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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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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바닷가쪽으로 살짝 돌아서 걸어왔습니다.
오래간만에 바다를 보니 가슴이 시원해져서 좋더군요.
중산간마을에 살다보니 바다를 보는 게 이렇게 반가운 일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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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었더니 예전에 살던 마을에 다다랐습니다.
아늑한 포구와 쏟아오른 언덕길이 멋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식당, 까페, 패션들이 점령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변해버렸죠.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던 이곳이
이제는 편의점만 네곳이나 있는 도시 아닌 도시가 돼버렸습니다.


이제 저 아름다운 바다는 관광객들의 차지가 돼버려서
저는 이렇게 가끔 지나가며 살짝 훔쳐봐야 합니다.
요즘 제주의 현실입니다.
오늘 방송은 이런 제주의 모습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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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작년까지 제가 농사를 지었던 밭입니다.
4년 전 귀농을 하고 처음 농사를 배웠던 곳이지요.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면서 즐거웠었던 곳입니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른 곳이기도 하지요.


사진 왼쪽으로 건물이 보이시죠?
최근에 들어선 콘도인데요
이 콘도 주인이 제가 농사짓던 밭주인을 만나서
이 밭을 사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밭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습니다.


개발업자에 의해 농민들이 쫓겨난다는 얘기를 기사나 소설로만 들었었는데
살다보니 제가 직접 그런 경험을 당해보기도 하네요.
속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냥 툴툴 털어버렸습니다.
요즘 제주도에서는 그런 일이 워낙 많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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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농사를 포기하고 지금은
부모님이 지으시던 감귤 농사를 제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요
감귤하우스 옆에 조그만 조립식 건물을 지어서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은 주위에 밭들만 있어서 조용히 살기에 그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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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 제주도에 타운하우스 건설붐이 불더니
이곳에도 이렇게 멋있는 타운하우스들이 들어섰습니다.
벌써 수십 채가 들어서서 조그만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라산은 이렇게 건물 틈 사이로 바라봐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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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비닐하우가 제가 사는 곳이고요
그 앞에는 천평이 훨씬 넘는 널다란 밭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측량기사들이 와서는 측량을 하고 가더군요.
사진에 보이는 빨간 쇠막대가 경계를 표시한 겁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3년쯤 전에 어떤 개인이 이 땅을 샀다가
얼마 전에 개발업체에 팔았는데 수억원의 이득을 얻었다고 합니다.
부동산투기가 그렇게 이뤄지는 현장 앞에 제가 살고 있는 거죠.


이제 이곳에 언제 건물이 들어설지 모릅니다.
그렇게되면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분은 땅을 잃게 되는 거고
저는 한라산을 볼 수 없게 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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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곳은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무슨 무슨 월드니 파크니 하며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는 곳도 아니고
이효리 같은 유명인이 살아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도 아니고
해군기지나 제2공항이 들어서는 논란의 중심지도 아닌데도
제주에서 살아가는 현실은 이렇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만이 아니라
제주도 곳곳이 이렇답니다.


지금 제주도청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2공항 반대농성은
이런 제주의 현실에 대한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한발 떨어져서 투쟁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제주에는 나와 같이 쫓겨나고 빼앗기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들의 얘기를 듣고 정리해서 드러내는 건 어떨까?”
뉴스에서 보여지는 큰 사건들은 아니지만
문드러지고 있는 제주의 속살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삶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들을 기록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방식이고 주특기이기도 한데
문제는 제가 세상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혹시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 중에 이런 거 같이 해보실 분 계실까요?
아니면 그럴만한 사람을 추천해주셔도 되는데... 헤헤
지금의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이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이렇게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거지요.


오늘 얘기가 조금 무겁고 칙칙했나요.
그래서 방송을 마치는 노래는 아주 경쾌한 곡으로 준비했습니다.
태연의 상큼하고 발랄한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제주도의 푸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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