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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외로움에게

방금 집 앞에서 있는 호수공원을 산책하고 들어오는 길이다.
이 공원은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정도가 걸릴 정도로 커다란데다가 주위 경관도 편안하게 조성돼 있어서 저녁 먹고 산책하기에 그지없이 좋은 조건이다.
여름에는 저녁에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사람이 부쩍 줄었다. 덕분에 사람에 치이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어서 좋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저녁 6시경 저녁 식사를 마친 포만감 속에 음악방송을 들으면서 편안한 호수공원을 거니고 있는 모습이 부럽지?
오늘은 산책을 하면서 엄길정 동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 시간 동안 ‘무슨 내용을 쓸까’하고 행복한 고민 속에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집에 들어와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타고 역시 컴퓨터로 음악방송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잠시 그런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글을 읽어봐라.

항소심 결심을 앞두고 이번 주는 마음이 싱숭생숭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갖는다 해도 항소심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재판 절차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엄길정과 함께 마음을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이번 주에는 인터넷 서신도 가능하면 매일 쓰고, 이 편지도 빠른우편으로 보내서 재판 전에 받아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뿐이라면, 이런 것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엄길정과 조금이라도 마음을 함께 하려고 한다.
그러면 외로움이나 걱정이 조금은 줄어들까?
조금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엄길정은 어떤 활동을 그리고 있을까?
결코 만만치 않은 조건에서 다시 결의를 다지고 힘찬 활동의 상을 그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할 현장이고, 어쩌면 숙명처럼 받아 안아 할 현실이라면 그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우뚝 서는 것은 중요하겠지.
그런데 운동이라는 것이 원칙을 지키면서 버티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데 또 다른 고민이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 속에서 대중과 호흡하면서도 원칙을 품으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는 것은 굳건한 신념과 함께 풍부한 상상력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현대자동차라는 대공장에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현장에서 전망을 찾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그런 현실에 안주하면서 적당히 굴러먹을 것이 아니라면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적극적 상상력과 다양한 실천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규직 조합원들은 98년 정리해고 이후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야 한다는 경향이 강해지고, 2000년 완전고용합의서 이후 비정규직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에서 정규직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은 더욱 굳어져만 가고 있다.
대중들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핑계로 활동가들은 더욱 급속히 실리주의적으로 흐르거나 정규직 중심의 사고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최근 기아자동차에서 보여 지고 있는 일부 정규직 조합원의 극악한 모습은 이런 대공장 정규직노조의 단면을 대표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계급투쟁을 선도하던 전초기지였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점차 고립된 성(城)이 되더니, 지금은 계급투쟁의 대륙에서 떨어진 섬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현대자동차는 비정규직 주체들이 끊임없이 싸움을 해오면서 정규직과 연대하려 하고, 일부 정규직 활동가들도 몇 년간 이 문제를 놓치지 않고 부여잡으면서 투쟁을 이어왔기에 지금 정도라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벌어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 정규직 조합원들의 실리적 경향과 그에 편승해서 더욱 자극하는 정규직 활동가들의 우경화, 그런 현실을 통제하면서 관료적으로 수렴하려는 대공장 노조체계는 더욱 강해져만 갈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조직 잘 만들고, 그 힘을 키워서, 제대로 된 집행부를 구성한다고 이런 문제가 극복될 수 있을까?
노조권력 장악을 위한 권력투쟁의 정치가 판치는 현실에서 그런 식의 방식으로 뻘밭을 바꿔낼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설사 그렇게 노조권력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섬 안에서의 투쟁을 넘어서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노조권력 장악을 위한 활동을 포기하거나 섬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도피행위일 뿐이다.

그동안 1공장 노동자학교와 같은 시도처럼 현장에서 계급적 단결을 이뤄내기 위한 시도들은 계속 돼야 하지 않을까?
점점 희망이 보이지 않고 힘들어 지더라도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장에서 계급적 단결을 이뤄내기 위한 시도를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노력이 계속 되는 한 자본의 일방통행은 계속 걸림돌을 만날 것이고, 대중의 실리주의나 보수화 경향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주노조운동과 현장조직운동의 역사 속에서 확인된 이런 원칙들을 잊지 않고 지금 현실에 계속 부여잡고 있는 한 계급적 단결을 위한 대중적 매개고리는 분명히 나타나게 돼 있다. 그것이 현장권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힘들지만 가야할 길이지 않을까?
최근 두원정공의 이기만 동지를 만나서 두원정공에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강력한 현장권력을 만들어낸 과정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얘기였다. 그 내용을 같이 보낼 테니 한 번 읽어보고 현대자동차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봐라.

