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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도 희망이다 - 안윤길

이대로 현장에 들어간다면?

현장복귀를 앞두고 벌어지는 아비규환들! 네티즌들의 책임도 대안도 없는 글들! 징계에 대한 공포의 글들! 발전노조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느낀 점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깨질 때 깨지더라도 끝까지 싸웠더라면 이처럼 허탈하진 않았을 건데…
발전소 매각반대를 국민의 80%가 호응해주던 발전노조 투쟁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지랄 같은 합의문)로 끝날 줄이야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징계해고가 기다리는 현장으로 복귀하는 조합원들이나 가족들 마음은 꼭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분 아니겠는가.

민주노총 지도부- 용서받지 못할 자들!

여느 제조업체와는 달리, 실로 100여 년 만에 총파업 깃발을 올렸던 발전노조 파업투쟁은 애초부터 협상으로 풀 생각을 말아야 했다. '발전소 해외매각 반대!' 이것은 단지 노사간의 다툼이 아니라 이 나라경제가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초국자본에게 먹히느냐 살아 남느냐 하는 문제다.
어차피 초국자본에 덜미를 물린 현정권은 전날 IMF에서 벗어나는 조건으로 이면합의가 있기에 이 나라 '공공기업 매각'에 대해서는 이미 주체성도 자격도 잃었다. 그저 그들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전노조 파업투쟁은 현 정부와의 싸움이라기보다 초국자본과의 싸움이었고 그렇기에 발전노조파업투쟁은 단지 발전소뿐만 아닌 '공기업 전체 해외매각 철회'라는 항복을 받아내야만 할 전 민중의 운명이 걸린 싸움이었다.
상대적으로 보면, 초국자본에 항복하고 그들과 결탁한 이 나라 자본 정부는 우짜든지 초국자본에 공기업을 팔아 넘겨야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거기다 월드컵, 지자체 선거, 대선 등을 무사히 치러내자면 어떤 형태로든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을 잠재워야 한다.
이렇듯 중요한 발전노조투쟁을 잠재우기 위해 자본정권이 민주노총 지도부에 어떤 짓을 했을 지는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함께 놀아나 어처구니없는 합의문 따위로 올 투쟁의 맥을 끊어 놓은 민주노총지도부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이는 단지 협상내용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희망자체를 죽인 것이기에.

올 투쟁은 희망이 있었다

38일 동안이나 꿋꿋이 버텨왔던 발전노조 파업전사들! 그리고 가족들!
그동안 산개투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가. 나는 잘 안다. 현대 중공업노동자로서 87년 대투쟁 이후 해마다 파업을 겪었던 나는 잘 안다. 말이 좋아 파업이지 실로 파업투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더구나 파업을 처음 겪는 발전노동자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엄청 힘들겠지만 이들의 파업투쟁이 고빗사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민주노총지도부가 총파업지침을 내린다. 그것이 올 춘투(단,임협)로 이어지고, 월드컵 투쟁(전국노점상 연대투쟁 등)으로 이어져 맞물린 지자체 선거투쟁에 민주노총이 2차, 3차, 끊임없이 총파업투쟁으로 바쳐 준다면 올 투쟁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어쩌면, 근래 몇 년 동안 거대자본(초국자본)의 신자유주의정책에 고용불안에 허덕이며 상하 좌우로 갈가리 찢겨진 이 땅의 노동계급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그리하여 6,29로 시작된 87년 노동자대투쟁 못지 않은 투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 어쩌면 우리가 꿈에도 그리는 노동해방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보았다.

그래도 희망이다

싸움의 승패는 기세라고 했는데 민주노총지도부가 올 해 그 '기세'를 '파죽지세'로 만들어놓았다. 어쩌면 이것은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근래 몇 년 동안 민주노총은 이런저런 핑계로 오로지 협상으로만 일관해 왔으니까. 해마다 총파업을 때려놓고 밑바닥 현장(특히 중소기업, 하청)에선 자본의 탄압에 죽을 지경인데도 상층지도부에서는 적당히 수위를 조절하며 협상으로 끝냈으니. 원칙을 저버린 탓이다. 피 흘리길 두려워 한 탓이다.
전노협 시절, 피 터지게 싸운 댓가로 따낸 성과물인 민주노총을 민주노총 스스로 말아먹고 있다. 이 척박한 자본주의 땅에서 노동자의 투쟁 없이 이루어질 일이 있겠는가. 노자간에 협상이란 허구일 뿐이다. 현장투쟁의 힘으로 자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길만이 노동자 민중이 사는 길이고 세상을 바꾼는 길이다.

어쨌든 발전노조 투쟁이 무너졌다고 여기서 투쟁을 접을 수야 없지 않은가. 민주노총지도부의 배신행위로 김대중정권은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겠지만 거기에 덩달아 놀아날 수는 없는 일. 이 중요한 시점에 하루빨리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열어 소집권자를 지명하고 비대위를 꾸리는 등 최대한 투쟁을 조직해야 되지 않겠는가?
지금 민주노총 임원실에는 발전노조, 동원금속 등, 동지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동지들께 찬사를 보낸다. 그러면 된 거라. 싸움이란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 비록 어렵더라도.

벗꽃처럼

노동물결 넘실대는
해방의 바다로 나아가는
우리의 싸움에
절망과 한계가 어디 있으랴
한계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한계일 뿐
최선을 다하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리

누가 말했던가
전사는 싸움터에서 피 흘리며 쓰러질 때
가장 아름답다고

무르익은 봄날
혼신의 힘을 다해 피었다가
일제히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모두 한꺼번에 피 흘릴 수 있다면
아아 그렇게만 된다면.

2002, 4, 7.

안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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