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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고 무료하고 행복한

제주에 내려온 지 보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성민이는 뭘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하지요? ㅋㅋㅋ
궁금하지 않아도 성민이 얘기를 들어보세요.

보름 동안 성민이가 하고 있는 일

- 아기보기 : 태어난 지 두 달 된 여동생 아들이 우리 집에 와 있습니다. 아주 귀엽고 착합니다. 그런데, 아기를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죠? 밤낮 없이 아기에 매달려야 하다는 거. 주로 우리 어머니가 보시고 저와 아버지가 보조 역할을 하지만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힘들지만 싫지는 않습니다.

- 테레비보기 : 울산에서는 집에 테레비가 없는 대신 컴퓨터가 있어서 집에 들어가면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컴퓨터는 없고 테레비만 있습니다. 덕분에 원없이 테레비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가 잼없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테레비보면서 지내고 있는데, 잼없는 테레비 보는 시간이 제일 힘듭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드라마에 빠져 보려고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됩니다. 워낙 유명한 주몽이나 칠공주 같은 것은 워낙 유명해서 보기 싫고, 유명하지 않은 것을 보려니 솔직히 이것도 잼없습니다. 고현정이 나오는 ‘여우야 뭐하니’가 잼있었는데 보자마자 끝나버렸습니다.

- 책읽기 : 우리 동네 옆에 바다가 보이는 작고 아담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가끔 그곳에 가서 책을 봅니다. 도서관에 있는 신문을 읽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시집을 읽기도 하고, 이론서를 보기고 하고, 소설책을 보기도 하고,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읽기도 합니다. 편안하게 책을 보다가 고개를 들면 창밖으로 바다가 보입니다. 이쯤이면 신선놀음에 가깝지 않습니까?

- 밭일하기 : 부모님이 어린 손자를 돌보느라 당분간 농사를 제대로 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조금씩 농사일은 있습니다. 우리집에는 쪽파를 재배하고 있는데, 요즘 김장철이라서 수요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제가 번갈아가며 아기를 보면서 파작업을 합니다. 이곳에서 하는 일 중에 가장 재미있고 시간이 잘 가는 것이 이 일을 할 때입니다.

- 산책하기 : 산책은 자주 못합니다. 보름 동안 세 번 정도 산책을 했습니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서 나가면 바다가 있고, 좀 더 위로 가면 야트막한 야산이 있기는 한데, 고향에 오면 좀처럼 집밖에 나가질 못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먹고 산책에 나서면 가슴이 탁 트입니다.
시원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따라 걷거나, 밭을 품고 있는 동네 야산을 둘러보고 있으면 세상이 참 아름다고 편안합니다. 그렇게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나면 몸과 마음에 가뿐합니다. 육지에서는 도로가 자연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자연이 도로를 품고 있습니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 외에 하는 일 : 가끔 설거지하고 빨래게기, 1주일에 한 번씩 제주시에 있는 동생 집에 와서 컴퓨터하기, 도서관에서 영화보기

어떠세요? 멋있어 보이나요?
그런데 실제 이렇게 지내고 있는 저는 전혀 멋있지 않습니다.
참 낭만적이고 목가적으로 보이는 삶이지만, 긴장감도 없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단절돼 있어서 이런 삶을 호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참! 지난 토요일에 영화 본 얘기를 해드릴께요.
우리 동네 옆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작고 아담한 도서관’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영화상영를 하고 있더군요. 지난 토요일에는 장이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이 좀 무료하기도 하고, 문화적 감성을 충전하고도 싶어서 일부러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좀 쌀쌀했지만 영화상영은 오후 두 시였기 때문에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촌동네 도서관에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영화상영이라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집에서 도서관이 가깝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서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영화를 보기 위한 제대로 된 시설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실내환경은 좀 심했습니다.
백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강당에 열람실 의자(상상이 되세요? 영화보기에 얼마나 불편한 의자인지?)가 스무 개 정도 놓여있었습니다. 빔과 영상막이 있고 앞으로 세 줄 정도 열람실 의자라 놓여 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뒤에는 휑하게 비어있고, 차단막이라는 것은 블라인드뿐이었는데, 낮 두 시의 햇빛을 가리기에는 힘겹더군요. 물론, 별도의 음향시설을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두 시에 맞춰서 들어갔더니 근처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온 듯한 중학생 4명과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온 주부와 제가 관객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됐는데, 자막설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자막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5분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나마의 관객들도 나가버렸습니다.
잠시 후 직원이 황급히 다른 직원을 데리고 와서 자막설정을 맞추고 나서야 한글자막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약간 춥고 햇빛이 들어오는 휑한 강당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고, 옆에서는 어린 아이들 세 명이 뛰놀고 있었습니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옆에서 뛰놀다가 넘어져 울기도 하는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 반가량 영화를 봤습니다.
얼마나 편안했는지...
늦가을에 그냥 편안하게 보기에 좋은 영화였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운 것인지, 상황이 여유로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조건 자체가 너무 여유로웠습니다. 아이들도 놀다가 가끔 영화를 보기도 했으니까요.
추측건데 도서관에서는 그냥 행사의 일환으로 그렇게 성의 없는 영화상영을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도 안 봐도 그만 봐도 그만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옆에서 뛰놀고, 의자가 불편하고, 음향시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보는 사람이 한 명 뿐이지만, 저는 편안하게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는데 세상이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지난 주에 제 헨드폰으로 문자메시지 하나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에 투쟁을 함께 했던 보육노조의 한 동지였습니다.

요즘 뭐해요 기사도 안쓰고 무슨 일이 있나요 걱정되네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아시겠어요?
그 메시지를 보고 맑스의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네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너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

짧은 문자메시지와 맑스의 현학적인 문구를 떠올리면서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해가 되세요?

2006년 11월 16일

제주에서 성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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