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살자 72회


1


갑자기 ‘훅~’하고 봄이 와버렸습니다.
짙은 미세먼지와 함께여서 봄이 그리 달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이 오니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겨울 동안 무지 게을러졌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졌습니다.
밭에는 잡초들이 먼저 기지개를 껴고 있어서 해야할 일들이 생겼습니다.
하우스 안에 들어가 있으면 따뜻한 햇살 때문에 나오기가 싫습니다.
반찬을 주로 채소로 먹는데 입맛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겨울내내 불어나기만하던 체중이 아주 조금이지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봄이라고 즐겁지만 않은 이들도 있겠지요.
세월호 생존자와 유족들은 봄을 건너뛰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제주도청 앞에서 한 달 넘게 단식과 농성을 이어가는 이들에게는 잔인한 봄일지도 모릅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새롭게 시작하는 학년이 설레지만은 않겠죠.


뭐, 어쩌겠습니까, 좋든 싫든 봄은 시작됐는걸요.
개인적으로 지난 겨울이 좀 힘들었었는데
이제 봄이 됐으니 일이나 해야겠네요.

 

2


이정배 목사라는 분이 쓴 ‘고독, 상상, 그리고 저항’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진보적 목사의 다소 뻔한 글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별 기대없이 접한 글이었는데
의외로 제 영혼을 두드리는 글이더군요.
여러분에게 그 글의 몇 부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인용문이 다소 길게 느껴질수도 있는데요 그냥 한번 들어보세요.

 


길을 걷다가 보면 때로는 자신보다 우월한, 부러워할 만한 사람도 만나고, 어떨 때엔 자기보다 열등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우월한 사람을 만나도 초라해지지 않고 못한 이들을 만나도 우쭐하지 않는 감정, 그것이 바로 고독입니다. 만약 열등감을 갖거나, 내가 우월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고독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이 있기 때문에 고독은 타자에 대해 깊게 열려있는 감정입니다. 고독은 결코 폐쇄적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외로움은 고독과 달리 우월감과 열등감을 시달리며 자신을 닫힌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 세상에 대해 열린 감정으로서의 고독은 자기에게 깊어질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고독은 믿음과 상관된 개념입니다. ...... 목사나 교회가 구성원들에게 고독을 훈련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외로운 존재로 만들어 욕망덩어리로 타락시킵니다.

 


하느님 앞에 고독한 존재가 되라는 얘기더군요.
그래야 남들에게 열린 자세로 다가갈 수 있다고...
외로움에 파묻혀서 욕망덩어리로 타락하고 있는 저를 강하게 깨우쳐줬습니다.

 


저항은 일차적으로 자신에 대한 저항일 것이며 나를 구성한 사회에 대한 저항을 뜻합니다. 내 전통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고 동시에 전통 밖의 낯선 세계에 대한 저항일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항은 흑백 도식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벽과 경계를 쌓고 동질영역에 안주합니다. 적과 아군을 만들고,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분별로 두려움도 생겨납니다. 사는 동안 이런 분별들이 수없이 생겨나는 바, 이를 넘어서는 것이 우리들 과제입니다. ...... 그렇기에 저항은 만든 틀에 안주하며 길들여진 삶에 대한 항거입니다.

 


살다보니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고
세상과 사람들이 두려워서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됐는데...
이 글을 읽고 스스로 벽을 쌓으며 제 안에 안주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용기를 내서 ‘자신에 대한 저항’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를 생각해 봅시다. ...... N. 베르자예프라는 러시아 사상가는 하느님의 형상을 인간이 지닌 상상력으로 이해했습니다. 상상력을 통해 우주도 갔다 오며,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상상력을 통해 모든 것들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고 보니 상상력만큼 하느님을 닮은 것도 없는 듯합니다. 상상력으로 우리는 하느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형상이란 아마도 전혀 새로운 것(체제 밖)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라 여겨집니다. ...... 일찍이 함석헌은 “하늘의 별은 우리가 손에 잡으려 있는 게 아니라 쳐다보려고 있는 것인데, 손에 넣을 수 없다고 해서 사람들이 별보기조차 안 한다”라고 탄식한 바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라...
언제부터인가 저에게서 사라져가기 시작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 힘을 다시 갖추기 위해서라도
고독한 존재가 돼야겠고
저항하는 삶을 살아야겠는데...
봄과 마음이 무거워져서 어쩌죠?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데없이 택배가 왔습니다.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뭐지?”하며 상자를 열었더니
겨울 파커 두 벌이 들어있더군요.
그리고 간단한 편지가 있었습니다.

 


일하면서 개인적인 일로
정신이 없었는데
봄이 오는 길에 이걸 보내게
되었네요.
부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께요.
건강하시구요.

 


지난 10월에 예맨분들에게 겨울옷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넉달이 지난 지금 또 이렇게 택배를 받았습니다.
겨울이 다 지난 이 시점에
이렇게라도 보내는 그 마음이
진하게 전해지네요.
“부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4


페이스북을 들어갔더니
한화대전공장 폭발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만나게 된 이야기
시설에서 쫒겨나게 돼서 고민인 지적장애인의 하소연을 전하는 이야기
대장암 수술을 받고 힘겹게 병원생활을 이어가는 이야기
제2공항을 막기 위한 단식이 38일째이지만 절망을 노래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연달아 달려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말고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기만 했죠.
그러다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광고입니다>
개발과 투기의 광풍 속에서 문들어져가고 있는 제주의 속살을 들춰보는 일을 해보고자 합니다.
지금 이곳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듣고 기록하려는 겁니다.
인터뷰 또는 르포의 형식이 될테인데 아직 구상만 존재하고 구체적인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혹시 이런 것에 관심이 계신 분이 있다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Vittorio Monti의 ‘Csárdá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