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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감시적 노동통제와 노동규율

전자감시적 노동통제와 노동규율


권순원(서울산업대 강사·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나태와 방탕 또는 낭만적인 자유의 환상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나, 위와 같이 '구빈세의 경감과 근로정신의 조장 및 매뉴팩처에서의 노동가격 인하를 위해서', 자본의 충실한 대변인인 우리의 에르카르트는 공적 자선에 의지하고 있는 이러한 노동자, 한 마디로 말해서 피구휼민을 하나의 '이상적 구빈원'에 가두어두자는 든든한 수단을 제안한다. '이러한 집은 공포의 집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자본의 혼이 아직 꿈만 꾸고 있던 1770년의 피구휼민을 위한 '공포의 집'이 불과 몇 년 뒤에는 매뉴팩처 노동자 자신을 위한 거대한 '구빈원'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공장이라고 일컬어진다.

(K. Marx, 김영민 역, {자본} Ⅰ-1 ; 345∼ 347)


공장제도에서 비로소 성숙할 수 있는 온상을 발견한 사회적 생산수단의 절약은 자본의 수중에서 동시에 작업 중에 있는 노동자의 생활조건―공간이나 공기 또는 광선―의 조직적인 강탈과 그리고 노동자의 위락시설 따위는 전혀 논외로 하더라도 생명에 위험하거나 건강에 유해한 생산과정의 갖가지 사정으로부터의 인체 보호수단에 대한 조직적인 강탈로 나타난다. 푸리에(Fourier)가 공장을 '완화된 감옥'이라고 부른 것을 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K, Marx,{자본} Ⅰ-2 ; 521∼523)



맑스는 공장을 "노동수단의 규칙적인 운동에 노동자가 기술적으로 종속되어 있고 남녀를 불문한 대단히 다양한 연령층의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병영적 규율이 만들어져 이 규율이 감독노동으로 발전하는"(K, Marx 자본 Ⅰ-2, 519) 공간으로 파악한다. 19세기 초반이래 대규모의 공장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적 공장은 "인간을 도덕적·윤리적으로 타락시키는 도구"(토크빌), 또는 "사악한 규칙과 질서와 규율이 지배하는"(엥겔스) 제도로 이해되었다.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공장체제가 이와같이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던 이면에는 (초기) 자본주의적 공장체제의 '전제성'과 '비인간성'이 내재해 있었다. 게다가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공장은 어쩔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운명적인 공간이었다.

이러한 공장체제의 특성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되기는 했지만 그 본질적 기제(mechanism)는 여전히 과거와 변함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의 논리와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구현하는 규칙들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부가되며, 규칙을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처벌과 제재가 가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송호근, 1991)


다음과 같은 공장규칙은 아주 보편적이다. ⸁ 작업시작 10분후에 정문을 폐쇄한다 ; 그 후에 온 사람은 아침식사 시간까지 들어갈 수 없다. 이 시간 동안에 작업을 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직기 당 3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 기계가 작동하는 동안 자리를 비우는 직공은 한 직기당 한 시간에 3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작업시간 중 감독자의 허가 없이 작업실을 떠나는 사람은 3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 ⸆ 다른 노동자와 대화를 하거나 신호를 보내고 휘파람을 부는 행위가 발각될 때는 6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작업시간 중에 자리를 비우는 경우 6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다른 공장규칙을 보면 3분 늦게 온 노동자는 15분에 해당하는 임금을 벌금으로 물어야 하고 20분 늦게 온 노동자는 하루 일당의 1/4을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아침식사 시간까지 공장에 오지 않은 노동자는 월요일의 경우 1실링, 다른 날에는 6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 이들 노동자들은 9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러한 전제적 규율하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들의 노예상태는 아메리카의 흑인들보다 더욱 비참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흑인들보다 더욱 엄격하게 감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F. 엥겔스, 박준식외 역,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 219-220)


