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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의 민중적 재편을 위한 정책 제안

지적재산권'의 민중적 재편을 위한 정책 제안


오병일


현실 정보사회는 자본의 주도하에 형성되어왔으나, 수많은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왜 내가 가진 정보를 친한 친구에게 나누어주면 안되는가? 왜 디지털 도서관의 풍부한 정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가? 왜 인터넷을 통해서 음악을 듣는 것이 제한받아야 하는가? 무엇때문에 감시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가? 왜 치료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가? 왜 특정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받아야 하는가? 왜 제3세계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정책을 결정할 수 없는가? 왜 정보를 가진자와 그렇지 못한자 사이의 정보격차는 갈수록 벌어져가는 것일까?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나은 사회를 위한 고민과 실천을 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설사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는 것일지라도. '경쟁의 세계화'와 같은 '현실론'은 사실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를 감추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현실에 문제를 느낀다면,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과 연대를 하는 것이다.


저작권, 특허권, 상표권 등 현재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사회의 지적 자산에 대해 평등하고,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가 가져온 혁명적 잠재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정해진 미래는 없다. 단지 여러 제안과 토론과 실험이 필요할 뿐이다. 카피레프트 운동은 정보의 생산, 유통, 소비에 대한 대안적인 시스템의 하나로서 충분히 가치있는 실험이다. 우리는 카피레프트 운동을 다양한 영역에서 실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기업의 이익'에 편향되어있는 저작권, 특허권, 상표권 등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대안적인 정책에 대한 하나의 제안을 내놓고자 한다. 물론 이 제안은 아직 투박한 것이며, 향후 더 많은 토론을 위한 것이다.



1. 기본 관점


1) 성, 지역, 경제적 능력 등에 따른 정보격차가 최소화되어야 한다.


- 저작권, 특허권, 상표권 등 지적재산권의 과도한 보호는, 성, 지역, 경제적 능력 등에 따른 정보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보격차는 다시 경제적인 격차와 사회권력의 격차로 재생산되고 있다. 국내적, 국제적인 정책 결정은 이러한 정보격차를 최소화하고, 사회적인 약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정보격차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중요한 방안은 공공 정보(Public domain)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정보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배타적 권리의 보호기간을 축소시킴으로써, 그리고 배타권이 인정되지 않는 방식의 정보 생산을 장려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2) 정보기본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 정보생산자의 권리가 이용자의 정보기본권을 침해할 정도로 과도하게 보호되어서는 안된다.


-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보다 근본적인 권리로 인식되어야 한다. 특히, 생활에 필수적인 정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정보, 공공정보 등 공적 정보는 한 사회의 지식기반으로서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한, 교육, 연구, 사적 이용, 비상업적 이용을 위한 정보의 사용은 지적재산권에 의해서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위해서, 이용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 지적재산권이 자유로운 표현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3) 다양한 가치와 자율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 각 국가 및 국내 자치 공동체는 지식기반에 대한 독자적인 가치와 운영원리를 가질 권리가 있으며, 지적재산권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지적재산권 역시 특수한 하나의 운영원리일 뿐이다.


- 한 사회의 지식 생산에는 '시장의 원리' 보다는, 각 지식 영역이 가지는 독자적인 가치와 운영원리가 존중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학교, 연구소 등 공적 지식생산 부분이나, 카피레프트 운동 등 자발적인 시민사회의 생산 영역에 보다 많은 지원이 주어져야 한다.


- 지적재산권은 특정 정보가 특정 생산자'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의 지식기반과 이용자를 포함한 타인과의 소통없이 생산될 수 있는 정보는 없다. 즉, 정보는 '전무(全無)'로부터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정보의 생산에 있어서, 생산자가 속한 공동체나 이용자의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



2. 대안적인 정책 제안


1) 컴퓨터 프로그램, 메뉴얼, 데이터베이스 등 기능적인 정보생산물은 저작권법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보생산물의 경우, 문화, 예술 영역의 저작물을 대상으로 한 저작권법과 맞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각 정보생산물에 적합한 별도의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2) 저작권 및 특허권은 실제 저작자나 발명가에 종속되어야 하며,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저작권 및 특허권은 저작자나 발명가와 태생적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 권리가 양도되는 순간, 저작자나 발명가의 보호라는 애초의 취지를 벗어나서, '오로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권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권리가 양도가능하게 된다면, 실제 저작자나 발명가가 아닌 기업이 권리의 수집 및 독점을 통해 과도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3) 저작권 및 특허권의 보호기간(즉, 자유로운 이용을 제한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 이내로 단축되어야 한다. 단, 인격권은 영구히 유지된다.


