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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불여일행(百思不如一行)

노동운동사 교육을 가서

"수덕사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지요?"하고 질문을 하면

'노동운동사 강의에 웬 절...'하는 표정도 있고

"여승이요"하는 대답도 제법 많다.

'수덕사의 여승'으로 유명한 일엽 스님이 있었으니까 나올만도 하다.

"그 다음은요?"

"......"

"그러면 부석사는 뭐가 유명해요?"

"무량수전이요"

"그런데 수덕사하면 여승말고 떠오르는 것이 없어요?"

"아,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의 공통점은요?"

"......"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안배우셨어요?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려시대 목조건물이잖아요.

주입식 사지선다형 교육의 문제가 여기 있다니까..."

"맞아요!!"(웃음)

"노동시간 단축하여 아이들하고 역사유적 문화유산 답사도 가고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처럼 와르르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 사회도 생각해 보고...

열심히 투쟁해야겠지요?!

"예..."

"절 얘기하다 갑자기 투쟁을 이야기하니까

'투쟁!'하는 구호가 힘차게 안나오는군요...

투쟁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수덕사에는 대웅전이나 일엽 스님말고도

유명한 경허스님과 만공 스님이 있습니다.

수덕사에 가면 흔히 대웅전까지만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대웅전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덕숭산 중턱을 올라가면

만공스님의 사리탑인 '만공탑'이 있어요. 부도지요.

예전에 한 번 덕숭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만공탑 뒷면에 새겨있는 글귀를 보았거든요.

참 인상깊었어요. '백사불여일행(百思不如一行)'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지요.

'백사불여일행'이라... 조는 분들은 '백사가 불여우와 일행이 되어 어디갔나...'

그렇게 들리나요?

그런게 아니라

'백 번 생각하는 것이 한 번 행동함만 같지 못하다'

'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것이 낫다'

그런 뜻이겠지요. 그 말이 만공스님하고 무슨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고요...

괜찮은 말 같아서 많이 듣던 '백문이불여일견(百問而不如一見)'

다음에 '백견이불여일사(百見而不如一思)'란 말을 만들어 넣었어요.

순전히 박준성 창작입니다...

'백사불여일행'과 연결시켜보니까 말이 되는 것 같지요.

'백번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 낫고

백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고 실천하고 투쟁하는 것이 낫다'

선배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역사는 통밥만 굴려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행동을 통하여 이루어진 땀과 눈물과 피의 역사입니다.

그렇다고 백 번 듣고 백 번 보고 백 번 생각하는 것이 의미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요? 듣고 보는 신체 부위는 어디지요?"

"머리요!"

"깊이 생각해보자고 할 때 어디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고 하나요?

머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고 그럽니까?"

"아니요, 가슴에요"

"맞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혼자보다 같이 하는 것이 훨씬 힘이 나지요?

그러니까 맨날 머리에 동겨맬 붉은 띠에 '단결 투쟁'이라고 쓰잖아요.

같이 함께 싸우자고 할 때 손을 맞잡고 어깨동무를 하자고 그러지요...

행동한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인데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 뭘로 옮겨가요?"

"다리 발이요"

"그렇지요. 그러면 '백문이불여일견이요, 백견이불여일사, 백사이불여일행'이라고

했으니까 머리좋은 사람보다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더 좋고,

가슴 따뜻한 사람보다는 팔다리 튼튼한 사람이 더 좋겠지요?

말이 되나요? 열심히 걷고 운동합시다."

"......"

"그리고 그 튼튼한 다리로 딛고 서 있는 땅이 한자로 '處地'아닙니까?

일본식 한자 표기로는 '서있는 장소' 곧 '立場'이고요...

처지에 따라 생각하고 보고 듣게 되는 것이지요.

그걸 흔히 입장이라고들 하잖아요. 관점이지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하고, 몸가는데 마음간다는 말로도 많이 표현합니다.

결국 노동자가 노동자다우려면

노동자 처지에서 세상을 보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뜻이지요.

그러나 자본가 권력은 교육 언론 온갖 선전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의

말을 듣게하고 보게하고 생각하게 강요합니다.

그게 바로 노래말에도 나오는 '거짓선전 분열의 음모' 아닙니까?"



이렇게 '백사불여일행'이란 글귀를 가지고 풀어나가다가

'백문이불여일견'인데, 말로만 하는 것보다

그 글귀를 슬라이드로 보여주려고 한여름 수덕사에 갔다.

땀을 뻘뻘흘리며 중턱까지 올라가 만공탑을 여러장 찍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까 '백사불여일행'이 아니라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었다.

'百思'도 아니고 '千思'였다.



교육을 다니면서 점점 더 힘들고 부담스러워지는 까닭은

교육이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요,

강의안 만이 아니라 온 몸이 교재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렸을 때야 동무들과 도랑 앞에 죽 늘어서서

"우리...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도랑에 뛰어들자!

자... 하나! 둘! 셋!!"

모두들 빠져 들고 혼자 남아 손뼉을 치며 좋아라하던 악동들도 있었지만

그래서는 안되잖아......

'교육'보다는 '연구'로 도망쳐 가고 싶은 욕망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까닭도

그 때문일 거다.

앗! '지행합일(知行合一)'이란 말이 또 있잖아!



나는야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하나! 둘! 셋!!'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계시고 동지들이 가까이 있으니 다행이다.

남구현 같은 분을 스승으로 둔 제자들은 얼마나 눈시울이 찡하고 가슴이 짠하게

감사하고 행복할까.....



건강도 안좋은 남구현 동지! 단식하는 그 뜻을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 며칠 동안 굶은 사람한테 힘내라면 이게 뭐야...

단식을 계속 더 하라는 말인지 뭔지 ... 궁시렁 궁시렁...

그런데 내가 일제식민지시대 노동운동 선배 가운데

105일 동안 단식하다 옥사한 이한빈이나

묵비 단식으로 버티다 풀려나 30대 초반 한창 나이로 죽은

강주룡을 예로 드는 이유가 굶어죽자는 뜻은 결단코 아니다.

우린 100살이 넘도록 변치말고 살아야 하니까...)



한신대를 가봐야 하는데 오늘은 신탄진, 내일은 울산, 월요일은 구미로

환등기를 메고 떠나야 한다.

우씨... 나도 '하나! 둘! 셋!!'은 하지 말아야 할텐데...



남구현 선생이 빨리 단식을 풀 수 있도록 모두들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고 성원하고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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