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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30회


1


제가 읽는 라디오라는 걸 진행한지 6년이 넘었는데요
6년 넘게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다른 라디오들처럼 청취자들의 사연만으로 방송을 해보는 겁니다.
찾는 사람이 워낙 없는 곳이라서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했거든요.
제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사연을 보내면 제가 소개해주는 건 해봤지만, 크크큭

 
그런데 이제는 그게 가능합니다.
매번 방송이 나가면 댓글들을 달아주시기 때문이지요.
그 댓글들도 적당히 립서비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서 달아주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그동안 꿈꿔왔던 그런 방송을 해보렵니다.
온전히 여러분의 사연만으로 오늘 방송은 채워질겁니다.
아, 사연들이 그리 길지 않아서 제가 말을 좀 많이 하기는 할 겁니다.
뭐, 그 정도는 이해해주시겠죠, 그쵸?


시청자 참여형 방송
읽는 라디오 ‘살자’
서른 번째 방송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귀여미 성민이랍니다. 푸~흐흐흐

 

2


오늘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사연은 제주시 노형동에서 이명안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들어보실까요?

 


이명안님 : 너무많은것을 짊어지려하지 말기를~

 


아주 간결하면서도 묵직하지요.
지난 방송에서 눈속에 갇힌 날 떠올랐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했었는데
이명안님이 이렇게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이 글을 접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외로울 때 떠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만만치 않게 힘든!
그들의 짐을 짊어질 능력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제가 삶의 구렁텅이에서 벌버둥칠 때 저를 외면했던 사람들이지요.
아! 이런 식으로 얘기가 흐르면 제가 대단한 사람처럼 되버리는데...
아니 뭐, 그렇게 보인다면 할 수 없고...
뭐 암튼, 그랬습니다.


시간이 지나 지금에 와서
“그들이 왜 나를 외면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제가 그렇게 힘겹게 발버둥치고 있는 걸 몰랐기 때문입니다.
몰랐던 이유는 조금씩 다르겠지요.
자신도 만만치 않게 힘든 상황에서 발버둥치고 있었기 때문일수도 있고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치는 게 어떤 건지를 몰랐을수도 있고
그저 앞만 보느라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수도 있지요.
뭐 암튼, 그들은 제 고통을 몰랐기 때문에 제게 손을 내밀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이 고통스럽게 발버둥치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뭔지를 압니다.
그래서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과거의 나’이고 ‘지금의 나’인데
그걸 외면한다는 건 내 자신을 외면하는 거잖아요.


아이고, 얘기가 필요 이상으로 비장해버렸네요.
뭐 암튼,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이래저래 들려오는 그들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조금 보내주는 것
페이스북에 소식이 올라오면 댓글을 달아주는 것
이게 전부입니다.


이명안님, 이 정도는 괜찮지않을까요?
이것도 너무 많은 짐을 지는 건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명안님이 이렇게 저를 걱정해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명안님의 글은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3


다음 사연은 제주시 북촌리에서 김형숙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김형숙님 : 갇혀지내면서조 저희 가족 걱정까지 해주시고 몸둘바를 모르겠네요..우리가 일상으로 지내던 생활들이 참 고맙기는 한 것 같아요~^^

 


사연을 보내주신 김형숙님은 세월호생존자의 가족인데요
역시 지난 방송에서 남편인 김동수님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현까지 써주시며 사연을 주셨습니다.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헤헤헤


요즘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김동수씨가 겪었던 고통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도 모두 그곳에서 만난 분들인데요
그렇게 자리를 함께 하면서 저에게 많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이 방송에 이렇게 사연이 계속 들어온다는 거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제게는 세상과 연결해주는 생명선입니다.
이 생명선으로 세상과 호흡할 수 있게 됐거든요.


김형숙님, 당신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 인해
저는 10년만에 세상으로 나올수 있었고
그 고통의 바다를 함께 허우적거림으로해서
세상사람들과 춤을 출수 있게 됐습니다.
제 표현이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는 건 김형숙님이 잘 아시겠죠?
오늘도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난의 길을 걷고 계신 당신의 가족들은
저를 세상으로 인도하는 희망의 들불입니다.

 

4


이번에는 제주시 유수암리에서 Kil-Joo Lee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Kil-Joo Lee  설국을 연상케하는 광경이었네요. 눈사람도 작게 만들어 봤는데, 어릴 때처럼 과감하게 눈과 친해질 수 없는 나이임을 실감했지요.

 


매번 사연을 남겨주시는 분이죠.
모처럼 눈이 쌓였다고 눈사람을 만들었나보네요.
어릴 때처럼 과감해지지 않는 나이라고 말씀은 하시는데
눈이 왔다고 신나서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은
눈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나는 추워서 방에만 있었는데...


Kil-Joo Lee님은 나이랑 상관없이 상당히 열정적이고 순수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는 하는데
일하는 스타일이 저랑 달라서 솔직히 힘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보왕삼매론의 한 구절을 중얼거려봅니다.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원림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얘기를 풀어놓으면 제가 성인군자처럼 보이겠죠?
음... 뭐, 오늘 컨셉을 그렇게 만들어보죠. 후후
까짓거 이런 식으로 나가는 김에
폼 잡는 멋진 표현으로 오늘 방송을 마칠까합니다.


세상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건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한다는 것이고
그랬을 때 나의 불행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건 피곤하지만 행복한 일입니다.

 

 

 

 

 

 

(이디오테잎의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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