만, 저에겐 그러지아니했습니다.
 

 △ 좌측은 나의 20대때, 우측은 30대때의 사진입니다(300만화소 스냅사진)
(우측에 함께하신분은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해외협력단에 참여하시는 재미한인이십니다.)

 

제 소개를 자세히 하자면 1971년생에, 고향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내기마을), 3남2녀중 장남으로 가난한 농가의 전쟁고아 집안입니다.
부친이 집안 과거에 대해 예기 잘 않하셔서 자세히는 모르나 어림짐작해 대략적인 정황으로보자면,
원래 본 고향은 한국전쟁전후까지만해도 나주시 노안면 금동마을로 당시 좀 부유한가문이었다고합니다.
집터만해도 마을에서 좀 큰편에 속했었고, 아름드리 감나무가 수십그루 이상에 텃밭과 작은야산등으로 이루어졌으니까요.(논밭 40~50마디, 야산임야 50마디)
그런데 한국전쟁때 어느날 저희 할아버지는 북한무장공비로 추정되는 괴한에 의해 납치.실종을 당하셨다고하며, 할머니는 전쟁 후유증에 지병까지 겹쳐 끝내 일찍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하여 제 아버지는 어렸을때 뒷 마을(내기마을) 고씨성의 부자농가에 의해 자라났고, 후에 내기마을에서 독립은 하셨으나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훗날에 추측해 알았지만 가문의 재산을 본가 '금동마을'의 (큰형)큰아버지가 대부분 물려 받은터라 그런듯했습니다.

 

그래서인지는모르나 지금은 고인이된 아버지는 어렸을적 당시 친지나 이웃에게는 좋게 다정히 대했지만, 어머니나 자녀들에겐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KBS2 아침드라마 '삼생이'에서 나오는, 사기진이 삼생이를 하대하듯
자식들에겐 무뚝뚝하거나 좀 쌀쌀하게 대하였고, 자주 학대를 하기도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집안의 부부 싸움도 잦았는데,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간혹 자녀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는등 가정이 오붓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유년시기에) 집안의 부부싸움 며칠후, 제가 어머니에게 무슨 투정을 한것도 아니었는데,(당시 어렸을적 좀 의젖하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투정같은건 잘 않했고요, 우리 친동생들도 대략 그랬어요.)
집에서 어머니는 갑자기 뭐라 짜증을 내며, 저에게 맞아 죽거나말거나 막무가내로 부억칼을 던지었고, 그칼이 그대로 머리에 맞아 꽂히어 피가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하여 갑작스런 어머니의 칼던짐에 머리부상이 돼 사경을 해매야 했으며, 부상 휴유증과 적지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머리부상을 당했지만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머리에 쑥이나 지혈제, 연고를 몇번 바른게 전부였고,  그때부턴가 뇌의 30% 가까이가 죽거나 기능이 마비되다시피하여, 사고후 머리부상은 아물었으나  기억상실증, 앞면장애, 정신착란증까지 생기기도해 꿈과 현실을 구분못하기도했어요.
 어느날 꿈에서 아버지가 이웃마을 '장등'으로 심부름 시킨것을 현실로 착각하여, 잠결에 일어나 맨발로 비몽사몽 장등으로 걸어가 생판모르는 낮선집을 서성이는것을, 뒤늦게 알아차려 달려온 누나에 의해 등에 업혀 다시 되돌려온 기억이 아련히 납니다.

그이후 정신착란증은 가셨으나 기억상실증이나 앞면장애는 휴유증마냥  간혹 있어서, 그러다보니 사고와 기억력에 있어, 지금까지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면서 자녀를 학대하며 괴롭히기 일수였고, 어머니는 그러지않으셨어야하는데 어느날 칼을 맞는 극단적인 경우를 격고나니, 정신적 충격으로 그때부턴가 어느덪 부모님 모두에게 마음문을 닫게 되었습니다ㅠ

 

