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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3회 – 차가운 자본주의 바람을 맞으며

 

 

 

1

 

치질이 다시 도져서 한 달 가까이 불편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치질에는 좌욕이 최고의 치료법이기에 꾸준히 좌욕을 했습니다.

매일 한 두 번씩 쭈그려 앉아서 엉덩이를 물에 담그는 것이 귀찮기는 하지만

걸어 다닐 때마다 느껴지는 불편함을 생각하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보통 보름 정도면 증상이 나아지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약간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참고 꾸준히 좌욕을 한 결과 이제는 말끔해졌습니다.

 

한 차례 파도가 지나가고 나니 제 몸을 다시 살펴보게 됐습니다.

올 봄에 무릎 관절염이 다시 재발해서 한 달 넘는 치료를 통해 통증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귀에 생긴 이명은 병원치료로 나을 수 없어서 그냥 친구처럼 달고 다니고 있고

조금씩 내려앉는 잇몸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양치질과 스케일링으로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몇 년 전 급격히 나빠진 눈도 정기 검사를 받으며 상태를 관찰하고 있고

이래저래 부실해진 내장기관들도 식단관리와 꾸준한 운동 등으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질환은 아니어도

온몸 곳곳에서 나타나는 노화 증상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지만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관리하는 계기가 되고 있어서

전화위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 자신을 관리해나가면서

나이가 한 살 두 살 늘어갈수록

증상들이 조금씩 나빠져 가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오래간만에 보왕삼매론 한 구절을 읊조려 봅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고로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2

 

어머니가 사시는 동네 주민센터에서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자원봉사자가 찾아와서 안부를 물어보고 가신다고 합니다.

10여 분 정도 짧은 방문이지만 그렇게 사람이 찾아와서 얘기를 나눠줘서 좋다고 합니다.

어느 날에는 자원봉사자분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분의 고충에 대해 얘기를 나눴나 봅니다.

노인들을 만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내가 다 알아”라는 식으로 자원봉사자를 대할 때라고 하더군요.

 

칠팔십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고생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이삼십년쯤 어린 사람이 하는 얘기가 가끔은 우습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병들고 나이든 자신을 대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태도에서

동정심 같은 게 느껴져서 자존심을 세워보려고 목에 힘을 줬을지도 모릅니다.

고생하는 자원봉사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젊었을 때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듯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마음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뜻에서 하는 일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겠죠.

제가 나이가 들었을 때도 그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젊었을 때 사회운동을 했었다는 강한 자존심과

오랜 세월 홀로 버텨오며 몸에 밴 독립적 생활습성과

세상을 향해 날카로움을 유지하려는 비판적 사고방식이

그 나이에도 힘을 발휘한다면

저를 찾는 자원봉사자의 스트레스도 꽤 높아지겠죠.

나이 들어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 유연해지고 더 겸손해져야 하는 수련이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가 사는 동네는 그리 크지 않은 중산간 마을입니다.

높지 않은 집들이 돌담을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사이로 좁지도 넓지도 않은 길이 자연스럽게 놓여있어

편안한 그런 마을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 마을에 1년 가까이 공사가 진행되더니

시원한 2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져버렸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위에 밭들만 있고 조그만 농로가 있어서 여유롭게 산책하던 길도

안전장치와 교통표시판까지 완전하게 갖춘 도로로 탈바꿈했습니다.

 

평소에 차량 통행이 많던 곳도 아니고

사람이 많이 사는 곳도 아닌데

이렇게 시원한 도로가 생겨서

당황스럽더군요.

사람을 위한 길이기보다는 차를 위한 길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문제는 이 길이 마을안길이라는 점이고 마을에는 노인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길은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길입니다.

이 길이 언제 확장됐는지를 모르겠지만

시원한 2차선 도로 한쪽에 만들어진 인도는

사람 한 명이 겨우 걸아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고

어느 집 처마를 지나갈 때는 머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의 안전보다는 차의 안전을 위한 도로의 전형으로 보이는 길입니다.

 

주변의 밭들이 하나둘씩 개발업자에 팔려

타운하우스와 펜션들이 슬금슬금 들어서고

자연스럽게 마을을 이어주던 동네안길은

차들의 주행을 위한 시원한 도로로 변해버리는

이 작은 중산간 마을에서

나이 들어가는 삶을 차분히 고민하고 준비하기에는

자본주의의 바람이 차고 매섭기만 합니다.

 

 

 

(316의 ‘All Ab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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