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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버스 타고 싶다" 이순신 동상위 절규

우리도 버스 타고 싶다" 이순신 동상위 절규
부산 이어 서울 세종로에서도 이동권 요구 시위 벌어져

류종수/배준영 기자 ryujs5is@hanmail.net    

두 명의 대학생이 장군 다리 밑에서 절규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준비한 전단지가 세종로 한 가운데에 흩뿌려졌다. '장애인도 버스 타고싶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동상 아래로 나부끼자 그 밑으로 취재기자와 경찰이 삽시간에 모여들었고 마침내 소방차의 사다리가 놓여졌다.

그렇게 소방관과 대치하길 30분. 끌려 내려오면서도 그들은 구호를 멈추지 않다. 평화롭던 22일 오후 4시 30분. 집회 신고가 되지 않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은 경찰과 장애인, 학생들이 뒤엉키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길 가던 시민들은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고 몇몇 여중생들은 험악한 광경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오후 1시 혜화동 로터리에서 시작된 집회는 해가 저물고 눈마저 내리기 시작한 저녁 6시가 넘도록 계속됐다.

혜화동에서부터 장애인들은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광화문까지 가는 8-1번 버스는 길을 봉쇄한 경찰들 뒤에서 '비장애인'들만 태운 채 유유히 출발했다. 집회에 모인 장애인들은 경찰에 가로막혀 자신들의 생존권과 다름없는 이동권 보장만을 외쳐야 했다.

그리고 다시 모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장애인들의 휠체어는 버스에 오르지도 못하고 또 다시 경찰들에 에워싸여야 했다. 그들의 분노가 드디어 세종로 이순신 동상 위에서, 세종로 사거리 한가운데서 폭발하고야 말았다.

세종로 사거리에 모여든 20여명의 장애인들은 굵은 쇠사슬로 서로의 목과 휠체어를 이어서 묶었다. 다시 취재진의 카메라 불빛과 경찰의 방패에 에워싸인 그들은 울부짖었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장군 동상 뒤로 광화문까지 불을 밝힌 수많은 차들은 마치 장군의 명령만을 기다리듯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가면 건설교통부에 가라, 건설교통부 가면 보건복지부로 가보라고 하고 총리실 가면 주무부처에 가서 알아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질의서를 보냈는데도 정부는 한번도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우리의 생존권은 어디에서 보장받아야 합니까? 바로 여기에 책임 있는 정부관계자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결코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5시간의 힘겨운 이동과 시위로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의 말총머리는 이마 아래로 많이 흘러내려와 있었다. 함께 있던 장애인 학생들의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쇠사슬을 두르고 30분간 서울의 한 복판을 점거한 장애인들의 휠체어는 절단기가 동원되고 경찰의 강제연행이 이루어진 뒤에야 하나 둘 인도로 옮겨질 수 있었다.

퇴근길, 눈마저 내리는 세종로 사거리에서 그들이 그렇게 울부짖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장애인으로써 살아온 삶. 그 고난과 억압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고 오늘 하루 장애인들이 겪어야 했던 기본적인 이동권 박탈만으로도 그 이유로서 충분해 보였다.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 1주년, 벌써 10번째로 열리는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버스타기 운동. 이전과는 달리 오늘 집회는 참가한 사람들의 수와 현장 분위기에서도 그 무게를 달리 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철거민, 각 대학과 장애인 단체들이 들고 온 깃발들이 어우러져 마치 민중대회를 연상케 했다. 집회장 한 가운데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사극에서나 보는 칼을 목에 차고 있었고 혜화동 로터리 도로변에는 10여 개의 조화가 놓여져 있었다.

목에 걸린 칼은 이동권, 나아가 생존권을 박탈당한 장애인의 삶을, 하얀 조화에 붙은 '근조 버스'는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일반버스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대열에서 한 발치 벗어나 집회 현장을 지켜보던 장애인실업자연대 이안중(38) 씨는 "정부는 기만적인 예산타령만 하면서 400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않고 있다"며 "직업도 없고 집밖으로 나오기도 힘든 재가(在家)장애인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집회장 주변에는 개별적으로 알음알음 찾아온 장애인들이 자신의 문제와 직결된 집회를 주의 깊게 지켜보기도 했다. 집에서 동료와 함께 택시를 타고 왔다는 한 장애인은 "지금 많은 비장애인들은 우리가 마치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줄 안다"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LPG값 보전해주고 타기도 힘든 기차요금 할인해 주는 거나 지하철 무료패스 주는 걸로는 실제 아무런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없다"며 "현재 생활보호대상자이거나 1, 2급 중증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장애수당 5만원을 모든 장애인들에게 확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리를 함께 하며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의 휠체어를 밀어주던 사회당 원용수 대표도 한 마디 지적하고 나섰다.

"차별이 없다는 것은 이렇게 힘겹게 사는 장애인들의 삶을 못 느끼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인간의 보편적 기본권을 보장해 달라는 장애인들의 요구에 답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우리 당 차원에서라도 헌법소원을 내고 인권위에도 제소를 할 것입니다."

"리프트 추락사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타살"

이날 집회에서는 종이로 만든 일반버스의 화형식이 열려 저상버스에 대한 장애인들의 간절한 염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한 장애인은 "정부가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으려는 것은 우리나라 도로 사정상 속도를 낼 수 없어 경제적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며 "일본의 복지택시라든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저상버스에 대한 정부지원 등을 우리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화를 싣고 광화문으로 이동하려던 장애인과 학생들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버스를 탈 수 조차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조화는 집회장에서 폭력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지고 갈 수 없다"며 장애인들의 버스 승차를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과 경찰간의 실랑이가 1시간 넘게 벌어졌고 7명의 학생들이 연행되기도 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버스 타기에 실패한 장애인들은 개별적으로 다른 정류장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들이 광화문으로 떠나기 전 박경석 대표의 마지막 발언이 화형식으로 타다만 재와 함께 대학로 거리에 긴 여운을 남겼다.

"장애인들에 대한 이동권 조차 보장하지 않고 지하철 리프트에서 한 장애인을 떨어져 죽게 한 것은 분명 이 사회가 가한 타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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