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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1회 –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에

 

 

 

1

 

요즘 드라마 하나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흔해 빠진 타임슬립 드라마인데 아기자기하면서도 발랄해서 가볍게 보기에 그만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죽었다가 자신의 생으로 다시 환생해서 덕을 쌓도록 노력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 생을 다시 산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선, 제가 상처를 줬던 기억들을 찾아가서 그 몹쓸 짓을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살아왔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겠죠.

 

그러다가 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인 대학생활에 이를 겁니다.

“두 번째 생에서도 학생운동을 다시 하게 될까?”하고 생각해봤는데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주변반응도 우호적이었고 그 시절 나름 재미있었기에 다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노동운동도 다시 하게 될까?”하는 질문에서는

“그 힘겨운 시간을 다시 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세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아버린 데다가

졸업해서 남들처럼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에 메리트가 없어서

역시 노동운동도 다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투쟁의 한복판에 다시 서게 되겠죠.

그곳에서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고

이런저런 고민들과 눈물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해고되고, 수배되고, 구속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야 할 것이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 투쟁의 용광로 한복판에서 다시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판단 하나 때문에 이 사람과 결별하게 되는데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이 사람이 구속되고, 저 사람은 죽게 되는데 그 투쟁을 계속 이어가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지만 저는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아마도

투쟁을 계속 이어가기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투쟁은 사그라들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점점 저는 투쟁을 관리하는 관료가 되어갔을 것이고

민노당을 이어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흐름과 연결해서

정치판에서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겠죠.

제가 가장 경멸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보여서

두 번째 생에 대한 상상을 멈췄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몰랐을 때가

더 열정적이고 절박해서

모든 것들이 소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를 잃기도 하겠지만

돌아보면 그런 삶이 더 밝고 활기차게 보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제가 살아가야 할 삶도 그래야겠죠.

 

 

2

 

오래전에 방영했던 시트콤 드라마인 ‘세 친구’를 보게 됐습니다.

20여 년 전 설정과 유머들이었는데도 키득거리면서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주제가 요즘 시대정신이랑 너무 안 맞더군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출연진들이 상당히 화려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주연급만이 아니라 조연과 특별출연자까지 당시에 아주 잘나가던 연기자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그 시대에 아주 핫하게 타올랐던 스타들의 총집합이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 대부분이 방송에서 사라졌더군요.

한순간 반짝하고 빛났다가 빠르게 사라져간 별동별무리를 보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이 다시 시작해서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연들 속에 묻혀있던 보석 같은 실력자들이 나와 나름의 내공을 맘껏 발휘하는 그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몇몇 인기스타나 아이돌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요계 현실이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출연자 중에는 한때 반짝하고 빛났다가 빠르게 잊힌 이들도 있고, 제대로 빛나보지 못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사연과 열창을 보면서 그들이 찾는 기회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을 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을 때 ‘빠르게 사라져간 별동별무리’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까요?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를 향한 눈길을 돌리면

은은하게 빛나는 실력자들이 주위에 넘쳐나는데

그 실력자들을 찾아내서 스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오래 빛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귤이 서서히 익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감귤들은 이미 노랗게 익어서 수확을 하기 시작했지만

수확이 늦은 이 감귤은 겨울을 오롯이 견뎌야 합니다.

지난 여름 무더위 속에 체력을 빵빵하게 키워놓았으니

겨울 추위를 견디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기대해봅니다.

 

길었던 가을가뭄 끝에 비가 흠뻑 내리고 나서

기온이 뚝 떨어지니

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겨울에는 한 달에 두 번 칼슘제를 뿌려 주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고민입니다.

고민한다고 해도 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책 읽고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이 전부이기에

바닥으로 가라앉는 몸과 마음을 어떻게 보살피느냐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그래서 가장 힘든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제 곁에 사랑이가 있는 것이 큰 위안이 됩니다.

사랑이를 자주 쓰다듬고 산책도 자주 하면서 서로의 정을 흠뻑 나누고

익어가는 감귤을 자주 들여다보며 겨울을 견뎌내는 힘을 나눠야겠습니다.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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