모든 사람들의 모든 행동은, 행동이 이루어진 바로 그 순간에, 또한 그 후로도 계속해서 조사되고 기록되며 평가되어질 것이다. 그 체계는 모든 정보를 한 곳에 집중시킬 것이다. 그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행동했던 현장을 빠져 나왔다고 해도, 자신의 과거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 불복종의 모든 징후는―현재적이든 예상적인 것이든―교정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 판단과 처벌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시스템은 발각과 보복을 피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불복종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James B. Rule, Private Lives and Public Surveillance ; 37)


백여년의 시차를 두고 쓰여진 이상의 두 인용에서 우리는 공장체제가 갖는 성격과 형태가 변화되었다 하더라도 과거와 현재 사이에는 근본적 동질성이 존재하며 나아가 감시와 규율의 방식이 한층 정교하고 세련된 형태로 재구성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대의 공장에서도 여전히 '감옥과 군대'의 사회적 조직방식과 관리기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이는 자본지배의 관점에서 보면 '권력유지의 기술'로 정의된다.

이러한 논리의 이면에는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할 때는 오로지 잠재적인 노동력만을 획득하고 있을 뿐이라는 마르크스의 설명틀이 존재한다. 즉, 노동력의 매매 또는 계약 자체만으로는 이윤창출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력을 이윤산출적 노동으로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과정의 체계적인 통제가 요구되며 따라서 어떻게 통제하고 어떻게 통제를 유지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서 중심적인 요소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Ⅰ. 작업장 규율과 노동통제

자본주의 공장체제의 역사를 규범화·규율화의 과정으로 파악할 때 그 기원은 아마도 톰슨이 『Time, Work-Discipline and Industrial Capitalism』에서 파악한 '시간에 대한 관리'로부터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톰슨에 따르면 17∼18세기의 노동은―물론 그 이전시기의 노동까지 포함해서―'자연' 그 자체의 흐름을 따르는 방식이었다. 즉 인간의 노동을 규제하는 가장 커다란 요소는 자연의 순환적 질서였고 인간의 노동은 그것에 따라 수행되었다. "자신의 노동생활을 자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의 노동양식은 한바탕 일하고 한바탕 노는 것의 반복이었다. 전통에 따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는 수동 방적기를 돌리면서 '시간이 너무 많아, 시간이 너무 많아'하는 느린 노래를 부르다가 목요일이나 금요일이 되면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어'하는 노래로 바뀌었다.

거의 모든 업종이 성 월요일(Saint Monday)의 풍습을 엄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E. Thompson, 373) 그러던 것이 18세기 말이 되면서 점차 변환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무질서'하고 '방만한' 노동생활의 시간적 통제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노동자를 골라내어 특별히 무거운 벌금을 매기는 등의 처벌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규율화 하기 시작했다.


시간표는 오래된 유산이다. 그 정확한 모형은 아마도 수도원에서 유래되었을 터인데, 그 형태는 급속히 확산되었다. … 그리고 또한 임금제도의 점차적인 확산으로 시간에 대한 보다 정밀한 분할이 이루어진다. 예를들면, "노동자가 종이 울리고 나서 15분 이상 지각하는 일이 일어날 경우…"라든가, "작업시간중 5분이상 면회를 하는 직공…"이라든가, "정해진 시간에 작업장에 나오지 않는 자 …"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 끊임없는 통제, 감시자에 의한 압력, 작업을 방해하거나 산만하게 하는 모든 요소의 제거가 그렇다. 시간을 완전히 유익하게끔 구성하는 일이 중요해 지는 것이다.

(M. Foucault,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 226)


이러한 통제의 방식은 공장 제조방식이 도입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되었다. 공장은 엄격한 군대식의 규율이 전제적이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관철되는 공간이자, 푸리에가 이해한 바 말 그대로 감옥에 다름없는 곳이었다. 아울러 공장체제의 구축과 함께 한 기계의 도입은 노동생활 변화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기계는 산업에 있어 규율을 의미했다. "만약 증기기관이 매주 월요일 아침 6시에 운전을 시작한다면, 노동자들은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근면성을 갖도록 훈련되었을 것이다. … 또한 기계로 인해 계산이 습관화됨을 발견할 수 있었다"(Thompson, 376-377)

