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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31회 – 부끄러운 일들

 

 

 

1

 

 

서른한 번째 읽는 라디오 문을 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들풀입니다.

 

 

지난주에는 백신 접종을 하고나서 2~3일 정도 후유증에 시달리다보니

컨디션이 꽝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로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하다보니

일주일이 조금 쳐진 기분으로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동생네 집에 들렀다가 그 집 강아지 산책을 시켜주러 나섰습니다.

강아지는 산책을 나가니까 좋아서 팔짝팔짝 거리고

그런 강아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가을 날씨를 즐기는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조그만 공원에 들어섰더니 강아지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냄새를 맡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구석에 이르렀더니 자세를 낮춰 용변을 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 사람도 별로 없고 풀이 자라있는 외진 곳이라서 용변을 보게 해줬습니다.

볼일을 마친 강아지는 발로 주변 흙을 몇 번 차더니 다시 즐겁게 산책을 이어갔습니다.

 

 

강아지와 함께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저를 부르더군요.

그러더니 “공원에서 개가 똥을 싸게 하면 어떻하냐”면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저는 연신 죄송하다고 하고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강아지가 용변을 못 곳은 공원 외진 곳인데다가 풀이 우거져 있어서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지적은 합당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좀 억울한 심정도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돌아오다 보니 기분이 많이 상하더라고요.

 

 

그 기분을 가라앉히려고 하다 보니

얼마 전 동네에서 산책을 할 때

강아지 용변을 치우지 않는 할아버지에게

한마디 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고

저는 2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내뱉은 말이 이렇게 빨리 돌아오다니...

 

 

상한 기분과 부끄러운 마음을 다독이면서 작은 다짐을 했습니다.

나의 판단이 합리적이더라도 남들이 불쾌해할 언행은 하지말자.

내 언행이 되돌아 올수 있다면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이 되돌아오도록 노력하자.

나 때문에 남들이 마음 상할 수 있으니 조심해서 살아가자.

 

 

 

2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떴습니다.

받을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뜸을 들이고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반갑다면서 말을 걸어온 그는 오래 전 친구였습니다.

만나는 일은 거의 없고 아주 가끔씩 통화를 하는 친구

오랜만의 통화라 대화 소재는 온통 예전 얘기뿐인 친구

주절주절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자기 하소연으로 빠지는 친구

말을 끊기 미안해서 그저 듣다보면 하염없이 늘어지는 친구

통화를 하고나면 이유 없이 기운이 빠져버리는 친구

그런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하필 백신 접종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 친구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습니다.

반갑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의 반사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다시 전화가 걸려오면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계속 불편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내가 생각나서 전화했을 뿐일 텐데...

그저 외로워서 잠시 수다를 떨고 싶었던 것일 텐데...

이런 식으로 뿌리치면 그 친구의 마음에 상처로 남을 텐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백신 후유증은 나아져서 몸이 좀 개운했습니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자리에 앉아 명상을 했습니다.

잔잔한 기도문을 틀어놓고 마음속으로 따라 하는데

자꾸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기도문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려 했습니다.

불편하고 추한 마음을 맑은 기도문으로 밀어내려는 노력을 30분쯤 했더니

제 마음이 조금씩 맑은 기도문으로 채워졌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감았던 눈을 뜨고

서서히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는데

윤동주의 ‘서시’가 떠오르더군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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