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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분야의 지적재산권 관련 현안과 대응방안

정보통신분야의 지적재산권 관련 현안과 대응방안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기술팀장

1. 들어가며
지적재산권은 기술의 발전과 그로인한 사회, 경제적인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계속 변화해왔다. 그리고, 현재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 정보통신기술 역시 경제구조나 사회적인 정보전달방식 등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적재산권 영역에서도 그 변화를 수용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정보통신기술 자체의 지적재산권 문제를 다루기 보다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환경의 변화, 예를 들어 저작물의 생산과 유통방식의 변화가 야기하는 지적재산권, 특히 저작권과 관련된 쟁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런 쟁점들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새롭게 등장한 저작물, 예를 들어 데이타베이스, 멀티미디어 저작물 등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저작권법에서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하는 문제, 그리고 온라인 전송, 위성방송, 쌍방향 케이블방송 등의 새로운 정보유통방식이 야기하는 저작권의 문제에 대해서 엄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저작권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곧 어떤 방식으로든 '권리'의 변동(무엇을 새롭게 권리로서 보호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것인지)에 관련된 것이라고 했을 때, 여기에 작동하는 현실적인 이해관계 및 각 세력간의 힘 관계와 이러한 변화가 사회 전반에 미칠 수 있는, 혹은 이미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 고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고찰을 이 글에서 감당하기는 힘들 듯하고, 여기서는 다만 정보통신기술이 야기한 지적재산권 문제와 관련된 현안을 살펴보며, 그것이 제기하는 쟁점과 대응방안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2. 저작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환경의 변화
먼저 저작권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 환경의 변화를 살펴보자.
첫째,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
현대의 모든 정보들은 비트로 변환되고 있다. 즉, 디지털화된 정보들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아날로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정보들은 제각각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즉, 영화라든가 방송물, 출판물, 음악이나 그림 등은 모두 나름의 독특한 존재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 양식의 차이로 인하여 이러한 정보들이 서로간에 변환되거나, 융합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또한 정보들을 복사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에도 매체의 특성이나 기존의 물류운송체계에 의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정보들이 모두 디지털화된 형태로 만들어짐에 따라, 이들 정보에 또다른 중요한 함의가 부과되었다. 이러한 정보들이 모두 '동일한 형태'로, 즉 비트로 전환될 수 있게 됨에 따라서 서로 다른 형태의 정보들 사이의 합성이 가능해졌다. 이제 컴퓨터를 이용하여 동영상이나 음성, 정지화상, 텍스트 등을 상호 결합시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 되었다. 또한 디지탈화된 정보는 저장과 복사가 무척이나 용이하며, 아무리 복사를 하더라도 정보의 질에 전혀 손상이 가지 않는다. 한편 네트워크의 발전은 정보의 유통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면, 전세계 어느 곳이든 한순간에 정보를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정보유통의 공간적인 한계는 거의 무의미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현장 사진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카메라에 찍힌 화상 데이터를 컴퓨터에 옮겨 저장한 후, 인터넷을 통해 미국으로 전송하여 TV방송이나 컴퓨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그 자체로 보면 정보의 생산 및 유통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적인 기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보를 상품화시키려고 하자마자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를 안게된다. 먼저 컴퓨터를 통한 원저작물의 편집, 가공, 변형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새로운 저작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원저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의 변형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물론 원저작자가 그것을 막고자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안되겠지만)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멀티미디어 저작물은 어떻게 저작권을 규정할 것인가? 또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혹은 복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저작물의 자유로운 유통에 저작자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문화의 산업화
