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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31회


1


다시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 한 주였습니다.
지난 번에 몰아친 추위로 예행연습이 돼서 그런지
그보다 더 강한 추위였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견딜만한 추위였다고는 하지만
집에 갇혀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갇혀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몸과 마음이 금새 무거워져버렸습니다.


운동이나 명상도 못하고
책은 읽히지 않고
특별히 소일거리 할 것도 없는데
재미없는 tv를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으려니
머리 속에 이러저러한 것들이 떠오르더군요.


“브로콜리는 수확해야될 시기가 지났는데 아직 꽃도 피지 않았네...”
“감귤은 별 탈이 없겠지...”
“아버지는 폐가 않좋다는데 담배를 끊지는 못하고...”
“김동수씨 모임은 잘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설쳐데는 건 아닌지...”
“쌓여 있는 울금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데...”
“앞 밭에는 공사가 들어가기는 하려나?”


고민한다고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서부터
특별히 고민할 필요 없는 문제까지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올라오기에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동생과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사랑이도 이제 조금씩 나이가 들어갈텐데...”
“무릎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하는데...”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이런저런 욕망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데...”
“개 입마개가 법으로 정해지면 사랑이는 어쩌지?”
“창고 전선들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지도 않았네.”
“하민이는 이 날씨에 개학을 해서 많이 추울텐데...”
“변기가 혹시라도 고장나면 혼자 손볼 수 없는데...”
“이불을 볕에 말린지 너무 오래됐는데...”
“부모님 돌아가시면 어떻해야하지?”


생각이라는 놈이 춤추게 가만히 놔뒀더니
별의 별것들을 다 들춰내더군요.
그런게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한번 씩 웃어봤습니다.


지난 번 추위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온통 제 자신에 대한 생각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때는 마음이라도 따뜻해졌는데
제 자신을 부여잡았더니 탁한 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얘기나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방송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2


읽는 라디오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 동네 개들인데요
오늘도 사랑이 친구들 얘기를 풀어놓아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진은 지난 연말에 찍은 겁니다.
행복이(사랑이 전 여친), 우정이(사랑이 남친), 행복이 자식들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요즘 이 네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주인공은 사랑이까지 모두 네 마리의 개를 몰고다니는 리더 행복이랍니다.


사랑이랑 행복이는 지난 여름을 뜨겁게 보내서 귀여운 강아지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임신을 하고부터 행복이는 사랑이를 아주 차갑게 대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정이가 나타나더니 행복이네 집에 들어앉아서는 한 가족처럼 행동했지요.
개들의 세계여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행복이가 혼자서 사랑이를 찾아온 거였습니다.
왠일인가 싶어서 가만히 살펴봤더니, 행복이에게 다시 발정기가 찾아온 모양이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임신 한 다음에 지가 사랑이한테 얼마나 차갑게 대했는데...”
“매일 붙어다니는 우정이는 어쩌고...”
“이렇게 또 임신해서 새끼를 낳으면 걱정인데...”


이런저런 생각에 쓴웃음도 짓고 걱정도 하는데
얼마부터 행복이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우정이와 새끼들은 여전히 돌아다니는 걸 보니
아마도 주인이 발정기 동안 행복이를 격리시킨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랑이랑 산책을 할 때는 행복이를 제외한 세 마리만 보입니다.
그런데 유일한 암컷이자 리더인 행복이가 사라지자 분위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사랑이를 보면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건 마찬가진데
행복이 뒤꽁무니만 쫓던 사랑이는 행복이가 보이지 않아서 나머지에게는 대면대면합니다.
나머지 개들도 사랑이의 그런 태도에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멀뚱멀뚱합니다.
그러다 제가 다가가면 세 마리의 개는 꼬리를 흔들며 제게 달려옵니다.
제가 자세를 낮춰서 쓰다듬어주려고 하면 세 마리가 서로 만져달라고 난리가 아닙니다.
어린 강아지야 그렇다쳐도 덩치 큰 우정이까지 강아지랑 경쟁하며 달라붙는 모습이라니...


세 마리 개들이랑 그렇게 행복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면
사랑이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주변에서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다 사랑이를 끌고 다시 산책을 나서면
세 마리의 개들은 사랑이가 아닌 저를 쫓아 따라오지요.


집까지 따라온 개들에게 사료를 나눠주고는 방으로 들어와 컴퓨텨를 열었습니다.
지난 방송에 다시 댓글들이 달렸더군요.

 


김형숙님 : 정말 라디오에서 홀러나오는 디제이 킴의 목소리를 듣는 듯 하네요.지난 방송의 댓글까지 올려주시는 친절함까지~~ㅎ
서로서로 다독이며 지내다보면 우리에게 끈덕지게 닱라붙었던 고통들도 조금씩 떨어져나가리라 믿어보네요~♡ 북촌리가 아닌 신촌리에서 김형숙ㅎㅎ


Kil-Joo Lee님 : ㅎㅎㅎ 맘대로 인터뷰 방송이었네요. 밖에서 폴폴 내리는 눈이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이따가 뵈요~


김형숙님 : 제주도도 많이 춥다는데..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오늘 모임~잘 부탁드립니다~♡

 


개든 사람이든 마음을 다하면 그 마음을 알아봅니다.



(Yanni의 ‘Enchan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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