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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지문채취와 전자감시사회

전자지문채취와 전자감시사회


홍석만, 사회진보연대 간사

1. 전자감시의 현황
최근 몇 년 전부터 전자감시와 관련된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자주민카드와 관련된 논쟁으로 시작된 우리사회의 전자감시와 관련된 문제들은 국가기관에 의한 전자감시통제에 국한되지 않고 노동현장과 생활영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정공에서는 노동자들의 작업을 감시하기 위해 RF카드라는 것을 도입했다. 이 RF카드를 소지한 사람이 어디로 움직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자기판을 통해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금화교통은 운영하는 버스에 CCTV를 장착해서 운전기사들뿐만 아니라 승객들의 움직임까지도 녹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노동현장으로 확산되고 있던 전자감시체계가 최근 들어서는 컴퓨터 통신공간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텔 펜티엄 III 칩에 장착된 PSN이라는 컴퓨터 고유번호 시스템이다. 어떤 개인이 컴퓨터를 이용해 인터넷이나 컴퓨터 통신망을 돌아다닐 경우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동으로 이 PSN을 불러 읽는다. 만약 컴퓨터 이용자의 컴퓨터 고유번호가 등록되어 있지 않거나 고유번호를 불러 읽지 못하게 한다면 그 인터넷 사이트를 볼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PSN 사용이 광범위하게 된다면 특정 개인 또는 특정 컴퓨터의 모든 인터넷 이용기록이 남게 된다. 고유번호를 통해 수집된 이러한 정보들은 내가 어디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려주는 정보가 된다. 심지어 공개를 꺼려하는 은밀한 정보까지 남들에게 새어 나갈 수 있다. 컴퓨터 통신이 하나의 기초적인 생활수단으로 자리잡힌 현재의 상태에서 개인의 관심사와 주요 활동상황은 인터넷 이용현황으로도 충분히 파악가능한 일이다.


2. 전자지문과 관련된 쟁점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의 전자지문 채취는 전자주민카드제 논쟁에 이어 다시 전자감시통제에 대한 상당한 논란거리들을 만들고 있다. 우선 전자지문과 관련해서 지문정보의 특성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문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지문정보가 전산입력이 되어 있으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이유로 지문은 홍채, 치아구조와 함께 인증시스템(사람을 확인하는 시스템)으로 기술개발이 되어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가끔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디지털로 채취된 지문정보를 입력해 놓은 상태에서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대면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 바로 지문을 통한 인증시스템 방식이다. 주민등록 갱신과 함께 전자지문 채취가 문제가 되는 것은 전자지문의 이용을 더욱 보편화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지문전산화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있다. 주민등록증 갱신에서 오른쪽 엄지손가락의 전자지문채취 이전에 벌써 경찰은 조회 목적으로 특수 전과자에 한하여 지문 자동 인식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으며, 이 시스템은 엄지의 특징점을 추출하여 지문을 인식하고 있다. 실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국민 전자지문채취의 방식과 운영시스템이 모두 동일한 것이다.

또한 경찰은 이미 지난 90년부터 지문 전산화 작업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65년생 이하 남성 800만 명과 여성 370만 명 등 도합 1170만 명의 열 손가락 지문 모두를 전산화시켰다고 한다. 또한, 지난 5월 대학가 시위 때에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면서 전자지문감식기를 역이나 고속터미널, 대학가 주변에 가지고 나와서 지문을 전자감식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지문전산화는 국가에 의한 전자적인 감시통제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앞의 예와 같이 지문감식기의 이용이 보편화될 경우, 지문감식기를 통해 손가락을 대기만 하면 주민등록정보는 물론 모든 개인정보가 다 나타나게 된다. 한가지 단적인 예를 들면, 현재는 불법적인 불심검문을 받을 때 주민등록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줘야 하지만, 지문이 디지털로 되면 지문감식기에 손가락을 대면 모든 게 지문인식기를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다.