이와 같은 가내노동에서 공장노동으로의 변화 그리고 기계기술의 도입을 통해 자본가들은 비로소 노동자들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업 및 상업에 관한 일론}의 저자는 1770년에 어떻게 해서든지 질서가 확립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외치고 있다. "질서", … "질서"는 "분업이라는 스콜라적 독단"에 기초한 매뉴팩처에는 없었지만, "아크라이트(Arkwright)는 질서을 창조하였다" (K. Marx 자본 Ⅰ-2 ; 456) 그것은 곧 노동자들이 과업의 지시를 순종하고, 과업의 성격, 방법, 속도, 그리고 작업의 질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그와 함께 평가, 처벌, 보상의 체계에 스스로 순종하게 된다.

이리하여 기계는 처음부터 자본의 가장 고유한 착취 영역인 인간적 착취재료를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착취도 또한 확대시킨다.

기계는 또 자본관계의 형식적 매개인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약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킨다. …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력의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법적 관계상에 혁명이 일어나고 그 때문에 전체 거래에서 자유로운 인격들 사이의 계약이라는 겉모습마저 잃게 됨으로써, 결국 영국 의회에게 국가가 공장제도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 법적 구실을 주었다.

(K, Marx, {자본}, Ⅰ-2 ; 486∼488)


기술이 생산과정에 도입되고 혁신되는 것이 기술적 생산성의 측면에서 뿐 아니라, 통제를 노동과정에 부여하는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Clawson ; 1980). 기계 기술과의 상호작용은 노동자들에게 규격화된 행위를 요구하는데, 기계는 노동의 투입과 산출 모두의 형태와 질, 속도 등을 제한한다. 보다 완전하게 생산 과정이 자동화될수록, 보다 강력하게 노동 과정 통제가 일어난다. 따라서 기계는 그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규칙과의 복합체이다. 노동과정에 도입된 기계기술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면―규칙이 보이지 않고 순응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지만―조직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공장과 기계, 인간노동의 조직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이 두 계기에 더해 이제 자본가들은 비용을 통제하고 저렴화할 능력을 확대시킬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규율화하고 통제함으로써 선대제적 가내노동에서 발생하던 통제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기는 했지만 실제의 노동과정에서는 여전히 노동자들의 숙련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용주들은 분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업의 도입을 통해 자본은 실질적인 단순노동자계급까지를 포함해 숙련도, 훈련기간 및 임금에 기초한 위계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노동 자체도 급격히 변모되기 시작하여 결국 노동자의 지식, 판단력 및 의지를 예속화시키는 작업의 세분화가 초래되었다. (Paul Thompson, The Nature of Work, 심윤종역, {노동사회학} ; 46) 5명의 부분노동자가 단일 노동체의 5개 특수기관이 되며 이 노동체는 오로지 통일체로서만 곧 5명의 직접적 협업에 의해서만 노동할 수 있다. 만일 5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노동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라도 없으면 이 노동체는 마비되어버린다.(K. Marx, 김영민역, {자본}Ⅰ-2 ; 433)


생산상의 정신적 능력들이 많은 방면에서 소멸되기 때문에 한 방면에서는 오히려 확대된다. 부분노동자들이 잃어버린 것은 그들과 대립되는 자본에 집적된다. 물질적 생산과정에서의 온갖 정신적인 능력들을 부분노동자들에게 대하여 타인의 소유로서, 또 그들을 지배하는 권력으로서 대립시키는 것은 매뉴팩처적 분업의 한 산물이다. 이 분리과정은 하나하나의 노동자들에 대해 자본가가 사회적 통일체의 통일성과 의지를 대표하는 단순협업에서 시작되어, 노동자를 부분노동자로 불구화하는 매뉴팩처에서 더욱 발전하며, 과학을 자립적인 생산능력으로서 노동으로부터 분리시켜 자본에 봉사하게끔 만드는 대공업에서 완성된다. (K. Marx, {자본}Ⅰ-2 ; 448)