그런데 계급투쟁의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섬은 섬 자체를 바꾸는 것만으로 대륙과 쉽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상급조직의 권력을 장악한다거나 의회주의적 진출 등의 방식으로 대륙과 연결된다는 환상은 섬을 대륙에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섬 자체를 바꿔내려는 노력과 함께 섬을 대륙과 다시 연결하기 위한 시도를 함께 해나가지 않으면 섬 안에 갇혀 좌충우돌할 뿐인 것이 현실이다.
그 길을 먼저 간 것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공장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목적의식적으로 대공장 노조 밖을 바라보면서 그와 결합하려고 노력해야 조금이라도 대륙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섬 안에서의 비정규직 문제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전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비정규직 투쟁을 바라보면서 그와 결합하려는 고민이 함께 돼야 한다.
또 지역의 여러 중소사업장이나 영세사업장 투쟁에 결합하는 것이 옛날처럼 자연스러운 현장활동의 하나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렇게 연대투쟁은 현장 안과 밖의 구분이 없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 없이 노동자가 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다시 자리 잡혀야 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연대투쟁 속에서 여성의 문제와 결합할 수 있고, 사회공공성의 문제와 결합할 수 있고, 환경문제와 결합할 수 있으면서 운동은 확장되고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으면서 일상적인 활동이 계속 쌓이고 쌓인다면 어느 순간 대륙과 섬의 통로는 다양하게 생기게 되고, 그런 가운데 섬은 다시 대륙에 연결되는 것이다.

현장을 바꿔내고 지역과 전국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현장과 지역(전국)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활동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제도화 돼서 시야를 가둬놓는 노동조합의 틀을 넘어서야 하고, 그런 노동조합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투쟁기관으로 전락한 현장조직의 관성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활동을 머리에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만들어내야 한다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엄길정 동지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서 한 번 생각해봐.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조금씩 그 가능성을 만들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요즘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을 읽고 있다.
10년 전에 사놓고 읽다가 포기한 것을 다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12권이나 되는 것 중에서 지금 4권 째를 읽고 있는데 좀 인내심이 필요하더군.
그동안 대하소설 읽기를 몇 차례 시도했었지만 한 번도 끝까지 읽은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꼭 다 읽고 말리라는 각오를 불태우고 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역사를 호흡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의 점령에 맞서 의병투쟁에서부터 다양한 형태의 저항들이 조직되는 속에서 저항 형태와 완강함에서 계급적 차이가 나타났다. 또 격렬한 저항이 힘에 밀린 이후 암울한 상황에서 또 다른 저항의 전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도 계급적 차이가 나타났고, 그 속에서 끝임 없이 분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물론 저항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에 빌붙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고, 그 뒤에 줄을 서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도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계급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하지.
그런 역사적 흐름을 읽으면서 어떤 계급과 함께 호흡하느냐 하는 것과 해방의 전망을 만들어가는 역사적 안목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단호할 때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해야 하고, 어려울 때는 잠시 멈춰 서서 숨고르기를 하더라도 우회하지 않고, 어떤 대중의 입장에서 어떤 사상을 갖고 투쟁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했다.
역사의 무침 속에 호흡을 잃지 않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낮은 곳으로 몸과 마음을 향하면 대중의 숨소리가 심장에 와 닿는다.
그리고 앞과 뒤로 멀리 바라보면 역사의 흐름이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은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참 오래간만에 누군가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가슴 따뜻함으로 다가와서 행복하다.
요즘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많지 않아서 많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엄길정과 함께 몇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아프면 아픈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것처럼
외로우면 외로운 사람이 더 많이 생각난다.
그 힘겨움과 외로움을 쓰다듬어 주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다시 확인한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저녁이 편안하고 행복한 것처럼
이 편지를 읽고 있을 엄길정의 저녁도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길 바란다.


2007년 10월 8일

일산에서 성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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