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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는 연대투쟁의 기운이 다시 살아오르는 울산

힘있는 연대투쟁의 기운이 다시 살아오르는 울산

2001년 상반기 효성과 태광, 고합을 중심으로 지역과 전국을 뜨겁게 달구면서 위력적 연대투쟁을 벌였던 울산은 2001년 하반기로 접어들어 연대투쟁전선이 무너지면서 개별사업장들이 각개격파 당하기 시작했다. 투쟁의 중심이었던 효성, 태광, 고합은 대규모의 징계해고, 정리해고가 이어지면서 현장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더나아가 태광에서는 현장을 장악한 어용노조와 어용대의원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탈퇴, 임원 간선제 등의 내용으로 규약을 개정하여 구조조정 수용, 임금삭감, 복지제도 축소 등의 내용을 노동조합에서 수용하는 작태를 일삼았다. 이러한 흐름은 효성으로도 이어져 어용대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임원불신임, 규약개정(민주노총 탈퇴, 임원 간선제 등)을 밀어붙이고 어용노조를 만들면서 박현정 민주노조 집행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노조 무력화 기도는 급속히 지역전체로 확산되어 삼화페라이트 폐업 통고, 트리메탈코리아 노조 조합원 탈퇴, 일광 세동 등 물량 감소·휴직에 따른 고용불안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울산에는 현대자동차만 남고 다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었다.
화섬3사 해복투를 중심으로 매우 힘겨운 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무기력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울산 노동자의 힘, 울산 평등연대, 사회당 울산시지부, 울산노동자운동연대는 '울산노동정치협의회'를 꾸리고 2월 20일 울산해고자협의회 교육관에서 "2002년 봄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임박한 발전 및 철도 노조의 투쟁과 화섬3사의 투쟁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50여 명이 참석하여 지역토론회 치고는 매우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토론회를 통해 참가자들은 당면 투쟁에 힘있게 결합하기 위한 공동투쟁체가 필요하다는데 공감을 하고 토론회의 결과물로 '신자유주의 분쇄 울산공동투쟁실천연대'(약칭 공투련)를 결성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출범하게된 공투련에는 뜻을 같이하는 단체와 현장조직, 개인들이 결합하면서 실질적인 연대투쟁을 중심으로 사업을 벌여나가기로 하였다.

공투련 구성과 동시에 발전, 철도, 가스의 공동파업이 시작되었고, 이후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을 중심으로 전국적 전선이 급속히 형성되었다. 울산지역에서도 울산화력과 영남화력을 중심으로 가족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였고, 공투련은 실질적으로 가대위 활동을 중심으로 투쟁을 벌여나갔다.
2월 28일 결성된 울산화력 가대위와 영남화력 가대위는 바로 다음날인 3월 1일부터 지역선전전을 벌이면서 본격적인 투쟁을 벌여나갔다. 가대위 동지들은 처음으로 해보는 투쟁을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다소 어색하게 구호를 외치고, 입에 익지 않은 투쟁가도 부르면서도 발전노조의 투쟁이 승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힘있게 투쟁을 벌여나갔다. 가대위 동지들은 어린 애들을 데리고도 발전노조 투쟁의 정당성을 알려한다는 일념으로 선전전 장소까지 도보로 이동하는가 하면, 첫 선전전을 마치고는 머리띠와 투쟁조끼 등을 요구하면서 매우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었다.
사택을 중심으로 구성된 가대위는 빠르게 체계를 잡아나가고 수시로 상황공유와 투쟁일정을 잡아나가면서 시내선전전, 각종 집회 결합과 선동, 상경투쟁 등의 빡빡한 일정들을 무리없이 소화해 나갔다. 몇 번의 선전전과 집회결합의 경험만으로 자체적으로 선전과 선동을 벌여낼 정도로 가대위 활동은 급속히 고양되었다. 3월 9일 전공련 결의대회에서 참가하여 선전과 선동을 벌이면서 노동자 대중과 직접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한 가대위는 더욱 고양되어 결의대회 이후 자발적으로 전날 연행된 동지를 면회하기 위해 남부서 항의방문을 전체가 힘있게 벌여내기도 하였다. 3월 1일 첫 선전선 당시에 경찰이 집회신고를 냈느냐면서 은근한 협박에 어쩔줄 몰라했던 가대위 동지들은 이날 남부서 앞 항의집회 당시 경찰이 집회신고가 되지 않았다고 하자 당당하게 "집에 먹을 것도 없는데 잡아가라"면서 항의하고 힘있는 항의방문과 면담을 성사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계속되는 지역집회와 여러 투쟁일정이 계속 배치되는 과정에서도 계속 대오를 유지하면서 조직적인 활동을 벌인 가대위는 독자적으로 울산화력발전소 앞 항의집회를 벌여내는 등 더욱 강도 높은 투쟁으로 나아갔다. 3월 18일에는 파업찬반투표가 이루어지는 월성과 고리 원전 앞으로 새벽같이 달려가 출근투쟁을 힘있게 벌여내는가 하면, 3월 21일 울산화력 발전소 앞 2차 항의집회에서는 관리자의 모습을 보고 경비실로 달려가 강력히 항의하면서 현장을 진입해서라도 사측 책임자를 만나자고 요구하는 등 매우 당당하고 결연한 투쟁 의지를 보여주었다.