4) 컴퓨터 프로그램과 메뉴얼은 그 소스를 공개하여,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복사하거나, 수정, 재배포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제한이 있어서는 안된다. 단,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5) 데이터베이스의 경우, 공적인 성격이 강한 데이터베이스(예를 들어, 전화번호부, 환경 데이터베이스, 법률 데이터베이스 등)는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며, 복사 및 배포가 가능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국가는 이와 같은 공공 데이터베이스의 제작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를 민간에서 제작하였다면, 국가가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공적 성격이 약한 데이터베이스의 경우, 만일 투자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면, 이의 보호를 위한 별도의 입법을 해야한다. 하지만, 그 보호기간은 과도하게 길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3년 ~ 5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단, 데이터베이스의 갱신으로 인해, 보호기간이 무한정 연장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6) 교육 및 의료정보, 행정정보, 공공의 이익과 관계된 기업정보 등 공적인 성격이 강한 정보 생산물의 경우에는, 이용자들이 이를 사용하는데 제한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공적 정보의 생산을 위한 정책적인 지원 - 예를 들어, 투자에 대한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을 해야한다. 또한, 대학, 정부, 정부출연연구소 등 공적 기금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에 의해서 생산된 정보는 그 사용에 제한이 있어서는 안되며, 사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 배타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


7) 정보 생산물에 대한 실제 생산자의 인격권은 보호되어야하며, 타인에게 이전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나 위탁업자와 같은 실제 정보 생산자의 인격권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복사 및 수정, 재배포될 경우에도, 원 저작자를 명시하는 방법 등을 통해 실제 생산자의 인격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8) 저작권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어서는 안된다. 정치적인 표현, 패러디 등을 위한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 침해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9)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조치가 이용자를 감시하는 방법을 동원해서는 안된다. 또한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는 기술 보호조치가 자동 해제되어 공공의 자산이 될 수 있어야 한다.


10) 제3자에게 저작권 보호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 특히 저작물의 유통을 위한 통신망 사업자 등에 저작권 보호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 이는 통신망 사업자 등으로 하여금 이용자를 감시하게 함으로써,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떠한 행위를 강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11)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나 특정한 기법 혹은 사업방식과 같은 추상적인 아이디어 자체에 대해서 특허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현재까지 소프트웨어나 사업방식에 부여된 특허는 모두 무효화되어야 한다.


12) 미생물을 포함한 생명체 및 그 일부, 유전자 그리고 미생물학적, 생물학적 과정에 대해서 특허가 부여되어서는 안된다.


13) 특허의 부여는 매우 신중하여야 하며, 상당히 고도한 기술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부여되어야 한다. 현재까지 특허부여된 발명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새로운 특허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특허의 경우 무효화되어야 한다.


14) 특허 심사관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기 전에, 해당 분야의 발명에 대한 특허가 부여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특허 심사관은 발명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야 한다.


15) 각 국가는 시급한 위기 상황 뿐만 아니라, 정책상 필요한 경우, 강제실시권을 쉽게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후에라도) 원천기술-다른 기술의 개발을 위해 사용될 수 밖에 없는 보편적인 기술-이라고 판단되는 특허에 대해서는 강제실시권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16) 인터넷 도메인은 상표의 성격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가치에 비해 상표권이 우선될 수는 없다. 즉, 상표권은 인터넷 도메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며, 따라서 인터넷 도메인에 상표권을 적용하는 것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17) 정부는 그누/리눅스(GNU/Linux)와 같이 정보공유에 입각한 정보생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한다. 우선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그누/리눅스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컴퓨터 프로그램 외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보공유에 입각한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활동 역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18) 저작권, 특허권, 상표권 등 지적재산권에 관한 기존의 국제 협정은 전세계 시민사회단체의 참여 속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국제 협정은 하나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뿐, 각 국에 의무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WTO 내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협정)은 무효화되어야 한다. 선진국은 제3세계에 자신의 지적재산권 체제를 강제해서는 안된다.


19) 식량, 보건, 환경 등에 관련된 선진국의 기술은 제3세계에 무상으로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이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이 무역 제재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3. 근본적인 대안을 꿈꾼다.


현실의 지적재산권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개편하는 것과 지적재산권 체제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다르다. 사실 지적재산권은 '시장 중심의 생산, 유통, 분배, 소비 시스템'을 그 철학적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정보 생산물을 둘러싼 모순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적재산권은 그 본질상 희소하지 않은 정보재를 법적 규제를 통해서 희소성을 가진 경제재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은 단지 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사회적 의식과 경제 시스템을 재생산한다. 그래서, 현실의 지적재산권 체제를 어느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위 정책 제안도 일정정도 현실과 '타협'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모순의 해결은 지적재산권 체제가 아닌, 새로운 정보 생산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깔 수 있고, 누구나 정보를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으며, 사회적인 기여에 대한 적절한 인정-꼭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사회 시스템은 불가능한가?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존재할 때에만, 그러한 사회가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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