한편 다녔던 초등학교나(삼도남) 중학교에서도(평동)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도 가관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들중 일본순사마냥 스파르타식 막무가네 교육을 시키었는데, 학생들이 좀 맘에 안든다싶으면 회초리가 아닌 어떨때는 몽둥이까지 들고 학생을 후려치며 하대하듯 체벌을 했습니다.
어느날 회초리로 머리까지 후려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의 경우 머리를 빗나가 맞아서 다행이었지 까닥하면 다친곳을 맞아 큰일 날뻔도 했어요.
중학교 2학년쯤 되자 집안에서 자녀들 등록금을 다 내기가 버거울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고(학교 다니는 남매가 여렇인지라), 아버지는 누나와 동생의 학비를 미루는한이 있더라도 저는 끝까지(고등학교) 가르치려했으나, 제가 고사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하도 때리니까 못다니겠다는 사유로 자퇴서를 쓰고 그만두었어요.(당시 사건으로 그 평동중학교는 맹붕이 되어 체벌이 줄어들었다고도합니다.)
속내는 가정의 불화도 끈이지않으니 너무 힘들어서, 이래저래 얼른 사회생활을 시작해야겠다며 생각하던차,
86년 그때 어느날(여름) 그렇게 결정하고,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기구한 운명인건지 유신의 잔재가 남아있었던건지, 스팩을 위해 형편상 간혹 옮기어 다녔던 업종 대부분(90년대 중반까지), 직장 상사들이나 사장이 아랫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거의 깡패와 비슷하는등 이회사 집단 또한 가관이었습니다.
인간사는 냄새나 삶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삭막함과 착취,  무한경쟁속,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는 사회였고, 어느덪 그 한복판에 서서 막닥뜨리고 홀연히 사는 인생이었습니다.(직업은 금속가공업에 98년까지 한동안 종사하였고, 현재 매일경제 보급소에서 차로 신문보급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직장생활에 찌든 맘을 달래주는 고향이 되야하지만, 이미 집안 또한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전에 잘살다 전쟁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서라한다해도, 오붓한 정감이 오가야되는데,
 아버지는 별로 반기지 않으셨고, 돈이나 많히 벌어왔는지 하는 눈치였습니다.
88년 설명절때 일단 번돈 약50만원 정도 아버지께 드렸었는데, 별로 탐탁치 않으셨고
"이것도 돈이라고 벌어 왔느냐?"며 뒤로 돌아서서는 핀잔을 주었어요.
누나도 중졸후 바로 취직했는데, 명절때 누나에게도 돈이라도 벌어왔는지 하는 눈치였고, 돈을 얼마 않가져 온것을 보시고는, 어머니마저도 등뒤에다 대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어머니만큼은 차마 저에게 아쉬운소리를 잘 않하는편이었는데, 누나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게되니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속으로 그랬습니다. "죄송해요, 아버지 어머니,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올게요. 만일 돈 못벌어오면 앞으로는 오지 않을게요ㅠ"

 

그후 오래전(2002년) 어머니와 누나의 매형과의 전화통화후 그것이 마지막 통화로, 만나지도 못한체 어느덪 10년이 지났군요ㅠ

"만호야, 명절에 집에 좀 자주와"
"어머니 죄송해요, 돈이 없어서요ㅠ... 그리고 반기는 사람이 없어서요ㅠ..."

"...매형, 죄송해요. 고향에 자주오고 싶지만 심적으로 힘들구요, 위안보다는 피로만 쌓여서요ㅠ..."
 

당시 초라한 초가집이었던 고향집이 90년대후 기와집으로 새로 지으면서 진빚이 좀있었는데요,
"고향집에는 못가지만 돈부치는걸로 대신할게요"하고, 300만원 정도 송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에게는 편지로 "앞으로는 고향에 영영 못 올지도모르니 내 장자권을 둘째 (경호)남동생에게 이양하고자한다. 얼마 않되는 집안 재산이겠지만 부모님 사후 이거라도 너희끼리 물려받아 고향을 책임졌으면 해"하는 마지막 서신을 보내고, 고향을 마음속에 묻었습니다.

