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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어두운 그림자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어두운 그림자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노동운동의 화두가 대중적으로 외쳐진지 10년 가까이 되면서 거대하게 진행 중인 현재진행형의 과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산별노조가 좀 더 대규모로 진행되어야 제대로 된 산별노조가 정착되고, 정치세력화는 좀 더 힘을 집중하면 집권까지의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자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와중에 산별노조나 민주노동당 안밖에서의 크고 작은 문제는 내부 시스템을 점검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거나, 정파간 권력투쟁으로 치부하면서 현재의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얘기한다.
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현실의 운동에서 심각한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대세가 울산지역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울산에서의 산별노조 운동은 크게 세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처럼 처음부터 거대 단일노조로 출발했거나, 공공부분의 발전노조와 사회보험노조 등 소산별노조로 출발한 경우이다.
이들 산별노조의 경우는 출발에서부터 무수한 탄압에 직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투쟁들을 벌이면서 산별노조로서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 역사가 10여 년이 넘는 전교조에서부터 노동조합으로 출범하지 몇 년 되지 않는 공무원노조 등 역사적 경험의 차이들은 있지만 현재 보여주고 있는 활동형태에서는 유사한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투쟁 속에 출발한 산별노조는 초기에 노조에 대한 탄압을 극복하고, 노조로서의 안정성을 획득하고, 정당한 노동3권을 쟁취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그 투쟁과정에 대해서는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실제로 탄압에 맞선 투쟁 이후 보여 지는 활동에서는 계급적 연대성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규모가 크든 작든, 역사가 길든 짧든, 이들 산별노조는 단일노조로서 노동조합 자체의 안정적 운영에 치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전교조나 공무원노조 같이 거대노조의 경우는 그 규모자체가 크다보니 본조와 지역지부(또는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일선 분회(또는 지부, 지회)에서의 일상적 현장활동과 현장투쟁은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역지부(또는 지역본부)의 상근간부들이 무수한 업무에 치이면서 현장조직력과 지역에서의 활동력을 점차 소진시키고 있다. 소산별형태인 발전노조나 사회보험노조의 경우도 역시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지역차원의 안정적 운영도 제대로 되지 못하면서 산별차원의 지침을 지부나 지회에서 수행하는 역할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산별노조의 틀을 넘어서는 지역연대활동은 시민운동적 수준의 활동으로 전락하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또 산별 내의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계급적 사안이나, 교육개방이나 사유화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정치적 투쟁에 대해서는 본조 차원의 형식적 지침을 알리는 활동 이상으로 적극적인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규직을 중심으로 조직된 전국적 단일노조 수준에서 현상태를 유지하는 활동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보건의료노조와 같이 연맹단계의 공동투쟁을 통해 산별노조로 전환한 경우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노련 시절에서부터 다양한 공동투쟁을 벌이면서 그 힘으로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울산에서도 울산대학교병원, 울산병원, 동강병원 등 대규모 사업장과 중소사업장들이 오랜 기간 크고 작은 투쟁들을 벌이면서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그러나 병원노련 시절에서부터 현재의 보건의료노조 시기까지 공동투쟁이라는 것이 특성별 협상을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특성화된 업종의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투쟁의 동질성이 강화됐다. 그 결과 계급적 동질성이나 지역적 연대성은 산별노조 운동에서 사라졌고, 울산의 경우 같은 산별노조 안에서도 지부간 연대투쟁이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응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산별총파업은 중앙집중투쟁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면서 그 위력을 상실했고, 지역은 공동화된 상태에서 각 지부별로 각개약진하고 있는 것이 현재 보건의료노조의 현실이다.
그런 속에 본조 집행부의 관료적 사업작풍으로 인해 서울대병원을 시발로 보건의료노조 탈퇴가 이어지고, 울산에서도 울산대병원지부가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하면서 현실적으로 보건의료노조의 존재자체가 무의미해져 버렸다. 그 결과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운동은 산별노조의 관료화 심화, 본조와 지부가 분리되어 각개약진 하는 무늬만 산별노조, 비정규직 문제와 의료개방 등에 대응하지 못하는 정규직 중심의 조합주의 운동으로 급속히 퇴행하고 있다.