저작권법이 '산업의 관점'에서 점차 중요한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저작권법은 문학, 예술 분야의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 주로 문화영역과 관계된 것으로 인식이 되어 왔다. 하지만, '문화산업'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갈수록 문화는 산업화되어 가고있다. 날로 비대해지는 영상산업(TV, 영화로부터 CD-ROM, 케이블TV, 위성방송 등으로의 확장), 노래방, 게임방 등의 급속한 확장, 교육 비용의 증가와 대학의 상품화, IP(Information Provider), CP(Contents Provider) 활성화 등. 이제 삶이나 문화는 경제와 별개의 영역이 아니며, 전체 산업에서 지식, 문화,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이미 저작권법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면서도 지금 그토록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전세계적인 저작권 보호의 강화를 부르짖는 것도 자국이 문화, 정보산업에서 경쟁력을 갖고있기 때문이 아닌가. 지식, 서비스, 문화 등이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즉 이러한 것들을 상품화시키기 위해서는 저작권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저작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모든 것들이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기능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문화가, 그래서 저작권이 산업의 관점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것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이러한 문화, 서비스, 교육, 정보의 생산이 기업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영상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도 기업이고, 정보고속도로의 인프라와 내용(Content)을 생산하는 것도 기업이다. 즉, 실제 정보의 생산자는 기업의 노동자화 되고 있으며, 저작권을 실제로 소유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작자, 즉 기업주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3. 현황
■ WIPO 저작권 조약 및 실연, 음반 조약 체결
정보산업 및 문화산업에 경쟁력을 갖고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은 이전의 지적재산권법으로는 정보의 디지탈화 및 네트워크화에 따른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제할 방법이 없자, 디지털 기술을 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색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를 통해 이루어졌다. WIPO에서는 1991년부터 6년 동안 전문가위원회 회의가 진행되었으며, 96년 12월초부터 3주간 외교회의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1996년 12월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세계 120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두 가지 중요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바로 그것은 [WIPO 저작권 조약(WIPO Copyright Treaty)]과 [WIPO 실연, 음반 조약(WIPO Performances and Phonograms Treaty)]이다.
체결된 조약의 핵심은 '디지탈 전송을 저작권법상 이용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즉, 디지탈 전송을 저작권법상의 복사와 배포에 포함되는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디지탈 전송에는 필수적으로 데이터에 대한 복사와 배포가 수반된다. 즉, 어떠한 파일이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옮겨온다고 했을 때, 이전 컴퓨터에도 물론 똑같은 파일이 남아있다. 전송은 파일이 먼저 복사가 되고, 이 복사물이 다른 컴퓨터로 배포된다고 본다.) 이러한 규정에 의하면, 이제 컴퓨터 통신망을 통한 문학, 예술작품 등의 복제 및 전송 혹은 영화, 음반, 뮤지컬 등 실연(실시간으로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는 것)은 금지되게 된다.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이나 음악파일을 다운로드 받아서 그것을 즐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배포하는, 지금까지는 자유롭게 해오던 행위들이 이제 '불법행위'로 규정된다.
이 조약은 각국의 지적재산권 관련 법의 개정을 통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30개국이 이 조약을 승인한 후 이 조약은 효력을 갖게 되는데, 아직은 효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WIPO에서 체결된 이 조약은 각국의 법 개정을 위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안건들은 논란의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제안된 3개의 조약 중 데이타베이스 보호 조약(Database Protection Treaty]은 EFF(http://www.eff.org)나 Public Domain (http://www. public-domain.org), CPSR(http://www.cpsr.org/dox) 등 NGO들의 반대활동에 의해 삭제되었으며, 다른 조약들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 NGO들은 아직 이 조약들이 체결될 만큼, 사회적인 경험과 토론이 무르익지 않았으며,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인류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이 조약들이 체결되기 전에 더욱 광범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제기하고 있다.
NGO들이 제기하고 있는 이 조약들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복제(Reproduction), 통신(Communications) 등에 대한 광범한 규정
'direct and indirect' reproduction of a work, 'in any manner or form'(임의의 방식 또는 형태로 직접·간접적인 저작물의 복제) 등으로 권리의 범위를 너무 포괄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도서관, 연구소 등에서의 공적인 영역에서의 복제는 일시적인 부분에서만 인정될 것이며, 그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 또한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서, 어떠한 정보를 검색하고, 학습할 공공의 권리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법규정은 공공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할 것이며, 새로운 기술개발(예를 들어, 웹을 검색할 수 있는 새로운 검색 엔진같은)을 위축시킬 것이다. 또한 통신의 권리(right to communication)와 결합된 복제의 권리(right to reproduction)를 규정함으로써, ISP들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을 것이다.
