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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연대기, 생리에 대한 리얼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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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어서 지은 죄가 많은 나는 근신 아닌 근신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지금은 입을 다물고 귀를 열어야 할 때’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 닿아서 귀를 열려고 노력하고도 있다.
그런 와중에 여성의 생리를 주제로 한 다큐영화가 개봉을 했다.
솔직히 별로 관심 있는 주제는 아니어서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쳐버렸을텐데
‘귀를 열라’는 말이 맴돌아서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리 크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을 것같은
‘생리’라는 것은
아주 낯설고 조금은 깨름찍한 주제임에 분명하다.
그래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귀를 열어야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제대로 들릴 것 같았다.


영화는 꺼내기 쉽지 않은 얘기를 밍밍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쏟아냈다.
초경의 경험에 대한 얘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생리를 할 때의 기분과 느낌, 생리를 처리하는 방식, 생리대의 변천사까지.
나이든 노인에서부터 10대 중학생까지 아주 발랄하고 거침없었다.
생리대가 없던 시절의 세대들이 생리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에서부터
상업용 생리대가 보편화된 이후 여성들이 느끼는 불쾌감과 불편함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탑폰과 생리컵까지 다양한 생리용품에 대한 얘기는 신기하기도 했다.
그 모든 얘기가 남자인 나에게는 외계생명체의 증언을 듣는 기분이었다.
“아, 그렇구나”하는 말을 가슴 속으로 연발하면서 들어야했다.


‘더럽고 추한 맨스’가 아니라 ‘여성의 자연스러운 생리’를 얘기하는 영화는 거침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생리에 대해 “아이 씨발, 좆나 귀찮다”라고 내뱉는가하면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도 모자이크없이 그대로 보여주더니
심지어 생리컵에 담긴 생리혈을 리얼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솔직히 남자인 나로서는 적응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그런 거침없이 매력인 것은 분명했다.
죄지은 듯이 숨겨야할 것도, 부끄러워서 소근거러야할 것도, 남자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숨죽여할 것도 아니었다.
웃으며 수다떨듯이 밝게 얘기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일 뿐이었다.
결국 ‘생리라는 건 생리현상일 뿐이다’라는 걸 얘기하는 거였다.


경쾌하고 거침없는 얘기를 의외로 편하게 들으며 영화를 보고 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가 정책대안으로 흘러갔다.
미국의 뉴욕주와 한국의 성남시 사례를 들면서 공공장소에서의 생리대 무상보급이라는 문제를 꺼내드는 것이었다.
여성의 보편적 문제인 생리에 대해 계급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얘기하는 거야 논리적 비약은 아니었지만 영화의 결론을 그렇게 몰아가는 건 많이 아쉬웠다.
생리라는 문제에 대해 생리대로만 한정하지 않더라도 할 얘기가 엄청나게 많을 것 같은데
생리대의 변천사를 언급하다가 생리대 무상보급으로 끌고가는 건 너무 아쉬운 종착지였다.
결국 그 발랄함과 거침없음이 정책대안 속에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그렇기하지만 생리에 대해서 이렇게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다큐에 내 귀를 열었다는 것이 뿌듯함으로 다가오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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