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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67회


1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라고 하지요.
10대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포털에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유튜브에서 검색한다고 하고
대도서관 같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유명 연애인 못지 않은 인기를 끌고 있고
노인들도 보수적인 유튜브 채널에 열광하고 있다고 하고
그런 와중에 유시민까지 유튜브 전쟁에 나서서 화제를 뿌리고 있으니...


텍스트보다는 영상이 힘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저는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동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글로 써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기존 관성을 바꾸기가 싫기는 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부흥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그래도 외적인 필요성이 생기면 어거지로라도 할텐데
무인도와 다름없는 이곳에서는 그런 필요성도 생기지 않습니다.
세상 속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곳으로 나가는 길이 많이 막혀있는데다가 두려움도 많아져서
혼자만의 세계에 안주하는게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위와 소통하기보다는 자기 아집에 빠져드는 노인들처럼
저도 그런 길로 접어드는 걸까요?
음... 늙어감에 대해 조금씩 익숙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나이들어가는 건 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아, 고민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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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망가져가는 제주를 지키기 위한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문화제였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왔더군요.
그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면서 귀를 쫑긋세웠습니다.


토론자로 나온 패널과 참가자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제주도 곳곳이 난리였습니다.
그런데도 개발과 투기의 광풍은 멈출 생각이 없다는 게 심각한 상황이죠.
이런 현상은 제주도만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들이 비슷한 문제들로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형크루즈와 비행기로 관광객들을 쏟아부어대지만
거대 자본과 투기세력, 토호세력들의 주머니로 그 돈들은 다 들어가고
그곳의 주민들은 쓰레기 속에 파묻혀가고 있더군요.
지금의 제주도 모습 그대로였죠.
심지어 베니스는 그런 현실에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외지로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참가자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런 미친 짓을 멈춰야 한다고 절절하게 얘기했습니다.


어릴 적 추억을 뺏기고
아름다운 바다를 뺏기고
농사짓던 땅을 뺏기고
이제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한라산까지 뺏길 처지에 있는 저는
이 모든 얘기가 가슴에 콕콕 박혔습니다.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도 뺏기고 있고
지하수는 점점 줄어들고 오염되서 먹을 물도 뺏기고 있고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건강도 뺏길텐데
자본주의는 아직도 배가 고픈가 봅니다.


이런 현실에서 저는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음... 이것도 고민스럽네요.

 

3


우연히 ‘어른이 되면’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 살 아래 동생이 태어났는데 발달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동생을 돌보는 일을 도맡아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열세살이 되던 때 장애인 시설에 맡겨지게 됩니다.
그후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고 가족은 흩어져 살게 됐습니다.
18년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언니는 동생이 없는 삶을 살면서 마음 속에 빈자리를 계속 느꼈습니다.
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보면서 고민을 합니다.
그런 고민 끝에 과감하게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오기로 결정했죠.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이 사회는 장애인을 친구나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어있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동생과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익히 예상할 수 있는 어려움들이 닥쳐왔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도 새롭게 등장했고
기대했던 곳에서 기대가 사라지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언니는 그 과정을 담담하게 견디려고 노력합니다.
단순히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도 합니다.
그를 위해서 주위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런저런 시도들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 대한 얘기들이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이어집니다.
그 얘기들을 가만히 들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동생과 같이 지내는 과정을 다큐를 만들었다고 하길래 인터넷을 뒤쳐봤습니다.
그런데 그 다큐가 극장에 걸려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저없이 극장으로 달려갔죠.


영화는 책에서 했던 얘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보다 훨씬 밝고 유쾌했습니다.
책은 언니의 입장에서 둘의 생활을 정리한 것이라면
영화는 동생의 입장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얘기를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생각 많은 둘째언니는 생각이 많고 깊이가 있었다면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동생은 엄청나게 흥이 넘치는 에너자이져였습니다.
책을 보면서는 살짝 마음이 무거웠는데
영화를 보면서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영화 중간에 언니가 환경재단에서 주는 상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두들 즐거운 분위기 속에 시상식과 축하공연이 이어지는데
이한철밴드의 노래가 시작되니 흥에 겨운 동생이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가서 춤을 췄습니다.
흥겨워서 아주 즐겁게 춤추는 동생과
얘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덩달아 신이 난 이한철과
밋밋한 행사장을 바꿔놓은 모습에 흥이 난 참석자들이 어우러져
신나는 파티가 되어버렸죠.
그 장면을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소리를 내며 웃고 있는데 눈에서 눈물이 흘려내리더군요.
그 모습을 보는 내가 행복해져서 나오는 웃음과 눈물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정말로 잊지 못할 겁니다.


오래간만에 좋은 책과 영화를 동시에 볼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책에서는 언니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누군가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거든요.
영화에서는 동생의 다양한 감정을 지켜보면서
‘자그마한 자신만의 세계에 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다는 걸 재확인했죠.


두 자매는 만만치 않게 어두운 과거와 더 만만치 않게 불안한 미래를 감당해야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밝고 유쾌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와 춤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식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다 현실의 파도에 밀려 다시 뒤로 물러서다가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다시 또 노래하고 춤 추며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아, 읽는 라디오도 그렇게 노래하고 춤 추는 방송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그 노래와 춤이 시원치않아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겠지만
숨거나 도망가지 않고 즐겁게 방송을 이어가야죠.
음... 나의 고민들이 조금은 풀리는 것도 같네요.


오늘은 꽤 주절주절 거렸네요, 헤헤헤.
영화 ‘어른이 되면’에 나오는 노래와 영상으로 오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장혜영이 부릅니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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