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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복귀, 부시 대외정책의 또하나의 실패

차베스 복귀, 부시 대외정책의 또하나의 실패  
반혁명에 대한 반혁명
2002-04-16 오전 10:30:29  



  ‘2일천하’로 끝나버린 베네수엘라의 쿠데타 실패는 부시 미 행정부에게도 커다란 타격이다. 이미 중동사태의 수렁에 빠져 대테러전쟁 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또 하나의 뼈아픈 대외정책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차베스 대통령은 14일 대통령궁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복귀는 “반혁명에 대한 반혁명”에 의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번 쿠데타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미국ㆍ기득권세력 vs 중남미ㆍ기층민중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중심세력은 베네수엘라의 재계 실력자와 군 상층부 등이다. 차베스가 실각한 후 베네수엘라 상공회의소 의장인 카르모나를 임시 대통령으로 옹립한 점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이들은 워싱턴의 암묵적 동의하에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들의 쿠데타는 빈민층을 중심으로 한 차베스 지지자들의 대규모 시위에 의해 27시간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군 내부의 하급 지휘관들도 차베스 축출에 반기를 들었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이웃국가들도 이번 쿠데타를 헌정파괴행위라며 신임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을 등에 업은 베네수엘라의 기득권 세력과 차베스를 중심으로 한 베네수엘라 민중간의 대결에서 전자가 완패를 당한 셈이다. 게다가 독재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차베스가 무력이 아닌 국민들의 지지에 의해 권력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이번 쿠데타는 안 하느니만 못한 거사가 되고 말았다.
  
  이번 쿠데타에 미국이 어느 정도 개입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사전에 쿠데타 계획을 알았던 알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워싱턴포스트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수주일 동안 베네수엘라의 다양한 반대파들이 미국 대사관을 찾았다. 이들은 차베스 전복과 관련, 미국의 협조를 얻으려 했다. 방문객 중에는 군부와 언론계, 정계의 전ㆍ현직 실력자들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들 반대파들은 ‘거사가 일어나면 미국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고 물어 왔으며 이에 대해 미국측 외교관들은 ‘쿠데타라면 이를 지지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미국, "베네수엘라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겠다"
  
  하지만 이들 미 외교관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미국은 차베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왔으며 이같은 입장을 공공연히 밝혀왔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해 11월 국무ㆍ국방ㆍ국가안보회의 합동회의를 열어 ‘베네수엘라 문제’를 협의한 바 있다. 그 직후 워싱턴은 “베네수엘라를 외교적으로 고립시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사실상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네수엘라의 과도정부에 대해서라면” 기꺼이 자금대출을 해주겠다면 사실상 차베스 전복을 부추겼다. 또 이번 쿠데타의 주동인물중 하나인 노동자총연맹의 카를로스 오르테가 위원장이 지난 2월 워싱턴에서 미 국무부 관리들과 접촉한 사실, 차베스 반대파인 수도 카라카스의 시장이 미 국무부 관리들과 접촉한 배경에도 의혹이 쏠리고 있다.
  
  이같은 사실 외에도 미국이 차베스 전복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배경상황은 수없이 많다. 미 정보기관에 정통한 한 미국인 전문가는 이번 쿠데타에 미 중앙정보국(CIA)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자고 나면 해가 뜬다”라는 사실 만큼이나 명명백백하다며 미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차베스의 ‘죄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미국의 아프간전쟁을 “테러로 테러를 근절하려는 전쟁”이라고 비난하며 “무고한 양민에 대한 학살의 중지”를 요구했다(이에 대해 미국은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 대사의 소환으로 대응했다).
  
  - 미국의 적국인 쿠바에 매일 5만배럴의 석유를 국제가격보다 싼 값에 판매하고 있다.
  
  - 콜롬비아 반군에 대한 미국의 전쟁에 협력하지 않았다.
  
  - 뿐만 아니라 미 공군의 베네수엘라 영공 통과도 허용하지 않았다.
  
  - 자국내 아랍인들에 대한 미 정보기관의 정보제공 요구를 거부했다.
  
  -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하고 있다.
  
  -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을 부추겨 유가 인상을 선도하고 있다(베네수엘라는 세계 4위의 산유국이며 대미 석유 수출국중 3위이다).
  
  - 이라크, 리비아를 방문, 후세인 및 가다피와 친선을 과시했다.
  
  이번 쿠데타가 실패한 배경에는 우선 쿠데타 세력의 성급한 반개혁 조치가 있다. 카르모나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차베스가 주도한 48개 개혁법률을 무효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의회를 해산하고 대법원 판사들을 해임시켰다. 결국 이같은 성급한 반개혁조치가 빈민층을 중심으로 한 친차베스 시위를 초래한 것이다.
  
  차베스 복귀의 배경에는 빈민층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위 외에도 하급 장교들의 친차베스적 성향도 크게 작용했다. 이들은 차베스의 귀환을 요구하며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이와 관련, 영국의 BBC는 이제까지 남미의 군부쿠데타는 군 상충부보다는 대부분 청년장교들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반대파가 잊었던 것같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남미국가들도 일제히 이번 쿠데타에 반대했다. 지난 주말 미국 워싱턴에서 미주기구(OAS) 대표회의를 가졌던 남미국가들은 이번 쿠데타를 ‘헌정질서 파괴’로 규정하며 민주적 선거가 치러지지 않는 한 새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번 쿠데타를 “민의에 의한 정권교체”라며 환영했던 백악관과는 분명한 대조를 보였다. BBC는 이에 대해 “이번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남미의 민주주의에는 대단히 위험한 선례가 됐을 것”이라며 남미 국가들이 일치단결한 배경을 설명했다.
  
