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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 아프십니까? 나도 아픕니다.

제주에 내려온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갑니다. 5개월 동안 거의 하는 것 없이 집에서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결핵이라는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병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장난인 병이 되어버려서 결핵으로 요양하고 있다고 얘기하기가 좀 쑥스럽습니다. 아직도 기침이 좀 있는 것 말고는 특별한 고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한 번 다소 많은 양의 약을 6개월 동안 매일같이 먹어야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치료도 없습니다. 그냥 잘 먹고, 푹 쉬고, 담배만 피지 않으면 됩니다. 6개월 지나도 안나으면 다시 3개월간 약을 더 먹고, 그래도 안 나으면 다시 3개월을 연장하고 하는 식입니다. 보통 6개월이면 다 낳기는 하는데, 저는 초기에 상태가 좀 많이 진행된 상황이라서 6개월만에 다 나을 수 있을지는 다음달에 있을 최종 검사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일선으로 복귀하는 것도 좀 고민되는 상황입니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일선에서 활동하는데 특별한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이게 내성을 가져버리게 되면 좀 까다로워지거든요. 그래서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이렇게 뭉게작뭉게작 거리고 있습니다.
출소하자마자 병요양이라는 핑계로 이렇게 장기간을 제주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정말 환상적인 조건입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이곳 제주의 바다와 하늘과 산을 즐기면서 나중에 이곳에 혁명가들을 위한 휴양소를 하나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자신의 몸을 챙기지 못하면서 휴식도 없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잠시라도 와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곳을 이곳에 만든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나중에 제 나이 60쯤 되면 한 번 만들 수 있도록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돈도 좀 있어야 할 것이고, 운영에 대한 문제도 고민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30년 후에 이곳에 조그마하게 혁명가들을 위한 휴식처를 마련하는 것이 내 노후사업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간절한 소원으로 간직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휴식처 입구에는 ‘노동관료 절대 사절’이라는 푯말을 붙여놓는 것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는 꾀병으로 이렇게 자연도 즐기고 30년 후의 노후사업에 대해서 느긋하게 생각도 하면서 정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너무도 고통스럽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 생각나면 가슴이 가볍지가 않습니다.
요즘은 왜 그렇게도 내 주위에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30대 초반에서부터 50대까지 힘들게 투병생활하고 있는 이들의 소식을 가끔 접하면서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음에 안타깝습니다. 솔직히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서 그 고통이 어떠한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가끔씩 접하는 소식과 일반적으로 암으로 투병생활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상상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이나 TV에 암에 대한 소식이 있으면 예전과 달리 좀 유심히 보게 되고, 괜시리 더 눈물을 글썽이게 됩니다.

작년에 근골격계 투쟁을 하면서 아파서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어디가 부러지거나 확연히 드러나는 부상이라면 차라리 속이라도 시원할텐데 중노동 속에 야금야금 망가져버린 몸뚱이는 병원에 가도 시원한 해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잠시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라도 받고 오면 좀 나아지지만 다시 돈벌러 현장으로 나가면 금새 몸이 아리고 쑤셔옵니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물건을 들기도 어렵고, 걸을 때는 절룩거리기도 합니다. 잠을 자다가도 통증에 잠을 깨어 한숨을 쉬다가 겨우 잠들기가 일쑤였습니다. 몸은 점점 아파오지만 병명이 뚜렸하지도 않고, 어디 물어볼데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잔업과 특근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참으면서 일할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그 고통들을 알게 되면서 그 숨 막히는 현실에 한숨이 나오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정말 힘들었지만 그 투쟁을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저 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동지들이 그 힘겨움 앞에서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코 주저 않지 않겠다고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는 이들이 작년부터 유난히 많습니다. 정말 이 악물고 힘겹게 싸워보지만 자본과 권력은 너무나 완강하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전망 없이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고민을 하게 됩니다.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
작년에 김주익 열사의 유서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올해에도 한 50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과 그에 뒤이은 투쟁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또 택시노동자의 분신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작년에 ‘다모’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저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드라마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대사가 유명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동지들, 아프십니까?
나도 아픕니다.


2004년 6월 7일
제주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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