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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서 영결식까지

2009년 8월 18일 1시 43분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독재시대 때부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분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功過 는 있지만 분명 功이 더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IMF로 경제가 얼어붙었을 때 경제살리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 이 때문에 재벌구조가 더욱 탄탄해지는 결과가 되기는 했지만 -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한 남북한 협력체제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도 크게 주목받아 마땅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남북한 관계가 경색이 되었지만, 그의 서거를 통해 또 한번 협력체제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그가 죽어서까지도 우리나라에 큰 선물을 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그의 생은 민주와 인권이란 부분에서 크게 평가될 수 있다.
평가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겠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분명 색안경을 끼지 않고 그대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가 치열했던 삶을 뒤로하고 죽음에서부터 땅에 묻히기까지 6일 동안 대한민국은 또 한명의 지도자를 잃었다는 슬픔에 빠졌다.

100여일을 사이에 두고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서거했다.
두 사람의 서거는 성격이 다르겠지만 분명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모든 면에서 그들이 일궈왔던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잃었다는 상실감은 존재했을 것이다.

그 상실감이 오래가지 않게 국민 모두가 새로운 각오를 다질 때가 아닌가 싶다.

6일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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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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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유선호 의원이 조문을 위해 병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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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교동계의 수장격인 권노갑, 한광옥 전 의원이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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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급히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해 심경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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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대통령과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시 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해 심경을 밝히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며칠 전 병원을 방문해 "화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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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 씨가 임시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해 심경을 밝히고 있다.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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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대통령의 임시빈소가 마련된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복도에 조화가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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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 제단에 모시게 될 민주당 의원들과 무소속 정동영 의원이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을 운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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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이 제단에 모셔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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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훈 서울시장이 조문을 하고 상주를 맡고 있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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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조문객이 조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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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의원들이 상주를 맡아 조문온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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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밤 늦게까지 조문 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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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본관 앞에 설치된 대표분향소의 제단에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지면서 제단을 조화로 꾸미는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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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오 국회의장, 문희상·이윤성 국회부의장 및 여야 의원들이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를 맞기 위해 국회본관 앞으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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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가 국회 본관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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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가 국군의장대에 의해 투명냉장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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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의장대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를 투명냉장관으로 옮기기 위해 국회 본관 계단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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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를 목례로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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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이용길 부대표 등이 헌화를 하기 위해 국화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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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조문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김 전 대통령은 납치가 되는 등  정치적으로 수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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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홍업 씨와 셋째 아들 홍걸 씨가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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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부터 국회에는 많은 시민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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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문 온 시민들은 김대중박물관에서 제공한 사진과 자료들을 보면서 고인을 회상했으며,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문을 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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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성 조문객이 순서를 기다리다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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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홍업 씨, 셋째 아들 홍걸 씨를 비롯한 전·현직 민주당 의원들이 북한 조문단을 맞기 위해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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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조문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내온 조화를 앞세우고 분향소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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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조문단이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전에 분향하고 묵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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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조문단이 김형오 국회의장과 잠깐 동안 얘기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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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직접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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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까지도 국회에 마련된 대표분향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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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에서는 민주당과 시민추모위원회 공동으로 마련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많은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시민들이 참여해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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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스님이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혼을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신도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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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며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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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희 명창이 추모곡을 부르고 있다. 신 명창은 "소리꾼으로 김 전 대통령을 드러내놓고 지지할 수는 없었지만 그 동안의 선거에서 항상 김 전 대통령을 지지했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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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민이 민주당에서 만든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전단지를 들고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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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성 시민이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촛불 두 개를 켜놓고 추모의 뜻으로 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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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린 서울광장에는 분향을 마친 시민들이 참여해 고인을 기렸다.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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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서 엄수된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국가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대통령 재직 시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과거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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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국회에서 엄수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결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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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 여사가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전에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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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전에 헌화하기 위해 제단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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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들의 헌화가 이어진 후 곧바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헌화를 하기 위해 제단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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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가 국회를 빠져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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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민주당에서는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의원들이 '김대중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란 현수막을 들고 나와 영구차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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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가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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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호 여사가 부축을 받으며 국립현충헌에 마련된 안장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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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가 국군의장대에 의해 안장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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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의장대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해를 안장식장으로 옮기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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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충원에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찾았다.

 

취재/기사 = 락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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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시청광장에는 경찰에게는 시민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안중에 없었다

5월 29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국민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노무현'이란 울림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인간 '노무현'이던, 정치인 '노무현'이던 상관없이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국민들은 큰 분노와 함께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지난달 29일 저녁부터 30일 오전 5시 30분경까지 시민들은 다시 찾은 서울광장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아울러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소통이 부재된 이 나라를 국민들이 힘을 모아 국민의 목소리를 정부에 일깨워주고자 자유발언과 함께 논의가 이뤄졌다.

마치 작년 여름을 관통했던 '촛불'이 다시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작년에도 그랬듯 경찰은 동틀 무렵이 되자 평화로운 거리와 시청광장 그리고 대한문에 마련된 분향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경찰들은 30일 새벽 5시쯤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들어 시민들을 거리에서 몰아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5시 30분이 되자 방패 앞에 있던 20여명의 시민들을 순식간에 길가로 몰아내고 그 넓은 대로를 가득 메운 채 시청광장을 향해 진격했다.

