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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0회 – 밤에 잠을 자기 못하고 있습니다

 

 

 

1

 

요즘 들어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밤 9시만 되면 눈이 스르르 감겨 다음날 아침 5시까지 잘 자곤 했었습니다.

가끔 새벽에 잠이 깨는 일은 있어도 밤 9시를 넘겨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생기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 때문에 생리적 리듬이 깨져서 그런가?” 하고 생각해봤지만

밤 8시가 넘으면 하품이 나오고 눈이 졸리는 걸 보면 몸은 잠을 원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하는 일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매일 조금씩 일도 하고 햇볕도 충분히 쬐어주고 있기에 육체적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심리적 문제인데...

요즘 너무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마음의 짐을 갖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변에도 고민거리가 될 일이 없기에 심리적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 하고 제 몸을 찬찬히 들여다봤습니다.

의식을 하면 뒷목이 살짝 당기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역시 뒷목이 살짝 당기면서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약간의 각성효과 비슷한 증상인 것 같았고 원인을 생각해본 결과 카페인이 의심됐습니다.

최근에 마시지 않던 커피와 보이차를 마시고 있거든요.

하루에 한 잔 정도 마시는 수준이라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일단 각성작용으로 의심이 되기 때문에 당분간 중단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하고

몸과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고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것, 주변 환경까지 골고루 들여다봤지만

딱히 꼬집을 만한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과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문득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잠을 자지 못해서 매일 밤 자신을 파괴하며 긴긴 시간을 보내야하는 이들의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전쟁터에서는 공포에 휩싸인 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요즘

내 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은 더 넓은 곳을 향해야겠네요.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텃밭에 얼갈이배추가 풍성하게 자랐습니다.

다른 씨들을 뿌려놓은 건 잘 되지 않았는데 이거라도 잘 돼서 기분이 좋습니다.

요즘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금방 자랐고 맛도 아삭하니 좋더군요,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아서 주위에 조금 나눴습니다.

암 투병을 하고 계신 분에게 드리면서

요즘 치료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눴고

고맙다며 답례로 건낸 생선 한 마리를 받아들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사는 친척 할머니에게 갖다드리면서

나이 들고 병들어가는 삶의 고단함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는

음료수 사먹으라면서 건네주시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아들었습니다.

평소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만 하며 지내던 분에게 드리면서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다음날부터 더 살가운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를 위해 신경을 많이 써주는 동생에게는

한아름 뽑아서 보냈더니

밑반찬을 몇 개 만들어서 가져왔더군요.

아삭한 식감만큼 제 마음도 아삭하게 상쾌해졌습니다.

 

얼갈이를 나눌 사람이 이 정도 뿐이어서 주위에 더 마음을 쓰지는 못한 채

세상을 향해 마음을 쓸 방법을 고민하다가

지금 한창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일 찾아봤습니다.

이래저래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만

전쟁에 대한 소식들만 뜨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냥 유엔난민기구에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송금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별거 아닌 것들이지만

조금씩 나누며

마음의 문을 넓혀가는

이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3

 

오랜 가뭄과 이상 고온 끝에 비가 내립니다.

아직 흡족한 양은 아니지만 대지와 마음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달래줍니다.

 

커피와 보이차를 마시지 않아서인지

주변에 마음을 널리 써서인지

아니면 일시적 파도가 지나가서인지 모르겠지만

밤에 잠을 자는 것이 다시 쉬워졌습니다.

마음의 짐이 덜어지니 한결 더 편안하니 좋네요.

 

하지만

오늘도 밤에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해 힘들어할 이들을 생각하면

저의 편안함이 너무 미안해집니다.

 

 

 

(이진아의 ‘도시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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