87년 이후 몇년에 한번씩 명절때 고향에 들리다, 이후에도 고향땅에 왔지만 차마 집에 들어갈 엄두가안나, 금동마을 저수지 정류장 인근에서 혹은 복굴과 고향마을 사이에 있던 신동교(삼형제다리) 근처에서 고향집을 바라만보다, 눈물만 흘린체 상경하곤 했습니다. 이렇듯 부모든 친지든 세상사람이 다 남남이라는걸 막딱드린체, 쓸쓸함과 고독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도 한줄기 희망이 있었으니 그 희망으로 근근히 삶을 버티어오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어렸을적 노안성당을 다니던 송계에 살던 이기현친구를 통해, 그리고 송학장로교회에 다니던 윗집의 이숙경 할머니와 어머니, 이숙경,이홍섭 후배, 송학에 살던 김준택 친구를 통해, 주님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되었고,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존재함을 희미하게나마 느낄수있었습니다.
이후 군복무때(92년) 생활정보지사에 일이있어 광주시를 들리다 거기서 근무하는 서부침례교회에 다니는 열정적인 집사님에 의해, 예수님의 십자가.사랑을 자세히 알게되었고 그 이후로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서민이지만 형편이 되는데로 불우한 이웃을 돕고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삶에 있어 알뜰히 아끼며 나눔과 봉사를 소중히 여기면서 잔잔히 실천해나가고 있습니다.

 

*<구속노동자후원회 28호 소식지>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연대를 실천하는 시민기자, 신만호 후원인 
http://cafe.daum.net/supportingworkers/5nKc/75 (http://blog.daum.net/chmanho/16883506)
*2009년 MY사회기부 통계(NGO,복지기관,인터넷언론 후원)  http://blog.daum.net/chmanho/16883623
*초절전 난방법 전격 공개, 자린고비 수기  http://blog.daum.net/chmanho/14400528
*진보여 민주시민이여, 대성찰(대각성)를 하여 빛이돼 나아갑시다!  http://blog.daum.net/chmanho/16883705



 △ 2009년 커널뉴스(현 팩트티브 http://cafe.daum.net/facttv) 취재 현장에서

본 영화를 통해 본인도 오래전 이주노동자 인권 자원봉사한 기억을 새롭게 떠올리게되기도하는군요.
(긴 사연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블로그 ;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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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이리틀히어로 리뷰 - 뮤직 하이라이트

 

 

 2013년초 개봉 한국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
(저작권)제공 : CJ엔터테인먼트   http://mylittlehero.interest.me/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68934


꿈을 노래하는 두 사람의 가슴 벅찬 이야기
개성의 허세삼류 음악감독, 색다른(?) 천재소년을 파트너로 만나다!

감독; 김성훈    주연; 김래원(유일한), 지대한(김영광)

본 영화는 필리핀 혼혈소년이 주인공이며,
뛰어난 가창으로 케스팅 되어 뮤지컬 진출 과정을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개성과 허세의 뮤지컬 음악감독 유일한이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차, 국내 대규모 아역 뮤지컬 오디션 행사를 막딱드립니다. 그래서 한번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가창력있는 순수한 이주소년 김영광과 함께 파트너가(멘토) 되어 시작하게 되는 이 영화는, 130여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김영광과 유일한이 함께하고 가까워져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입니다.
오디션 장면을 보면, 보이스코리아와 슈퍼스타K의 요소가 어느정도 섞였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본래 제목이 슈퍼스타였다고함)
노래실력 빼고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비주얼, 춤실력, 빽, 어느 하나 잘난 것 없는 영광이.
한편 ‘조선의 왕, 정조’의 주연 배우를 뽑는 오디션에 얼굴색까지 다른 영광이 못내 탐탁지 않은 유일한은 일등을 하겠다는 집념으로 강훈련식 하드트레이닝을 시키고,
영광은 묵묵히 교습을 견뎌 목표를 이루어냅니다.

