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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이 강요한 여성장애인 죽음

빈곤이 강요한 여성장애인 죽음

           유언처럼 남겨진 '생활보장 수급권 운동'

"...저는 저의 텐트농성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수급자들이 자살하거나 저 같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라며 지난 해 12월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진행했던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옥란 씨가 26일 새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지난달 20일 경 자살을 시도한 후 한강성심병원에 입원, 치료를 하며 건강을 되찾아 가던 중이었다. 최씨의 갑작스런 죽음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여성 장애인의 삶과 그들에게 안전망조차 돼주지 못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에 대한 무언의 항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에 따라 28만원의 생계급여를 지급받아 왔다. 하지만 이 돈으로는 도저히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장애로 인한 치료비 20여 만원,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료 16만원을 포함해 매달 월 60여 만원의 생계비를 지출해야 했기 때문. 이에 최씨는 지난해 12월 3일부터 1주일 간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했다. 또 현행 최저생계비 산출방식이 장애인 가구 등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추가로 드는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해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확인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 와중에 지난 2월에는 적은 생계급여마저도 더 이상 못 받게 될 거라는 공포가 최씨를 엄습했다. 서울실업운동연대 유의선 사무국장에 따르면, 최씨에겐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혼한 남편에게 양육권이 있어 함께 살 수 없을 뿐더러 자주 만나기도 어려웠다. 올해 초 최씨는 양육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통장에 어느 정도의 돈을 넣어두어야 한다는 조언을 변호사로부터 들었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통장에 7백만원 가량의 돈을 모았다.
그러던 중 지난달 20일 경 최씨는 동사무소로부터 계좌추적에 관한 통지서를 한 통 받았다. 이는 재산과 소득을 파악해 수급권자를 재심의하는 절차의 일환인데, 최씨는 통장의 돈 때문에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될 형편이었다. 최씨는 이 때  "수급권자에서 탈락하겠구나"는 생각에 낙심한 나머지, 과산화수소 한 통과 수면제 2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그 상황은 최씨에게 양육과 수급권 중 한 가지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씨가 아이의 양육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수급권을 포기할 경우,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최씨는 자살 시도 후 응급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면서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수급권 운동을 해야 한다"며 삶의 의지를 다시 보였다고 주위 사람들이 말한다. 하지만 최씨는 앞으로의 바램을 남긴 채, 결국 이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명동성당 등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장애인 최옥란 씨의 장례식이 경찰에 가로막혀 무산되고 말았다. 경찰은 3월 28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아침 6시 15분께 출발해 명동성당으로 향하던 최씨의 영구차량들을 시청역 앞에서 6시 55분께부터 가로막고 3시간 동안 노상 감금했다. 더구나 경찰은 기자들에게 마치 장례참가자들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 차원에서 시위를 벌여 도로가 막힌 것처럼 말해 장례참가자들의 분노를 더욱 돋궜다.
애초 최씨의 유족들을 비롯한 장례참가자들은 최씨가 지난 해 12월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명동성당에서 아침 7시에 노제를 지내고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 벽제화장터로 갈 예정이었으나 시청에서 바로 화장터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벽제화장터로 가지 않은 장례위원 등은 아침 11시 명동성당 앞에서 경찰의 장례식 원천봉쇄와 불법 노상감금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이런 기자회견을 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꾸지 못했다"며 "고인을 편히 보내주려는 유족과 지인들의 노력조차 경찰이 무참히 뭉개버렸다"고 분노했다. 또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은 "생전에 최씨는 '너무 외롭다'고 말하곤 했다"며 "최저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가난에다 자신의 아들조차 곁에서 키울 수 없는 현실이 결국 최씨를 죽게 했다"고 울분을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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