분업에 기초한 협업, 곧 매뉴팩처는 최초에는 하나의 자연발생적 형성물이었다. 그 현존재가 약간의 견고함과 폭을 획득하자마자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의식적·계획적·조직적 형태로 된다. (K. Marx, 자본Ⅰ-2 ; 450) 이렇듯 공장체제의 구축, 기계의 도입, 체계적 분업을 통한 노동력관리를 통해 노동력 통제의 새로운 체계가 마련되었고 이제 자본가들은 생산관계의 질적·양적 편제를 확대하면서 그 관계의 온 범위를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푸코는 이에 대해 누적된 집단 다수를 유용하게 만드는 여러 기술이야말로 자본축적 운동을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보다 덜 일반화시켜서 말한다면, 생산장치의 기술적인 변화, 노동의 분업, 규율중심적인 방식의 완성은 매우 긴밀한 일련의 전체관계를 유지시켜 온 것이다. 인간의 축적과 자본의 축적, 이 두 가지는 서로를 가능하게 하고 필요하게 했으며, 한쪽이 다른 한쪽에 모델 구실을 했다. 규율중심적 피라미드는 권력의 작은 독방을 조립했으며, 그 내부에서는 업무의 구분과 조정 및 통제가 부과되고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또한 시간, 동작, 체력에 관한 분석적 분할관리 방식은 복종시켜야 할 집단들로부터 생산의 메커니즘으로 쉽사리 이전될 수 있게끔, 계획적인 도식을 만들어 내었다. … 규율은, 신체의 힘을 가장 값싼 비용의 정치적인 힘으로 환원시키고, 또한 유용한 힘으로서 극대화시키는 단일화한 기술 과정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확장은 규율중심적인 권력이라는 특유한 양식을 초래했는데, 그것의 일반적 양식, 힘과 신체를 복종시키는 방법, 한마디로 말해서 그러한 '정치해부학'은 아주 다양한 정치체제나 기구, 혹은 제도를 통해서 사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Foucault,{감시와 처벌} ; 321-322)

그러나 생산기구가 점점 거대하고 복잡하게 되고, 노동자의 수와 분업이 증가함에 따라,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으며 이에따라 밀도높은 감시와 감독이 점점 더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아울러 노동자들은 '통제의 전선'을 방어하고, 로이와 뷰러워이가 'Making out'(생산량관리)이라고 부른 과정에 참여하였다.

요컨대, 기술적 발전과 작업관리방식의 변화가 성취한 통제의 영역은 끊임없는 변화와 변동의 공간이 되었다.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주장했던 바 "부르주아 계급은 생산용구를 변혁시키고 따라서 생산제관계와 이에 따른 모든 사회적 제관계를 끊임없이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고정불변한 것은 증발해버리고 모든 신성한 것은 모독당하며,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은 그들의 생활상의 지위와 그들 상호관계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김세균 감수,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공산주의 당 선언] ; 403)

이제 새로운 감시와 규율화의 방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Ⅱ. 노동력 관리의 정보적 재구성과 노동과정


1. 1998년 한국 ― 누군가 당신을 엿보고 있다 (Somebodies Watching You).

현대사회는 거창한 구경거리의 사회가 아니라 감시의 사회이다. 여러 가지 이미지의 허울 속에서 우리들의 신체는 심층적인 공격대상이 된다. 대대적인 교환의 추상화한 체계 뒤에는 유용한 힘을 얻기 위한 정밀하고 구체적인 훈육이 계속되며, 정보 소통의 경로는 지식의 축적과 집중화의 지주가 되고, 기호들의 작용은 권력이 어느 곳에 닻을 내려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개인이라는 허울 좋은 전체성은 우리의 사회질서에 의해서 전달되고, 억압되고, 변질되지는 않지만, 개인은 사회질서 속에서 힘과 신체에 관한 전술에 의거하여 세심하게 만들어진다. (Foucault ; 317)

다소 삭막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상에서 인용한 푸코의 통찰에서 우리는 우리시대의 우울한 징후들을 포착할 수 있다. 가끔씩 TV이나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몰래카메라'는 드라마틱하거나 에로틱(?)한 맛이라도 있어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긴장감을 그런대로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 아침에 집을 나와 집앞 편의점에서 담배살 때 한번 찍히고 돌아 나와 버스 탈 때 또 한번 찍히면 내릴 때 다시 한번 찍는다. 회사로 들어갈 때 머리위에 있는 카메라의 시선을 뒤통수로 받으며 ID 카드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알린다.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감시가 시작된다. CC TV, ID 카드는 화장실을 가거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 사람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회사는 철창없는 감옥이다.