2) 네트워크 제공자의 책임
어떤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이용자가 저작권을 침해한 게시물을 네트워크 상에 올렸다면,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사업자(ISP : Internet Service Provider) 역시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서비스 제공업자들은 면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자료의 양이 너무 방대해서 현실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한 게시물을 모니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법은 불법활동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서비스 제공업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정보의 이용과 네트워크 사업의 발전에 저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업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측(저작자의 보호요건의 강화를 주장하는 측)의 입장은 그들 역시 '기여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점이나 음반판매점 등도 배포자로서 저작권 침해에 책임을 지고 있는데, 서비스 제공업자라고 제외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 제공업자들은 침해를 통제할 능력(예를 들어, 저작권을 침해한 자료를 삭제하거나 가입자를 이용해지하는 등)이 있으며, 이용자들에 의해 이익을 얻고 있으므로 저작권 침해에 책임을 짐으로써 드는 비용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NGO들은 서비스 제공업자들에 대해서 책임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서비스 제공업자들에게 책임을 부여한다면 그들로 하여금 사용자들을 검열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척 심각한 문제인데,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서비스 제공업자가 저작권을 침해한 자료뿐만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올린 글에 대해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광범하게 검열이 자행되고 있다. 사용자에 대한 검열은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되어서는 안되며, 네트워크 상에서의 저작권 침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보다 많은 토론을 통해 다른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3) 저작권을 회피하는 기술에 대한 금지
미국 국가정보기관(NII) 지적재산권 작업반은 저작자의 배타적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인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어떠한 장치의 제조, 수입, 판매, 이용을 금지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NGO들은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한 제한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제한할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의 사용은 불법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넷스케이프는 사용자의 컴퓨터에서 디스플레이를 하기위해 문서들을 메모리로 읽어들일 뿐만 아니라, HTML 소스나 이미지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능들은 인터넷을 보다 확장시키고 열려진 형태로 만드는데 공헌하고 있는 것들이다. 또한 그러한 제한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향상된 검색과 인덱싱(indexing)을 위한 도구들(예를 들어 Yahoo 사이트 같은)의 발전이 저해될 것이다.
또한 '보호를 깨는 장치' 에 대한 제한은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도구와 암호화 기술 등에 적용된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경쟁사의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인데, 이를 금지한다면 이미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들의 독점을 강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암호화 시스템은 공공의 테스트에 항구적으로 열려 있어야만, 그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하여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제한은 이런 도구들이 합법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까지 제한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암호화된 자신의 파일을 복구하는 경우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등이다.
4) 데이터베이스의 보호
사실(fact), 추상적인 아이디어, 수학적 알고리즘 등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다. 데이터베이스의 경우 편집저작물(Compilation)에 속하며, 편집저작물의 저작권은 사실이나 자료의 '독창적인' 배열에만 부여되며, 그 사실이나 자료에는 미치지 않는다. 작년 12월 WIPO 외교회의에서 제안된 '데이타베이스 보호조약(Database Protection Treaty)'은 NGO의 반대의견에 의해 삭제되었는데, 사실이나 공공정보에 저작권을 부여할 수 있는 위험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즉, 스포츠의 기록 데이터베이스나 주식시장의 주식거래 데이터베이스 등에도 저작권이 부여되는 등 표현보다는 사실을 저작권으로 보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공공정보를 정부 하도급 업체가 관리,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일 이 조약에 의해 저작권이 부여된다면 공공정보에 대해 저작권료를 지불하게 됨으로써, 이용자들이 공공정보를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이것은 데이터베이스라는 용어 자체가 모호해서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하도록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데이터베이스에 본질적인 수정이 가해졌을 때,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로 규정이 되는데 '본질적'이라는 규정 역시 애매하다. 조그마한 데이터베이스의 수정에 의해 데이터베이스의 보호기간을 다시 시작하게 함으로써, 결국 데이터베이스의 보호기간을 영구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 외에 데이터베이스 보호조약 역시 서비스 제공업자에게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부여한다든가, 보호를 깨는 장치에 대한 제한규정 등 앞에서 문제가 제기되었던 규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5) 일시적 저장의 문제