주로 이지수편곡에 천상의 목소리 성태현군의 노래가 자주 등장하며, 지대한군의(스리랑카 다문화가정(현12세)으로 다니던 안산이주민센터에http://www.migrant.or.kr 찾아온 영화기획사를 통해 케스팅됨) 실제 노래목소리로 착각할정도로 가창묘사가 완벽합니다.

 

본 영화의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잔제되어 남아 있는 혼혈에 대한 차별,
학력우선주의와 기회를 위해 비열함을 강요하는 사회
언제부터 진심은 없고 허상만 존재하는 모습 이런 부분이 이야기되며, 생각케하는 작품입니다.
(본 영화를 통해 본인도 오래전 이주노동자 인권 자원봉사한 기억을 새롭게 떠올리게되며,
위 감동영화를 기념해 45분 유트브 뮤직 편집영상을 올려봅니다.)

 뮤직 하이라이트 편집영상 =>  http://youtu.be/vdlQhgz8MRQ
감사합니다^^

 

마이 리틀 히어로 | 지대한 캐릭터 영상 / 출처: Daum영화
http://movie.daum.net/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8934&videoId=39739

마이 리틀 히어로 | 리얼 다큐 영상 / 출처: Daum영화
http://movie.daum.net/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8934&videoId=39813

 

 


 

 

 


 

 


 

 

 

 

 

 

http://blog.daum.net/chmanho/1688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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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진보당 새노추(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 발족해, 서막 열어

 

 

진보정치 혁신, 신자유주의 극복,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조직 등 제대로된 기층민중.노동계급 정치세력화를 위한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새노추)가, 5월 21일 오후 3시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주체가 될 것을 결의했습니다.

 

새노추는 발족 선언문을 통해 "시대의 요구는 진보정치의 재구성과 노동정치의 혁신,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시기의 개막이지만, '묻지마 통합'이 진보정치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는것이 현장을 중심으로 비판과 우려, 자조와 한탄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라 진단하고
기존 민주노총의 "제1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를 선언하고,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항해를 시작할 것”이라며 “노동자 정치의 실종의 시대를 극복하고 노동자 중심성, 진보의 중심성을 지키는 반신자유주의 대안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여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주체로 나설 것”이라 밝혔습니다.


이어 새노추는 "노동자운동의 좌파 단위들과의 연대 및 교류를 활성화하여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 혁신의 주체를 광범위하게 결집하고, 이를 위해 진보정치 혁신과 통합을 위한 논의를 진보신당 및 사회당을 우선으로 결속"하기로 했습니다.


새노추 조직구성은 상임대표로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선출하고, 집행위원장에는 전국노동자회 정광진 대표를 확정했습니다.

 


공동대표에는 공공노조 제주지부 지부장 김동도, 금속노조 인천지부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지회장 신현창, 민주노총 경기본부 전 본부장 배성태, 민주노총 전 위원장 이갑용, 전국축협 노동조합 광주본부 전 윤영대 동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부지부장 윤희찬 동지, 전국노점상연합회 중앙위원 은희령, 전국노동자회 대표 정광진, 전국평생교육 노동조합 위원장 조상덕, 민주노총 사회보험노조 서울지부 지부장 최재, 칼라TV 고문 정일욱 등이 선출됐습니다.

 

허영구 상임대표는 이날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제1단계로 오는 6월까지 간담회, 토론회, 기고, 의제 선전, 캠페인 등을 통한 회원 확대와 시도지부 구성, 6월말 7월초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 혁신을 위한 전국노동자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한편 새노추는 1차로 200여명의 추진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앞으로 새노추 깃발아래 현장활동 등을 펼쳐 조직을 확대해 2차 추진위원 명단을 추가로 만들 예정이며, 3차 추진위원 조직을 위한 본격적인 대중사업을 전국적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련 언론보도자료
새노추 상임대표 허영구            레디앙 기자  webmaster@redian.org
21일 발족, 집행위원장 정광진…새 진보정당 건설 주체 결의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437


새노추 출범...“6월말 범좌파 대거 가입”
연석회의 원칙강조, 신자유주의 연합 견제 역할
참세상 김용욱 기자 2011.05.22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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