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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순이 아줌마를 떠나보내고...

명순이 아줌마를 떠나보내고...

양영아

또다시 조립실에 비수기가 됐다.
파견 노동자들이 차례로 불려가 관리자와 면담을 했다. 이번에는 특이하게 12월의 마지막날 모두를 모아 놓고 명단을 불렀다. 우리가 퇴근하면서 현장을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 차례로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새해가 밝아 출근을 해 보니 현장에 사람이 반으로 줄었다. 네 개 라인이 두 개 라인으로 개편되었다. 그런데, 3년 가까이 함께 일해온 명순이 아줌마가 이번에 짤렸다는 것이다.
이 일이 있기 전에 다른 파견직 사원들은 면담을 했지만 명순이 아줌마는 면담조차 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을 텐데. 일 년에 두어 번식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저 자기에게는 형식적인 절차려니 했을 텐데... 집에 가는 통근 버스에서 너무나 당황해 하더라고 사람들이 그랬다.
이번에 가습기를 만들면서 유난히 힘들게 일했던 명순이 아줌마가 생각난다. 가습기의 중요 부품인 히터를 고정시키는 나사못이 너무 안 들어가서 손목 아파하던 명순이 아줌마, 쳘야며 특근이며 절대 빠지지 않던 아줌마가 요즘 몸이 안 좋아져서 몇 번 빠지기도 했는데...
결국 명순이 아줌마는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쫓겨난 꼴이 되고 말았다. 공장 일이 다 그렇지만 우리도 2, 3년만 지나면 골병이 드는 일이 많다. 손목 아프다고 콘베어를 비워가면 살살 할 수도 없고, 뭐든 안 맞으면 두들겨 패가면서 억지로 맞춰야 된다. 하루에도 무거운 박스를 몇십 번 올리다 보면 팔이며, 어깨며 아픈 거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맥이 탁 풀리기도 한다. 거기다 3시간 잔업에 철야, 특근까지 하려면 다리가 아프다 못해 저리고, 어떤 사람은 마비도 온다고 한다.
이 회사에서 오래 버티려면 어떻게든 말을 잘 듣는 노예가 되어야 한다. 말대답을 해도 안 되고 특근, 쳘야를 빠져도 안된다. 나이 어린 반장이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별 싸가지 없는 소리를 다 들어도 그저 일만 열심히 해야 된다. 죽도록.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찍힌다. 찍히면 별거 아닌 일에도 꾸중과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얼마 전에 라인 구조조정 때 했던 것처럼 본보기로 당첨된다.
이번에 명순이 아줌마가 짤린 것은 본보기다. 최근 오래된 파견직 아줌마들이 몸이 안 좋아져서 전과는 다르게 철야나 특근을 한 번식 빠지기 시작한 것에 대한 관리자들 나름의 대책인 것이다.
지난번 정식 사원 아줌마들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수법이다. 본보기를 보여서 힘을 과시하면 아줌마들은 완전히 기각 죽어 버린다. 본보기의 효과는 아마 자기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때 본보기로 뽑혔던 사람들은 철야나 특근이나 그 이후로 거의 빠지지 않고 다 했으니까...
한 사람이 짤린 것도 문제지만 갈수록 저 놈들의 횡포가 심해지는 것도 큰 문제다. 콘베어는 갈수록 빨라지고, 경쟁은 더 심해지고, 우리의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은 완전히 짓밟힌다.
늘 반복되었던 일인데도 어쩔수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명순이 아줌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계속 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은 어쩌지 못하지만 꼭 바꿔내고 말테니...

양영아 님은 가전제품 조립, 판금, 금형 등의 일을 하는 공장에서 가전제품에 나사못을 박고 있답니다. 음... 성격은 명랑한 편이랍니다. 그런데 잘 울기도 한데요. 덩치는 좋은 편이고 잘 먹어요. 나이는 31살. 좋아하는 남성상은 똑똑한 남자랍니다. 그런데 똑똑한 남자들은 양영아 님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거 같다고 하시네요.

- 월간 작은책 2002년 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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