《사례 1》 한국타이어의 DAS

작업공정의 기계적 설비를 전자감시의 원리에 의해 구축한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타이어를 들 수 있다. 한국타이어는 생산기계에 감시용 단말기가 내장되어 있는 설비―DAS―를 도입 활용하고 있다. 이 기계의 시작과 함께 단말기도 같이 작동하며 기계의 작동이 멈추는 순간 단말기로의 정보전송도 끝나게 된다. 노동자의 하루 일과는 정문에 붙어 있는 감시카메라를 통과해 IC 카드로 자신의 출근여부를 알리고 또다른 감시카메라가 보는 가운데 자신의 작업대로 가 이 감시용 모니터가 내장되어 있는 작업기계의 스위치를 누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만일 작업자가 이 생산기계를 5분 늦게 시동시킬 경우 '5분 지체의 정보'는 중앙컴퓨터에 곧바로 송신되며 5분 일찍 기계작동을 멈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기능은 어쩌면 이 기계의 본래적 성능에 의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이 기계의 진가는 하루 일과중에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모든 행위에 관한 정보를 저장·송신·축적 하는 데에 있다. 작업속도, 생산량, 불량률, 작업이 중지되는 시간 등 작업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이 시스템을 통해 감시당한다. 이 기계가 가지고 있는 정보수집의 범위는 단위공장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사장실에 앉아서 전주공장에 있는 '97222133 사번을 가진 17호 기계 담당작업자'의 '노동생활' 전 과정 및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할당된 생산량을 다 채우지 못한 경우 서울의 사장 또는 생산관리담당 이사는 해당 작업자에게 무급잔업을 명령할 수도 있다. 생산량통제(Making out)의 여지는 이러한 체계에서는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게다가 이렇게 축적된 Data는 조작의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조작된 사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노동 즉 작업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노조건설에 열심이라면 그 사람 관련 Data는 조작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스스로 기록철을 만들어 자신을 관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담배한대 피우러 잠시 자리를 비우는 시간까지 기억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례 2》ID 카드와 CC TV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안기부직원들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을 요즈음은 길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카드모양의 신분증이 달린 개목걸이다. 마치 '난 모기업의 사원이오'를 시위라도 하는 양 Y-셔츠의 왼쪽 주머니에 아니면 가슴한복판에 늘어뜨리고 다니는 그 신분증의 오른쪽 귀퉁이에 가로-세로 약 1cm가량의 은백색 칩이 내장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IC 칩이다.

이 신분증은 회사 밖에서야 전시용으로 쓰일 수도 있겠지만 회사 내에서는 감시요소들의 집적물로 기능한다. 굳이 과거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과거의 노동통제 방식이 대면적 직접통제의 방식이었다면 이 ID 카드를 이용한 감시는 비가시적인 원격통제방식이다. 출·퇴근 정보, 지각·조퇴 등은 물론이고 작업자의 회사내 이동상황이 회로를 통해 낱낱이 중앙으로 집적된다. 어떤 경우 이 ID 카드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방의 열쇠로도 기능한다. 문을 열고 방을 나올 경우 방문은 자동적으로 닫히는데 다시 들어가려면 ID카드를 카드판독선에 통과시켜야 한다. 근무해야 할 시간에 방밖에 있다는 사실이 입력되고 저장되고 전송되고 저장된다. 이러한 것은 주로 사무직의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생산공장에도 도입이 시도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 최근 이 ID카드가 도입 일부 시범 운영되고 있다. 각 반의 반장들에게 센서가 부착된 개인용 컴퓨터(PC)를 한 대씩 지급했는데 이 단말기는 각각의 ID 카드를 추적해 개인들의 근무상황, 이동상황 등을 자동으로 등록한다. 이 자료들이 개인들의 고과평점이나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기준자료가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CC TV는 최근에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 오히려 친숙하다(sic !). 은행은 말할것도 없고, 백화점, 버스터미널, 학교, 병원, 공장 …. 이러한 CC TV를 이용한 감시의 사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초판옵티콘, 즉 벽과 창문이 없으며, 감시자가 드러나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95년에 한국통신에서 노동조합을 CC TV로 감시한 사례가 수집되었으며, 최근 대부분의 시내버스에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CC TV가 설치되고 있다.


