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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이 불안정한 약국노동자의 삶

내일부터 나오지마!
- 고용이 불안정한 약국노동자의 삶

오영미

#1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자리를 찾던 김하나씨(가명)는 생활광고지에 약국 전산원
을 구한다는 문구를 문득 보게된다. '약국이면 깨끗하고 편하겠구나'라는 생각
에 약국에 취직을 한다.
그러나 ! 이것은 너무도 큰 오산이었다.
아침 8시반까지 출근을 해서 저녁 7시까지 일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휴일에도
나와서 일을 하란다. 그러고도 월급은 80만원.
'그래 조금만 참고 일하다 다른 데 취직자리 알아보지 뭐. 놀면뭐해'
첫날 출근을 하자 약국장이 온 약국을 다 청소하란다. '청소, 할수도 있지
뭐.'
그리고는 환자가 오기 시작하였고 처방전을 입력하는 업무를 하였다. 처방전
입력하고 앉아있는데 약국장이 화를 낸다. "그냥 앉아있으면 어떻게 해! 나 바
쁜 거 안보여? 여기 조제하는 것좀 도와줘!"
어느새 약 세는 것, 시럽 따르는 것, 심지어 알약 넣는 것까지 하게 된다.
처방전 입력하랴 조제보조 하랴 바쁜데, 어느 환자가 와서 배가 아픈데 먹는
약좀 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약사님 이분 배가 아프시다는데요" 하고 말하니
약국장은 "김양! 앞으로 배 아프다고 하면 이 A약하고 저 B약 주면 돼"하시더
니 다른 것도 다 그런식으로 팔라고 말씀하신다.
'내 참! 난 전산업무만 한다고 해서 왔더니 이게 뭐람. 내가 종도 아니고 약사
도 아닌데… 별걸 다 시키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힘없는 노동자가… 시키
는 대로 안하면 짤리는데….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이렇게 일을 하니 온 몸이 안 아픈데가 없고, 휴일에도 쉬지 못하니 너무 피곤
하다.
그래도 피곤하고 몸 아픈 것까지는 참을 수가 있겠다. 그렇지만 약사 아니라
고 비하하는 말을 할 때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 "김양! 왜 시키는 대로 안하
는 거야! 이것 좀 하랬잖아!" "아가씨! 아가씨는 약사도 아니면서 왜 이래요?
나는 약사하고만 말할꺼예요."
이 생활을 참을 수가 없기 시작했다. 그래서 약국장에게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
한다.
"약사님! 제가 약파는 건 불법이잖아요. 저 전산직원으로 들어왔으니깐 처방전
만 칠래요. 그리고 휴일에 나와서 별로 할 일도 없는 데 쉬면 안될까요?" 정
말 용기 내서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리는 약국장의
말 "내일부터 나오지마!"
"……"

#2
A약국에 근무하는 이두나씨(가명)는 벌써 A약국에 근무한지 1년 반이 지났다.
장시간 근무와 연월차도 없고, 상여금도 없지만 그래도 집에서 가깝고 일도 그
리 힘들지 않아 별로 그만둘 생각없이 일하고 있는 약사이다. 그러던 그가 임
신을 하게 되었다.
임신을 하게 되니 자연 몸이 무거워져서 일의 속도가 느려졌다. 약국장이 내
심 못마땅한 눈치를 주기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남편의 벌이로
는 부족하기에 이두나씨는 꿋꿋이 참으며 일을 한다. 출산 일자가 가까워오고
그는 마침내 약국장에게 말을 한다.
"저 약사님! 출산휴가를 냈으면 하는데요."
"이약사! 출산휴가 내지말고 그냥 쭉 쉬는 게 어때?"
"무슨 말씀이세요? 전 법적으로 출산휴가 3개월 있다고 들었는데…"
"이약사! 사실 내가 계속 참았는데 안되겠어. 안그래도 새로운 약사 오기로 했
거든. 그러니깐 그만 나와줬으면 좋겠어."
분노와 슬픔을 억제하고 말한다.
"그래요? 그럼, 할 수 없죠. 그런데 약사님! 퇴직금은……?"
"이약사 별소리를 다하네. 약국에서 퇴직금 주는 거 봤어? 왜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래?"
그녀의 뒤통수를 치는 숨겨진 한마디. "내일부터 나오지 마!"
"……"

약국노조(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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