네트워크 상에서 디지털화된 데이터의 검색이나 송신을 위해서는 램(RAM)이나 캐쉬(cashe)에의 일시적인 저장(Temporary Storage)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자료에도 저작권이 부여되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의견대립으로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램에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것조차 저작권이 부여된다면 우리는 데이터의 검색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6)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려
이 밖에 NGO들은 지적재산권법의 규정에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개개인의 행위가 감시되고, 사적인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서비스 제공업자에게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부여할 때,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건이 있었다. 통신 에뮬레이터 '이야기'로 유명한 큰사람이라는 회사에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불법복제한 사람들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문제는 큰사람이 자신의 프로그램 안에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보가 자동적으로 전송되어오도록 하는 방법으로 이용자 정보를 수집했으며, 고객관리를 위한 이용자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유용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을 찾을 때, 그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고려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97년에는 '96년 외교회의시 논란이 많아서 이후 협의하기로 결의했던, 시청각실연 보호문제와 데이터베이스 보호에 관한 회의가 9월 15일∼19일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다. 즉, 실연자들의 시청각 실연에 대한 새로운 권리 보호를 주 내용으로 새로운 조약 채택으로 연결될 "시청각 실연 의정서 관련 전문가회의(Committee of experts on a protocol concerning audiovisual performances)"와 "데이터베이스의 지적재산에 관한 정보회의(Information meeting on intellectual property in databases)"가 그것이다. 데이터베이스 관련의제에 대해서는 조약 채택의 전제가 아닌 정보 교류회의로 진행되었다. 데이터베이스의 특별 보호에 대해서는 EC를 제외한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깊은 우려와 함께 시간을 두고 충분한 정보교류와 논의를 거쳐 검토하자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고 한다.
■아래한글 문제
98년 6월 15일 한글과컴퓨터는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와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인 아래한글 개발을 전면 중지하고 1년 안에 판매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그 대가로 한글과컴퓨터사에 1천만∼2천만달러(약 140억∼280억원)를 기술개발비로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통신상에서는 2만명이 서명함으로써 최단 시간 최다 서명이라는 신기록을 수립했으며, 사회 각계에서 '글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벤처기업협회, 한글학회 등의 글 살리기 운동에서부터 나모인터랙티브 등 글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회사의 대체 글 개발, 개발자들의 자발적으로 조직된 '열린한글 프로젝트',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지원 계획 등 다양한 의견이 충돌되고, 토론되었다. 한컴은 결국 벤처기업협회가 주도한 '글 지키기 운동본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글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사건은 '전통문화인 한글을 살리자'는 모양새로 진행되었지만, 결국 국내 시장에서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를 국민적 운동을 통하여 살려주는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이 사건은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한글 코드문제같은 기술과 관련된 문제에서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세계적 독점의 문제까지 이 사건으로부터 제기해볼 문제들은 많지만, 여기서는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측면에서만 살펴보겠다.
첫째, '불법복제'에 관련된 문제이다.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 사장은 기자회견을 하며, 이 사태의 원인을 '불법복제가 성행하는 우리나라의 풍토'에 돌렸다. 벤처기업협회 등과 각 언론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이 사건이 '불법복제 방지 캠페인'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불법복제의 피해는 한컴만 입었는가? 오히려 한컴은 글이 초기에 불법복제에 의해서 널리 유포됨으로써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혜택을 입지 않았던가? 한컴의 몰락은 부실경영과 소프트웨어 시장 역시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거대한 자본의 힘에 의해서 굴러간다는 현실에 그 원인이 돌려져야 마땅하다.