시청광장 입구에 다다르자 시청광장에 있던 시민들은 화들짝 놀라며 밀물이 빠지 듯 광장 밖으로 빠져나갔고, 무대 위에서 자고 있던 일부 시민들은 어쩔줄 몰라 허둥지둥거렸으며,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경찰이 시청광장을 진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는 듯 했고, 일부 경찰은 시청광장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한문 앞 분향소로 이동해 분향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시민들이 빠져나간 그 넓은 광장은 순식간에 경찰버스로 둘어싸여졌으며 남아 있던 몇 명의 시민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광장에서 나가라고 하느냐?"며 따져 물었지만 경찰들은 이내 항의하던 시민을 연행했고, 그 연행을 막기 위해 나선 시민을 폭행에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현장을 취재하던 민중의소리 기자를 밀쳐 쓰러트려 놓고서는 집단 폭행을 가하기도 했고, 무대에서 부상자를 취재하던 OBS 카메라 기자를 밀쳐내고, 끝까지 취재를 하던 YTN 기자를 "내려가라"고 소리치고 윽박질렀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기자들이 항의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실제로 취재하던 나를 팔꿈치로 치고 가길래 "왜 기자를 때리느냐?"고 바로 항의하자 "내가 언제 그랬냐?"며 정색을 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경찰의 폭생과정에서 안경을 잃어버려 기자들과 시민들에게 안경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고, 경찰의 폭력에 정신을 잃었던 60대로 보이는 시민은 구급차가 도착할 때 쯤 의식이 돌아왔다.

시민들과 끝까지 남아있었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현장 책임자가 누구냐?"며 현장에 있던 경찰간부들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나는 모른다"로 일관하며 자리를 피하기 급급했다.

결국 나중에 찾아낸 남대문경찰서장은 이 의원이 "당신이 현장 책임자냐?"는 질문에 끝내 답을 하지 않았고, 이 의원은 "당신이 지시한 거냐? 아니면 서울시경에서 지시한 거냐?"며 따져 물었지만 그 질문에도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이 "상황 보고하라"고 지시하자 "카메라가 많아서... 카메라 치우면 얘기하겠다"고 답변했다. 언론에 꿀리는 것이 있지 않았고, 만약 경찰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소신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대문경찰서장은 부하직원들이 몸으로 이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을 막아주는 사이 줄행랑을 쳐 경찰들 속으로 사라졌다.

이 의원은 "거기 서"라며 명령했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다. 게다가 한 경찰(나를 팔꿈치로 때린)은 "국회의원이면 다야"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5월 30일 새벽 고인을 추모하는 분향소는 쑥대밭이 됐고, 그 건너편에 있는 서울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든 시청광장에는 시민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없었다.

오로지 경찰들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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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광장으로 가는 인도 벽에 가지런히 놓인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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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민이 서울광장 한 쪽에는 용산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에 예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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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에서 마련한 공간에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두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당은 달라도 예를 표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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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만에 다시 든 '촛불'. 시민들은 평화롭게 촛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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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시민이 도로 한복판에 놓아둔 촛불 너머로 전경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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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5시경 전경들은 헬맷을 쓰고, 장비를 갖추며 곧 있을 진압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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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들 앞에 놓은 노란 풍선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이었지만 경찰들은 무참히 풍선을 터트리고는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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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도에 있던 시민 20여명과 기자들을 방패로 밀어내는 전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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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전을 주고 받으며 서울광장의 시민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경력을 이동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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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들이 서울광장 입구에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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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순식간에 서울광장 주변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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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을 몰아내고 서울광장을 점거한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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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에는 소수의 시민들과 기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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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시청광장에서 나가라는 말에 항의하던 한 시민을 연행하고 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항의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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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또 다른 시민 한 명을 연행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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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의 시민들이 합세하여 강제연행을 막고자 경찰에게 달려들고 있다. 경찰 오른쪽에 보이는 중년 신사는 결국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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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시민을 연행하려 하자 주위에 있던 여성들이 달려들어 경찰을 제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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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한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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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진압 현장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손을 들어 막으려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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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강제해산을 막으려다 부상을 당한 60대로 보이는 시민. 이 시민은 의식을 잃었다가 구급차가 도착할 때 쯤 의식을 찾아 병원에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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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당한 시민을 무대 위에서 촬영하던 OBS 카메라 기자를 경찰들이 밀쳐 무대 아래로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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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당한 시민을 취재하던 YTN 촬영기자를 경찰이 "내려가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YTN 촬영기자는 "찍고 내려가겠다"며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촬영을 한 후에 무대 단상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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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과 취재기자들을 채증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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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보좌진이 경찰에게 "현장책임자가 누구냐?"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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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간부는 이정희 의원 보좌진의 물음에 "난 아니다", "잘 모르겠다"를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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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의원이 "현장 진압에 대해 보고하라"고 남대문경찰서장에게 명령했지만 서장은 "카메라를 치우면 얘기하겠다"고 대답하고는 계속되는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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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남대문경찰서장은 이 의원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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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이 자리를 피하는 남대문경찰서장을 에워싸고 질문을 하는 중간에도 경찰은 이 의원과 주변 사람들을 채증했다. 이 의원은 "카메라 치우세요"라며 명령했지만 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증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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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경찰서장은 부하 경찰들의 엄호를 받으며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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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원과 취재진들로부터 도망친 남대문경찰서장은 경찰들 사이로 몸을 숨겼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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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경찰서장이 도망치자 어이없어 하며 화가 난 이정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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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여경들이 나타났다. 당시 서울광장에 있던 여성은 이 의원 혼자였다. 여차하면 여성인 이정희 의원도 광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여경들이 동원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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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의원이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추모제가) 어제까지는 합법이고 오늘부터는 불법이냐?"며 강제진압을 한 경찰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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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한 이른 아침에도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분향소 주변이 매우 어지럽혀 있는 것으로 철거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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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은 철거됐지만 남아 있는 집기로 분향소는 다시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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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에도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천막 사진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사진/기사 = 락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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