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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 진정 국공립어린이집은 있는가?!

국공립어린이집이라는 모래성

전국의 어린이집 수는 28,000여개. 그중 ‘국공립어린이집’이라는 이름의 시설은 4.8%에 지나지 않는다. 취학 전 아이를 가진 부모는 대부분 이 4.8%의 시설에 자녀를 보내려고 대기번호표를 뽑고 2,3년을 무던히도 기다린다.
그러나 부모들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들이 매력적으로 느낀 ‘국공립’이라는 시설은 결코 국공립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공립어린이집은 대부분 정부의 직영이 아닌 민간에 위탁 운영되고 있다. 사회복지관이나 자활후견기관과 같은 복지시설 역시 대부분 민간 위탁되어 운영되지만, ‘국공립’이라는 단어를 용감무쌍하게 붙인 분야는 보육뿐이다.
당신은 왜 지자체가 세운 국공립어린이집에서도 민간어린이집마냥 잡비를 종종 걷고, 재정문제를 호소하는 지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서울의 어린이집 중에는 뜬금없이 여행사나 건설업체가 위탁체로 운영 중인 어린이집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기 힘들 것이다.
시민의 입장에선 국공립어린이집이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어린이집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상 정부와 지자체의 입장에선 민간에 위탁을 준 상태이므로 재정 지원도 수세적이고 각종 책임에 대한 부분에서 외면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국공립시설 비리가 터져도 보육노동자의 양심선언이 있기 전까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며, 이후 학부모와 보육노동자의 행동이 없다면 원장은 계속 자리를 유지하고 영원히 미해결 과제가 되어버린다. 그동안 여행사나 건설업체 같은 무분별한 위탁체 선정이 이러한 상황을 부채질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공립도 장사를 잘해야 지원금 준다!

현재 보육을 관할하는 여성가족부는 지난 2004년부터 국공립어린이집의 교사인건비 지원 비율을 영아반의 경우 90->80%로, 유아반의 경우 45->30%로 축소시켰으며, 이후 0%를 목표로 점점 더 축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건비는 어린이집 재정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항목이다. 따라서 국공립어린이집의 인건비 지원비율의 축소는 시설 운영의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동한다. 그나마 지원한다는 인건비 역시 지정된 아동 수가 채워져야 지급하는 조건부 지급이다. 실제 경기도의 한 국공립어린이집은 2005년 초 원아모집이 지정 아동수보다 적어 인건비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그 결과 한동안 근무 중인 교사들의 인건비가 깎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역으로 이러한 시장 논리적 상황을 이용하여 보육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박탈하는 사례도 있다. 울산 반구어린이집의 경우 원장이 노조에 가입한 보육노동자들을 내쫓기 위해 원아모집을 해태하고 경영 악화를 유발시킴으로써 보육노동자에게 해고를 통보하였고 1개월 사이 반의 담임을 3번이나 교체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자행하였다. 이로 인해 보육받는 아이들은 야뇨증, 정서불안 등을 호소하였고, 보육노동자는 해고를 통해 생존권을 박탈당하였다.
당직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을 봐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시간대와 무관하게 아동이 1명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1명 이상의 보육노동자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직시간에 남아있는 아동 수에 비례하여 당직수당이 틀려지는데, 이는 보육현장에 대한 몰이해와 정부의 시장논리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렇듯 어린이집은 정부의 ‘생산적 복지’라는 이상한 구호 속에서 아동유치 경쟁에 몰입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인건비가 0%되는 대신 아동별 기본 보조금을 주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4.8%밖에 안 되는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기는 커녕 그나마 안정적인 시설지원금 공급을 통해 공공성을 유지하던 국공립어린이집조차 모두 민영화하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여성가족부와 지자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울산 반구어린이집 원장과 같이 의도적인 경영악화와 아동의 정서불안을 유발시키고 콩 5개, 멸치 5마리라는 부실 급간식을 제공하여도 여성가족부와 지자체는 ‘원장이 사용자니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발뺌하기 일쑤다. 예전 서울 도봉구의 한 구립어린이집 역시 먹다 남은 음식물로 꿀꿀이죽을 만드는 원장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교사들의 양심선언에도 불구하고 구청에서는 '위탁을 줬으니 원장의 책임'이라며 면피하기 급급했다.
그러나 기실 행정지침을 통한 정부와 지자체의 보육환경 통제는 우리의 상상을 불허한다. 올해 초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임금지침에 의하면 보육노동자 임금에 시간외수당 40,000원이 포함된 포괄임금제를 도입함으로써 장시간 초과근무에도 불구하고 시간외수당 지급이 원천 봉쇄당한 상태이다. 또한 실제 월급 자체가 지난해보다 삭감되기까지 했다.
정부는 '지침'이 그저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하지만 매년 여성가족부와 지자체가 발행하는 보육사업안내 지침은 재정 지원, 행정조치 등을 무기로 어린이집에서 헌법과 같은 영향력을 미친다.
결국 여성가족부와 지자체는 행정지침을 통해 실제적이고 강력하게 보육현장을 통제하고, 시민에게 보육공공성 확보를 위한 정부의 성과인양 호도하면서, 민간 위탁과 민간개인의 진입 허용으로 보육 공공성 확보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위탁 철회하고 보육의 직접적 책임을 인지해야한다

저출산 시대를 맞이하면서 보육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공공성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 민간보다 낫다는 국공립 시설조차 현실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민간위탁에 대한 재정이 고정적인 인건비 지원 중심이 아닌 유동적인 아동 수에 따른 지원으로 변동하게 되면 안정적 보육환경 조성이 아닌 아동유치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시설의 재정 안정도가 크게 흔들리게 된다. 재정 안정도 하락은 시설 투자의 부재, 보육노동자의 노동 강도 강화와 해고를 유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피해 받는 이들은 결국 보육받을 권리를 가진 우리네 아이들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시설 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위탁이라는 이유로 그 책임을 회피한다. 이러한 시설들에 국공립어린이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시민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는 기존 국공립어린이집의 민간위탁을 해지하고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
질 좋은 보육서비스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보육노동자의 고용안정 쟁취와 안정적 보육환경 수립을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직접 인건비를 지급함으로써 경제논리와의 고리를 끊어내고 원장이 저지를 수 있는 비리를 사전에 차단시켜야 한다.
한편 시설 운영에 있어서 보호자와 보육노동자, 지자체 관련 인사, 지역시민사회단체 등이 고루 참가하는 운영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운영 전문성과 시설 민주화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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