둘째, 만일 한컴이 MS에 인수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이 위험은 한 고비를 넘긴 현재에도 끝난 것은 아니다. 한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워드 시장을 장악하였으며 기업에서는 오히려 더욱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워드98을 통해서 거의 모든 한글을 지원할 수 있게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언제라도 글을 제치고 한국의 워드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 한컴 사태 때 많은 지적이 있었던 것처럼 그 혼란과 비용은 고스란히 이용자들이 지불해야 한다. 기존의 글 파일들을 변환하는데 드는 비용과 폐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혀야 하는 학습비용, 그리고 하나의 독점기업이 지배함으로써 입게되는 소비자의 피해까지 모두. 워드는 우리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도구임에도 불구하고(그만큼의 공공성을 띄고 있다는 의미이다) 소프트웨어의 생산과 소비가 지적재산권이라는 체제 아래에서 상품으로 유통됨으로써 시장의 변동과 독점의 폐해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열린한글 프로젝트'(http://www.openhwp.org)같은 오픈소스(open source)운동이 생겨났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이 열린한글 프로젝트는 한컴이 MS에 인수되건 혹은 벤쳐기업협회에 인수되건 관계없는 일이다.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시장이 형성되더라도, '열린한글 프로젝트'는 자체 동력이 유지되는 한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상품으로서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생산, 유통, 소비되는 공유의 자산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픈소스운동의 기존의 경험과 풍토없이 워드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 안쓰러울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적 소프트웨어 - 운영체제를 비롯하여 워드같은 기본적인 응용프로그램-의 경우, 전기, 수도, 전화 등의 서비스와 같이, 경제적, 지리적, 문화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품논리만이 아니라, 공공의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GNU나 열린한글프로젝트와 같이 오픈소스운동에 의해서 추진되거나, 혹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있거나, 적어도 독점적 기업의 횡포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주)큰사람의 사용자 정보 남용
96년 9월경, (주)큰사람은 [이야기 7.3]의 복제본이 불법으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고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 성능평가를 위해 넘겨진 홍보용 제품이 다른 사람에 의해 불법복제되어 전자우편을 통해서 널리 배포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저작권 문제뿐만이 아니라, 개인정보의 도용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문제를 동시에 야기시켰다. (주)큰사람은 사건을 의뢰하면서 2000여명의 불법 사용자명단을 경찰에 넘겼는데, 이 명단의 작성경로와 사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즉, 사용자가 [이야기 7.3] 프로그램을 인스톨할 때, 사용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의 사용자정보가 자동으로 큰사람측으로 전송되도록 되어있었는데, 이는 개인의 동의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더구나 (주)큰사람측이 고객서비스라는 본래의 정보수집 목적 외의 용도로 개인정보를 사용하였다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MP3 파일의 저작권 문제
97년 2∼3월 경,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 등 국내 PC통신망은 통신망 내의 MP3파일을 모두 삭제하였다. MP3는 음악파일의 한 형태로, 압축률이 높아서 3∼4메가의 적은 용량으로도 CD수준의 음질을 낼 수 있기 때문에, PC통신망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왔으며 수백곡이 CD 한 장에 담겨 팔리기도 하였다. PC통신망이 MP3파일을 삭제한 이유는 저작권에 위반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고, 이는 이용자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음악저작권협회와 계약을 맺은 IP들에 의해서 유료로 각 통신망에서 다시 서비스가 재개되었다. 하지만, 저작인접권 문제와 한 회사의 계약 독점으로 다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아직도 음성적으로 많은 MP3 파일들이 유통되고 있다.
이 사건은 96년 말에 WIPO에서 '저작권 조약'과 '실연, 음반 조약'을 체결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탈화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 지적재산권이 기반하고 있는 토대에 대한 비판과 대응방안
지적재산권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정당화되고 있다. 즉, 생산의 동력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라는 것이다. 즉 개개인의 창의성을 불어일으키기 위해서는 창의성의 산물인 지적생산물에 독점적인 소유권을 부여해야 하며, 서로간의 경쟁을 통해서 생산성의 향상을 촉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그것을 그대로 전제하고 있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갖고 있는 모순, 즉 독점기업의 횡포,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의 재생산 등을 그대로 안고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논리는 개인의 창의성을 고무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또다른 방식이 제안되거나 혹은 생산량을 무한히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만다.