  BBC는 이어 “차베스 대통령의 복귀로 워싱턴(의 행동)은 매우 어리석은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면서 “이제 남미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민주주의 지속을 원하기보다는 이 지역에서의 자국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을 제기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지도력이 흔들리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자료> 베네수엘라 쿠데타-한 목격자의 증언
  
  다음은 이번 쿠데타의 직접적 빌미가 된 지난 4월 11일 카라카스 유혈사태의 목격기이다. 베네수엘라의 사회학 연구자인 그레고리 윌퍼트는 이날 시위대에 대한 발포 책임은 차베스측만이 아니라 반대파에도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또 사망자 16명의 대부분은 차베스 지지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또다른 증언에 의하면 4.11 쿠데타 직후 카로모나 임시정부의 차베스 지지세력 숙청과정에서 수십병의 차베스 지지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목격기는 차베스 복귀 전인 지난 13일 씌어진 것으로 원문은 미 시사잡지 ‘카운터펀치(www.counterpunch.org)’에 실려 있다. 편집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실각하던) 4월 11일 일어난 일의 전모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날 내가 직접 목격했던 사실을 가능한 충실하게 증언하려 한다.
  
  우선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4월 11일에 발생한 사태가 쿠데타를 일으킨 가장 주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이른바 ‘시민사회’-차베스 반대파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는 이날 10만 내지 20만 가량의 대규모 시위를 조직,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 본부로 행진했다. 차베스에 의해 해임된 PDVSA 경영진을 지지하는 데모였다. 이날 베네수엘라의 모든 민간 TV방송은 약 10분에 한번씩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시위대가 수도 카라카스의 주요 도로를 수시간씩이나 점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측에서는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성공적이고 평화적인 시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위대의 지휘부는 대통령궁이 있는 미라플로레스로 행진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궁 주변에는 뒤늦게 소집된 친정부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그곳으로 갈 경우 총돌은 불가피했다. 반정부 시위대가 미라플로레스에 도착할 즈음, 그곳에는 약 5천명의 차베스 지지자들이 모여 있었다.
  
  두 시위대 사이에는 카라카스 시경찰과 국가경비대가 있었다. 카라카스 경찰은 차베스 반대파인 카라카스 시장이 장악하고 있었고 국가경비대는 차베스에 충성하는 군대였다. 양측 모두 평화로운 시위를 원한다며 상대방에 대해 도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시위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반대파 시위대와 국가경비대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돌멩이와 최루탄이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흔히 이런 상황에서 그러하듯이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는지는 알아낼 수가 없다.
  
  얼마 후에 군중을 향한 발포가 시작됐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것은 발포한 세력은 모두 세 부류였다는 사실이다. 카라카스 시경찰, 차베스 지지자들, 그리고 인근 건물 위에 배치된 정체불명의 저격수들이었다. 누가 먼저 발포를 시작했는지도 밝혀내기란 불가능하다. 이 총격전으로 최소한 10명이 숨졌고 1백명 가까이 부상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시위 군중이었다.
  
  한 TV 방송이 총격을 가한 세 세력 가운데 하나를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고 이 방송은 그 장면을 반복해서 방송했다. 그런데 이 방송은 차베스 지지자들의 모습만을 방영함으로써 마치 차베스 지지세력만이 비무장 시위군중들에 대해 총격을 가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망자의 대부분은 차베스 지지자들이었다(아마 이같은 사실은 언론에 결코 보도되지 않을 것이다). 또 건물 위의 저격수들은 차베스에 대한 극단적 반대파-‘반데라 로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소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두 가지 사실-희생자의 대부분이 차베스 지지자이며 건물 위의 저격수는 차베스 반대파라는-은 4.11사태의 진실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사실이지만 결코 일반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차베스가 자신의 지지자들을 무장시켜 반대파 시위자들에게 총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는 새로운 신화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 부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곳 베네수엘라의 언론들은 이같은 정보를 더 깊이 캐보거나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언론들도 현지언론의 보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 거의 분명하다.
  
  이날 차베스 최대의, 혹은 유일한 실수는 민간 TV의 방송을 금지했다는 점이다. 반대파는 차베스의 반민주성을 뒷받침하는 최후의 증거로 이 방송금지 조치를 이용했다. 민간 TV들은 이날 오후 내내 반대 시위를 조장하는 방송을 했으며 차베스는 이들 방송이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하면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지킨다는 이유로 시한부 방송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제 모든 ‘시민사회’, 언론, 군부는 차베스가 국민들에 등을 돌렸으므로 그는 실각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이들은 다음과 같은 차베스 정부의 모든 업적들을 도외시하고 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기존 양대 정당의 권력 독점을 타파한 민주적 헌법의 제정, 토지개혁 시행, 수많은 환경친화적 공동체 건설에 대한 재정지원, 부패 청산, 교육투자의 100% 증액, 자하경제 척결, OPEC를 통한 유가 인상으로 정부재정 확충,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제적 반대운동, 실업률을 18%에서 13%로, 조세시스템 개혁으로 탈세 방지 및 국가재정 확충 등등
  
  베네수엘라의 기업, 교회, 군 상충부, 언론, 노조 등 차베스의 반대파들은 차베스의 이러한 업적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언론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은 차베스의 최대 약점인 독재적이며 선동적인 스타일을 파고들어 차베스에 대한 국민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카운터 펀치’ 4월 13일자>  

박인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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