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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노동자들의 자각과 투쟁이 필요하다!

백화점 노동자들의 자각과 투쟁이 필요하다!

김석원

(Box) 백화점 노동자의 하루

아침 7시 반.
졸린 눈을 부비며 잠에서 깬다. 에구, 늦었다. 원래 안 먹던 아침밥이지만 새
벽 1시가 넘어 파했던 어제의 회식으로 쓰린 속을 풀어주어야 할 텐데…….
남편 밥상도 차려주지 못하고 급히 나왔다.
8시 반.
출근하면서 본 버스창가의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맑다. 일요일이라 차도 잘
빠진다. 몇몇 차들은 가족을 모두 태우고 외곽으로 나간다. 휴,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구만. 그래도 오늘은 남편이 쉬는 날이라 아이들을 봐줄 수 있으니 다
행이네….
9시 10분.
오늘은 친절교육이 있는 날이다. 고객만족 강사의 교육과 실습이 있었다. 불친
절 사례가 발생하여 인터넷 사이트에라도 뜰 경우 난리가 난다. 사유서에, 재
교육에, 잘못 보이면 이 백화점에서 근무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억지 웃음
도 한두 번이지, 휴식시간도 별로 없이 하루종일 서서 근무하는 우리가 기계
는 아니다. 생리불순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다. 아무리 고객이 왕이라지만 직
원만족이 바로 고객만족 아닌가?
동기부여 없는 친절교육에 대강 건성으로 시간 때우다 매장으로 올라왔다.
10시.
아침조회다. 담당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한 톤 높다. 매출에 대한 압박감이
야 그나 나나 똑같으니 이해는 간다. 하지만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되겠구나.
오후 2시.
계속 손님들이 들어와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간신히 짬을 내 식당으로
갔다. 한참 식사 중에 휴대폰이 울린다. "언니, 매장에 손님 오셨는데 빨리 오
세요." 남은 밥 몇 술을 먹는둥마는둥 하고 뛰다시피 해서 매장으로 올라갔
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야 될 판인데 그러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또 싫은
소리 듣겠고….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갔다.
저녁 8시.
클로징멘트가 끝났다. 매출일지를 보니 일목표는 그럭저럭 넘겼다. 팍팍한 다
리를 끌며 락커로 갔다. 이렇게 하루를 또 보냈구나…. 간식시간도 못 가져 다
리가 몹시 아프다. 내일은 집안일 때문에 휴무를 해야 하는데 본사에서는 대
체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좀 참으란다. 휴우…. 하긴 옆코너
언니는 매출부진으로 휴무도 안하고 벌써 보름이 넘게 말뚝 근무를 하고 있으
니 내 처지가 나은 건지도 모르지.
잠시 짬을 내어 식품코너에서 산 반찬거리 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내일
은 월요일이라 일찍 나와야겠구나….
----------------------(box 끝)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한 기혼 여성노동자의 하루는 이렇다. 나도 영업장에서
위에 나온 '담당'의 업무를 하며 그들과 같이 생활했었다. 화려한 조명과 인테
리어들로 둘러싸인 속에서 근무하는 유통노동자들…. 하지만 그 속을 한 꺼풀
만 벗겨보면 어떤 직업보다도 강한 노동강도와 많은 노동시간, 이로 인한 스트
레스로 둘러싸인 채 생활하고 있는 것을 백화점 또는 할인점에서 하루만 근무
해 보아도 단박에 알 수 있다.

화려한 백화점 근무…
'고객은 왕'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하고 유통업체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유
통노동자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IMF이후 백화점의 주휴제도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이며 주 1회의 대체휴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이 현실이다.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장시간 서서 근무해야 하는 데다가 기혼자
의 경우 가사부담이 가중되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판매사원은 입점
업체가 백화점에 파견하는 형태로 근무하는데 대체로 4대보험 가입률이 매우
저조하고 업체가 부도나거나 고의로 임금체불을 하는 등의 상황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직영사원'이라는 유통업체 소속 직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캐셔(cashier)'라고 불리는 계산원들의 경우, 학교를 졸업하
고 직업전선으로 나오는 인원 대부분이 유통업체 근무 기피로 갈수록 인원이
줄어들고 있고, 남직원들의 경우에도 폐점 이후 일어나는 매장이동, 인테리어
작업 등이 모두 폐점 후인 밤중에 이루어져 많은 잔무에 시달리고 있다. 직업
특성상 공휴일 휴무가 어려운데다가 공동휴식일인 휴점마저 제대로 이루어지
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직원 휴게공간 부족은 백화점을 가 본 분들이면
아마 잘 알 것이다.

격화되는 불안정 노동
유통노동자들의 문제 중 제일 심각한 것은 속도를 높여가고 있는 비정규직화
와 이로 인한 고용불안의 문제다. 이미 대부분의 유통업체가 일반관리비 절감
이라는 명목 하에 영업장 및 본사내근직을 제외한 보안, 미화, 안내도우미, 직
원식당 등을 아웃소싱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할인점
의 경우 안내데스크 담당직원과 일부 관리파트 인원을 제외한 캐셔직은 전원
파트타이머 또는 아르바이트사원으로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판매사원
들 역시 업체와의 고용관계가 매장영업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판
매능력이 우수한 소수의 사원을 제외하고는 매장철수나 매출부진이 일어날 경
우 고용관계가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퇴직금 등은 언감생심이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에서부터 길 찾읍시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개별 노동자들의 요구를 담아내는 것
이 물론 중요하다. 사업장별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임단협 위주의 현안문제
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리라. 하지만 500
만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의 자각과 투쟁이 뒷받침되어
야 근본적인 문제의 해소가 가능할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없이는 해결의 단초를 찾기
어렵다. 어느새 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리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과 고용안정 투쟁을
힘있게 같이 전개해 나가야 한다.

백화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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