2. 판옵티콘과 노동과정 - 비가시적 권력의 배치와 구성

생산과정의 전자·정보적 재구성은 앞서 보았던 자본주의적 노동통제를 둘러싼 문제에 대응한 자본의 전략이란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생산양식의 재구성이라는 개념이 공장체제의 획기적인 그리고 단절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개념은 아니다. 생산관계와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방식과 논리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즉, '어떻게 유효노동을 추출해 낼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기술의 변천 그리고 기술구성의 변화가 과거의 통제 방식과 통제 규율에 더해 새로 도입되거나 또는 과거의 방식을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통제의 정보적 재구성 과정에서 길들여지도록 요구된다. 푸코가 이해하기에 (새로운) 규율은 집단 다수의 개별적인 요소가 갖는 특별한 효용을 증대시켜야 하지만, 다만 가장 신속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단 다수를 효용증대의 수단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신체로부터 최대한의 시간과 힘을 추출하기 위하여 시간표, 집단 훈육, 연습, 총괄적인 동시에 상세한 감시 등 전체적 방안이 마련된다. (Foucault ; 320)


⸁ 판옵티콘과 규율권력

오늘날, 공장내 감시―CC TV. ID Cards, DAS 등―의 방식을 조직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일종의 '초판옵티콘'이라고 할 수있다.(M. Poster ; The Mode of Information) 정보기술은 체계적인 기록과 분류, 공장생활에 대한―나아가 일상생활의 영역까지도―계속적인 감시, 그리고 개인의 특수하고 독자적인 속성에 대한 부단한 조정과 재조정 등을 통해서 권력을 부과하는데, 이를 통해 권력은 규율의 통합적인 체제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복합적이고, 자동적이며 자율적인 권력으로서 조직되었다. 비록 감시는 각각의 개인들에게 부과되었지만, 그것의 기능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통합된) 관계의 감시적 연계망을 구축했다.

푸코에 따르면, "공장에서의 규율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더욱이 법률 체계가 보편적 규범에 의거하여 법적 주체를 규정하는 반면에 규율은 사람들을 특징짓고, 분류하며 특정화한다. 어떤 척도에 따라 배분하고, 어떤 기준을 삼아서 분할하며, 개개인을 상호 비교해서 서열화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격을 박탈하고 무효로 만든다" … "아무리 규칙을 잘 지키고 제도적이라 할지라도 규율은 그 메커니즘에 있어 하나의 대항적 법률이다. 또한 근대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법치주의가 권력의 행사에 한계를 부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도처에 확산되어 있는 일망감시방식은 법률의 경우와는 반대로 권력행사에서, 권력의 불균형을 지탱하고, 강화하고, 다양화시키며, 부과된 한계를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드는, 거대하면서 동시에 미세한 장치를 작동시킨다.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망 감시방식 형태의 미세한 규율은 대규모의 장치와 대규모의 정치투쟁이 출현하는 층위 밑에서 존재할 수 있다"


⸃ 전자적 감시는 '규범화'의 기제이다.

