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날이 갈수록 선생하기 힘들어지네요

초등교육의 현장

날이 갈수록 선생하기 힘들어지네요

박민주 (초등학교 교사)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가끔 가십거리로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을 발표하는데, '교사'라는 직업은 수십 년 동안 변함 없이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공무원 신분, 정확한 근무시간, 방학, 보람이라는 교사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교사들의 노동조건은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제조업 노동자들과 비교될 수는 없지만 교사들도 강도 높은 노동 속에 일상을 보내고 있다. 특히 초등교사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주당 44시간 근무는 같지만 초등교사의 수업시수는 주당 평균 28∼30시간에 육박한다. 중학교의 경우 20∼22시간, 고등학교의 경우는 18∼20시간이다. 거기다 중등과는 달리 가르치는 아이들만 동일할 뿐 11개의 교과목을 번갈아 가며 각기 다른 내용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준비와 순발력을 요구하는 노동이다. 요즈음엔 수업개선 운운하며 다양한 자료와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하라는 각계의 요구에 힘입어(?) 486컴퓨터로 멀티미디어 자료 제시, 캠코더, 실물 화상기 등을 동원하느라 기구 조작만으로도 진땀을 빼는 실정이다. 여기에 자습지도, 청소, 일기장 검사 등 각종 검사, 급식 시간, 등·하교 지도가 기본적인 교사의 업무로 덧붙여진다.
게다가 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은 한마디로 전쟁을 치르는 느낌이다. 대부분 자율급식이기 때문에 교실로 날라져온 음식들을 챙겨 급식당번들을 재촉하여 식사준비를 하고, 인스턴트 식품에 물든 아이들에게 나물 몇 가닥 김치 몇 조각을 받게 할 것인가로 신경전을 벌이면서 어떨 때는 일일이 먹여줘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의 식사 뒷마무리까지 하다보면 교사들은 입으로 밥을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교사는 수업이 주업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학교당국과 교육청에서 찍히지 않으려면 더욱 주력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각종 공문처리나 보고서 제출, 성금이나 돈 걷기, 학교나 여러 단체들에서 주관하는 행사를 위한 작품 만들어내기, 학교·학급 환경 미화, 폐품 수집, 학부모 단체 구성하기…… 일은 끝이 없다. 이러다 보니 근무 장소가 집으로 옮겨질 뿐 초과 근무는 일상적이다.
근무조건상 지뇨와 변비에 시달리는 것은 보통이고 후두염을 비롯하여 목이 아픈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목 질환은 직업병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여교사의 유·사산율은 무려 40%에 달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방학이 있다는 이유로 월차가 없으며 연가(연차)도 법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병가도 대체인력이 없어 아이들을 방치하게 된다는 죄의식 때문에 못쓰는 교사가 대부분이며 여교사들의 보건휴가(생리휴가) 또한 보결강사비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사용을 막고 있는 실정이다. 연가나 보건휴가를 쓰지 않아도 따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남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방학조차 의무적인 연수나 자비를 들이는 자율연수를 받다보면 온전하게 집에서 쉬는 날은 채 반도 되지 않는 교사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날이 갈수록 선생 해먹기 힘들다"는 교사들의 고백은 당연한 것이다. 이 모든 문제가 효율성과 경쟁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하에서 증폭되고 있다. 그런데, 교육당국과 보수언론은 정리해고나 비정규직으로 고용 자체가 불안한 직업군에 비하면 얼마나 안정적이냐, 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니 만큼 성직자적 교사관을 가져야 교사로서의 자질이 있는 것 아니냐는 등으로 교사들을 어루만지고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의 모든 요소들을 시장으로 내모는 교육시장화의 흐름 속에서 저들의 논리는 허구일 뿐이다. 중등학교에서는 이미 많은 교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교과 전환을 위한 부전공 연수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수업보다 이른바 잡무라고 불리는 사무·행정적 일들을 매끄럽게 잘 처리하는 것이 유능한 교사로서 승진의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며, 교육에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율배반인 것이다.
얼마전 전교조 운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한다는 결정이 났다. 그런데 그 이유는 노동기본권을 요구한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참교육으로 교육민주화와 사회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왜 이렇게 기분이 찝찝한지? 이런 기분 떨쳐 내려면 이제부터 다시 싸워야 할 듯싶다. 다시금 '교사는 노동자'라는 자기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숨죽이고 흩어져 있던 힘을 하나로 모아 교육과 노동의 미래를 밝혀나가는 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아직은 여러 가지 조건으로 서툴기만 한 초등교사들이 교육운동과 노동운동의 참된 주체로 나서기까지 전교조를 비롯한 많은 노동 형제들의 지지와 비판이 함께 하길 바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