3. 전자지문과 전자주민카드의 관계
지문의 전산화와 전자 지문채취가 이처럼 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전자적인 방식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편 새로운 주민등록증 발급과정 전체가 전자주민카드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자주민카드제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주민정보의 통합, 중앙집중적인 발급 시스템과 동일한 방식으로 주민등록증 발급도 중앙정부에서 주민정보를 통합하여 조폐공사에서 일괄적으로 카드를 제조하고 있다. 또한 전자주민카드 발급을 위해 미리 구입해 둔 전자주민카드용 카드원판과 카드제조기, 주전산기 등을 이번 주민등록증 발급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IC칩(전자칩)만 빠져있을 뿐 모든 장비와 운영시스템은 전자주민카드 시행계획에 나와 있는 그대로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IC칩(전자칩) 대신에 전자지문이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자지문이 지문 자동인식 시스템에 의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건물을 출입할 때에도 지문감식기에 손을 대고 들어가야 하고 만약 금융망이나 다른 정보망과 연결되면 전자주민카드와 똑같이 될 것이다. 지문이 바로 현금카드이자 신용카드가 될 것이고 주민등록증이 되는 것이다.

결국 새 주민증은 주민증 자체의 수록내용이 조금 축소되었고 IC칩 대신에 전자 지문을 사용한다는 차이 외에, 발급시스템과 운영체계가 전자주민카드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전자주민카드제가 폐지된 것이 아니라 기만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4. 문제는 효율성?
정부와 경찰은 지문날인제도에 대해 간첩이나 범죄자 색출, 대형사고시 시신확인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남북분단상황이라는 냉전논리를 앞세워 연관성도 없는 지문과 간첩문제를 연결시킨 것도 궁색하다. 또 경찰은 지문만 있으면 범인 검거는 시간문제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전국민 지문날인제도를 시행하지 않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 경찰의 범죄자 검거율이 더 떨어지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범죄자 검거 실패에 가장 큰 원인은 민생치안의 공백과 경찰의 늑장대응에 있다. 결국 범죄발생을 줄이고 범인 검거율을 높이려면 경찰의 기풍과 조직을 쇄신해야 할 문제이다. 또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방법은 지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지문이 있어서 사용되지만 사망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전국민의 지문이 필요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범죄수사와 시신확인에서의 필요성 등 효율성으로 지문날인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욱 큰 문제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범죄수사와 시신의 신원확인에 더 정확하고 효율적인 유전자정보원을 설치하자는 주장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모든 국민의 유전자 정보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문을 국가에게 제공하는 것은 유전자 정보를 주는 것과 사실상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지문전산화의 도입을 용인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볼 때, 더 강한 감시체계의 도입이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5. 지문날인 거부운동으로 다시 시작하자
전자감시와 프라이버시 침해 등 인권침해의 논란과 국가 감시통제의 문제를 야기했던 전자주민카드제도는 지난 99년 4월 26일 주민등록법이 다시 개정되면서 수많은 논란 끝에 종지부를 찍었다. 전자주민카드의 폐지에 대해서는 경제, 정치, 사회적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이 전자주민카드제도와 같은 위험한 신분증명제도에 대해서 반대하여 폐지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민주적인 성장에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번 주민등록증 일제 갱신과정은 발급 시스템은 물론 발급 장비, 형태에서도 실제로 전자주민카드제도와 많은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또한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제도라고 불리는 전국민 지문날인제도를 여전히 유지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전자지문으로 다시 채취하고 이미 채취해 놓은 지문을 전산화시키고 있다.

전자주민카드가 폐지되었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어쩌면 정부와 공안기관은 이를 대체할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스스로를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보주체인 개인 스스로가 자기정보를 조절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의지이다. 이러한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가 있더라도 지금과 같은 현대사회에서는 스스로를 지켜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전자지문의 경우 내 신체의 일부를 복사하여 전자화시키는 일이니 만큼 무엇보다도 정보주체인 개인들 스스로가 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국가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자신의 정보와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지키고자 하는 권리와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요구된다. 지문날인 거부운동은 이러한 행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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