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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66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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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겨울인지라 많이 움츠러드는 건 어쩔수 없네요.
저는 무릎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것이라서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조금 심란해졌습니다.


어딘가 이상이 있어서 병원을 찾으면 퇴행성 질환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건강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쩔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물리치료를 받으며 누워있으면 주위에 온통 노인환자들입니다.
병원을 찾으면서 처음으로 노인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노화의 증상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더군요.
아직은 젊으니 노화의 증상을 완화하는 노력들은 해봐야겠습니다.
운동은 지금처럼 꾸준히 하는데 하체 근력운동을 좀더 신경써서 해야겠습니다.
밭일을 할 때 꾸그려 앉는 걸 줄여야 하는데 잡초뽑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몸이 불편할수록 내 안으로만 눈을 돌리게 되는데 주변을 살피는 노력도 좀더 해야겠습니다.
생활을 좀더 꼼꼼히 관리해야겠는데 불안감에 빠지지 않도록 명상도 꾸준히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열거해 놓고보니 별다른 건 없습니다.
자연스롭게 늙어가도록 계속 노력하는 거지요.

 

2


뭔가 조그만 일을 시도했는데 안됐을 때
은근히 걱정했던 곳에서 위험신호가 전해질 때
세상을 향해 이런저런 신호를 보냈는데 메아리도 들리지 않을 때
무력감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늪속으로 빠져들지요.
그 늪에 빠져들면
허우적거리는 것이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늪에 빠져들게 내버려둡니다.


“이제 세상을 향해 뭔가 바라는 걸 포기해.”
“니가 도와줬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냐?”
“저 밖에서 간절히 소리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는 뭘 했는데?”
“지금 이 길은 니 업보가 쌓인 결과야.”
“머리가 복잡하면 술이나 먹고 자라.”
“세상에서 좀더 뒤로 물러서. 그러면 세상의 풍파를 덜 받을거야.”
“아직도 모르겠냐? 넌 그냥 외톨이야. 이 현실을 완전하게 받아들여.”
“너를 도와주는 가족들은 외면하면서 세상만 원망하는 이기주의자!”
“니가 쏟아냈던 말들을 돌아봐라. 지금 니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보일걸.”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한채 뒤척이며 시간을 보냅니다.
술을 먹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결국 한 잔 하고나서 겨우 잠이 듭니다.
깊은 잠을 자지못해 다음날도 몸과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무거운 날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수 있는 게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풀어보려고 사우나를 하고 왔더니 노곤해서 잠시 눈을 붙입니다.
낮잠을 잔 후유증으로 그날 밤에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다시 늪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길 반복합니다.
술은 먹지 않으려고 최대한 버티다가 자정이 넘어서 겨우 잠이 듭니다.
또 다시 몸과 마음이 무거운 하루가 반복됩니다.


밤 사이에 기온이 떨어져서 쌀쌀한 날이 됐습니다.
역시 아무 것도 하지 못한채 방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요즘 제주도에서 가장 뜨거운 제주도청 앞에서
재2공항 반대를 외치는 집회가 열린다는 공지가 떠있더군요.
운동권들 특유의 분위기가 싫어서 그런 집회는 가고 싶지 않은데
20일 넘게 단식하는 사람과 그 곁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밟히더군요.
한참을 망설이다가 제주도청으로 향했습니다.
아는 사람 거의 없는 그곳에서 2시간 여 동안 앉아있다가 왔습니다.
집에 와서 뒤늦은 저녁을 간단히 먹고 자리에 누웠더니
추웠던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모처럼 개운하게 눈을 떴습니다.
간단히 명상을 하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사랑이가 역시나 즐겁게 저를 맞아주더군요.
그런 사랑이와 함께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범능스님의 ‘무소의 뿔처럼’이라는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졌습니다.
가사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겨넣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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