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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8회 – 소풍 같은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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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에서 일을 하다가 쉬기 위해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팽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선선한 바람을 즐겼는데

이제는 하우스 안으로 들어와 따뜻한 햇살을 즐깁니다.

사랑이도 애써 나무 그늘로 들어가지 않고 햇살을 만끽하며 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지요.

 

날씨가 좋아서 오후까지 하우스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요즘은 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을 하는 시간보다는 의자 않아 쉬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예 찻주전자까지 갖다놓고 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30분 정도 가볍게 일을 하고

1시간 정도 여유롭게 책을 읽고

무료하다 싶으면 사랑이랑 산책을 나가는 일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입니다.

소풍 온 것 같은 나날이 이어지는 일년 중 가장 평온한 때이지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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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익어가는 콩밭에는

노란 물결이 밀려오고

그 뒤로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브로콜리와 양배추는

녹색 기운을 활짝 펼치고 있으며

그 뒤로 배경을 이룬 바다와 하늘은

너무 맑고 푸르러서 모든 것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아직 단풍소식이 들려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겠고

활엽수가 별로 없는 이곳은 단풍을 볼 수 없지만

이 보다 더한 색채의 향연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우스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일이 별로 없습니다.

사랑이와 산책을 위해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를 거니는 것이 외출의 전부이고

일주일에 한두 번 어머니를 찾거나 마트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것이 외부로 나가는 것의 대부분입니다.

여행이라는 것을 해본지도 20년이 넘는 까마득히 오래전 기억이네요.

 

외진 곳에 조용히 처박혀 살고 있는 이 삶이 무료하지 않은 이유는

계절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식물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축복받은 삶입니다.

 

 

3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내뿜는 불편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한산한 버스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는 불편한 기운이 아주 가득합니다.

옆자리에 누군가 앉지 못하도록 가방을 놓아두거나 통로 쪽으로 자리를 앉습니다.

노인들이 타거나 몸이 불편한 분이 타더라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뿐더러 창가 쪽 자리로 이동하지도 않습니다.

자리가 없어 서있는 사람이 있어도 모른 척 하고 통로 쪽 자리를 사수한 채 두 자리를 홀로 차지합니다.

누가 큰 소리로 전화를 받거나 시종일관 옆사람과 대화를 이어가면 누구하나 뭐라고 하지 않지만 불편한 기운은 더 짙어집니다.

그 불편한 기운을 느끼면서 30분 정도 있다 보면 머릿속은 온통 불쾌한 것들도 가득 차고 몸은 금방 피곤해져 버립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정목스님의 ‘출근길명상’이라는 걸 접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마주친 모르는 사람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빌어주면서 자신의 내면을 긍정에너지를 채우는 명상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가만히 앉아서 따라 해봤더니 마음속에 맑고 환한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 기분이 너무 상쾌해서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전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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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문득 그 명상이 떠올랐습니다.

그 버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부정적 에너지가 별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듯이 명상을 해봤습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평화롭길 바랍니다.”

“만약 제게 쌓인 공덕이 있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회향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하려는데

이런저런 소음들이 선명하게 들려오고

차의 흔들림이 더 크게 느껴지고

출렁이는 내 마음까지 또렷하게 보여서

좀처럼 명상이 되지 않더군요.

그래도 몇 번을 반복해서 주문을 외우다보니

살짝 제 주위로 긍정의 에너지가 감싸이는 것 같은 느낌은 들었습니다.

명상은 오래하지 못하고 1~2분 정도로 끝나버렸고

저를 감쌌던 긍정의 에너지가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잠시라도 밝은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범능스님의 ‘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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