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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 청춘들 삥뜯어서 살아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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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그림이 좋아서 그 길을 선택한 청년들은 생계를 위해 알바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하는 알바라는 건 뻔하다.
힘들고 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심지어 연애까지 한다.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도 피끓는 청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벌레투성이다.
얼마되지 않는 일당을 갉아먹는 벌레, 갖은 방법으로 무보수 잔업을 시키는 벌레, 친분을 이용해 무급 노동을 이용하는 벌레, 의리를 강조하며 싼값에 후려쳐먹는 벌레들이 주위에 득실거린다.
그런 현실에 대고 한마디라도 했다간 낭떠러지다.
“이런 싸가지없는 새끼” “야, 니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심지어는 “빨갱이새끼야!”라는 말을 듣고는 가차없이 차버린다.


이 영화는 이런 뻔한 스토리다.
너무 뻔해서 드라마나 영화로 잘 만들지 않는 걸 너무 뻔한 신데렐라 드라마와 마초 영화들을 무진장 만들어내는 현실에 반기를 들 듯이 당당하게 만들어버렸다.
상업적으로 적당히 채색하지도 않고, 청년의 현실을 얘기하다가 엄한데로 빠지지도 않고,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다가 무거움에 짖눌려서 헥헥거리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살아있는 청춘의 얘기를 풀어놓는다.
이렇게 뻔한 영화가 왜 오래간만일까?


처음에는 청춘영화인줄 알았다.
꿈을 쫓으며 만만치 않은 현실을 나름대로 열심히 헤처나가는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는데 노동의 문제가 전면에 나서고 있었다.
알바, 학원, 클럽에서 청춘들을 다양하게 삥뜯어 먹는 좀벵이들이 맹활약을 하더라.
청춘의 노동을 착취하는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는 노동영화였다.
청춘의 현실을 얘기하는데 청춘영화면 어떻고 노동영화면 어떠랴.
그들의 삶과 노동이 잘 버무려져 있어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생생해서 좋았다.
그러고보면 청춘영화치고는 실제 현실에 좀더 생생하게 달라붙었고, 노동영화치고는 삶의 냄새가 강하게 풀풀 풍겨나왔다.


이 영화를 흑백으로 촬영한 건
흑백과 같은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려는 건지
한발 뒤로 물러서서 이들의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봐주길 원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감정과 나의 감정이 만나지는 못했다.
배우들의 연기나 감독의 연출이나 시나리오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는데
영화 속 인물들이 화를 내고, 눈물 흘리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가슴은 담담했다.
좀더 디테일하게 얘기하면
화를 내는 장면에서는 나도 살짝 화가 났고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는 머리로만 이해를 했고
절망하는 장면에서는 아무 생각없이 바라봤다.
얘기하고 싶어하는 게 선명해서 감정으로 스며들 여유가 없이 관객보다 한발 앞서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주장하려는 목소리를 조금만 더 낮추고,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가슴까지 울릴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을텐데...


최저임금을 조금 올려놓고 세상이 온통 난리였다.
자영업자의 현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자영업자공화국이 되는 분위기였다.
그런 세상에 대고 이 영화가 한마디 내질렀다.
“자영업자가 힘든 건 알겠는데요, 그래서 만만한 알바들 삥뜯어서 살아가시는 건간요? 그냥 이렇게 더 참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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