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살자 75회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주는 모처럼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한 주였습니다.
미세먼지에 뿌연 하늘에 비가 내려서 말끔하게 씻어내더니
맑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이게 얼마만이냐!”며 환호성을 지르며 얼른 이불을 널었습니다.
옆밭에서는 유채가 하나둘씩 꽃을 피우고 있고
저 멀리 한라산도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쉽게 즐길 수 없는 이 조합을 사진으로 담아놓고
상쾌한 공기를 폐속 깊이 담아넣었더니
마음이 부풀어올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곳에는 겨울농사를 많이 짓기 때문에
이맘 때면 주변 밭들이 좀 어수선한 편입니다.
작업이 끝나서 잡초가 무성한 브로콜리밭이나
가격 폭락으로 갈아엎어버린 무밭들 사이로
보리밭이 보입니다.
한참 기운차게 올라오고 있는 보리는
겨울동안 움츠리고 있던 기운을 맘껏 펼쳐내고 있습니다.
보리를 보며 힘차게 기지개를 쫙 펴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밭에 매실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요
하나는 지난 겨울에 꽃을 피워서 벌써 꽃이 떨어졌는데
이 나무는 이제야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다른 매화랑 비교해서 ‘이제야’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이제 겨우 꽃이 피기 시작하는 유채에 비하면
매화는 엄청 부지런한 편이지요.
아직도 겨울의 잔영을 떨쳐내지 못해 게으림 피우는 저를 다그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리나 매화만 부지런한게 아니라 잡초도 부지런합니다.
가뜩이나 하우스 안이라서 무서운 속도로 올라옵니다.
무릎까지 차오른 잡초들을 제초기로 정리했더니 깔끔해졌습니다.
오래간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뻐근하기는 했지만
그날 밤에는 잠을 아주 잘 잤습니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우스에서 일을 하다가 의자에 앉아 잠시 쉽니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비치는 곳에 앉아 있으면
사랑이가 의자 옆으로 살며시 다가옵니다.
한 손에는 책을 들고
한 손으로는 사랑이를 쓰다듬어줍니다.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지요.

 


대학병원에서 피를 팔 때마다 새벽 수도꼭지에서 양껏 물을 마셨다는 친구. 물 탄 피를 팔았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애 괴로웠다는 그의 이야기는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지금도 ‘양심’이란 글자를 만날 때면 내게는 어김없이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편안하게 신영복의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가슴 속에 날까롭게 파고드는 그 느낌에 생각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서시가 떠오르더군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잠시 멍하니 있었더니 사랑이가 제 손을 핥더군요.
사랑이와 눈을 마주치니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랑이를 쓰다듬어줬습니다.

 


(시인과 촌장의 ‘비둘기에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