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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04회


1


안녕하세요, 성민입니다.
읽는 라디오 살자 백네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재미있게 읽었던 책얘기 하나 해볼까합니다.
김먼지씨가 쓴 ‘책갈피의 기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적어놓은 책소개 글에는
‘12구짜리 멀티탭 수준으로 일하는 어느 8년 차 출판편집자의 본격 하소연 에세이’
라고 되있더군요.
이 표현이 재미있어서 고른 책입니다.


제가 사람들 살아가는 얘기 듣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출판편집자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바쁜 일도 없는 요즘 독서의 재미에 빠져볼까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기 시작했을 때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힘겨움을 늘어놓는 책이려니했습니다.
역시나 그런 뻔한 얘기들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여있더군요.
너무 뻔한 얘기들이어서 책을 덮으려고 생각하다가 일에 치이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그 삶이 안쓰러워서 좀더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출판업계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얘기가 재미있더라고요.
이런 얘기들을 까발리면 찍히기 때문에 익명으로 쓸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이해되더군요.
출판계의 뒷얘기를 술자리 뒷담화처럼 재미있게 읽어내려가다보니 그곳도 구질구질하게 버티면서 아등바등거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곳의 뒷담화와 그속에서 살아가는 이의 고충을 들으면서 얘기를 따라가다보니 쓰러지지 않고 나름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좋았습니다.
특별한 재능이나 빵빵한 배경도 없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애착도 없지만 자기자신을 달래고 토닥이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런 모습.
책을 다 읽고났더니 기분이 좋아져서 흐믓하게 미소를 지어봤습니다.


멋 부리지 않고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풀어놓은 그분은
세상이 만만치 않지만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는게 아니고
별거없는 그렇고그런 삶이지만 주어진 것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꿈을 버리지않았더니
작지만 큰 활력소처럼 자신이 쓴 작은 책을 한권 내놓게됐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써놓았더군요.

 


오늘, 마음이 공허하고 외롭다면 책상 앞에 앉아 자기만의 글을 써보길. 당신은 곧 사랑받게 될 것이다. 최초의 독자인 당신 자신으로부터.

 


이 글을 읽는 순간 마음이 아주 환해졌습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서 이렇게 방송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최초의 독자인 제 자신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2


또 태풍이 온다는데 걱정입니다.
이번에도 무사하시길 바래요^^
사진으로라도 얼굴보니 반갑고 자개농이 이뻐요.
어르신은 좀 덜 힘드셨으면합니다.
기도할게요.

 


나도! 사진으로나마 얼굴보니 반갑네영

 


지난 방송에 또 두 분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위에건 보월보월님이 달아주신 댓글이고요, 아랫건 박지연님이 달아주신 댓글입니다.
예전에 울산에서 노동운동할 때 같이 활동했던 분들입니다.
울산을 떠나고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별다른 연락도 없이 뚝 떨어져지내다가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최근에 다시 인연이 닿게된 분들이지요.
읽는 라디오 한귀퉁이에 얼핏 비춘 제 얼굴을 보고 이렇게 반가워해줍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제 삶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기간을 함께 해온 분들입니다.
그렇게 굳건한 인연도 시간이 흐르다보니 거미줄처럼 쉽게 떨어져나가버렸지만
다시 또 이렇게 가느다란 거미줄을 치는 걸 보니 거미줄이 끈적끈적하긴 하네요.


이 분들이 전해주는 마음이 살아움직여서
가을바람처럼 제 마음을 살살 건드립니다.
이런게 반가움이지요.
강성신 박지연, 고마워.

 

3


서초동 촛불집회에 갔습니다.
오래간만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있으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촛불과 피켓을 든 사람들 사이에 앉아
가방에서 머리띠를 꺼내 묶고 피켓을 들었습니다.
머리띠에는 ‘제2공항 결사반대’라고 쓰여있었고
피켓에는 ‘노동자 탄압하는 문재인정권 규탄한다’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더군요.
잠시 후 제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앉아있었더니 제 주변 1m 반경에는 사람들이 없어져버렸습니다.


폭탄 떨어진 자리에 살아남은 망부석처럼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데
누가 “성민아!”하며 제 이름을 부르는 거졌습니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국민학교 동창 네명이 서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20대 초반의 모습으로 말이죠.
너무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네명다 친한 친구였는데 그중 한명은 제가 이성으로 좋아하기도 했던 얘였거든요.
친구들은 술한잔 마시러가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따라나섰습니다.
가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은 뭐하는지 하는 얘기를 쉼없이 조잘거렸죠.
특히 제가 특별한 마음을 전하기도했던 친구에게는 더 눈길이 갔습니다.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며 가다가 어느 조그만 주점에 들어섰습니다.
앞서서 계단을 올라가는 친구들 뒤를 따라서
휘어진 계단 모퉁이를 돌아서 2층으로 올라섰는데
친구들 모습이 보이지않는 겁니다.
3층짜리 건물을 구석구석 찾아다녔고 화장실까지 가봤지만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건물 입구에 멍하니 서있었더니
촛불을 든 사람들이 밀려왔습니다.
‘검찰개혁’ ‘조국사수’를 외치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다나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저도 사람들 속에 휩쓸리게 됐습니다.
그속에 같이 있는게 싫어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나와서 옆골목으로 빠져버렸죠.
후미진 골목은 어둡고 구불구불했습니다.
조금 무섭기까지한 그곳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죠.


골목을 빠져나왔더니 한적한 시골길에 집이 하나 보이더군요.
울타리는 없고 작은 마당과 텃밭이 있는 그런 조그마한 집이었습니다.
마당 한쪽에 의자가 있어서 거기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야옹’하는 아기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거였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더니
조그만 상자가 있었고
상자위쪽을 살며시 열어봤더니
제 주먹만한 크기의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저를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와~’하고 환호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를 본 아기고양이는 더 큰 소리로 울어댔지요.
제가 “고양아, 괜찮아, 무서워하지마”라고 아무리 달래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 고양이가 불쌍해서 조심스럽게 상자에서 꺼내줬습니다.
제 손이 닿자 더 요란하게 울어대던 아기고양이는 상자 밖으로 나와서도 주위를 둘러보기만할 뿐 움직이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기고양이가 진정될수 있도록 제가 최대한 자세를 낮췄습니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조용히 아기고양이를 바라봤지요.
좀전보다는 울음소리가 잦아들기는 했지만 아기고양이는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울고있었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서 등을 바닥에 대고 두 팔을 벌린채 그냥 누워버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누운채 귀는 아기고양이 소리를 듣고 눈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는데
제 겨드랑이 사이에 뭔가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거였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살짝 돌려 내려봤더니
아기고양이가 제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와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겁니다.
그리고 아기고양이 울음소리가 멈췄습니다.
다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아기고양이의 따뜻한 채온을 느끼면서 조용히 노래를 흥얼거렸죠.

 


(강은일의 ‘웡이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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