가대위를 중심으로 지역에서의 활발한 투쟁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주요사업장에서는 현장조직들을 중심으로 연대투쟁의 기운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공투련에 결합한 현장조직들은 격주 유인물 배포, 현장 선전활동 강화 등을 시작으로 공동투쟁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3월 14일 현장제조직 의장단 간담회를 조직하여 공투련을 중심으로 한 공동의 투쟁대오를 넓혀나가면서 연대투쟁의 기운을 확산시켰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20일부터 시작된 현대자동차 구정문 앞 출투는 공투련 활동과 연대투쟁 조직화에서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실질적인 현장 여론화나 조직화가 부족하고, 노동조합을 통한 공식적인 투쟁일정이 아닌 상황에서 얼마만한 대오가 출투에 결합할 것인가라는 우려는 첫날 출투에 100여 명의 동지들이 결합하면서 말끔히 해소되었다. 그리고 첫날 출투부터 공투련에 공식적으로 결합한 조직들 외에도 현대자동차내 대다수의 조직들이 결합하여 공동투쟁의 의미는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현대자동차 앞 출근투쟁의 기운을 바탕으로 현장 선전전이 활발해 지고, 이틀차 출투에는 150여 명이 결합하여 더욱 높은 연대투쟁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활발한 사업을 바탕으로 공투련으로 결합하고자 하는 단체와 현장조직들이 늘어났고, 이러한 결합력을 통해 공투련은 더욱 적극적인 투쟁계획들을 잡아나가고 있다.

이렇게 발전투쟁을 중심으로 지역연대투쟁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가운데 화섬3사의 투쟁도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3월 6일 박현정 위원장의 출소로 새로운 반격의 계기를 마련한 효성노조는 위원장 출소 이후 노동조합과 해복투 체계를 정비·강화하는 한편, 현장순회와 서명운동 등을 통해 현장조직화의 계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에 사측이 박현정 집행부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현장복귀를 요구하면서 해고의 위협까지 하는 상황에서도 효성노조와 해복투는 민주노조 사수와 해고자 복직을 위해 더욱 강도 높은 투쟁으로 돌파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한편 태광, 고합 등에서는 지자체 선거와 결합하여 후보전술을 적극적으로 벌이기로 하면서 정투위를 중심으로 다시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렇게 화섬3사의 투쟁동력이 정비되는 가운데 열린 3월 20일 2차 지역토론회에서는 여느 토론회와 달리 현장활동가들의 참여가 높아 연대투쟁에 대한 의지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효성을 중심으로 지역투쟁을 어떻게 벌여나갈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효성을 중심으로 한 화섬3사의 투쟁에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결합할 것이 결의되었다.
이런 연대의 기운은 3월 22일 현대자동차 출근투쟁에 효성해복투가 결합하고, 3월 23일 지역선전전에도 화섬3사 해복투가 조직적으로 결합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몇 년 간 주요한 투쟁사안마다 지역의 제단체와 현장조직들의 연대투쟁을 힘있게 벌여냈던 경험이 있는 울산에서는 2002년 상반기 투쟁 또한 힘있는 연대투쟁으로 돌파하기 위한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2001년 하반기 이후 매우 심각하게 무기력해졌던 울산지역에서의 연대투쟁이 공투련의 결성, 발전노조 및 화섬3사의 투쟁을 계기로 다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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