전통적인 통제방식이 가시적 규범화, 즉 규범화 과정과 절차 그리고 그 논리가 대상인 노동자 개개인에게 보여야만 효과를 발휘하던 방식이 이제는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래서 작업장의 노동자는 실제적인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규범화된 가공적 인격체로 전화된다. 이러한 자기변형은 전자적 감시기제를 동원한 끊임없는 감시의 결과이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리모트 컨트롤러의 조정에 따라 움직이고 정지하며 다시 움직이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그 과정이 무의식적 규범화의 과정이다. (작업 또는 통제)명령의 발화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수신자 즉 노동자는 권력의 의도된 정보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주목한다. 격리수용된 감옥에서 엄격한 일과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고 끊임없이 감시받는 죄수들처럼 노동자들은 메커니즘의 육체가 되어 길들여 진다. 푸코식으로 이해하면 이것은 '처벌하는 이성'의 역사적 단면이다. 감시의 권력효과는 곧 '처벌에 대한 공포'이기 때문이다.


⸃ 정보기술에 기반한 소위 '합리적' Data가 계급갈등을 은폐하고 있다. 생산관계의 정보적 재구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중의 하나는 Data인데 이러한 Data가 통제와 관리의 자료로 기능하게 되는 순간부터 이 Data는 정치적 성격을 부여받는다. 특정 기간동안 공장생활에 대한 결과로서 노동자들 앞에 제시되는 Data는 각 개별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한 객관적 측정치로서, 감히 그 사실여부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도록 수치화, 범주화되어 나타난다.

공장 노동자들은 이제 여러 가지의 숫자들로 표현되며, 그러한 규범화의 규율은 개인적인 본성이자 특성으로 굳어진다. 예컨대, 아무개씨는 더 이상 아무개씨로 호명되는 것이 아니라 사번 97233566으로서, 근무태도가 C급정도 되는 노동자로서, 생산능력은 B정도의 수준을 가진 노동자로서 인지된다. 이러한 전 과정은 계급갈등의 여지를 효과적으로 은폐시킨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나, 생산량에 대한 측정 그리고 근무태도 평가등이 주로 현장관리자(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에 의해 이루어져 계급갈등의 지점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며 저항의 선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곤했다. 또한 자료의 정확성 또는 기준의 명확성 등에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저항을 조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각 노동자들의 노동생활이나 노동의 결과가 작업과 동시에 Data화 되어 노동자들을 평가하는 자료로 재정의(redefinition)되는 순간부터 노동자들은 서로를 동료로서 또는 기업주에 대해 공동으로 싸워나가야 하는 동지로서가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서 느끼기 시작한다. 그 Data의 객관성이나 과학적 엄밀성을 문제삼는 것은 매우 드믄 경우에 속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객관적', '과학적', '합리적'이라는 이름하에 제시되는 Data의 결과를 수용하게 되며, 그 결과 이렇듯 계급갈등을 은폐시키고 전도시키는 규범화의 규율은 노동자들의 육체속에 자리잡는다.


Ⅲ. 맺음말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의 감시와 통제에 관한 역사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천과 궤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살펴보았다. 공장, 기계, 분업 등을 통해 노동자들은 다양한 규율과 통제체제를 경험하면서 공장체제에 적응해 왔다. 이러한 공장규율의 확립은 그것이 경과해온 광범위한 몇가지의 역사적 과정, 즉 경제적이고, 법률·정치적이며 과학적인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Foucault ; 318)

푸코는 이러한 규율체계의 근대적 특성을 판옵티콘으로 개념화했다. 판옵티콘의 이론적·실천적 구성은 산업화 과정에 관련된 새로운 형태의 통제와 관리를 가능하게 했으며 나아가 노동자들의 육체를 메카니즘화된 자동인형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공장의 모든 규율은 다수의 노동자를 질서정연하게 배치하기 위한 기술(Foucault ; 318)에 다름아니었는데, 그로부터는 어떠한 예외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신체로부터 최대한의 시간과 힘을 추출하기 위하여 시간표, 집단 훈육, 연습, 총괄적인 동시에 상세한 감시 등 전체적 방안이 마련되었다.(Foucault ; 320)

노동통제의 전자감시적 형태는 바로 이러한 메카니즘의 집적물이다. 당신의 주위를 둘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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