셋째는 금속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금속노조로의 전환운동이다.
울산지역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금속사업장들의 투쟁이 지역노동운동을 이끌어오던 가운데 2000년부터 금속연맹 차원에서 산별노조 전환투표를 시도하면서 금속노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자동차부품업체들을 중심으로 한 중소사업장들이 금속노조로 전환한 가운데 대공장에서 산별전화 투표들이 지연되거나 부결되면서 산별노조로 전환한 중소사업장과 전환하지 않은 대공장간의 분리가 심화됐다.
현대중공업은 현장조직력이 붕괴되고 기존 활동가들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산별전환 실패와 금속연맹 제명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맞이했고, 현대자동차는 현장조직들간의 산별형태에 대한 이견과 산별전환운동에 대한 문제제기 등으로 인해 산별전환에 실패하면서 대공장 정규직 조합주의운동으로 급속히 변질되어 버렸다.
한편 금속노조로 전환한 중소사업장들의 경우는 지부차원의 단일한 활동을 벌이고는 있지만, 지역 중심성 보다는 본조의 지침에 의한 산별파업과 지회를 중심으로 한 일상활동으로 이완되면서 지역지부는 점차 구심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대덕사 투쟁으로 촉발된 부품사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같은 중대한 투쟁사안에 대해서도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완성사와의 공동투쟁은 요원하기만 한 채로 투쟁을 끝내야 했다. 또 지부 임원선거에서도 후보를 내지 못해 한 차례 연기한 후에 기존 임원들을 중심으로 다시 출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현실의 주요 투쟁과제로 떠오른 사내하청 조직화와 불법파견 투쟁에 대해서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조합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투쟁에 소극적으로 연대하는 것 이상으로 금속노조 울산지부나 금속연맹 울산본부 차원의 대중적 현장투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금속노조 전환운동은 형식적 전환운동의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의 문제, 지역지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투쟁의 문제 등 그 동안 누누이 제기됐던 문제들을 현실로 드러내면서 계급적 산별노조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노동자 징치세력화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진전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울산 북구이다. 국회의원과 구청장, 시의원과 구의원 등 다수가 민주노동당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울산 북구는 행정과 의회에서 민주노동당이 여당으로 위치 지워져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장악한 울산 북구는 당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 심각하게 괴리되고 있다.

대덕사 투쟁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을 중심으로 대중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지만 민주노동당은 대중투쟁에 유의미하게 결합하지 못했다. 치열한 대중투쟁 앞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과 함께 시·구의원들이 농성장을 방문하거나, 노동조합 임원들과 간담회를 갖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것 이상의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현장대중투쟁에 대한 무기력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민주노동당 소속이 아닌 현대자동차 집행부에 대해 현안투쟁에 적극적으로 임해줄 것을 주문하면서도, 막상 현장에 있는 민주노동당 소속 당원들을 통해 당면투쟁을 좀 더 대중적으로 강화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울산광역시자치단체비정규직노동조합 단협체결투쟁에서 민주노동당이 여당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북구청을 상대로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그 과정에서 구청 관계자들과 마찰이 발생할 정도로 민주노동당 운동의 정체성을 의심스럽게 할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장투쟁에 대해서는 현장당원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전개하도록 방치하면서, 선거국면에서는 투표를 조직하도록 명확한 방침을 결정하고 현장 당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현재 민주노동당 운동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렇게 민주노동당의 운동은 지역에서의 행정권력과 의회권력 장악을 위한 의회주의 활동으로 점차 경도되면서 현장과 분리되거나 때로는 대립하고 있다.

내년 지방자치제 선거를 앞두고 후보선출을 위한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과 최근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민주노동당의 민주노총으로부터의 분립은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동안 현장활동가들과 여타 정치세력들에 의해 강하게 문제제기 됐던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근거로 해서 민주노총의 일방적 지지를 통해 당원을 확대하고 선거에서 소기의 성과를 이루어냈던 민주노동당이 이제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무력화시키는 사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년 지방자치제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과정에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민주노총 후보를 선출하고 민주노동당 후보로 확정하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제안을 거절했다. 급기야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는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후보 선출방침을 무시하면서 민주노동당 중심의 후보선출을 강행하면서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심각한 마찰을 빚었다.
이에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장우 정치위원장이 “울산지역 민주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이 민주노총 후보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민주노동당으로 개별등록한 것은 노동자후보가 노동계급의 대표후보가 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의 계급성 강화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정치위원회 보고서를 공개적으로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민주노동당 경선을 통해 후보를 확정한 이후 민주노동당측에서 민주노총 울산본부에 사과를 함으로서 사태는 봉합됐지만, 민주노동당의 민주노총으로부터의 분립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시키고, 관료화된 산별노조와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로 변질될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무수히 있어왔다. 그러나 그런 문제제기들을 패권적이고 관료적인 방식으로 무력화시키면서 진행시킨 결과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아직도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규모를 키우는 형식적 전환투표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치세력화는 민주노동당 중심의 의회주의 전략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 대공장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산별노조 자체도 조합주의 운동으로 고착되면서 비정규직 투쟁과 같은 계급적 사안을 등한시 하고 있고, 당운동과 대중운동이 분리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대중투쟁은 당의 선거전략으로 복속되고 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운동의 질곡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그 결과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는 오히려 퇴행적 형태로 후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관료적 산별노조에 대한 반대로 계급적 산별노조를 주장하고,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에 대한 반대로 혁명적이고 계급적인 정치세력화를 주장한다고 현재의 문제가 극복되기는 어렵다. 또 계속 현장만을 강조하면서 현장투쟁만을 조직한다고 극복의 실마리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노동조합운동과 정치운동을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적 운동을 조직하면서 조합주의적 산별노조운동과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운동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계속적으로 크고 작은 투쟁들이 이어지고 있고, 비정규직투쟁들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들 투쟁을 강화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지역차원의 공동투쟁에 대한 시도들을 본격화해야 한다.
과거 현장조직대표자회의 운동, 근골격계 투쟁에서와 같은 투쟁현안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 공투체운동, 지역공투체 운동 등 노동조합과 정치조직과 다양한 단체 및 개인들이 결합해서 함께 대중투쟁을 벌였던 경험을 다시 새로운 형태로 되살려야 한다. 그런 속에서 조합주의 틀을 넘어서는 대중적 전망을 만들어내고, 대중적 정치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결집을 위한 매개로서 작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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