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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64회


1


읽는 라디오 ‘살자’ 예순 네 번째 방송을 시작합니다.
반갑습니다.
추운 연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들 견디시고 계신가요?


제주도는 원희룡 지사님이 싸질러 놓은 똥들이 많아서
곳곳에 온통 누린내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그 오물투성이 한복판에서 10여일째 단식을 하고 계신 분도 있어서
춥다고 엄살부리기가 민망하네요.
매주 토요일에는 촛불을 들러 나갑니다.
외롭다가 징징거리고 있었는데
덕분에 외롭지 않은 연말을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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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추운 날
중무장을 하고 갔는데도 추운 날
조그만 촛불 하나가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이래서 촛불집회는 겨울이 재맛이지요.

 

2


주말마다 촛불집회를 나가게 되면 2년전 촛불집회에 대한 기억이 자연스럽게 올라옵니다.
집회의 성격이나 규모면에서 그때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저같은 외톨이가 찾아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 분위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집회의 분위기는 기존 촛불집회랑 좀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발언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릅니다.
시민의 자유발언을 많이 허용하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이나 정당 등 단체 활동가들의 발언이 많습니다.
그들도 할말이 있으면 당연히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거지만 그들의 얘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단체활동가들은 마이크를 잡으면 우선 목에 힘을 줍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텀을 주면서 딱딱 끊어서 얘기를 합니다.
좀 더 훈련된 분들은 뱃심을 이용해서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발언을 합니다.
기존 운동진영에서 흔하게 보이는 선동방식이지요.
그런데 이런 식의 발언들은 고압적이어서 귀에 자연스럽게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이 하는 얘기는 당위적 분노와 규탄 일색이어서
누가 마이크를 잡든 비슷비슷한 얘기를 반복할뿐이고
생생한 삶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몇 번 촛불집회를 나가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위 활동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이런 식의 발언들은 공허하게 들리지만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얘기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대중의 마음으로 전달됩니다.


이런 문제는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얘기해왔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 고쳐지지 않을까요?
이유는 단순할 겁니다.
고칠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요.
노동조합이나 정당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중과 소통하고 교감하기 보다는
대중을 지도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발언 내용도 구체적이고 생생하기보다는 포괄적이고 당위적이지요.
조직화된 대중을 이끌고 거리로 나가 투쟁을 지도하는 방식에 최적화된 선동방식은
자발적으로 모인 대중들이 각자의 얘기를 주고받는 지금의 촛불집회와는 어울리지 않는데도
그들이 갖고 있는 조직의 힘과 관성으로 인해 바뀌지 않는 겁니다.


10여년 전부터 촛불집회를 나갈 때마다 느꼈던 점은
대중은 아주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단체 활동가들은 그 한 발 뒤에서 연단에 올라가 대중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슬픈 현실이지요.
쉽게 좁혀지지 않을 이 간극이 진보운동의 비극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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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동네의 겨울풍경은 좀 분주합니다.
이 사진은 취나물 수확을 하는 모습인데요
주변 밭들이 대부분 겨울 작물을 수확하기 때문에 겨울이 바쁩니다.
매일 같이 쪼그려 앉아서 해야하는 취나물 수확이 가장 고된 작업이고
창고로 옮겨서 작업을 하지만 하루종일 붙들고 있어야하는 쪽파작업도 만만치 않습니다.
브로콜리나 콜라비 같은 작물들은 그나마 쉬운 편이지만 지금부터 2월까지가 한창 바쁩니다.
지난 가을부터 바쁘게 움직였던 감귤 선과장은 계속 움직이고 있고
아직 때가 되지 않은 월동무와 양배추, 양파 같은 것들은 겨울에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5월에 수확하는 감귤을 재배하고 있어서 겨울이 여유로운 편이기는 합니다만
주변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겨울이 무료하지는 않습니다.
식물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어느 계절인들 적적하겠습니까만...

 

4


연말이라고 가족 모임을 했습니다.
가족들이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서 가끔 얼굴들은 보지만
전부 다같이 모인 것은 오래간만이었죠.
오래간만에 조카들 재롱을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술도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가는데
점점 제 자리가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내가 한마디 하면 은근히 무시하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는 그런 자리였어요.
나중에는 조카들이랑 의미없는 얘기만 몇마디 나누게 되더라고요.


그런 자리를 갖고나면 후유증이 며칠 갑니다.
머리 속을 휘젖고 다니는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요.
이 사회에서 위치가 없는 사람이 겪어야하는 천형이지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매번 적응이 되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심란한 마음을 의지해보려는 이기적인 생각에 사연을 보냅니다.
연말인데 우울한 얘기해서 죄송하네요.

 


들풀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들풀님은 1년에 2~3번 정도 사연을 보내주시곤 하는데
이렇게 가라앉은 사연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음...
오늘 방송이 2018년 마지막 방송인데요
한해를 마무리하는 사연으로는 아주 적절한 사연인 것 같습니다.
내가 행복하다면
그 행복에 도취되지 않도록 주위를 돌아보게 만들어주고
내가 외롭다면
그 외로움에 질식하지 않도록 벗을 만들어주고
내가 아무 생각이 없다면
그 무감각함을 깨우도록 바늘로 찔러주기 때문이지요.


올 한해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과 함께
이 방송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서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죽지말고 살아가보자고요.


선경의 ‘따뜻한 어둠’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제 얘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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