이러한 지적재산권 체계의 한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 한계 내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중요하다. 그로부터 즉각적으로 대안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은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지적재산권 체제 내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지적재산권 체제가 한계를 갖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 체제는 사람들이 그 체제에 기반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현실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인정이 이미 벗어날 수 없는 당연한 현실처럼 되어버린 것은, 이미 정보의 상품화가 그만큼 진전되었고, 정보를 팔아먹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적재산권은 사람들의 창의성을 증대시킨다기 보다는 정보를 팔아서 먹고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증가시킨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적재산권과 정보 상품화의 진전은 서로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IMF 이후에 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되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구조조정의 바람이 일고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정보통신 산업으로 뛰어들 것이며, 많은 실업자들이 혹은 신규 노동력들이 정보통신 인력으로 교육받고 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체제 안에서 지적재산권을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대기업의 특허 및 저작권 독점의 폐해, 정보접근의 차별화와 정보격차의 심화, 공공정보의 축소, 공동체성의 파괴 등 지적재산권이 안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 체제 내에서도 '지적재산권 소유자의 권리'와 양립하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을 규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법체계가 '소유자의 권리' 즉 기업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현실을 본다면, 이 지점에서 시민사회가 개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는, 지적재산권 체제를 뛰어넘는 대안적인 생산-유통-소비의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
인터넷을 보자. 현재 인터넷은 갈수록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인터넷에 들어가면, 무궁무궁한 자료들을 '사지않고도' 얻을 수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홈페이지를 통하여 자신의 자료를 올려놓고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이들도 홈페이지를 유료화하기 보다는 간접적인 방법-광고, 혹은 네트워크 밖의 다른 서비스-을 많이 택하고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이 처음 발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문화, 서로 자신의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며, 다른 사람의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정보공유의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턴넷에서는 정보가 상품화되지 않고 공유됨으로써, 오히려 더욱 풍부한 정보를 모든 사람이 향유할 수 있었지, 정보의 생산 욕구를 가로막아 온 것은 아니었다.
지적재산권 체제에 대한 대안, 즉 새로운 생산-유통-소비의 방식에 있어서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는 없다. 다만 끊임없는 아이디어의 제출과 실험적 시도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카피레프트(Copyleft)운동은 그러한 시도의 하나로서 제안된 것이다.

5. 대안으로서의 카피레프트 운동
카피레프트운동은 새로운 사회관계를 위한 모색의 하나이다. 카피레프트는 GNU 프로젝트에서 사용된 개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소프트웨어에 카피레프트(Copyleft)라는 것을 설정하는데, 이것은 저작권(Copyright)를 패러디한 것으로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때 복사·수정의 권리를 함께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사용자들은 카피레프트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자유롭게 복사할 수 있으며, 자신의 용도에 맞게 수정하거나 기능을 향상시켜, 다시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것이 상업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카피레프트는 저작권 라이센스(Copyright License)와 GPL (General Public License)로 이루어지는데, 즉 저작권 설정을 먼저 하고 누구나 복사 및 수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돼 원래의 프로그램 및 어떠한 변형본도 같은 원칙 속에서 배포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배포될 수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카피레프트는 지적재산권 체제를 기반으로 하면서 또한 그것을 부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카피레프트는 어떠한 체제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카피레프트운동이 굳이 소프트웨어 영역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GNU 프로젝트에서 출발을 했지만 학술이나 문화 등 여러 영역에 확장되어 적용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지적생산물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그에 적합한 카피레프트규정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카피레프트운동은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안 워드를 만들고자 하는 '열린한글 프로젝트', 민중가요 MP3파일의 데이타베이스, 노동, 학술, 여성 등 부문네트워크 건설과 함께 추진되는 사회운동 자료의 공동 데이타베이스의 구축 등.
물론 아직 더 다양하고 넓은 영역에서 실험될 필요가 있다. 각 영역에서 개인이나 단체들이 카피레프트를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안하고, 이를 확산시킬 수 있는 캠페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초고속통신망과 저작권],한울 아카데미
오병일, '지적재산권과 Copyleft', 제2회 정보운동포럼 자료집
WIPO(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http://www.wipo.org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http://www.eff.org
Public Domain, http://www.public-domain.org
CPSR(Computer Professionals for Social Responsibility), http://www.cpsr.org/dox
GNU(GNU is Not Unix), http://www.gnu.org
그 외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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